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호] [영화이야기] 꿈을 이루지 못해도
등록 2017.05.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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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 리턴>, ‘꿈은 정답이 없는 현재진형형’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마짱(카네코 켄)과 신지(안도 마사노부)가 나눈 대화는 유명하다. 100분 넘게 담담하게 흐르다 ‘찡하게’ 울린다. 고등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힌 마짱은 수업엔 전혀 관심 없다. 순진한 신지를 데리고 다니며 아이들 돈을 뺏고, 성인 영화관을 드나들며 제멋대로 지낸다. 어느 날 마짱한테 돈을 뺏긴 아이가 권투선수를 데려온다. 주먹 한 방에 고꾸라진 마짱은 권투를 배우기로 한다. 신지도 함께 권투를 시작한다. 정작 권투에 재능 있는 쪽은 신지였다. 두 사람이 벌인 스파링에서 신지한테 카운터펀치를 맞으며 주저앉은 마짱은 권투를 포기한다. 자존심도 구겼다. 두 사람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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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짱이 떠난 후 신지는 유능한 권투선수로, 마짱은 야쿠자 중간 보스로 성장한다. 상승세도 언젠가는 꺾이는 법, 신지는 시합에서 연달아 패배하며 권투선수의 꿈을 접는다. 야망이 컸던 마짱은 ‘나대는’ 바람에 다른 보스들한테 린치를 당하고 버림받는다. 기타노 감독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마짱과 신지의 시간을 담담하게 관찰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난다. 신지는 마짱한테 함께 자전거를 타자고 제안한다. 신지가 신문 배달할 때 타는 자전거로 고등학교 운동장을 돌며 신지가 마짱에게 묻는다.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마짱이 웃으며 대답한다.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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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택시기사, 엘리베이터 보이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희극배우를 향한 꿈을 키웠다. 성인 스트립 극장 만담꾼으로 시작한 여정은 마침내 꽃을 피웠다. 최고 연기파 배우이자 실력파 감독으로 우뚝 선 그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사고 회복 후 연출한 영화가 <키즈 리턴>이다. 


감독은 별 볼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마짱과 신지의 젊은 날을 나무라지 않는다. 좌절한 그들을 달콤하게 위로하지도 않는다. 불확실한 꿈을 향해 내달리는 청춘에게 고요히 말한다. 꿈은 정답이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ing’ 현재진행형이라고. 청춘의 온도가 마냥 뜨거울 리 있을까? 뜨거울 때도 차가울 때도 있다. 


영화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OST는 1번 <Meet again>부터 15번 <Kids Return>까지 젊은 날의 다양한 감성을 섬세하게 담았다. 


 

<태풍이 지나가고>, ‘인생은 현재를 살아가는 것’
 

영화 원래 제목은 ‘바다보다 더 깊은 海よりもまだ深く’이다. <월량대표아적심 月亮代表我的心>으로 유명한 등려군이 일본에서 활동하던 1987년 발표한 <이별 예감 別れの予感> 가사에서 따왔다. 이 대목은 극 중 료타(아베 히로시) 엄마 요시코(키키 키린) 대사에도 등장한다. “난 인생에서 바다보다 더 깊은 사랑을 해본 적 없어.” 


한때 문학상을 수상하며 촉망받는 작가였던 료타는 흥신소에서 사립탐정으로 일한다. 작품을 쓰기 위해 취재를 한다지만 현실은 시시껄렁하다. 글쓰기 진도는 나가지 않고 주머니는 텅 비었다. 행복했던 가정은 이미 깨졌다. 가끔 만나는 아들 싱고에게 야구 글러브 한 개 사주지 못하는 신세가 괴롭다.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인 건지’.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료타는 답답한 심정을 포스트잇에 남긴다. 료타는 영광으로 가득 찬 미래를 맞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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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태풍이 지나던 밤, 료타는 어머니 요시코 집에서 헤어진 아내, 아들과 하룻밤을 보낸다. 어색한 자리, 태풍이 정점으로 치닫는 순간 잠시나마 마음의 문을 열지만, 태풍이 지나간 후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건 그대로다. 이혼, 제대로 글을 쓸 수 없는 현실, 옅어지는 희망. 제아무리 강력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들 하룻밤에 ‘멋진 어른’으로 거듭날 리 만무하다. 다만 태풍 덕분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오래전 행복했던 시절처럼 평온한 시간을 보냈을 뿐.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 아들 싱고(요시자와 타이요) 질문에 료타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이 세상에서 원하던(!) 어른이 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영화는 ‘모두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평범한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좌절감은 수시로 삶을 흔든다. 지금 나아가는 삶의 방향이 옳지 않다는 걸 깨달아도 일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의욕을 잃고 낙심한 료타는 어머니 요시코에게 “미안해, 능력 없는 아들이라” 말하며 고개를 떨군다. 


요시타는 “난 인생에서 바다보다 더 깊은 사랑을 해본 적 없어”, “그래도 살아가는 거야”라며 담담하게 료타를 위로한다. 요시코는 누구나 인생에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단 걸 먼저 깨달았다. “행복은 무엇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는 거란다”라는 요시코의 조언을 과연 료타가 받아들일지 알 순 없다.
하나레 구미가 부른 영화 주제가 <심호흡 深呼吸> 가사가 쓸쓸하게 흩어진 마음을 붙잡는다. ‘꿈꾸던 미래가 어떤 것이었든 잘 가 어제의 나 맑게 갠 하늘의 비행기구름 나는 어디로 돌아갈까…’ 


료타 어머니 요시코를 연기한 키키 키린은 올해 1943년생 75살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다섯 편에 출연했다. <걸어도 걸어도, 2008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011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년>,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년>, <태풍이 지나가고, 2016년>. 고레에다 감독은 <태풍이 지나가고>를 마지막으로 당분간 가족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현식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