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시청자 염증만 키우는 방송사들의 ‘아귀다툼’(정연우)
등록 2016.06.3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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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권력 감시와 비판, 공정성을 내던진 방송
시청자 염증만 키우는 방송사들의 ‘아귀다툼’

 

정연우(이사)

 

 

아귀는 탐욕을 부리다가 아귀도에 떨어진 귀신이다. 성질이 사납고 탐욕스럽기 그지없다.  배는 엄청나게 큰데, 입은 작고 목구멍은 바늘구멍 같아서 음식을 삼킬 수 없으므로 몸은 앙상하게 말랐다고 한다.
요즘 방송사들이 딱 그 꼴이다. 방송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그저 돈타령이나 하면서 염치도 버리고 낯 뜨거운 것도 가리지 않는다. 종편들은 자극적인 소재만 있으면 돈이 아른거리는 모양이다. 막말과 혐오, 인신공격으로 천박한 관심을 부추기는 짓은 이미 오랜 된 수법이다. 사회적인 이슈가 발생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고 할퀸다. 교활한 눈을 굴리며 먹잇감을 노리는 승냥이 떼가 떠오른다. 물론 저보다 힘이 세보이는 살아있는 권력이나 대기업에는 감히 덤빌 엄두도 못 낸다. 언제나 희생양은 만만한 약자다. 그들이 용맹한 맹수조차 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끔찍한 사건, 성, 연예인 추문은 더할 수 없는 먹잇감이다.

 

박유천, 성폭력, 범죄 재연 프로그램 등 선정성 장사
대중들의 관음증에 기대어 시청률 장사하기 딱 좋다. 요즘 종편들은 뜨거운 소재를 만나서 신이 난 듯하다. 가수 박유천 씨의 성폭행 혐의가 알려지자 종편들은 시사 토크 프로그램에서 연일 부풀리고 꾸며내며 대중적 관음증을 부추긴다. ‘화장실 집착’을 집중으로 언급하면서 황색저널리즘의 극단을 드러냈다. 저급한 가십으로  야릇한 상상과 온갖 소설로 덧칠을 했다.  ‘1인당 50만원 내외’, ‘방 10개, 각방에 작은 화장실 위치’, ‘여성종업원, 명문대 유학파 다수’ 등 세세한 사항까지 그래픽으로 정리해 내보냈다. 섬마을 주민들의 교사 성폭행 범죄에서도 종편은 큰 돈벌이 기회가 열렸다는 듯이 흥분했다. 사건의 본질보다는 어떻게든 선정적 관심사로 시청자를 낚을까에 초점을 맞추었다. 종편만 그런 것도 아니다. 지상파도 별반 다르지 않다. MBC <‘학교 밖 청소년’ 범죄‧성매매 유혹>의 보도는 유흥가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들, 유흥가를 헤매는 청소년, 채팅앱에서 성매매 유혹에 빠지는 여성 청소년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특히 범죄 재연 프로그램은 상업 방송의 탐나는 먹잇감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TV조선 <이것은 실화다 COPS>와 MBN <기막힌 이야기-실제상황>이 선정적인 막장 재연극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범죄 피해자 왜곡을 통한 인권 침해, 구체적인 성관계 묘사, 흉기 및 혈흔 등 살해 장면 묘사 등이 핵심 줄거리다. 성적 스토리가 주요 소재다. 성관계를 암시하는 대사와 여배우의 신체 노출이 가득하다. 내용 전개와 상관없이 뜬금없는 성적 대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기막힌 이야기-실제상황>의 13개 에피소드는 내연녀의 딸과 성관계를 가진 파렴치범, 구혼광고 사기, 아동학대, 피해자의 지문을 도려낸 살인사건, 아버지 친구의 성폭행 등 다양한 엽기 사건이 주를 이뤘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화다 COPS>의 총 8개의 에피소드 중에서는 신생아 불법 매매 및 학대 등을 포함한 가족 사이의 폭행‧살인‧살인미수 사건이 무려 4편이었다. 이쯤 되면 이 정권이 규정한 4대악 중 하나인 불량 식품을 넘어서서 정신과 문화에 대한 독극물 수준의 유해 식품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공영방송사의 막장드라마는 부끄러움도 없어
공영방송사들도 이러한 아귀들의 행진에 맨발로 뛰어 들었다. 막장 드라마로 지탄을 받은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패륜과 배신, 복수, 막말, 출생의 비밀과 느닷없는 죽음…그래도 최소한의 염치는  있으리라 믿고 싶었다. 차마 대놓고 막장 드라마를 감싸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마저 배신당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그게 어때서란다. 막장 드라마를 만들고 편성하는 것이 방송사 그것도 공영방송사의 정당한 권리라는 듯이...방송통신심위원회는 지난해 4월 MBC 드라마 <압구정 백야> 중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이자 친딸에게, 또 딸이 어머니에게 폭언하는 장면과 패륜 설정이 청소년 시청자의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관계자 징계’와 ‘경고’를 결정했다. 이에 MBC는 “사회 통념 범위 내에 있다”며 제재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다행히 법원의 판결은 제재가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MBC는 얻은 것 없이 괜히 민낯만 보여준 셈이 되었다.


