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해는 우리 모두의 책임’, 인식 바꾼 KBS <추적 60분>
등록 2019.03.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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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2019년 2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사 프로그램 부문에 KBS <추적60>(2/22) ‘소리 없는 아우성, 청소년 자해를 선정했다.

 

2019년 2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사 프로그램 부문 심사 개요

수상작

‘소리 없는 아우성, 청소년 자해’

매체 : KBS <추적60분> 보도일자 : 2/22

선정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엄재희(민언련 활동가), 이광호(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 이봉우(민언련 모니터팀장), 임동준(민언련 활동가), 정수영(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

심사 대상

1월 1일부터 1월 31일까지 7개 방송사의 탐사보도‧시사 프로그램

(KBS <추적60분>‧<저널리즘 토크쇼J>, MBC <탐사 기획 스트레이트>‧<PD수첩>, SBS <그것이 알고싶다>, JTBC <스포트라이트>, TV조선 <탐사보도 세븐>, 채널A‧MBN 없음)

선정사유

KBS <추적 60분>은 2월 22일 방송 ‘소리 없는 아우성, 청소년 자해’를 통해 ‘청소년 자해’의 심각성과 올바른 대처 방안을 세심하게 파헤쳤다. 특히 고통 받고 있는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자해’라는 표면적 현상에 숨겨진 본질을 드러낸 점이 두드러진다. 청소년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던 사회 전반의 무관심을 다양한 방식의 개선 방안으로 풀어낸 보도 구성 역시 타의 모범이 될 만하다. KBS <추적 60분>의 보도를 통해 청소년들의 자해가 학교와 가정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철저히 고립된 상태에서 보내는 ‘최후의 SOS’라는 사실이 설득력있게 전달됐고, ‘자해’를 ‘철없는 유행’ 정도로 치부하던 우리 사회의 무책임이 공론화될 수 있었다. KBS 제작진은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교육부에 전달하며 자해 청소년 보호 대책 마련에 직접적인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민언련은 ‘청소년 자해’를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하면서도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 KBS <추적 60분>(2/22) ‘소리 없는 아우성, 청소년 자해’를 <민언련 2019년 2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사 프로그램 부문에 선정했다.

 

지난해부터 청소년들의 자해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이에 따라 ‘청소년 자해’라는 현상 자체는 어느 정도 알려졌으나, 당사자인 청소년의 목소리에 주목하거나 본질적, 구조적 원인을 짚는 시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피상적이고 자극적인 보도가 많았다. 한겨레21이 11월에 기획 연재로 내보낸 청소년 자해 3부작을 제외하고는, 수많은 기사들이 청소년의 자해를 “유행”이나 불건전한 “놀이”, 심지어는 “패션”이라는 식으로 묘사했다. 이렇게 ‘청소년 자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왜곡될 위험이 큰 상황에서, ‘청소년 자해’의 심각성과 그 의미를 제대로 짚은 탐사 보도가 나왔다. KBS <추적 60분>이다. KBS <추적60>(2/22) ‘소리 없는 아우성, 청소년 자해는 방송으로서는 유례없이 청소년 자해를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청소년 자해가 ‘유행’? 접근부터 남달랐던 KBS

기존에 여러 매체는 SNS에서 찾을 수 있는 청소년들의 자해 관련 게시물을 바탕으로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해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고 손쉽게 결론 내렸다. 주로 의학 전문가의 입을 빌려 청소년 자해의 확산과 심각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 자해를 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는 직접 듣지 않은 것이다. 이와 달리 KBS <추적60분>(2/22)은 ‘오픈채팅’을 비롯한 다양한 경로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방송에 충실히 담아냈다. 물론 청소년 자해의 실태를 전하기 위해 현직 상담교사, 정신과 전문의, 빅데이터 분석가 등 전문가 견해도 빼놓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KBS가 학생들이 자해를 한 이유와 자해 사실이 알려졌을 때 그들이 견뎌내야 했던 또 다른 고통에 있어서, 당사자인 아이들의 증언에 신뢰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했던 이유는 KBS <추적60분>(2/22)에서 증명된다. 제작진은 방송 초반부에서 청소년들이 인터넷에 올린 자해 관련 게시물을 여러 연령대의 취재원에게 보여준 뒤 그들의 생각을 물었다. 이에 한 60대 남성은 “‘내가 제일이다’라는 거를 (보여주려는 행위)”로 해석했고, 한 70대 여성은 이 학생들이 부모에 대한 효도를 배울 수 있도록 “논어를 좀 교육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40대 남성은 본인이 부모였다면 자해하는 아이에게 화내거나 “잡아다가 때”릴 것 같다고 말했다. KBS가 보여준 다양한 세대의 반응에서 기성세대의 인식과 공감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많은 언론이 그랬듯 오로지 ‘어른들’의 관점에서 청소년 자해를 바라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직접 말한 ‘고통의 이유’

