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_
[좋은보도 시상식 중계] 이달의 좋은 보도상, 취재기자와의 뒷담화(2015.12.21)
등록 2015.12.22 14:52
조회 998

민언련 2015년 10월의 좋은 보도상 기자와 뒷담화
“헬조선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아래 민언련)은 2014년 6월부터 매달 좋은 방송보도를 선정 발표했고, 11월부터 좋은 신문보도를 선정해왔습니다. 올해 2월부터는 수상자를 초빙하여 민언련 교육관에서 조촐한 시상식 겸 간담회를 열고 있습니다. 간담회는 기자들의 취재과정과 보도에 실리지 않은 뒷이야기는 물론, 소소하면서도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오가는 자리입니다. 민언련은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취재기자와 뒷담화>로 매달 간담회를 연재합니다.

 

 

지난 11월 26일, 민언련 교육관에서는 2015년 10월 ‘이 달의 좋은 신문 보도’로 선정된 <新 허기진 군상>에 대한 시상식과 간담회가 열렸다. <新 허기진 군상>은 연령, 사회적 입지, 인종 등을 관통하는 우리 사회의 빈곤‧소외 문제를 조망한 10회 연재로, 총 77건에 달하는 개별 사례를 통해 ‘헬조선’의 풍경을 그렸다. 시상식에는 이번 기획을 진행한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중 구교형, 김상범, 김서영, 배정현 기자가 참석했다. 2015년 10월의 ‘이달의 좋은 방송 보도’는 선정하지 않았다.

 

- 수상 소감부터 한마디씩
구교형 기자 : 이번 기획은 배곯은 군상들을 보여줌으로써 박정희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64년도의 <허기진 군상> 시리즈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 물론 50여 년이 흘러 경제적 수치상 눈부시게 발전한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서 어떻게 그 당시와 동일한 기획이 진행될 수 있겠느냐는 비판도 내부적으로 있긴 했다. 그러나 우리 팀이 주목한 것은 수치상 성장과는 무관하게, ‘왜 21세기 한국 사회가 계층과 연령을 불문하고 지옥이라 느끼고 있는가’였다. 때문에 가깝지만 서로가 얘기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밀착해서 살펴보자는 동기를 가지고 기획을 시작했다.


김상범 기자 :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실제 다 마감을 하고 나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런데 해 나가면서 이런 식으로 한국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면 되겠구나. 하고 차츰 그림이 보였던 것 같다. 연재가 마감된 이후에 그동안 진행했던 작업물을 모두 모아서 보게 되었는데 마음이 뿌듯하더라.


 

배장현 기자 : 비정규직, 노년, 공동체 부문을 담당했었는데, 제작을 시작하고, 가안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대표성을 띈 케이스를 발굴하고 가늠하는 과정이 사실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기획에 맞는 케이스들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게 많았다.


김서영 기자 : 전 아쉬움에 대해 말하고 싶다. 가장 핍진한 사례들을 찾다 보니 누가 헬조선을 가장 많이 느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런데 성소수자, 낙후된 지역 사람들, 젠더로 놓고 보면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지지 못한 것이 좀 아쉽다.

 

-빈곤이나 소외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기획을 만들지 않고, 굳이 허기진 군상이라는 과거의 기획을 끌어온 이유가 있나?
구교형 기자 : 64년도에 경향신문이 정간을 당할 것을 각오하고 국민의 고된 삶의 실상을 폭로했던 것처럼, 우리도 일상적 정치담론 이외에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적나라하게 힘든지를 노출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래에서부터 발제된 것은 아니었다. 젊은 기자들은 64년도 기획 기사로 정간까지 당했다는 것은 잘 몰랐다.(웃음)

 

- 민언련 보고서는 ‘헬조선이라는 풍경을 담는 모자이크 조각’이라고 표현했는데, 헬조선 사례가 77건이나 된다. 어떻게 사례를 찾고 취재했나?
배장현 기자 : 일단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사용했다. 개인적으로 이전에는 인식만 하고 있을 뿐, 깊이 있게 알지 못했던 사례를 찾기 위해 대표성 있는 단체도 찾아가고, 아는 사람 소개도 받고, 인터넷 게시판에도 글을 올리고.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찾았다. 공동체 관련 기획 사례자 중 한 분은 온라인 ‘히키코모리 카페’에서 만났다.

 

- 거의 모든 내용이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는 것이라서, 사례 제공자를 설득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어떻게 설득했나?
구교형 기자 : 일단 복수의 기자들이 사례 수합을 해 오면  그 중 우리 현실을 가장 첨예하게 보여줄 수 있는 큰 사례 두 건을 뽑아 한 면을 만들었다. 그리고 큰 사례들은 되도록 개별 촬영이 가능한 분들을 중심으로 썼다. 물론 처음부터 뭐든지 터놓고 말하진 않으니까, 먼저 사례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사후적으로 설득을 거쳐 사진을 찍은 경우가 많았다.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본인의 생업 문제도 있으니까.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新 허기진 군상>은 기존 기획기사들과는 달리 정형화되지 않아서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10부작으로 빈곤과 소외에 대한 현실을 스토리텔링 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는?
구교형 기자 : 이 기획이 중층의 문제가 아닌 표면적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애초에 이 기획은 빌라 3층의 대학생과 지하 1층의 노인이 서로에 대해 문을 여는 계기로 작용하길 바라며 시도됐다. 나만 취업도 안 되고 힘든 줄 알았는데, 우리 조카도 힘들었구나. 노인 분들도 정말 어렵게 사시는구나. 하면서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는 단초로서 기능하게 하고 싶었다. 애초부터 뭔가 진지하고 다소 어려운 담론을 다루는 형식이 아니라, 독자들이 쉽게 읽으면서도 공감을 느끼게 하자는 것이었다.


에필로그의 대안 제시도 사실 스스로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청년들을 위해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 곳이나 참사의 현장을 찍어 전해주는 사람들이라던가, 덜 알려졌지만 정말 서로가 외롭고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사례를 소개하는 것을 통해 작지만 단단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이번 기획기사는 참 쉽게 읽을 수 있어서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감대를 이루게 했다는 점이 큰 장점인 것 같긴 하다.
구교형 기자 : 우리 신문시장이 정치가 화두가 되면서 경직된 언어를 사용하게 된 측면이 있다. 그만큼 한국사회가 투쟁적인 정치 환경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신문이 어려워진 이유는 거기서 기인한 바가 크다. 거기서 탈피해서 자유롭게 쓰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 그게 잘 안된다. 그런데 이번 기획에서는 우리 이야기를 쓰다 보니까 좀 더 쉬운, 평범한 언어로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신문은 초등학생이 봐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엔 80년대 사회학 서적에나 나올만한 말투에서는 벗어났고, 한겨레가 더 선도적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한자 사용도 줄이고 있다. 요즘은 기사를 누가 몇 명이 봤는지 전부 계측이 된다. 근데 이 기획은 기대보다 사람들이 많이 봤고. 댓글도 천개 넘게 달리기도 했다. 그런 걸 보면서 우리가 항상 어떤 교조적인 기획만 하는 것보다는 눈높이를 이런 식으로 맞추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제일 조회수가 높은 기획은 뭐였나?
김서영 기자 : 청년 관련 기획이었다.

 

- 현상을 짚어봤으니 이제 깊이 있는 후속보도가 이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있는데 예정이 있나?
구교형 기자 : 우리 이번 기획에서 직접적으로 파생됐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아무튼  청년이라는 주제로 내년 초에 회사 창간 70주년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청년 담론은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 나와 있는 만큼 기존 보도를 재탕‧삼탕 하는데 그칠 수 있어 많이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