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노동 공약이 실종된 4.15 총선
이남신(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등록 2020.03.11 10:07
조회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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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코로나19 감염 사태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치료약이 아직 개발되지 못한 미지의 바이러스 공포가 시발점인 중국을 넘어 한반도와 지구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물론이고 모든 언론방송이 실시간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현황과 동선을 공지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어가 될 정도로 생활 깊숙이 코로나19 여파가 미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직격탄을 맞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고 그렇지 않아도 시원찮았던 경제도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와 빈곤층은 마스크는 사치이고 생계수단이 사라져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봉착하였다. 이처럼 불가피한 휴업에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감내해야 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비롯해 저소득 아동들과 쪽방, 노숙인, 장애인, 그리고 시설 거주자들 등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힘겨운 현실을 보면서, 재난과 고통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총선이 코앞이지만 모든 이슈가 코로나19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유례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으면서 일상이 마비된 지금이 오히려 한국사회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숙고의 시간이다. 당면 문제 해결을 위한 비상한 대처와 함께 장기적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보다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시적 재난기본소득을 주자는 제안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는 만큼, 이번 코로나 사태를 성찰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한국사회가 보다 평등하고 공정한 공동체로 진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한국사회 불평등의 주요한 진원지인 노동 문제의 개선과 해결이 당연히 전제되어야 한다. 4월 총선에서 최대 다수 국민이자 유권자임에도 평소 유령 취급받아온 1천 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문제가 중요한 이유다.

 

올해 총선은 2017년 촛불항쟁 이후 치러지는 첫 국회의원 선거다. 촛불민심이 불의한 비리권력자를 탄핵했지만 사회대개혁 요구는 여전히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채 난항을 겪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대표적인 마중물로 주목받았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실패한 과정이 그간의 우여곡절을 가감 없이 보여준 바 있다. 여야정당 주요 대선후보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공동공약으로 채택한 2017년과 2020년의 현실은 그새 판이하게 달라졌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현 정부 노동정책의 전반적인 좌초와 후퇴가 한국사회의 불평등 양극화 노동현실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4.15 총선이 반전의 계기가 돼야 하지만 현재 정국의 흐름으로 보면 기대난망이다.

 

이럴 때일수록 촛불항쟁이 제기한 사회대개혁 의미를 돌이켜보고 초심을 회복해야 한다. 촛불노동공약으로 불린 비정규노동 개선 과제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불평등 양극화 노동현실 극복에서 관건이 되는 공약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고 입법 과제인 만큼 이제는 총선 공약이 돼야 할 내용이기도 하다. 상시지속 업무는 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전환한다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과 처우를 해야 한다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플랫폼노동 급증 속에서 더욱 노동권 침해가 확산되고 있는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3권 보장, 위험의 외주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핵심원인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근절을 위한 원청 사용주 사용자성 인정,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을 엄벌에 처해 노동자들의 생명 안전을 지키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기업살인법) 제정 등 유실되다시피 한 중요한 공약이 한 둘이 아니다. 노동존중사회가 실현 의지 없는 미사여구로만 남지 않도록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부터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1대 총선 비정규직 권리 보장 입법을 위해 정의당과 ‘비정규직 7법’ 정책 협약식을 가졌듯이, 그 첫 관문이 실종된 노동공약을 되살리는 일이다.

 

전례 없는 코로나19 사태로 총선의 향방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의 힘겨운 현실을 개선하고 부당한 차별을 해소해야 하는 정치의 역할이 바뀔 수는 없다. 4.15 총선이 노동공약이 실종된 선거가 된다면 유권자인 국민의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상의 노동이 건강하고 존중받아야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어려운 시기지만 여러모로 정치적 의미가 각별한 올해 총선이 노동존중사회 청사진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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