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용산청사 이전 ‘장밋빛 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이전비용 받아쓰기
등록 2022.03.24 13:51
조회 1090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3월 20일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는 안을 직접 발표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 잔재를 청산”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시대”를 열겠다는 취지인데, ‘졸속 이전’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3월 16일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이 “용산을 포함해 여러 개 후보지를 놓고 검토 작업 중”이라고 발표한 지 4일 만인 데다, 윤 당선자 후보 시절엔 광화문 이전 계획이 “충분히 검토됐다”고 말했기 때문인데요. 청와대가 3월 21일 안보 공백 등을 들어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용산 이전 논란이 더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은 윤 당선자의 용산 이전 계획이 시민과 소통하겠다는 애초 취지에 부합하는지, 당선자 측이 내놓은 계획이 현실성이 있는지, 절차나 법적 타당성 등에 문제는 없는지, 주민 불편 등 고려되지 않은 부분은 없는지 살펴봐야 하는데요.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윤 당선자가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밝힌 다음 날인 3월 21일부터 이틀간 6개 종합일간지‧2개 경제일간지 지면 관련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496억, 5천억, 1조원…미확인 이전 비용 받아쓰기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이 공식화되면서 비용에 먼저 관심이 모였습니다. 윤 당선자는 청사 이전에 총 496억 원이 소요될 것이라며 “기획재정부에서 받은 추정 비용”이며 일부에서 “(이전 비용이) 1조 원이니 5천억 원이니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데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건물을 비워줘야 하는 당사자인 국방부는 청사 이전에만 최소 5천억 원이 소요된다는 의견을 인수위원회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지는 등 이전 비용이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3월 23일 기획재정부가 ‘이전 비용 세부내역 자료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적지 않은 세금이 투입되는데도 관련자가 내놓은 비용 추산에 차이가 큰 만큼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추산된 비용을 면밀히 검증하기는커녕 여야 주장을 나열하는 수준의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조선일보 <윤당선인 “집무실 용산 이전에 496억”…민주당 “국방부 신축 등 1조 넘을 것”>(3월 21일 김형원 기자)은 더불어민주당 추산 금액과 윤 당선자 측 추산 금액을 그 세부내역까지 그대로 받아썼습니다. 윤 당선자는 “‘496억원이 든다’고 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조1000억원이 든다’고 했다”고 전하며 양측 공방을 중계하는 수준인데요. 그러면서도 “인수위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한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과 직접 통화한 내용을 실으며 “민주당이 추산한 액수는 그야말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선전·선동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덧붙였습니다. 윤 당선자 측 관계자 주장만으로 ‘496억 원’을 검증한 건데요. 하지만 이 발언 역시 주장에 불과해 어떤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인지, 신뢰할 만한지 확인할 순 없습니다.

 

장밋빛_1_조선.png

△ 윤석열 당선자 집무실 용산 이전 비용 관련, 정치권 발언만 중계한 조선일보 기사(3/21)


매일경제는 <윤 “집무실 명칭 국민공모…이전비 496억원 예비비로”>(3월 21일 김동은 기자)에서 윤 당선자의 집무실 이전 관련 기자회견 발언을 그대로 전한 뒤 같은 날 <사설/청와대 ‘용산 이전’ 제왕적 대통령 벗어나는 첫걸음 되길>(3월 21일)에서 “윤 당선인은 더불어민주당이 제기한 ‘1조원 이전 비용’에 대해선 “496억원 정도 든다”고 선을 그었고, 추가적인 규제도 없다고 못 박았다”며 “시급한 국정 현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발목 잡기식 반대나 소모적 논란은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전 비용 등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남아있음에도 당선자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데다, 매일경제 자체적으로도 비용을 검증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으면서 지금의 논란을 ‘발목 잡기’, ‘소모적 논란’으로 치부했습니다.