그렇다면 10대 학생들이 자해를 할 정도로 고통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많은 언론은 청소년 자해를 보도하면서도 이 질문을 아예 묻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그러나 KBS <추적60분>은 이 질문 하나에 관해서만 대여섯 명 이상의 자해 경험자를 취재해 방송에 담아냈다.

 

제작진이 만난 자해 경험자들은 가정에서의 학대, 미래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 입시 경쟁의 압박, 학교에서의 따돌림 등을 견디다 못해 자해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성적 안 나오면 (부모님이) 꼴도 보기 싫다고 그랬던 게 상처였다”, “시험 기간에는 매일 (자해를) 했던 것 같다”, “시험에서 한 문제를 틀린다고 세상이 안 망하는 걸 아는데도, 내가 여기서 한 문제를 틀리면 내 인생은 이제 망했고 돈도 못 벌고 이제 길이 없다, 미래가 없다, 이러면서 두려워진다”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전파를 탔다. 이는 단순히 공부하는 일이 고통스러워 자해를 한다는 것이 아니다. KBS <추적60분>의 최지원 책임 프로듀서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주변의 말과 시선”이 아이들을 상처 입힌다고 강조했다.

 

KBS <추적60분>(2/22)은 더 안타까운 현실도 조명했다. KBS가 만난 아이들은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아도 부모님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방법으로 답답함을 해소하고 있었다. 자해가 “심리적 고통에 대한 일종의 진통제”인 것이다. 또한 KBS가 취재한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에 의하면, 온라인에 자해 관련 게시물을 올리는 청소년들은 서로 게시물에 반응하며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 집단과는 분리되어 있다. 결국 이 청소년들이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다는 의미다.

 

‘청소년 자해’에 대한 뒤틀린 인식,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

자해를 단순히 죽고 싶어서 하는 행위 또는 자살의 전 단계로 인식하는 것 역시 자해에 관하여 널리 퍼진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자해 이후에 자살을 시도한 사례들이 있었지만, KBS <추적60분>은 속단하지 않고 이 사례들을 좀 더 들여다봤다.

 

KBS는 자해를 하던 고등학생 아이가 자살을 시도한 뒤 중환자실에 실려 갔다던 한 가족을 만났다. 가족들은 아이가 자살을 시도하기 6개월 전에 이미 아이의 자해 사실을 알았지만, “한두 번 자기가 시도해보다가 그만두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며 넘어갔었다고 말했다. 이에 정신과 전문의는 자해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은 채 만성화될 경우 더 심각한 정신적 문제나 자살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초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KBS가 만난 이들 중에는 자해 사실이 알려진 뒤 잇따른 비난으로 인해 자살을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 한때 “내 편이 아무도 없다”고 느껴 자해를 했다는 한 학생은 자해 사실이 학교에 알려진 뒤 듣게 된 온갖 욕설과 자신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 “유행 따라가는 애”라는 비난 등 때문에 살아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부모님도 “너 자해하냐?”라고 말한 뒤 아무런 위로의 말도 해주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도움이나 적극적 개입은커녕, 자해한 학생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내일을 살고 싶은 절박한 심정’, 제대로 보도한 KBS <추적 60분>

