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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고정관념에 갇힌 EBS 이주민 프로그램, 전반적 변화 필요해
등록 2019.12.3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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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방송 EBS <다문화 고부열전>, <글로벌 아빠찾아 삼만리>, <말을 걸어볼까? 동남아 살아보기>는 이주민 등 외국인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3개월 간 EBS의 <다문화고부열전>과 <글로벌 아빠찾아 삼만리>를 모니터했습니다.

 

미디어는 국민의 인권의식을 높이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합니다. EBS라는 공영방송이, 그것도 국민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방송사가 내놓는 이주민 프로그램은 그 어떤 방송보다 이주민의 인권향상을 위해 구성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두 프로그램은 이주민의 인권을 증진하는데 기여하기는커녕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고정관념만 강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민언련은 최근 EBS 시청자위원회에서 지적된 <말을 걸어볼까? 동남아 살아보기>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여 EBS 외국인 출연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짚어보겠습니다.

 

1. EBS <다문화 고부열전>

 

프로그램 기획의도 자체가 적절한지 의문

EBS <다문화 고부열전>의 기획의도는 한국인 시어머니와 외국에서 온 며느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의 골을 메워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다문화 고부열전>은 ‘①결혼이주여성과 한국인 시어머니 사이의 갈등 보여주기 ②시어머니를 모시고 결혼이주여성의 친정으로 여행하기 ③여행 과정에서 고부갈등 더욱 부각되기 ④둘 만의 시간을 가지며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기’라는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출연하는 사람만 다를 뿐이지, 이 방송이 보여주는 행태는 늘 마찬가지입니다. 갈등의 소재가 조금씩 달라지는 하지만, 고부는 비슷비슷한 갈등이 있으며, 후반부에선 갈등의 원인은 전혀 변하지 않았음에도 며느리는 이주여성으로서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시어머니는 썩 내키지 않지만 며느리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안아주리라 결심합니다. 결론은 늘 ‘해피엔딩’이지만, 사실 그 누구도 이들의 갈등이 끝났다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방송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문제적인 며느리’로 그리는 방송…성역할 고정관념 강요하기도

먼저 <다문화 고부열전>은 결혼이주여성에게 한국의 생활방식에 동화되기를 요구합니다. 아니 적나라하게 말하면, 이제는 많은 한국인 여성이 따르지 않는 ‘가부장적 며느리상, 완벽한 현모양처상’을 이주여성에게 따르라고 요구합니다. 이런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기에, 방송 중 결혼이주여성은 자주 지적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EBS <다문화 고부열전>(6/27 274회)에서는 결혼이주여성이 집안일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지적받습니다. 방송에서 시어머니는 부엌에서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며느리는 잠을 잡니다. 이때 내레이션은 “현정 씨(며느리)는 아직 한밤중입니다”라고 말하고, 현정 씨가 시끄러운 소리에 참지 못하고 잠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잠자리에 들자 내레이션은 “어머 며느리가 상전이다. 상전, 어머 어떻게 해”라고 말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부엌일을 하는데 참여하지 않은 며느리를 보여주며 이를 나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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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다문화 고부열전>(6/27 274회) 갈무리

 

EBS <다문화 고부열전>(7/18 277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이날 방송 소제목은 <허술한 며느리 냉랭한 시어머니>입니다. 이 방송에서는 집안일에 서툰 결혼이주여성 로라 씨를 나무라는 장면이 수차례 등장했습니다. 남편은 자녀들의 유치원 등원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자녀들의 옷에 묻은 얼룩을 지적하며 “이게 세탁한거니? 이게”라며 로라 씨를 질책했습니다. 이어서 남편은 옷장을 검사하며 “정리하는 거 다 가르쳐줬잖아. 며칠 지나면 또 그대로고”라며 정리되어 있지 않은 옷장을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로라 씨는 눈물을 보였고 내레이션은 “결국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로라씨. 어쩌겠어요. 다 큰 딸 키운다고 생각하고 남편이 달래야지”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로라 씨는 “내가 잘못한 거예요”라며 눈물을 흘렸고, 내레이션은 이어 “잘못을 금방 인정하는 로라 씨. 마음 참 착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로라 씨가 시어머니와 같이 있는 방 안에서 드러눕자, “어머나 아니 시어머니 앞에서 며느리가 그렇게 누워있어 그래. 아이고 아이고”라며 큰일이 난 것 같은 내레이션이 나왔습니다. 이어 “며느리가요 시부모 어려운 줄 모르는 거 같아서 답답한 김여사예요”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눈치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며느리에요”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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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다문화 고부열전>(7/18 277회) 갈무리

