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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입장 대변지 조중동, 의료민영화 '우려'를 '괴담'으로
등록 2014.03.04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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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견] 의료민영화 논란을 다루는 조중동의 보도행태

 정부입장 대변지 조중동, 의료민영화 '우려'를 '괴담'으로

 

 신문모니터 위원회
 

 

“저널리즘의 중심목적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이 스스로 자치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의 언론학자 빌 코바치는 그의 저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통해 저널리즘의 역할을 이렇게 규정했다. 코바치의 말처럼, 언론이 다른 누구보다 시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것은 언론학계 내에서는 일종의 상식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언론은 과연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13일 정부는 투자활성화를 위해 의료법인의 영리사업과 자회사의 설립을 허용하고, 원격의료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신문분과는 12.14∼1.22일까지 “의료영리화 논란”을 주제로 다룬 기사들을 모니터링하면서 과연 어떤 언론이 언론의 ‘정의’에 충실한 보도를 다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2월 25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의료대재앙! 의료민영화저지를 위한 보건의료노조 총력투쟁 결의대회'     

 

 

의료영리화 논란, 시민의 편에서 성실히 일한 신문은 어디였나
의사협회, 보건의료노조를 비롯한 보건의료계는 영리사업에 대한 규제완화로 인해 국민이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가 증가할 가능성을 지적하며 정부의 조처에 반발했다. 철도민영화에 이어 의료민영화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반응도 이어졌다. 정부는 이런 우려에 대해 현행 건강보험 체계가 유지되기 때문에 의료민영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반박으로 맞섰다.


 정부의 주장과 시민사회의 우려가 대립되는 가운데 한겨레와 경향은 의료영리화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 꾸준히 경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겨레는 <의사 선생님이 왜 목에 칼을 댔냐고요?>(2면/12.21)에서는 대화체, <“환자 부담 늘어난다” “아니다” 의료영리화 진실은…>(9면/1.7)에서는 Q&A방법을 사용하면서 의료영리화에 대해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혼란을 쉽게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경향신문은 <영리화 논란, 복지부가 말하지 않는 세 가지>(5면/1.13)에서 세브란스병원의 자회사 ‘안연케어’가 2008년 불공정거래로 감사원에 의해 적발된 것을 알리는 등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의료민영화 논란의 역사와 민영화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를 분석한 <‘영리 자회사’ 통해 의료 민영화 ‘우회로’ 연 정부…배후엔 ‘의산복합체’>(10면/12.20) 또한 의미 있는 기사였다.

 

반면 조중동은 정부의 의견을 대변하는 일관적인 논조를 보여주었다. 조중동의 경우 의료영리화의 부작용을 무게감 있게 다루는 대신 ‘의료협회는 이러이러한 의견을 보였다’라는 형식의 간접인용 방식을 취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동아일보가 <긴급 진단 원격 진료: 정부-의료계 왜 대립하나>라는 이름으로 3회의 기사를 게재하며 부작용에 대해서도 공정한 분량을 할애했으나 이 또한 원격의료에 대한 찬반을 다루는데 그치면서 의료영리화 전반을 다루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조선일보의 경우 다른 신문들에 비해 적은 양의 기사를 쓰는 와중에도 국민들의 이익에 대한 걱정 보다는 <세계적 병원 키울 ‘투자개방형 정책’ 외면한 정부>(1면/12.14)와 같은 기사를 통해 오히려 정부의 규제 완화가 약하다는 자신들의 논조를 관철하고자 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조중동은 정부의 규제완화에 찬성하는 한편 의료영리화 반대론을 ‘의료민영화 괴담’으로 규정하고 이를 깎아내리는 형태의 보도를 일삼았다. 중앙일보는 <정말 황당한 ‘의료 민영화’ 괴담>(칼럼/1.11), 동아일보는 <“제왕절개 수술비 2,000만 원으로 뛸 것” 루머에… 병원 흔들>(2면/12.25)에서 맹장수술이 1,500만 원으로 오를 것이라는 SNS 괴담을 인용하며 의료영리화 반대론을 맹목적인 반대론으로 평가 절하했다. 이들의 보도처럼 의료민영화에 대한 지나친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를 해소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괴담으로 폄훼하는 것은 언론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조선일보는 한 발짝 더 나아가 <광우병 악몽 재현될라… 與, 민영화 怪談(괴담)에 촉각>(5면/12.22)을 통해 민영화에 대한 반대여론에 배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내세웠다. 조선은 ‘지난 3월 북핵 사태 당시 “3월 11일 전쟁이 발발하고 휴교령이 내려질 것”이란 문자 메시지가 일부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돌기도 했다. 3월 11일은 한·미 키 리졸브 연합 훈련이 시작된 날’이라는 괴담의 예를 들면서까지 반대의견을 ‘불순한 태도’로 깎아내리는 보도태도를 보여주었다.