KBS가 내린 결론은 자해 자체를 처음부터 자살을 위한 행위로 보는 시각에 매우 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KBS <추적60분>은 취재를 통해 오히려 무관심이나 비난 등 자해에 대한 주변의 잘못된 대응이 어린 학생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갈 위험이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드러냈다. 초등학생 때부터 자해를 한 적이 있다고 밝힌 한 여성은 “(아이들이) 죽고 싶어서 (자해를) 하는 게 아니고 내일도 살려고 하는 것”이라는 말에 100% 공감한다고 말했다.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는데 당장 풀 곳은 없는데 살아야 하니까, 결국 자기 자신에게 해소하는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KBS는 이 방송에서 취재원과의 인터뷰를 전하며 이례적으로 특정 자막에 색깔을 넣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도 했다. 일례로, 인터뷰 내용 중 “내일도 살려고 하는 것”과 같이 자해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내용의 자막을 주황색으로 강조했다. 또한 최지원 프로듀서는 자해하는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될 말과 해줘야 할 말은 무엇인지, 자료 화면과 함께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자해에 대해 널리 퍼진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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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추적60분>(2/22) 화면 갈무리

 

학교는 ‘폭언’, 정부는 ‘무관심’…구멍 뚫린 대처

KBS <추적60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청소년 자해에 대처하고 있는 방식을 꼬집었다. 제작진은 자해 사실을 알게 된 담임교사로부터 공개적인 자리에서 폭언을 들었다는 학생의 어머니를 만났다. 장시간의 폭언과 이후 교사의 문자 폭탄까지 더해져 학생의 자해는 더 심해졌다는 것이었다. 제작진은 해당 교사와 학교의 입장도 들었다. 문제의 교사는 자해를 한 아이가 반장이라 “다른 애들한테도 그런 일이 없도록” 훈계를 하려는 의도였지만 자신에게 전문지식이 없어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아직 교사에게 어떤 처분이 내려질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학교 측의 충격적인 대응은 이뿐이 아니었다. 자해 검사를 한다고 학생들에게 사전에 알려주지 않고 아이들에게 전부 팔을 들라고 한 뒤 자해 여부를 검사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은 그 상황에서 “학생들을 아픔을 가진 인간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 건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KBS는 현직 상담전문교사의 의견을 바탕으로 올바른 자해 관련 매뉴얼의 부재를 문제로 지적했다. 전국 17곳의 시·도 교육청에 문의하고 존재하는 자해 관련 대응 매뉴얼을 검토한 결과, 자살과 관련해서는 간단한 “핸드북”이 있더라도 이와 질적으로 다른 대처가 필요한 자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9곳이었다. 나머지 8곳 중 두 곳(경기도교육청, 대구광역시교육청)을 제외한 교육청은 자해 대응 매뉴얼이 매우 부실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목소리 교육부에 전달한 KBS

제작진은 이와 대비하여 청소년 자해 예방을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는 호주의 사례를 취재했다. 호주 정부는 25세 이하의 청소년 모두에게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학자의 무료 상담을 제공하는 기관을 전국에 100곳 이상 설립했다. ‘BE YOU’라는 청소년 정신건강 통합 프로그램도 전국의 4천여 개 학교에서 작동되고 있다고 한다. 자해 대응 매뉴얼 역시 여러 단계와 자해의 위험도별로 구체적인 대처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학교에서는 처음부터 자해를 예방하기 위한 ‘회복력 키우기’ 교육을 실시한다.

 

방송 후반부에 KBS는 학생들이 학교에 마련된 상담 프로그램에 제기한 문제점들을 교육부 학생건강정책과에 전달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선생님이 “네 의지의 문제”라고 하거나 “밖에 나가서 햇빛을 봐라” 정도의 조언을 할 뿐이라고, 심지어 “남들은 다 힘들어도 참고 사는데 넌 왜 그래?”라고 이야기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유리 조각이 심장에 박히는 기분이었어요.”라며 아픔을 털어 놓은 내용도 담겼다. 이에 조명연 교육부 학생건강정책과장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중점으로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앞으로도 약자의 고통에 직접 귀기울여주길

결국 자해에 관해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인식이 부족해 아이의 부모조차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5년간 해오던 자해를 이제는 하지 않는다는 한 학생의 어머니가 말하듯, 자해는 그간 쌓여온 마음의 상처를 알아봐달라는 요구이자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다. KBS <추적60분>(2/22)은 청소년을 더는 미숙하기만 한 통제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아이들의 말을 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보여줬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 차원의 제대로 된 대응책이 나올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가장 선행되어야 할 ‘인식 개선’의 문제에 <추적60분>이 들인 공은 그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앞으로도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직접 귀를 기울이고 단순한 현상 전달을 탈피해 개선의 방향을 제시하는 탐사 보도를 기대한다.

 

<끝>

문의 이봉우 모니터팀장(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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