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언론의 아전인수와 모순

한반도 비핵화와 CVID
한선범 (한국진보연대 대변인, 정책부위원장)
등록 2018.07.03 09:48
조회 958

지난 6월 12일 이뤄진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전후 과정에서, 우리 언론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비핵화’와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였다. 핵 문제에 대한 잘못된 전제와 분단과 대결의 관성에 따라, 실제 회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과정을 외면한 채 진행된 이러한 언론 보도는 마치 이번 회담이 무언가 잘못된 것인 양 대중을 호도하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북한의 비핵화?
우선, 일부 언론들은 현재 협상에서의 비핵화를 ‘북한의 비핵화’로 간주하는 아전인수를 반복하고 있다. 한반도에는 당연히 남과 북이 다 포함된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에는 말 그대로 북한뿐 아니라 남한의 비핵화, 즉 한미동맹의 비핵화도 포함되어야 맞으며, 지금 논의도 그렇게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핵무기가 없는가? 그렇다면 한미 연합훈련 때마다 오는 소위 ‘전략자산’ B-52는 무엇인가? 핵 폭격기다. 지금 북한이 만들었다고 흔들어대는 핵무기와 운반수단을 미국은 6~7천기나 가지고 있다. 이를 놔둔 채 북한만 비핵화를 하라는 건 그냥 무장해제하고 항복하라는 얘기이며, 협상 자체를 깨자는 얘기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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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 공격 임무를 수행하는 미국의 B-52 스트래토포트리스. 최대 27톤의 무기를 싣고 6,400km이상을 날아가 폭격할 수 있다.(사진 : 위키피디아)

 

CVID의 대가, 감당할 수 있나.
CVID를 관철해야 한다는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CVID란 무엇인가? 만들어놓은 핵무기 다 폐기하고, 의심 가는 곳 모조리 사찰 받고, 심지어 핵 과학자와 설비들까지 없애라는 소리다.

 

그것이 “우리가 패전국이냐”라는 북한의 반발을 사는 과도한 요구임은 차치하자. 우리는 적(?)이니까! 문제는 협상이 등가물을 주고받는 거래라는 점에 있다. 북한이 CVID를 받으면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를 CVIG(Guarantee)라고 표현한 바 있다.

 

상식의 눈으로 볼 때, CVID에 상응하는 등가물은 무엇이 될 것인가? 북한이 핵과학자들과 시설, 미래 핵개발 능력까지 폐기하려면, 미국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그걸 어떻게 해 줄 것인가?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한미동맹이 종료되면 되는가? 어림도 없다. 주일미군이 있기 때문이다. 주일미군이 철수하면 되는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괌에도, 오키나와에도 미 공군이 있고, 더 나아가 미 본토에서 북한으로 날릴 수천 기의 핵무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그것을 없애면? 평화를 애호하는 세계인들이 염원하는 ‘핵 없는 세상’이 대부분 실현되는 것임에도, 압도적인 재래식 전력이 남아 있다.

 

이렇게 본다면, CVID를 요구하는 이들은 결과적으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종료, 주일미군 철수, 그리고 미국의 핵미사일 폐기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당장 한미연합훈련이 중단된다고 하니 나라가 망할 것처럼 난리를 치고 있다. 극한의 자기모순이다.

 

“왜 우리가 그런 대가를 주어야 하느냐?”라고 묻는다면,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협상은 결렬될 수밖에 없다. 등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협상이 결렬되면 해피엔딩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워싱턴이나 뉴욕에 핵미사일을 맞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을까?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공격해서 미국이 얻는 게 무엇인가?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갈 것이고,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기 더 어려워지며, 말 폭탄 몇 번 주고받다가 또 협상으로 가게 될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 북한은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게 될 것이고, 대가는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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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2 북미회담에서 서명을 하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지사지와 상식의 눈에 기초한 보도를 기대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으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기 어렵겠네?” “북한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면 주한미군은 철수해야겠네?” “대륙과 해양이 만나, 끝없이 외세의 압력을 받는 한반도를 중립지대화 하려면, 북·중 동맹과 한·미 동맹은 종료돼야겠네?”


이런 말을 하면 꺼림칙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분단과 전쟁, 적대 과정에서 우리는 북한에 대한 상식의 눈, 역지사지의 자세가 국가보안법 등을 통해 금지돼왔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정세가 전환기를 맞이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금지돼왔던 그것들이 아닐까? 사회의 공기인 언론이 먼저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시시비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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