 

방송은 이처럼 한국의 가부장적 분위기, 과도한 며느리에 대한 기대를 기본으로 설정한 뒤, 이런 기본을 지키지 못한 결혼이주여성을 한심하고 철없고 무능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안정이나 평화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는 한 집안의 며느리가 외국인이어서 한국인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당연히 고부 갈등은 빚어지고, 그 책임은 결혼이주여성으로 돌아갑니다.

 

갈등의 책임을 이주여성에게 돌리는 연출

게다가 가정생활과 자녀교육뿐 아니라 복장 등의 일상까지 트집 잡기도 합니다. EBS <다문화 고부열전>(6/20 273회)에서는 짧은 반바지를 즐겨 입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결혼이주여성과 이를 못마땅해 하는 시어머니의 사이의 갈등을 다뤘습니다. 방송은 갈등의 원인을 결혼이주여성 탓으로 돌렸습니다. 결혼이주여성이 시어머니의 집에 방문하려고 집을 나섰고 이때도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내레이션은 “근데요 바지가 좀 짧은 거 같은데, 괜찮으려나 몰라”라고 짐짓 걱정을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반바지를 입은 며느리에게 “야! 이게 뭐야. 나이 많은 어른들 앞에서는 예의라는 게 있어야 해”라고 말하고 “한국에는 옷 입는 것도 좀 너무 짧게 입지 말고 신경 써야지”라고 옷차림을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장면에서 내레이션은 “아이고 며느리한테 일일이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신 여사님 답답하세요. 바호르 씨(결혼이주여성)가 시어머니 말을 쪼금만 들으면 되는데”라며 말했습니다. 방송에서 이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참 살갑게 합니다. 짧은 반바지를 입는다는 취향이 다를 뿐 많은 점에서 칭찬할만한 며느리입니다. 그럼에도 무조건 짧은 반바지를 입는 결혼이주여성의 잘못으로만 치부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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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다문화 고부열전>(6/20 273회) 갈무리

 

순종적이라는 편견을 생산하기도

<다문화 고부열전>은 ‘결혼이주여성은 순종적’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순종적인 일부 결혼이주여성을 보여주면서 그 편견을 수행할 것을 유도하는 식입니다. EBS <다문화 고부열전>8/26(282회)에서 시어머니는 일을 하러 갔다가 평소보다 늦게 돌아온 며느리에게 “늙은이라고 집구석에 처박혀가지고, 날 놀리는 거야! 뭐 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몹시 화를 냈습니다. 결혼이주여성은 일을 하고 돌아왔는데, 시어머니는 자신의 ‘밥상’을 제때 차려주지 않은 며느리에게 분노를 표한 것이죠. 시어머니의 부당한 행동에도 결혼이주여성은 죄지은 사람처럼 연신 굽신굽신하며 시어머니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하고, 시어머니는 그런 며느리의 노력을 보며 짐짓 화를 풀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런 며느리가 한국의 현실에서 얼마나 있을까요? 왜 이 방송은 이런 며느리를 칭찬하기보다는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일까요? 이런 방송을 보며 이주결혼여성은 저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라는 오해가 확산되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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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다문화 고부열전>(8/26 282회) 갈무리

 

결혼이주여성은 가난하다는 고정관념

결혼이주여성의 고향을 방문한 이후의 과정도 문제입니다. 방송은 늘 이주여성이 “가난한 집의 여성”인 점을 지나치게 부각하고 있습니다. EBS <다문화 고부열전>(8/1 297회)에서 시어머니는 캄보디아 출신 결혼이주여성의 친정집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시어머니는 구형 텔레비전을 보면서 “안 켜지지?”라고 말했고, 며느리는 “지금?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내레이션은 “친정집이 어렵게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면서 며느리의 친정집의 열악한 가정환경을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인터뷰에서 “아이고 화장실 거기 들어가는 입구에 집을 하나 크게 지어 놓으면 좋겠더니만”이라고 말하며 “별걸 거기다 다 갖다 놓아서 거기다가 방을 하나 꾸몄으면 참 좋겠더니만”이라고 재차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친정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주는 연출을 가난한 나라에서 결혼해와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겪으며 고생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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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다문화 고부열전>(8/1 297회) 갈무리

