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고영신 교수, 전두환 ‘큰 정치’ 칭송하며 야당의 ‘개헌서명운동’ 비난도
등록 2017.06.01 17:22
조회 1000

고영신 한양대 특임교수를 방송통신위원으로 추천하려던 국민의당이 지난 5월 29일(월) 의원총회를 열어 재논의를 결정했다. 의총 이후, 최명길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면접위원들이 다시 만나 “결격 사유가 되는지 검토해보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지만, “번복될 가능성은 크지는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민의당은 고영신 교수 방통위원 추천 문제를 소속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김경진, 신용현, 오세정, 최명길 의원)에게 일임했고 6월 말까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하기로 했으며 “당분간 논의 일정이 잡힌 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고영신 씨가 경향신문 기자로 재직 시 작성했던 문제적 기사를 추가로 지적키로 했다. 국민의당 면접위원들이 결격 사유를 검토하는 자리에서 이 칼럼까지 심사숙고해주기를 권한다. 

 

전두환과 민정당이 하자는 대로 ‘체육관 선거’ 받아들이라?
먼저 고영신 씨는 86년 <시국을 바로보자 7/ ‘세’만 잡으려다간 파국 불러들여>(1986.3.1.)라는 칼럼을 내놨다. 칼럼은 당시 야당인 신민당이 전두환 정권 여당인 민정당이 하자는 대로 5공 헌법 호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칼럼은 “청와대 오찬 회동 이후 정가의 관심은 신민당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쏠려 있다. 정부 여당은 89년 개헌 보장이 최종 수습안 임을 강조하고 있어 이에 대한 신민당의 반응에 따라 대타협이냐 파국이냐의 정국향방이 판가름 날 운명이기 때문이다”로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청와대 오찬 회동’이란 1986년 2월 24일 전두환의 제의로 당시 집권 여당 민정당 노태우 대표와 제1야당 신민당 이민우 총재, 제2야당 국민당 이만섭 총재가 정국과 관련해서 연 회동을 말한다. 이 자리에서 전두환이 꺼낸 시국 수습 방안은 ‘개헌을 1989년에 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는 황당한 수작이었다. 


이 말은 곧 1988년 2월 임기가 끝나는 전두환의 후임 대통령은 1987년 5공 헌법에 따라 체육관 선거로 뽑도록 하자는 얘기, 즉 당분간 5공 헌법 '호헌'을 하자는 얘기고, 노태우로의 정권 재창출에 동의하라는 겁박이었다. 신민당은 전두환 씨의 말만 믿고 1989년 개헌이 보장됐다면서 당시 진행중이던 ‘개헌 서명운동’을 중단할 수 없기에 당연히 반발이 있었다.

 

경향신문_1986_0301_3면.jpg

△ 경향신문 <시국을 바로보자 7/ ‘세’만 잡으려다간 파국 불러들여>(1986.3.1.) 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야당 향해 ‘반대를 위한 반대’라 비판
그런데 고영신 씨는 이러한 야당의 반발을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큰 목소리의 강경론이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형세를 보이고 있어 방향은 이미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야당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여당의 제의라면 포장도 풀어보지 않고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나서는 야당 특유의 거부체질로 해석된다. 해방 후 정치 40년사는 야당에게 무조건적인 반대생리와 대결자세를 고질병으로 남겨주었다”라고 매도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독재정권이 1989년에 개헌을 보장해 줄 터이니 1987년에는 5공 헌법대로 체육관 선거로 노태우 대통령을 만들어봐야겠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했는데, 야당이 이에 대해 반발한 것에 대해서 고영신 씨는 ‘무조건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라며 오히려 야당을 비판한 것이다. 여기에서 그친 것도 아니다. 고영신 씨는 또 전두환의 이른바 ‘1989년 개헌 보장’이 마치 정말 큰 대인배적인 양보인 것처럼 부각했다. 


“야당이 2‧12 총선 이후 한목소리로 주장해온 개헌 주장을 비록 그 시기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긍정적으로 수렴한 것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정부, 여당의 결단으로 평가할만하다. 야당 측의 주장에서 보면 3분의 1미만의 의석으로 꿈도 꾸어볼 수 없는 기대 이상의 결과이고 40년 야당사에서 얻어낸 최대의 성과로 풀이되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1987년 체육관 선거로 자기 후계자를 뽑겠다는 건 확실히 못 박으면서 1989년에 가서 될 지 안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개헌 보장’이라는 사탕발림을 내놓은 전두환 씨의 겁박이 고영신 씨에게는 ‘꿈도 꾸어볼 수 없는 기대 이상의 결과’, ‘40년 야당사에서 얻어낸 최대의 성과’로만 보였나보다. 

