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왜 전쟁위기에 태평한가’ 침착한 시민이 못 마땅한 동아․조선
등록 2017.08.11 18:33
조회 3905

북한과 미국이 연일 전쟁을 시사하는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위협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군사적 긴장감 고조로 한반도 전쟁 위기까지 거론되는 이 상황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일차적으로는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 뒤, 발언의 배경 및 국제정세를 분석하는 보도, 대북정책의 방향성을 다룬 보도를 내놓을 수 있습니다. 북한과 미국 양국을 향해 자제를 촉구하거나 우리 정부를 향해서 긴장상황 타개를 위한 외교적 역량 발휘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전쟁 위험성 부각을 통한 불안감 조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위기 상황을 정확하게 언급하는 수준을 넘어 ‘왜 불안해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식입니다.

 

 

동아 ‘외국인들은 현금까지 준비하는데…’
가장 황당한 것은 동아일보의 <“한국생활 10년만에 첫 두려움” …현금 준비하는 외국인들>(8/11 권기범․구특교․김배중 기자 https://goo.gl/QvJqHD)입니다. 해당 기사는 제목 그대로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현금’을 별도로 준비할 정도로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 문장도 “10일 오후 2시경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의 한 은행 앞. 금발의 한 젊은 외국인 여성이 불안한 표정으로 은행 문을 열고 나왔다. 손에는 하얀 봉투가 있었다. ‘아침에 북한 뉴스를 봤다. 혹시 몰라 일단 현금을 조금 갖고 있으려 한다’고 말한 뒤 급히 자리를 떴다”입니다. 


이 첫 문장을 시작으로 기사는 “그동안 여러 차례 긴장 상황을 경험했던 국내 거주 외국인 사이에서도 ‘과거와 다른 것 같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며 한 “로펌 소속 변호사인 영국 출신의 마크 벤턴 씨”의 “한국에서 생활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페이스북 글, “경기 의정부시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개브리얼 조 씨”의 “온 가족이 다 내 걱정만 하고 있어서 나도 불안한 마음이 든다”는 발언을 연이어 나열하고 있는데요. 


단순히 외국인들의 걱정을 전하는 수준을 넘어 동아일보는 “일부 외국인은 평소와 다름없는 한국인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북한 도발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라며 내국인들의 ‘담담한 반응’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를 위해 동아일보는 “한 컨설팅사에서 일하는 대만 출신 리산위안 씨”의 “이번 상황은 훨씬 심각해 보이는데도 별로 불안한 모습이 없어 놀라울 정도”라는 발언과 “캐나다인 앨릭스 리 씨”의 “캐나다였다면 평화를 요구하는 집회라도 열릴 텐데 한국은 너무 조용한 것 같다”는 발언 등을 전했습니다.

 

K-004.jpg

△외국인들의 동요를 지나치게 부각해 내국인들의 평온이 ‘이상한 것’처럼 보이도록 전달한 동아(8/11)  

 

기사의 마지막 문단은 외국인들의 이 같은 반응에 대한 내국인들의 반응을 전하고 있는데요. “외국인의 이 같은 반응에 시민들은 ‘그럼 라면 사재기라도 해야 하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일상에 충실하고 정부는 안보에 충실하면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직장인 정모 씨는 ‘물론 ‘북한이 설마 우리한테 핵을 쏠까’라는 안이한 생각을 해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사회가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한다면 더 이상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그래서 뭐 어쩌라고? 사재기라도 해서 사회 혼란이라도 부추기라는 거냐?’는 시민들의 이런 상식적인 반응은 동아일보의 해당 보도가 얼마나 황당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내줍니다. 국내 거주 일부 외국인들의 막연한 두려움을 부각해 정체불명의 불안감을 조성하려다, 시민들의 ‘팩트폭력’에 소기의 목적을 모두 달성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기사를 마무리한 꼴입니다.

 

 

조선 ‘괌은 긴장하는데 한국인은 놀러가’ 외신 분위기 왜곡도
이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괌과 일본의 주민들은 얼마나 ‘불안에 떨고 있는지’를 전하며 한국인들의 ‘태평한 평온함’과 대비시켜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먼저 동아일보는 <괌 주민들 “비상사태용 식량 준비” 일 방위상 “위기상황 판단땐 요격”>(8/11 주성하 기자․서영아 특파원 https://goo.gl/oi2PvQ)에서 괌 주민들이 “북한 미사일 위협 보도가 이어지면서 불안에 떨고 있다” “이곳의 많은 주민들이 트럼프가 진짜로 (전쟁) 버튼을 누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사실이며 나도 식품을 구입할 생각이다”라는 등의 불안감 섞인 반응을 소개했습니다. 또 동아일보는 “일본에도 비상이 걸렸다”며 “일본 언론들도 북한 발표를 신속하게 전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기사는 괌 현지 한인사회는 “비교적 침착한 분위기”라며 “한인들은 별로 동요하지 않는데 현지인들이 더 걱정을 많이 한다”는, 이와 대비되는 한인회장의 반응도 전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더 노골적인데요.