 

2. EBS <글로벌 아빠찾아 삼만리>

 

<아빠찾아 삼만리>도 구성방식이 문제

EBS <글로벌 아빠찾아 삼만리>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한국에서 홀로 생활하는 이주노동자를 고국의 가족들이 직접 찾아나서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글로벌 아빠찾아 삼만리>도 <다문화 고부열전>처럼 패턴화된 구성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동남아 및 아프리카의 저개발 국가의 가장인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얼마나 힘들게 노동을 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어 고향의 가족들은 이들의 희생을 통해 그나마 나은 생활을 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서 보여줍니다. 그리곤 친절한 한국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를 찾아 한국에 온 가족이 만나 수년 만에 재회한 가족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한마디로 ‘가난하고 불쌍한 저개발 국가 가족’이 ‘성실하고 착한 이주노동자 아빠’의 한국 취업 덕분에 살만해졌으며, 한국인은 여기에 가족을 만나게 해주는 선행을 베풉니다. 이 과정에서 저개발 국가의 가족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불쌍한’ 사람이며, 그러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보다는, 동정심만 자아내는 방송

 

그러나 정작 이 방송의 컨셉은 일종의 ‘환상’이라고 합니다. 실제 이주노동자들은 자기 가족을 한국에 초청해 자유롭게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정부가 가족 결합권을 인정하지 않아 비자발급 자체가 어렵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들의 가족상봉은 EBS의 방송 콘셉트이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겁니다.

방송은 이처럼 가족들이 한국에 있는 아버지를 수년간 만나지 못하고 통화만 해야 하는 제도적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일종의 ‘환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 방송에 등장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은 비교적 양호한 노동환경에서 사용자에게 인정받고 있는 그나마 좋은 사정인 경우입니다. 노동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열악한 현실의 이주노동자의 모습은 담기지 않는 것이죠.

 

물론 방송이 세상의 나쁜 점만을 부각해 이를 고발하고 해결하는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담을 발굴하여 이를 부각하는 것도 언론의 기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언론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침해 실태를 알리고, 제도를 개선하는 등 ‘실질적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더 시급한 일 아닐까요? 이 방송처럼 현실은 감춘 채 그저 불쌍한 가족들을 불러 며칠 행복하게 지내게 해주는 ‘미봉책 솔루션’만 제공하는 것은 어쩌면 외국인노동자에게 더 큰 박탈감만을 주는 것 아닐까요? 무엇보다 이런 방송이 우리의 이주인권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 악화시키지는 않을까요?

 

가난이 싫어 한국에 돈 벌려고 왔다는 고정관념

이주노동자들이 가난이 싫어 한국에 돈 벌려고 왔다는 고정관념을 부각시키거나, 한국의 아버지의 희생으로 가족들이 편안하게 먹고 살고 있다는 내용은 매회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EBS <글로벌 아빠차장 삼만리>(7/29 125회)에서는 스리랑카의 주인공 가족들을 보여줬습니다. 내레이션은 주인공이 한국행을 택한 이유에 대해 “스리랑카에는 아직도 결혼할 때 여자가 지참금을 가지고 가는 문화가 있는데요. 엄마가 지참금을 가져오지 못하면서 이 슬픈 이별이 시작 됐기 때문이죠”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내인 나디샤니가 “제가 결혼할 때 다른 사람들처럼 지참금을 가지고 왔다면 남편이 한국에 일하러 가서 고생을 안 해도 됐을 거예요. (중략) 제가 지참금을 못 가지고 와서 미안해요”라며 우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방송에선 이주노동자들은 가난하니까 한국에 와서 돈 벌고 있다는 말만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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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글로벌 아빠차장 삼만리>(7/29 125회) 갈무리

 