 

‘496억’ 받아썼는데 인수위는 하루만에 1200억 추가

윤 당선자가 이전 비용을 밝힌 다음 날인 3월 21일 김은혜 대변인은 “합참이 남태령으로 이동할 경우 새롭게 청사 짓는 데 1200억 원 정도가 들어가지 않을까”라고 말했는데요. 윤 당선자가 언급하지 않은 내용으로 하루 만에 이전 비용이 1700억 정도로 3배 넘게 늘어난 겁니다. 한국일보 <윤 당선인 “용산 이전 비용 496억”…합참 이전·공원화 비용은 쏙 뺐다>(3월 21일 신은별·정승임 기자) 등은 이전 비용이 발표되자 누락된 부분을 구체적으로 짚긴 했지만, 상당수 언론은 맞는지 틀렸는지도 알 수 없는 정치권 주장을 ‘중계’하는 데 그치면서, 일부 언론이 받아쓴 ‘496억’은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수치였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대통령실 앞 결혼식”, “워싱턴DC처럼 고급빌라촌” 장밋빛 보도

윤석열 당선자는 3월 20일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발표하며 용산 국방부 청사와 주변부지 활용방안이 담긴 조감도도 공개했습니다. ‘소통’을 이전의 핵심 이유로 내세운 만큼 청사 일대를 공원화해 시민에게 개방하고, 청사 내부도 기자 등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도록 바꿀 것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윤 당선자가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시민에게 알릴 필요는 있지만, 언론은 윤 당선자가 알리고 싶은 ‘장밋빛 청사진’보다 그가 주장한 대로 용산 청사가 ‘원활한 소통’이란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곳인지, 그 계획은 실현 가능한지 등을 살피는 게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장밋빛_3_중앙.png

△ 윤석열 당선자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을 제목에 그대로 실은 중앙일보(3/21)

 

다음 날 중앙일보는 3면에 <윤 “용산 대통령실 앞 공원서 결혼식도 가능, 청와대 5월 10일 국민에 개방”>(3월 21일 박태인 기자)을 싣고 윤 당선자가 ‘용산 시대’의 개막을 공식 선언“했다며, “백악관과 같이 최소 범위에서만 펜스를 설치하고, 잔디밭에서 결혼식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윤 당선자 발언을 제목에 실어 강조했습니다. 이어 중앙일보는 <윤 “대통령실에 민관합동위 설치, 외부 전문가 모실 것>(3월 21일 최민지 기자), <윤 측 “청와대 본관, 역대 대통령 기록관으로 개조할 계획”>(3월 21일 현일훈․김효성 기자) 등 윤 당선자 발언을 제목에, 관계자 발언은 기사 본문에 옮겨 적었는데요. 실현 가능성 여부를 따지기보다 계획안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조선일보 <참모·언론과 한 건물…“용산공원서 일하는 대통령 볼 수 있다”>(3월 21일 주형식 기자) 역시 “대통령이 일하고 있는 모습과 공간을 국민들이 공원에 산책을 나와서 언제든지 바라볼 수 있게”, “워싱턴에 있는 ‘블레어하우스(미국 정부 영빈관)’ 같은 것을 건립하는 방안” 등 윤 당선자 측 ‘장밋빛’ 계획을 전하는데 급급했습니다.

 

안보 공백, 공원 오염 등 충분히 짚지 않아

환경단체 녹색연합은 3월 20일 성명을 통해 “미군기지 반환 절차와 오염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졸속 결정”이라며 “정화부터 공원조성까지 반환 시점부터 7년 이상 소요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합참의장을 지낸 예비역 대장 11명도 3월 19일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 핵실험 준비 동향 등 안보 취약기 대혼란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언론에서 이에 관한 충분한 고려 등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장밋빛_2_매경.png

△ 윤석열 당선자 집무실 용산 이전 관련 ‘지역개발 지연’ 우려를 부각한 매일경제(3/21)


매일경제 <윤 약속에 일단 안도한 용산주민들…워싱턴DC처럼 고급빌라촌 될까>(3월 21일 유준호․문가영․고보현 기자)는 ‘지역개발 지연’을 우려하던 지역주민 반응을 소개하며 “한국의 워싱턴DC처럼 정치 일번지가 되고, 고급 주택 단지들이 들어설 것으로 기대한다”는 주민 발언을 제목에 실었습니다. 매일경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용산 부동산 규제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고 단언하기도 했는데요. 규제 가능성이 없다는 윤 당선자의 발언 자체도 가능한 지 짚어봐야 하지만, 지역개발에 한정된 이슈에 대해서만 지역주민 목소리를 들어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기사는 아닌지 의문입니다.

