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공영방송의 핵실험 보도는 금강산댐 보도와 판박이
등록 2016.09.12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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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공포심을 자극하는 공영방송의 북한 핵실험 보도

공영방송의 핵실험 보도는 금강산댐 보도와 판박이


정연구 (민언련 이사·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공영방송의 북한 5차 핵실험 관련 보도는 국민을 공포에 떨게 만들려고 작심한 듯하다. 토요일인 지난 9월 10일 공영 방송 KBS와 MBC의 저녁종합뉴스는 저녁밥 먹고 단란하게 둘러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시민들을 공포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보도국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전통 때문인지, 30년 전 그때처럼 모처로부터 압력을 받아서 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핵실험 관련 보도는 1986년 금강산댐(북한 공식 명칭 임남댐) 붕괴 보도와 너무나 닮아 있다. 




‘2016 핵실험’ 보도는 ‘1986 금강산댐’ 보도와 판박이 

먼저 KBS의 ‘뉴스9’을 먼저 살펴보자. 친절히 ‘어느 정도의 파괴력인지 실감이 안 나실 것’이라고 가정하면서 ‘미 국방부가 실험한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5킬로톤급 핵무기가 서울 용산 국방부 상공에서 폭발할 경우, 반경 150m 이내 건물이 모두 증발하고, 반경 1.5km, 용산동과 동부이촌동 등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열기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게 됩니다. 반경 4.5km, 마포와 여의도 일부, 강남 압구정동까지 대부분의 건물이 반파됩니다. 사망자는 62만 명에 달하게 됩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15km 내 지역에서 방사능 낙진 피해를 입게 되고, 부상자와 방사능 피폭자 등 백만 명 이상이 병원으로 일시에 몰리게 되면서 서울의 도시 기능이 한순간에 마비될 수 있다고 합니다.’



9월 10일자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미국 랜드연구소가 지난 2010년 발표한 보고서를 참고한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의 5차 핵실험과 동급인 TNT 10킬로톤 위력의 핵무기가 서울 지상에서 터진다면 반경 700m 안 4만 명이 죽고 반경 1.1km 안에서는 치명적인 방사능 때문에 10만 명이 숨진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폭발 후 발생하는 죽음의 재, '낙진'이 추가로 인명 피해를 일으켜 최소 12만 5천 명에서 최대 23만 5천 명이 숨지고 사상자는 최대 41만 3천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9월 10일자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1993년 새로 출범한 김영삼 정부의 요구로 시행한 감사원 감사결과 지나친 과장으로 밝혀진 금강산댐에 관련한 1986년의 보도 역시 정부 발표를 그대로 옮기는 방식으로 공포감을 유발했다. ‘댐 완공 후 갑작스러운 방류 및 댐 붕괴를 통해 약 200억 톤의 물을 하류로 흘려보낼 수 있다.’ 이 경우 ‘물이 63빌딩 중턱까지 차오를 수 있다’며 ‘북한이 이를 이용해 1988년 하계 올림픽을 방해할 수 있다’고 전했다.



북한 핵실험 보도, 보도가 아닌 선전술일 뿐

86년 금강산댐 보도와 이번의 핵실험 보도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2002년 겨울 홍수를 핑계로 금강산댐 물을 방류했을 때 남쪽 한강 수계 주변에 물난리 정도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핵 실험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핵이 터지면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일어난 일은 아니다. 


핵 실험 보도를 금강산댐 보도와 함께 ‘선전’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모두 ‘~하면’이라고 가정하면서 보도하고 있다. 전쟁을 통해서 발달한 선전술의 요체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믿게 만드는 기술이란 점과 닮아 있다. 언론 보도가 금과옥조로 여겨야 할 ‘사실 보도’ 규범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것은 물론 현실 속에 전혀 없는 일을 마치 내가 직면하고 있는 어떤 구체적인 사실로 인식하게 하고 있다. 이는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와 전혀 다르다. 실존하고 있는 아마존 강의 크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사람들이 잘 아는 여의도 광장과 크기를 비교하는 행위는 비유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63빌딩’, ‘용산동’, ‘서울’, ‘중턱’, ‘23만5천 명’과 같은 구체적인 ‘사실’을 거론하며 설명하는 행위는 더 이상 보도가 아니라 선전이다.



‘미사일에 핵 탑재할 수준은 아니다’는 국정원장 발언은 모르쇠

지난해 인사청문회를 통해 과거 금강산댐 수공 시나리오에 대한 질책을 받은 탓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하고 싶은 공포감 조성은 공영방송이 충분히 했다고 판단했던 탓인지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오히려 사실을 말했다. 지난 9일 오후 국회 정보위원회 긴급 전체회의에 참석해 “아직 스커드 미사일에 핵을 탑재할 만한 수준은 아니며 1~2년 내에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 것이다. KBS와 MBC의 보도에는 왜 이런 사실이 빠졌을까? 여러 가지 대답이 머리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