또한, EBS <글로벌 아빠찾아 삼만리>(7/22 136회)에서는 방글라데시의 주인공 가족들을 촬영했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주인공 자녀들이 즐겁게 뛰어 노는 장면을 보여주며, 내레이션은 “가난이 싫어 한국행을 선택한 아빠 덕분에 가족은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살게 된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동남아 국가는 다 가난?’ 가난을 전시해야하는 방송

<글로벌 아빠찾아 삼만리>는 보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 ‘가난한 가족’을 부각해서 보여줍니다. 어쩌면 제작진은 ‘가난을 부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난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했을 뿐이라고 답할지도 모릅니다. 실제 저개발 국가의 시민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송이 자칫 그들의 국격을 침해하거나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EBS <글로벌 아빠찾아 삼만리>(6/17 130회)에는 아빠를 찾아온 한국에 온 아이들에게 한국 사람들 중 일부가 돈을 주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인도네시아 출신 주인공 가족들이 아빠를 찾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입국했고, 주인공 가족들은 공항에서 시민들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시민은 길을 알려준 뒤 갑자기 지갑에 돈을 꺼내 주인공 가족에게 건네면서 “응, 맛있는 거 사먹어. 아빠 잘 만나고 가”라고 인사를 건냈습니다. 이 시민은 “쟤들 보니까 옛날에 (독일에 일하러 갔던) 우리 아빠 생각이 나요”라고 말하며 돈을 건넨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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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글로벌 아빠찾아 삼만리>(6/17 130회) 갈무리

 

이 장면이 연출이 아니라면, 이 시민은 진심이었을 겁니다. 그 마음 자체를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방송이 이것을 그대로 담아 보여주는 것이 적절했을까요? 이러한 장면은 자칫 가난한 나라의 사람에게 동정을 베푸는 모습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민에게는 모멸감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을까요? 또한 이 모습을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보기에는 어떻게 느껴질까요? 방송을 만들 때에는 보다 많은 생각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또 다른 부적절한 사례는 민언련 보고서 <이주민 출연 예능 속 ‘사소하지 않은 차별’>에서도 비판한 상반신 노출 목욕 장면입니다. <글로벌 아빠 찾아 삼만리>(6/3 128회)에서는 캄보디아에 있는 주인공 가족이 옆집에 사는 몸이 불편한 이모할머니를 목욕시키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모할머니가 상반신을 완전히 노출한 채 무기력하게 목욕을 당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방송에 노출되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장면이 왜 필요한 것일까요? 외국인이라고 노인이라고 노출이 부끄럽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였다면, 이런 촬영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런 방송을 이대로 송출하지도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공장 기숙사 벽에 한글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쓴 출연자에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라고 묻는 제작진의 무례함도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EBS <글로벌 아빠 찾아 삼만리>(6/3 128회)에서 캄보디아 출신의 주인공 니라 씨의 집을 촬영했습니다. 나라 씨는 집의 벽면에 한글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를 적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제작진은 니라 씨에게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라고 물었습니다. 제작진은 뜻을 모르고 썼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물어본 겁니다. 이는 제작진이 얼마나 이주민을 낮잡아보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남성은 걸레질만 해도 칭찬? 후진적 젠더의식을 보여주기도

한편 후진적 젠더의식이 <글로벌 아빠찾아 삼만리>에서도 등장했습니다. EBS <글로벌 아빠찾아 삼만리>(8/5 126회)에서는 남성 이주노동자가 주말이 맞이해 방청소를 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내레이션에서 “걸레질도 하다니 아빠는 못 하는 게 도대체 뭘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남성이 집안일을 하는 점을 부각하고 칭찬하는 장면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EBS <글로벌 아빠찾아 삼만리>(7/15 135회)에서도 남성 이주노동자가 주말을 맞이해 집안 청소를 시작하자, 내리이션은 “아니 근데 무슨 아저씨가 손끝이 야무져요? 저보다 살림을 더 잘하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사례에 등장한 남성 모두 혼자 자취를 하기 때문에 집안일을 하는 것은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내레이션은 이를 마치 특별한 일인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집안일은 여성의 몫이라는 후진적 젠더의식에서 나온 문제적 발언이었습니다.