 

한겨레 온라인 기사 <“우리 집 이사 준비보다 빨라”…집무실 이전에 용산 주민들 뒤숭숭>(3월 20일 이우연․이주빈 기자)은 “(규제 문제는) 이전과 함께 따라오는데 당선자가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거냐”, “우리가 사는 데가 지저분하다고 쫓겨날까 봐 걱정된다” 등 지역주민 의견을 다양하게 살펴 매일경제 보도와 차이를 보였습니다.

 

“청와대는 소통방해 공간?” 구체적 근거 짚은 SBS, 인수위 권한 따진 뉴스타파

“백악관처럼”, “496억으로 선 그었다”처럼 윤 당선자가 발표한 계획의 긍정적인 점만 부각하며 받아쓴 기사도 있었지만, 객관적 근거를 활용해 이전 명분이나 인수위원회 권한 등을 따져본 보도도 있습니다.

 

SBS <사실은/청와대 이전을 둘러싼 ‘대통령’과 ‘참모’의 거리>(3월 23일 이경원 기자)는 윤 당선자가 이전의 핵심 명분으로 내세운 ‘참모의 거리’에 초점을 맞춰 청와대가 정말 소통을 방해하는 곳인지 따져봤는데요.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비서동과 500m 거리)과 대통령 보조 집무실(비서동 내 위치) 두 군데에서 업무를 본다고 보도한 SBS는 청와대가 공개한 올해 1월 이후 대통령 일정을 전부 분석해 대통령이 어디서 업무를 보는지 살폈습니다. 그 결과 “청와대 일정은 170개였는데, 여민관 일정이 131개”, “본관 일정은 13개”라며 “대통령과 참모진의 거리가 멀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보이고, “대통령과 참모 간의 소통이 얼마나 ‘원활하게’ 이뤄졌는지는 주관적 영역에 가까워 판단을 보류”한다고 했습니다.

 

장밋빛_SBS_4.png

△ 대통령 업무 공간 분석해 ‘참모와의 거리’ 따져본 SBS(3/23)


뉴스타파는 전문위원인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기고문 <‘국방부 강제퇴거 사건’, 그 총체적 난맥상>(3월 21일)을 3월 21일 실었는데요. 이에 따르면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제7조가 규정하고 있는 인수위원회 권한은 “현황 파악과 준비 업무”로 “국방부에 대한 강제퇴거 결정은 ‘대통령직 인수’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민간인 신분인 인수위원에 대해서는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제15조”에서 “공무원이 아닌 사람은 위원회의 업무와 관련하여 「형법」이나 그 밖의 법률에 따른 벌칙을 적용할 때에는 공무원으로 본다”라는 조항을 두고 있어 인수위원 또한 공무원으로 보고 공무원이 주체인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외에도 “심사를 해야 하는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비공식적으로 소요 예산을 계산해줬다는 것이 윤석열 당선인 측의 설명”인데, 국가재정법 51조에 따라 “심사를 해야 하는 주체”인 기재부가 “신청서류를 작성해줬다는 것”이 돼 국가재정법을 위반한 것이라고도 비판했습니다.

 

3월 21일 신문 보도들은 엇비슷했습니다. 기자의 문제의식 없이 정치인의 입만 따라가는 보도가 대부분으로 차별점이 보이지 않았는데요. 이에 반해 SBS, 뉴스타파 보도는 문제의식을 갖고 다각도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 관련한 논란을 다각도로 검증해 시민에게 필요한 관점을 제공했습니다. 사실 확인은 사라진 채 ‘받아쓰기’만 한 보도는 시민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새 정부의 많은 정책이 발표될 텐데요. 검증하고 따져보는 보도가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3월 21일~23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보도

 

<끝>

 

monitor_20220324_022.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