 KBS는 올 봄에 조직 개편을 했다. 수익성 위주로 바꾼 것이 핵심이다. 공영방송이 해야 하는 공적 책무에 대한 고려는 뒷전이다. 이미 MBC는 14년에 이미  교양국을 폐지하고 수익성 중심으로 바꾸었다. SBS는 애초에 그런 조직이었다. 오로지 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다.

 

뉴스까지 밥그릇 장사에 이용
방송사들은 보도까지 돈을 노리는 싸움질에 이용한다. 민주적 공론의 마당이 되어야 할 뉴스시간이 밥그릇 챙기기의 무기로 전락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 따르면 KBS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홍보하는 보도만 10번 이상을 했다. ‘한류 열풍’, ‘음원 싹쓸이’ 등의 내용으로 뉴스가 아니라 일방적 홍보일색이었다. 해외 특파원들도 동원됐다. <‘태양의 후예’ 중국서 열풍…“한류 새 장”>, <‘태양의 후예’ 열풍…중 공안 ‘주의보’>는 중국 상하이 특파원이, <‘태양의 후예’ 동남아 열풍…총리도 ‘팬’>은 방콕 특파원이 등장했다. “중국공안이 이례적으로 ‘송중기 상사병’을 주의하라는 경고를 내놨을 정도” 등 제목만으로도 낯이 뜨거울 지경이다. 

 


 시청률이라는 먹잇감에만 침을 흘리는 것도 아니다. 방송들의 밥이라 할 수 있는 광고비를 더 유리하게 챙길 수 있는 배식제도를 둘러싼 싸움도 치열하다. 뉴스 시간은 경쟁 상대와의 무기로 동원된다.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프로그램 시청률보다 더 중요한 것이 광고 시청률이다. 시청자들이 정작 광고를 보지 않는 프로그램에 광고비를 내줄 광고주는 없다. 시청자들은 광고의 더미에 짜증이 나있다. 채널을 요리조리 바꾸며 광고를 피하려 한다. 광고비에 밥줄을 대고 있는 방송사로서는 시청자들이 야속하다. 광고 봐주지 않는 얌체 같은 시청자라고 원망해봐야 소용없다. 중간광고는 이러한 딜레마를 좀 줄이기 위한 열쇠로 보인다. 프로그램에 빠져서 보고 있는데 중간에 광고가 툭 튀어 나오니 피하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종편을 비롯한 유료방송사에는 허용되어있는 반면 지상파방송사에만 중간광고를 못하게 되어있다. 물론 종편 등에 대한 특혜인 셈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우리도 똑같이 하게 해달라고 앙앙 불락이다. 뉴스 시간을 앞세워서 밥그릇싸움에 나섰다. 4월 28일,6월17일에는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에서 일제히 “중간광고 허용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보도했다. 지상파 연합군이 된 셈이다. 특히 올해 들어와 공영방송의 중심인 KBS가 중간광고 허용 여론 몰이에 가장 앞장섰다. 올해만 10여 차례나 뉴스에서 다루었을 정도다. 득달같다고 할 도리밖에 없다. 어버이 연합 의혹, 비정규직의 고통,세월호 참사의 진실, 대기업의 횡포에는 무관심하거나 시큰둥하더니, 제 잇속이 걸린 사안에는 기자들까지 나선다. 방송 뉴스 시간이 공적 공론장이 아니라 장사꾼들의 장터가 된 꼴이다. 중간광고 허용 주장을 부풀려서 여론몰이하기에 바쁜 방송사들은 돈독이 잔뜩 오른 모양새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만 갖다 댄다. 때로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엉터리 근거를 내세우기도 일쑤다. 서로 만나기만 하면 음식물을 차지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는 아귀의 모습이라면 너무 심한 비유일까?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방송광고시장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뺏고 뺏기는 아귀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시청자의 시간과 관심, 그리고 돈줄을 놓고 다툼이다. 중간광고로 당장은 수익이 조금 늘어나는 듯해 보여도 기껏 언 발에 오줌누기다. 이미 시청자들은 광고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광고로 덧칠한 저속한 프로그램으로는 시청자들을 끌어 모을 수 없다.

 

권력 감시와 비판, 공정보도라는 본연의 정체성 찾아야
한국 방송들의 몰골이 처참하다. 아귀는 음식물을 구하지만 막상 먹으려 들면 불이 되어 버리므로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선정적 자극적 보도, 수익성 중심의 조직 개편 그리고 중간광고 허용 등 아무리 용을 써봐야 방송사들의 허기와 갈증은 풀리기 어렵다. 진흙탕에서의 개싸움으로는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염증을 느낀 시청자들을 떠나게 할 뿐이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공정한 보도로 민주적 기반의 형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방송사들이 돈에 걸신들린 듯이 다툼을 해봐야 시청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