 

3. EBS 이주민 관련 프로그램,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EBS <말을 걸어볼까? 동남아 살아보기>

2019년 11,12월 EBS 시청자위원회 회의록에서는 EBS <말을 걸어볼까? 동남아 살아보기>에서도 부적절한 내용이 지적되었습니다. 이 방송은 동남아시아에서 일정 기간 살아보는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고 최근 시작되었습니다.

 

프로그램에 등장한 성별 편견이나 낙인을 강화하는 부적절한 연출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9월 12일 편에서는 출연자 정석용 씨가 방콕 현지 병원을 방문했는데, 여성 의료진에게 반한 듯한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여성 간호사가 정 씨를 진료하자 “50세 순수 총각의 마음을 녹여주는 백의의 천사”라거나 “50세 순수 총각의 심장이 요동친다”라는 자막이 나온 것인데요. 시청자 게시판에는 “남자 간호사, 남자 의사였어도 똑같이 방송했을 것입니까?”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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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말을 걸어볼까? 동남아 살아보기>(9/12) 갈무리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한 경우도 지적되었습니다. 10월 31일 편에선 출연자 김현숙 씨가 원하는 집을 찾은 후 집주인에게 월세를 깎아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에서 ‘온갖 교태’라는 자막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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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말을 걸어볼까/ 동남아 살아보기>(10/31) 갈무리

 

11월 14일 편에서는 현지 미용실을 방문한 출연자 황보 씨가 머리 손질을 마친 후, Before&After 의견을 묻는 장면에서 화면 밖 제작진이 말한 “남자들은 예쁘면 다 좋아해요”라는 표현을 자막으로 사용했습니다.

 

또 같은 편에서 교민회장이 인도네시아 이주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장면에서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을 두고) “얘들이...”란 표현을 썼는데 이를 여과 없이 방송했습니다.

 

김현식 시청자 위원은 프로그램에 등장한 성별 편견이나 낙인을 강화하는 장면에 대해 “디테일 오류 한두 가지가 프로그램 전체 콘셉트를 뒤흔든다”, “짧은 한 마디이지만, ‘편견’으로 오해할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EBS 이주민 방송 전면 재검토 필요

이상과 같이 현재의 <다문화 고부열전> <글로벌 아빠찾아 삼만리>의 고정된 구성방식 자체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특히 <다문화 고부열전>은 EBS의 인기프로그램입니다. 그러나 시청률이 높거나 장수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그 프로그램의 품질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11월 18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 기념관에서 열린 민언련의 토크쇼 <사소하지 않은 차별>에서 이주여성 단체 톡투미의 이레샤 대표는 “모니터링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을 처음 봤는데, 제작진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방송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레샤 대표는 “다른 문화를 배경으로 한 며느리에게 오직 한국 법만 따르라고 강요하는 모습이 보였다. 제가 있는 단체에서 하루 열 명 이상의 이주여성과 상담하는데, 그분들로부터도 이 방송을 성토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토론에 참여한 이주민방송 정혜실 대표는 <글로벌 아빠찾아 삼만리>에서 초대한 가족을 싸구려 모텔이나 공장기숙사에 재우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방송사는 다르지만, 외국인을 한국에 초대해 여행을 하는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에서는 최고급 호텔은 아니지만, 우수한 숙박업소에서 유익한 관광을 하는 것과 대조적이기 때문입니다.

 

민언련은 EBS가 의도적으로 이주민을 무시하고, 그들의 인권을 침해할 의사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애초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방송을 이처럼 많이 만드는 것 자체도 시청률보다는 다문화 사회에서 미디어의 바람직한 역할을 하기 위한 노력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뜻이 좋아도 방송 내용에서 부족함이 지적된다면 이제는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민언련은 이제 EBS가 다문화 인권 의식을 다잡을 수 있도록 관련 프로그램 전반을 재검토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인기 프로그램이라는 이유로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 시선만을 고착화시키는 프로그램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더불어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주민 관련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EBS가 이주민 인권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계획이 담긴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자체 심의 규정도 보완하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제작진 모두에게 이주민은 물론이고 인권의식 향상을 위한 교육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EBS는 국민에게 선생님입니다. 그 선생님의 인권의식이 국민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크게 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EBS가 국민이 내는 지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실질적 개선을 위한 계획을 세워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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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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