 

전두환의 ‘큰 정치’ ‘대화합’ 칭송
이어 고영신 씨는 “이처럼 새롭게 설정된 바탕위에서 여야가 종래의 대립, 반대 자세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화자세로 이견을 좁히려는 노력만 보인다면 그야말로 정치사에 남을 만한 큰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볼만한 상황이다. 때문에 많은 국민들도 올해 들어 국정연설에서 제시된 ‘큰정치’와 청와대 회동으로 일기 시작한 대화합의 조짐에 기대를 가졌던 게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전두환 씨가 1986년 국정 연설에서 ‘큰 정치’를 제시했고, 같은 해 2월 24일 전두환과 여야 3당 대표 회동으로 ‘대화합’을 일궈냈다고 칭송한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힌 수준의 전두환 찬양이 아닐 수 없다. 

 

경향신문 기자가 아니라 민정당 당직자로 의심되는 수준의 기사
이처럼 전두환 씨의 큰 정치 큰 양보를 칭송한 뒤, 야당에 대해 ‘소아병적인 행태’ 운운하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런데도 야당 일각에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한마디로 일축하고 나서는 등 큰 것과 작은 것을 구별 못하는 소아병적인 행태를 보이자 많은 국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개헌이란 큰 명제에 여야의 의견이 접근했다면 그 시기는 큰 문제가 될 수 없음에도 일고치 않겠다는 자세는 개헌에 목적이 있는지, 아니면 대립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지 의심케 만든다”, “또 한쪽이 많은 양보를 했으면 다른 쪽은 적은 양보라도 하는 게 도리다”, “그러나 야당의 자세에는 조그만 변화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영신 씨는 신민당에서 추진한 개헌서명운동에 대해서도 강한 반대의사를 표했다. “개헌이란 대전제가 선 마당에 백지서명이나 다름없는 야당의 장외 개헌서명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 셈이다”, “그럼에도 신민당이 개헌서명운동을 계속 강행하겠다는 것은 상대의 호의를 무시하고 오히려 상대를 도발시켜 분쟁의 와중으로 끌어넣자는 얄팍한 속셈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 것이다. 전두환 쿠데타 세력의 독재 헌법을 폐기하고 민주 헌법으로 개헌하자는 서명운동은 국민들의 정당한 의사표시였다. 이를 추진한 야당을 향해 ‘만년야당의 수구적인 자세’ ‘분쟁을 벌이자는 얄팍한 술수’라고 매도한 것이다. 이쯤 되면 고영신 씨는 경향신문이 아니라 민정당 당직자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YS의 5‧18 특별법 제정에 대해 교묘하게 비아냥거린 칼럼도  
고영신 씨가 고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인 1995년 5‧18 특별법 제정 노력에 대해 교묘하게 비아냥거린 칼럼도 있다. 경향신문 <데스크칼럼/각론도 공감하는 정치를> (1995.12.16.)은 먼저 김영삼 대통령의 과거청산 의지를 환영하는 듯 말문을 열면서 그러나 각론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고영신 씨는 “그럼에도 상당수 국민들은 흔쾌히 지지를 보내는데 주저하는 분위기다. 6‧27 지방선거 때와 같은 민심의 이반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노 씨(고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의 와중에서 느닷없이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던 12‧12와 5‧18 관련자들을 단죄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 결정이 터져 나오고 바로 얼마 전에 성공한 쿠데타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린 검찰이 대통령의 결정이 나오자마자 태도를 돌변, 암행어사 출도식으로 모조리 잡아들여 수사를 하는 그 배경과 방법에 상당수 국민들이 심정적으로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5‧18특별법 제정이 집권당 대표까지도 모르게 깜짝쇼 식으로 결정해야 할만큼 급박한 것이었냐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경향신문_1995_1216_5면.jpg

△경향신문 <데스크칼럼/각론도 공감하는 정치를>(1995.12.16.) 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고영신 씨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노력을 ‘깜짝쇼’로 매도하고, “상당수 국민들이 심정적으로 동의하지 못한다”고 우긴 셈이다. 그러나 1995년 당시 5.18 특별법 제정에 대한 여론조사는 국민의 70%가 찬성할 정도로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단적으로 경향신문이 1995년 10월 6일 경향신문이 창간 49돌을 맞아 대륙연구소와 함께 시행한 국민 여론조사<정치권 세대교체 필요 84% 경향신문, 대륙연 창간 49돌 국민여론조사>(1995.10.6.))에서 5‧18 특별법 제정과 특별검사제 도입에 대해 찬성하는 여론이 70.8%, 반대하는 여론은 27.6%였다.

 

무엇보다 5‧18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서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터져 나오고, 대학생들의 동맹휴학이나 가두시위도 호응을 얻고 있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5‧18 특별법 제정에 대해 “상당수 국민들이 심정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깜짝쇼’”라고 매도하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게다가 칼럼이 나온 날은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5일 전이었다.

 

monitor_20170531_205.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