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북한 핵, 소녀상을 쏘다. (엄주웅)
등록 2016.09.2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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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북 핵실험에 대한 공허한 ‘말폭탄’의 끝

북한 핵, 소녀상을 쏘다. 


엄주웅(민언련 정책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 상임위원)

 

 

지난 9일 북한이 또 다시 핵실험을 하자 우리나라 주류 언론들은 “국가비상사태”라며 안보 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물론 위기이긴 한데 분노와 규탄이 압도하고 공허한 대안이 난무하니 더 답답하고 위태롭다. 사실 이런 상황은 꽤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 1월 북한의 제4차 핵실험 때도 그랬다. 우리도 핵무장을 하자거나 미국 핵무기를 남한에 다시 들여놓자는 강경론이 기세등등하게 나오다가 그 비현실성에 슬그머니 사그라들고, ‘선제타격론’이니 ‘참수작전’ 같은 불가능하고도 위험천만한 도박성 말폭탄을 늘어놓다 결국은 개성공단이라는 제 팔을 자르고서 대북 국제 제재에 올인했었다. 


달라진 게 없는 대응책

그럼에도 또 핵 도발을 했으니 “대응은 완전히 바뀌어야”(조선일보 9.10 사설) 한다. 그러면서 “책상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것은 모두 꺼내놓고 검토해서 완전히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단다. 무엇 무엇을 올려놓았을까? NPT 탈퇴 및 한시적 핵무장, 전술핵 재배치 및 한미 공동 사용권 행사, 원자력 잠수함 등 비대칭 재래전력 강화,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한 ‘레짐 체인지’ 등등 북한발 위기 때마다 거론된 것으로 전혀 새롭지도 실현가능하지도 않다. 대응책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말하면서 기존 정책에 대한 성찰은 없고, 결국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더 강력하게 하자는 게 고작이다.  



온갖 방안을 다 올려놓겠다는 이들의 책상 위에는 결정적으로 빠진 게 있다. 대화와 협상이라는 카드인데 전혀 언급되지 않으니 입도 뻥끗하지 말라는 식이다. 지난번 핵실험 때 적극적인 북미간 대화와 협상을 주문했던 중앙일보조차 더욱 강력한 핵 억지력이 필요하다고만 말할 뿐이다. 글쎄 북한 핵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이 전쟁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제재를 하던 억제를 하던 간에 대화와 협상의 끈은 놓치지 않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대화와 협상을 사갈시하는 이들의 태도 이면에는 북한 정권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박근혜 대통령 류(流)의 감정적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 우리 보수언론들에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핵 미치광이“니 무슨 대화 따위가 가당키나 하겠는가. 반면 10일 뉴욕타임즈는 ”북한은 미치기는커녕 너무 이성적이다“라고 단언했다. 겉보기에는 호전성과 예측 불가능성으로 무장해 미치광이로 비침으로써 협상을 유리한 국면으로 끌고 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의 주류 여론은 김정은에게 속고 있는 건가? 


이렇게 위기감과 공포를 극대로 부추긴 다음에는 으레 국민적 단결을 이야기한다. 언필칭 진영논리를 떠나 정치권은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하고 이른바 불순세력은 척결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탓이라며 야당을 몰아붙이고, 대화를 병행하자고 제안한 야당 대표를 “북한의 대변인이 되기로 작정했냐”(동아 8.13 사설)고 힐난한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만 네 차례나 이뤄졌다는 팩트 앞에서는 “북핵은 진보정권이 만들어 준 것이지만 그 발전은 보수정권이 허용했다”(조선일보 9.14 사설)고 말을 비튼다. 


우리 카드는 없이 주변국에게만 

어쨌든 이런저런 ‘말 폭탄’이 빈 깡통처럼 터지고 나면 북핵 대응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비핵화를 전제로 핵우산 등 억지력의 강화와 더욱 강력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 정권을 손들게 하자는 것 외에는 실상 다른 게 없다. 하지만 개성공단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이미 써버린 우리에게는 미국 중국 등에 더 강력한 대북 제재를 구걸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보수언론들도 이 사실을 아는지라 이제 화살을 주변국 정부에게 돌린다. 




우선 오바마에게는 “북핵 완성 막지 못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건가”(동아일보 9.12)며 따지고, “한반도 통일까지 염두에 두고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주문한다. 퇴임을 앞둔 미국 대통령에게 좀 과분한 기대가 아닌가 싶다. 반면 대북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한껏 목청을 높인다. 이제 중국은 사드 반대의 명분을 잃었으니 북핵 저지에 적극 나서는 게 “21세기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올바른 자세”(중앙일보 9.13)라고 부추기고 그렇지 않으면 “시진핑은 동북아 핵 도미노 자초할 거냐”(동아일보 9.10)고 경고하기도 한다. 중국 입장에서는 사드와 북핵은 별개 문제일 텐데도 말이다. ‘김대중 칼럼’은 아예 중국에 대한 기대를 접으라고까지 말한다. “중국을 믿느니 북한에 굴복하는 게 그나마 민족을 살리는 길”이란다. (조선일보 9.13) 그러면 대안은 뭔가? 핵무장이다. 그는 이걸 말폭탄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애꿎은 평화의 소녀상 

북핵 문제에 영향을 미칠 우리 자신의 지렛대는 없이 주변국의 협력을 전적으로 바라는 처지는 9월 14일자 동아일보 ‘황호택 칼럼’에서 압권을 이룬다. 북한 핵위기에 대응하려면 일본과의 군사적 협력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현재 주한 일본 대사관 근처의 소녀상이 걸림돌이 되니 이걸 치워주자는 게 논지다. 문제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소녀상과는 별개로 일본 측이 요청해 왔던 것이고 박근혜 정부조차도 겉으로는 소녀상 이전문제가 한일 위안부 합의와는 별개라고 밝혀왔는데도 이런 글이 버젓이 실린 것은 시쳇말로 어이가 없다. 왜냐고? 북한 핵이 평화의 소녀상을 쏜 격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