 

<“괌은 긴장하는데 한국인은 괌 놀러가”>(8/11 조의준 특파원 https://goo.gl/6P2DUa)에서 조선일보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과 괌 포위 사격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의 모습이 엇갈리고 있다. 외신들은 잔뜩 긴장한 괌의 모습과 평소처럼 괌으로 휴가를 떠나는 한국인의 모습을 비교하기도 했다”며 외신의 “‘그라운드 제로(폭탄이 떨어지는 지점)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해변에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지금 한국은 놀랄 만큼 평온한 분위기”라는 리포트를 소개했습니다. 

 

K-005-horz.jpg

△ 괌에 방문한 한국인들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조선일보(좌)와 ‘아시아인들이 대거 찾아올 정도로’ 미군의 대응을 신뢰하고 있는 괌의 상태를 전달한 CNN보도(8/11)

 

그러나 이 같은 외신 보도들은 한국 시민들의 ‘안보불감증’을 비난하기 위해 작성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당사자국 시민이 동요하지 않는 모습은 에디 칼보 괌 주지사의 “패닉에 빠질 때는 아니다” “매우 호전적인 북한 지도자가 많은 발언을 했지만, 현 시점에서 괌의 안보 상황은 변함이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도 합니다. 


실제 조선일보가 소개한 CNN의 보도는 <Guam residents stoic in the face of North Korean missile threat>(8/11)인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조선일보는 ‘그라운드 제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발언이 마치 ‘심각한 경고 발언인 것처럼 전하고 있지만 해당 보도는 “Welcome to ground zero," a US customs official joked on arrival, aware of the North Korean threat but laughing it off with a bit of gallows humor”라며 미국 세관 당국자의 ‘그라운드 제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발언이 ‘농담’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해당 보도는 “Asian travelers, mainly Japanese and South Koreans, are still landing at the airport and it's tough to find a room at one of the vacation resorts dotted around the island. Tourist arrivals in July hit a record for that month”라며 일본인과 한국인들을 중심으로 아시아 여행자들이 여전히 괌을 많이 찾고 있다는 사실도 전하고 있습니다. 안보 상황에 무지한 일부 한국인들만 괌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해당 보도는 이 단락 뒤에 곧바로 <Confidence in military>라는 단락을 붙여 일부 괌 주민들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괌의 지역 주민들이 북한의 공격에 대한 미군의 ‘보호’ 체계에 신뢰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Many locals in Guam are confident in the protection afforded by the US military”) 한국인들이 ‘위기가 위기인 줄 모르고 돌아다닌다’는 비난의 뉘앙스가 담긴 조선일보 기사와는 전혀 다른 보도인 셈입니다. 

 

 

조선은 ‘평온은 현명함의 결과 아니다’
조선일보는 <만물상/‘이상한 평온’>(8/11 박정훈 논설위원 https://goo.gl/ePDNgR)에서도 ‘평온한 시민’들을 향해 ‘현명한 행동은 아닌 것 같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정부가 ‘이런 상황에서도 태평하다’는, ‘문재인 정부 안보 무능론’도 물론 빠지지 않았습니다. 


해당 칼럼에서 조선일보 박정훈 논설위원은 먼저 “한국 사회의 위기 불감증을 가장 싫어할 인물이 역설적으로 김정은이다. 우리가 겁먹어 주지 않아 협박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라면서도 “그러나 우리의 평온은 정말 현명함의 결과일까. 전문가들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한 상태에서 20여년간 위협에 익숙해져 ‘설마’ 하면서 현실을 회피하는 심리라고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위정자의 DNA엔 ‘설마 유전자’가 들어 있다고 한다. 눈앞에 닥친 위기 앞에서 ‘설마’ 하다 망하는 길을 걷곤 했다” “미·북 충돌이 본격화된 와중에도 정부는 휴가 모드다”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정부다. 정부도 ‘설마…’ 하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라 비아냉 댔습니다. 정부의 외교 행보와 안보 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 비판의 근거가 ‘유전자’인 것은 좀 황당합니다. 또한 이낙연 총리와 경제 부총리의 ‘휴가’가 정부 전반의 ‘안보 휴가 상태’로 풀이되어야 할 문제인지도 의문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8월 11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monitor_2010811_382.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