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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소액 연체채권 정리에 중앙은 또 ‘도덕적 해이’
등록 2017.07.27 18:34
조회 495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6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법정 최고금리 인하와 함께 민간 대부업체 등이 보유한 ‘장기·소액 연체채권 정리’를 예고했습니다. 장기간 추심으로 고통 받는 장기연체자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국민 행복기금, 금융 공공기관, 대부업체 등이 보유한 장기소액연체채권(1000만 원 이하, 10년 이상)을 정리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인데요.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한 국민행복기금의 장기 소액 연체채권 소각 방안을 민간으로 확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빚 탕감 부정적 여론’ 만들면서 ‘빚 탕감 부정적 여론’ 앞세운 중앙
‘장기·소액 연체채권 정리’ 주장에 관성적으로 따라붙는 비판 논리는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래 버티면 언젠가 빚이 없는 것이 된다’는 메시지를 주면 사람들이 ‘갚지 말고 버티자’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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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소액 연체채권 정리에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 주장한 중앙(7/27)

 

6개 일간지 중 가장 먼저, 그리고 유일하게 지면보도를 통해서 이 ‘도덕적 해이’ 프레임을 강조한 것은 중앙일보입니다. 중앙일보는 27일 최종구 금융위원장 간담회 관련 보도 제목을 아예 <유례없는 100% 빚 탕감… ‘나도 버틸까’ 도덕적 해이 우려>(7/27 한애란 기자 https://goo.gl/HEECdN)로 내놓았는데요. 본문에서도 “아예 원금을 100% 없애주는 ‘빚 탕감’ 정책은 유례가 없다”며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를 전면에 부각했습니다.  


중앙일보는 해당 보도에서 은행·저축은행에서 추심회사로, 추심회사에서 대부업체로 매각된 채권을 정부가 사들이는 것은 “대부업체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니”며 “실제로는 1인당 평균 채권액이 1000만원에 크게 못 미칠 가능성이 커서 필요 예산은 이보다 줄어들 전망”이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금융위가 채권 소각의 전제로 ‘상환 능력에 대한 철저한 심사’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과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만 빚을 탕감”할 것이라는 최 위원장의 설명도 모두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해이’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앙일보가 지목한 ‘문제의 원인’은 “빚 탕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입니다. “이러한 빚 탕감 정책이 나오면 ‘빚을 안 갚고 버티면 언젠가는 탕감해주겠지’라는 기대를 부추길 거란 우려가 적지 않”고 “빚을 성실히 갚아 나간 채무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손해를 본다고 여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같은 사실관계와 다른 우려를 부추기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중앙일보 류의 보도라는 측면에서, 이는 기만에 가까운 행태입니다. 

 

 

1000만원도 안 되는 빚, 10년 동안 ‘일부러’ 버틴다고?
은행은 연체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나면 이를 ‘손실’로 분류합니다. 채무 소멸시효는 5년이지만 대게 소송을 통해 소멸시효를 연장하는데요.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은행들이 시효를 연장한 채무자는 11만8천543명이었으나 이 가운데 미상환 채무자는 7만4천813명에 달합니다. 이는 시효를 연장해도 채무자의 약 70%가 빚을 갚지 ‘않았거나’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손실 상태가 장기화되는 채권은 상환 가능성이나 채무 관리 비용을 따져 은행이 실질적으로 추심을 포기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은행이 이런 ‘상환 가능성이 낮은’ 채권을 채권 액면가격의 2~3% 수준으로 대부업체에 팔아넘기기 때문입니다. 채권을 사들인 대부업체는 채무자가 대출금의 일부라도 갚는 순간 채권 소멸시효가 되살아나 빚을 갚아야 하는 의무가 새로 생긴다는 점을 악용해 채권을 ‘계속 부활시켜’ 부당한 빚 독촉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제도권 금융이 악성채권만을 대부업체에 팔아치우는 것도 아닙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2개 저축은행은 2013년 1월부터 2015년 6월까지 모두 1406억 원의 ‘정상 대출채권’을 대부업체에 매각하기도 했습니다. 채권이 별다른 고지 없이 대부업체에 넘어가면서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제대로 대출을 갚아가던 금융소비자들은 과도한 채권 추심을 당하거나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곤욕을 겪어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채무변제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년’이나 유무형의 불이익을 감내하면서까지 채무가 탕감될 것을 그저 기다리기만 할까요? 최 금융위원장의 기자간담회 발언 그대로 “여러 번 매각되는 채권일수록 상환 가능성은 줄어드는데, 추심은 더 가혹”해지기 마련인데 말입니다.

 

즉 장기·소액 연체채권을 정리해준다는 것은 채권자가 회수 불능 채권에 대해 추심, 시효연장을 위한 법조치등으로 비용을 투입하는 일을 막고, 사회적 취약계층일 가능성이 지극히 높은 채무자의 정상적인 경제적 생산 활동을 독려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소액 연체채권 정리 예고에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는 것은 침소봉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지요. 애초 장기·소액 연체채권은 채권자인 금융기관이 채무자의 상환능력이 부족함을 알면서도 대출을 남발했기에 발생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무책임한 대출을 발생시킨 뒤 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부활시키는 것이야 말로 채권자의 명백한 도덕적 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달 전에는 ‘장기연체자, 빚 탕감 위해 추심 감수하지 않을 것’ 주장 전하던 기자
이 같은 사실은 위의 ‘문제의 기사’를 작성한 중앙일보 한애란 기자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난 5월 한 기자는 <취재일기/정부의 빚 탕감이 빛 보려면…>(5/22 한애란 기자 https://goo.gl/RebNQe)을 통해 지난해 “금융위원회가 15년 이상 장기연체자 10만 명에 대해 행복기금 원금 감면율을 최대 60%에서 90%로 높인다고 발표”했음에도 “빚의 굴레에서 탈출할 기회이건만 정작 장기연체자들”이 신청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한 바 있는데요. 이 취재일기에는 장기연체자들에 대한 금융위 관계자의 “휴대전화로 모르는 사람이 연락해 오면 ‘나를 어떻게 찾아냈지’라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사람들입니다. 우편물은 어차피 빚 독촉장일 테니까 보지도 않고요.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추심만 없이 살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어둠의 지대에 들어가있는 사람들이죠”이라는 발언이 소개되어 있기도 합니다. 


한 기자 역시 “재산이나 소득을 감추고 빚을 탕감 받는 ‘도덕적 해이’가 있지 않을까. ‘버티면 빚을 탕감해주겠지’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게 아닌가. 이런 비판에 100% 그럴 리 없다고 답하긴 어렵다”면서도 이 뒤에 곧바로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의 “몇백만원의 빚을 탕감 받으려고 10년 동안 금융거래 못하고 추심에 시달리는 걸 감수한다? 그건 장기연체자의 삶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는 대답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두 달이 지난 현 시점, “지원이 필요한 누군가가 잘 몰라서, 이미 자포자기 상태라서 기회를 또 놓치면 어쩌나” 걱정하고 “밖으로 나가서 정보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금융위 관계자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기자가 1000만 원 이하, 10년 이상 장기소액연체채권 정리 계획에 대해서는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고 있습니다. 대체 중앙일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7월 27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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