 

의사들의 밥그릇 챙기기? 허수아비 때리기!
1월 들어 의료협회가 의료영리화 정책에 대한 반대차원에서 총파업을 결의하자 5대 일간지는 모두 의료공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한겨레>와 <경향>은 의료영리화 반대라는 명분에 동의하지만 파업이라는 극단적 형태가 되기 전에 협의를 통해 해결해야한다는 의견을 보였으며 <동아>는 의료영리화 반대는 파업의 명분으로 옳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조선>과 <중앙>은 의료파업에 대해 우려를 넘어서 의료파업이야말로 의료영리화보다도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늘리는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중앙일보의 <다시 읽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칼럼/1.14), 조선일보의 <의료계, 말 돌리지 말고 本心 터놓고 얘기하라>(사설/1.7), <‘의료계 집단행동’, 국민 마음 떠나게 만들 수 있다>(사설/1.11)는 의료협회의 파업을 의료영리화에 대한 반대보다 수가 인상을 통한 밥그릇 채우기가 목적이라 단정하면서 파업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들을 볼모로 삼으면서까지 의료영리화를 반대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이며 이들 이익단체의 실력 행사에 정부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조선과 중앙의 이런 보도태도는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으로 인해 국민에게 벌어질 수 있는 손해를 은폐하면서 동시에 ‘악의 축’을 만드는 전형적인 허수아비 때리기 보도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이 지닌 위험성에 대해서는 한 쪽 눈을 감은 채 장밋빛 전망만을 늘어놓으면서도 자신들의 반대의견에 대해서는 추측성 보도조차 서슴지 않으면서까지 갈등의 진원을 옮겨가고자 시도한 셈이다. 조선과 중앙은 정부의 정책과 국민의 이익이라는 갈등의 축을 언론사 마음대로 이익단체와 정부의 갈등으로 옮기면서 의료영리화 논란을 대다수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논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박근혜 선생’의 받아쓰기 시험과 사라진 정책 검증
모니터링을 하면서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정부의 투자 활성화 대책이 ‘서비스 사업’을 통해 얼마만큼의 이익을 창출해낼 것인가”에 대한 검증이 전체적으로 너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면, 언론은 마땅히 그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검증을 시도해야 한다. 의료영리화의 경우,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이나 영리사업, 원격의료가 얼마만큼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조중동은 각자 원격의료가 선진국에서 이미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의료한류’가 새로운 외화 벌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이들 기사들은 자세한 통계 등의 근거 없이 낙관론만을 얘기한 탓에 설득력이 떨어졌다. 반면 경향신문은 <한국 닮은 ‘일본 특구 영리병원’ 서비스 질 제고·경제 기여 실패>(10면/12.20), <의료관광의 메카 태국, 수요 늘면서 ‘의료비 폭증’ 부메랑>(5면/1.13)에서 외국의 의료영리화 사례를 바탕으로 정부의 발표내용을 반박하고자 시도했다.


2월 11일자 <한겨레>의 보도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한 결과 총 26개 지표 가운데 4건의 지표에서만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음에도 4개 지표만을 바탕으로 원격의료의 효과를 과장해 발표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원격 의료 도입에 대한 조중동의 옹호 기사가 민망해지는 대목이다.

 

언론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보도 자료를 받아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사 사주의 이익이나 편집부의 입장 또는 특정 이익집단의 대변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정부의 입맛에 맞춰 지면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보도를 하는 것이야말로 언론의 참 역할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