시시비비(~2023)_
방심위가 ‘꼰대 심의’라는 오명을 벗으려면?(정민영)
등록 2016.06.0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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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구성 다양화 시급하다
방심위가 ‘꼰대 심의’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정민영(변호사, 법무법인 덕수)

 

 방송심의제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이제 지겹기까지 하다. 종편의 막말방송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정부 비판 방송에는 과도한 칼날을 들이대는 편파 심의가 반복되어 온 지도 벌써 오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정치적’ 심의가 법원 판결로 여러 차례 뒤집혔지만, 방심위가 이를 자성을 계기로 삼은 것 같지도 않다.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기되는 것은 방송통신심의위원 9명을 여야가 6대3으로 분점 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심위원 한명 한명의 면면을 살피다보니,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지난해 말, MBC의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방심위에서 행정제재를 받았다. “인터넷 용어 및 의미가 불분명하며 맞춤법에 맞지 않는 언어를 자막으로 방송하였다”는 이유다. ‘마리텔’은 인터넷 방송과 TV를 결합한 새로운 포맷을 가진 프로그램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사람들이 쓰는 신조어들을 자막으로 내보내다보니, ‘핵꿀잼’, ‘쩐다’ 같은 표현이 사용된다. 포맷 자체의 성격을 감안할 때, 이런 용어들을 제외하면 방송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방심위원들은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제재에 앞장섰던 함귀용 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미 인터넷상에서는 언어가 다 파괴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켜야 될 것은 방송입니다.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해서 방송도 깨기 시작한다면…. 둑이 구멍으로부터 조금만 뚫리기 시작하면 그 댐은 무너집니다.” 심의 이후 마리텔은 네티즌들이 단 생생한 댓글을 ‘우리 문법에 맞게 순화’해 자막으로 내보내고 있다. “ㅋㅋㅋ”를 “크크크”로, “핵꿀잼”은 “핵폭탄 같은 재미”로.

 

  지난 3월에는 TVN의 예능프로그램 <SNL코리아 시즌7>에서 아이돌 남자가수의 키스 장면을 내보냈는데, 방심위는 이 방송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라고 판단해 행정지도 제재를 결정했다. JTBC의 <선암여고 탐정단>에서도,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에 대해서도, 방심위는 “동성애를 그 자체로 억압되어야 할 것”으로 전제하는 경직된 사고를 보여주었다. 이미 12년 전 동성애를 청소년 유해 매체물의 심의기준으로 규정했던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조항이 인권위의 권고에 따라 삭제됐는데도, 심의가 그로부터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 문제는 “동성애 장면 보여주면 동성애자 된다”라는 식의 시대에 뒤진 사고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방심위원 9명 중 8명이 60대 이상, 여성은 한 명도 없어
무엇이 문제일까?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위원들의 생물학적 연령이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 9명 중에는 30대는 고사하고 40대 위원도 전무하다. 9명 중 8명이 60대 이상이며(박효종 위원장은 70세), 55세인 윤훈열 위원이 최연소다. 컬러TV가 보급되기 전 청소년기를 보냈고, 마흔이 넘어 인터넷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방송과 인터넷에 대한 심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9명 위원 중 여성은 한명도 없다. 장애인, 동성애자 등 소수자를 대변할 위치에 있는 위원도 사실상 없다. 이들의 직업 구성을 보더라도 제작에서 손을 놓은 지 한참 지난 방송사 고위간부 출신 언론인들, 신문방송학 등을 전공한 교수, 공안검사를 거친 변호사로 다양성이 떨어진다. 다양한 시청자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직된 심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심의위원 9명 중 최소한 3명은 30·40대로 구성해야

이번 방심위의 임기는 내년까지다. 새롭게 구성되는 방심위가 정치적 편향 심의와 단절할 수 있도록 제도를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심의위원 구성을 다양화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9명의 위원 가운데 최소한 3명은 30~40대로, 4명 이상은 여성으로 구성해야 심의의 경직성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성소수자나 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도 위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지금처럼 교수, 변호사, 언론사 고위간부 출신 60대 남성 일색으로 심의위가 구성된다면, 방심위가 ‘꼰대 심의’라는 오명을 벗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