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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박중현 성폭력 보도, 이미 2차 가해였다
등록 2018.03.0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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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교수들의 성폭력이 폭로됐습니다. 학과장 박중현 교수를 포함한 6명 중 남자 교수 4명 전원이 성추문에 연루돼 보직에서 해임되고 수업에서 배제됐습니다. 그러나 이를 전달한 언론 보도는 여전히 성폭력 보도의 기본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피해자의 진술서를 입수했다면서 피해자의 동의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2차 가해성 보도를 내놨습니다.

 

이번 보고서는 조선일보의 부적절한 성폭력 보도를 비판하고자 작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적절한 조선일보 보도가 유포될 우려가 있어 평소 민언련 보고서처럼 보도 제목이나 URL을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또 다른 2차 가해가 되지 않도록 조선일보의 문제가 되는 보도내용을 재인용하거나, 삽화 갈무리 화면도 담지 않겠습니다.

 

진술서를 ‘단독 입수’ 했다는 조선일보, 그 자체가 무개념 행동이다.

조선일보는 3월 4일 온라인 기사에서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교수진 관련한 피해자 진술서를 보도했습니다. 기사 내용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이 진술서를 입수한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것입니다. 


조선일보가 ‘입수’했다는 진술서는 피해자들이 비공개를 전제로 학교 측에 제출한 것입니다. 개인의 신원은 물론 부차적인 정보들이 담겨있습니다. 따라서 함부로 유출되어서는 안 될 내용입니다. 요즘 미투 운동으로 한참 성폭력 관련 자발적 폭로가 이어지다보니 우리 사회가 자칫 혼동할 수 있는데요.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인적상항과 비밀 보호는 법에도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을 만큼 중요한 가치입니다. 


실제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수사기관, 법원, 소송관계인이 피해자의 인격, 명예를 손상하거나, 사적 비밀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요. “법원, 검사, 피고인이나 변호인, 그 밖의 소송관계인이 성폭력범죄피해자의 인적 사항 등이 공개되거나 타인에게 누설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성폭력 상담소, 보호시설이나 통합지원센터의 장, 종사자 등이 성폭력범죄피해자에 대해 알게 된 비밀 누설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공개를 전제로 제출한 피해자들의 자필 진술서가 유출된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초점이 흐릿해서 글자를 희미하지만, 진술서 출력본 사진을 자신 있게 공개했습니다. 이에 대해 현재 명지전문대 측은 자신들이 공개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너무 흐릿해서 글씨를 잘 알아볼 수는 없지만, 자술서 첫 장을 보면 블라인드 처리한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진술자명 등을 가리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은 상태의 사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번 사안은 학교 측의 잘못이든 조선일보의 잘못이든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일입니다. 또한 백보 양보해서 학교 측 인사가 언론사에 이런 문제를 제공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런 부적절한 행태가 일어나면 지적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사가 오히려 부적절한 행태에 동참한 것은 언론윤리를 위반한 것이며, 한마디로 ‘개념이 없는’ 행태입니다. 특히 조선일보가 본명이 아닌 가명을 썼기에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착각입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쓴 진술서가 조선일보 기자에게 진술서가 고스란히 넘어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큰 충격이며 공포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보도에서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했는지 문제가 아니라, 진술서 유출 그 자체로 이미 비밀 보호의 원칙은 깨져버린 것입니다. 

 

피해자의 2차 가해 호소에도 조선일보는 묵묵부답

그렇다면 진술서 입수만 문제일 뿐, 보도는 제대로 해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했을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조선일보는 “학생들 신변 보호를 위해 기사에는 본명 대신 가명을 썼다”면서 그래도 “학생들이 자필로 기록한 ‘진정서’ 내용을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조선일보는 가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는 하지 않아도 감을 했어야 하는데, 진술서의 내용을 인용해 성폭력 상황을 한껏 상세하게 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사에는 피해 사실에 대한 선정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들이 담겨있습니다. 


무엇보다 조선일보는 ‘피해자의 동의’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보니 피해 당사자는 개인 SNS를 통해 “자신들은 진술서를 제보한 적이 없으며, 해당 보도가 오히려 자신들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보도는 온라인상에서도 많이 회자되었습니다. 조선일보 페이스북 계정에도 게시되었고, 포털에서도 주요기사로 유통되었습니다. 게다가 서울신문을 비롯해 많은 언론사들이 해당 보도를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를 삭제하거나 수정하지도 않았고, <사설/음란 퇴폐 업소가 따로 없었던 어느 대학>(3/5 https://bit.ly/2FgBYKs)에서 “본지 디지털편집국이 입수해 보도한 서울 명지전문대 연극영상과 학생들 진성서 내용을 보면 이게 어떻게 학교였나 싶을 정도다”라며 ‘본지의 활약을 자화자찬’하기도 했습니다. 

 

지면에 나오지 않았다? 지면에서는 삽화까지 더해 

조선일보의 문제보도는 온라인 보도에서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 <“술자리 오라는데 안가면 실습서 빼… 어떻게 교수님 말을 안듣겠어요”>에서도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성폭력 폭로를 다뤘는데요. 그나마 지면 보도에서는 온라인 보도에서처럼 피해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사와 함께 삽입된 삽화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보도에서는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 학생․졸업생이 폭로한 교수들 성추행”이라면서 폭로 내용을 글과 삽화로 표현했고요. 삽화는 추행을 장난스럽게 묘사하면서 범죄를 희석시키고 선정성을 강화했습니다. 


성폭력 문제를 보도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사람은 피해자입니다. 보도로 인해 개인적인 내용이 공개될 수밖에 없고, 이 내용이 2차 가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무개념 조선일보를 위해서 다시 더 복기해보겠습니다.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

 

02. 피해자 보호 우선하기

•언론은 경쟁적인 취재나 보도 과정에서 피해자나 가족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언론은 피해자의 피해 상태를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함에 있어, 피해자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언론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라고 해서 피해자나 가족의 사생활이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03. 선정적, 자극적 지양하기

•언론은 성폭력 범죄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 소재로 다루는 것을 지양하여야 한다.

•언론은 성폭력 범죄의 범행 수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특히 피해자를 범죄 피해자가 아닌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선정적 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3월 3일 ~ 5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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