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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예술가 편향 지원했다’는 조선, 근거는 ‘없음’
등록 2017.07.28 16:46
조회 412

27일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게 지시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같은 날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계가 참여하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출범이 오는 31일임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일간지는 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각각 ‘중형이다’(조선일보)부터 ‘형량을 수긍하기 어렵다’(경향신문)는 등의 다양한 평가를 내리는가 하면, 이번 판결이 박근혜 재판에 끼칠 영향 분석에 나서며 분주한 모습을 보였는데요. 이 와중 조선일보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리스트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특정 성향의 예술인들에 대한 편향 지원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노무현 때는 리스트가 적발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조선
문제의 주장이 등장한 것은 사설입니다. <사설/문화 예술 지원에 권력 개입 여기서 끝나야>(7/28 https://goo.gl/KyczHk) 말미 조선일보는 “예술 지원에 대한 정치 개입은 늘 논란이 돼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좌파 예술인과 단체에 대한 지원이 급증했다. 그때는 리스트가 적발되지 않았고 특정 성향에 더 주라고 간섭했다면, 이번은 리스트가 드러났고 특정 성향 예술인을 배제하라고 했다는 게 다르다. 본질은 비슷하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예술에 대한 정치권력 개입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단순히 ‘정황상 리스트가 있을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 ‘발견은 못했지만 있는 건 확실하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정치 성향’을 이유로 1만 명에 달하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지원을 배제했다는 실질적 증거 및 행위자가 적발된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태와, 그저 ‘진보 문화예술계가 더 많이 지원을 받은 것을 보아 정치개입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만이 난무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의혹’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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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가 적발만 되지 않았을 뿐,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특정 성향에 더 주려고 했다 주장한 조선(7/28)

 


과거에도 꾸준히 같은 주장 반복하며 물타기 시도
사실 조선일보는 지난해부터 이미 이런 물타기성 주장을 사설과 칼럼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해 온 바 있습니다. 주로 “특정 세력에 더 주라고 간섭했다” “(문화예술계) 코드인사가 있었다”는 것을 ‘화이트리스트’라 표현하며 ‘블랙리스트’와 다를 것 없다고 말하는 식이지요. 물론 이런 사설과 칼럼에서도 마땅한 증거는 없습니다.

 

“예술 지원에 대한 정치 개입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있었다. 그때는 특정 세력에 더 주라고 간섭했다면 현 정부에선 특정 세력을 빼라고 했다는 게 다르다”

<태평로/이른바 ‘문화계 리스트’ 문제>(2016/11/17 김태익 논설위원 https://goo.gl/9vd5Gh)

“문화예술 지원에 대한 정치 개입은 이 정권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친(親)정권 예술인들을 집중 지원했다. 회원 수가 예총의 10분의 1에 불과한 민예총 지원 예산이 예총보다 많았던 적도 있다. 지금도 야당이 단체장을 맡은 지자체에선 각종 사업들이 친야 성향 문화예술인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사설/특검 블랙리스트 확인, 최고 책임자가 누군가>(1/8 https://goo.gl/3Kr9Fo)

“과거 정부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블랙리스트라는 현 정부의 불법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블랙리스트’ 사태를 마치 처음 보는 듯 핏대 올리는 야권 인사들에게선 기이한 위선(僞善)이 느껴진다. 10여년 전 자신들이 문화계에 벌여 놓았던 ‘코드 인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문화예술의 자유를 수호하는 전사(戰士)라도 된 것처럼 행세하고 있기 때문”

“문화계에 밝은 인사가 많았던 노무현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교묘한 방식으로 이뤄진 반면, 박근혜 정부에선 훨씬 서툴고 거친 방식으로 하다가 곳곳에서 ‘사고’를 낸 셈이지만, 정치색에 따른 문화계 편 가르기 작업이 행해졌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데스크에서/블랙리스트보다 못한 위선>(1/26 유석재 문화부 차장 https://goo.gl/FuJaKP)

“노무현 정부 때는 화이트리스트에 오른 좌파 성향 예술가들을 무조건 지원하도록 했다고 들었다”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블랙리스트의 슬픈 기억>(1/31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https://goo.gl/nqNSBT)

△ 과거정부에도 ‘화이트리스트’가 있었으며 이것이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주장한 조선일보 보도들 ⓒ민주언론시민연합

 

 

‘정권은 다 비슷했다’ 물타기 하는 건 동아‧중앙도 마찬가지
이런 물타기 주장은 조선일보에만 등장하는 건 아닙니다. 28일 중앙일보는 <사설/블랙리스트 불법성 확인한 김기춘의 유죄>(7/28 https://goo.gl/Ds9S7D)에서 “과거의 예를 보면 진보든 보수든 정권마다 입맛에 따라 예술·사회단체에 대한 지원을 늘리기도, 줄이기도 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부는 보조금 지급의 명확한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할 숙제를 떠안게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개별 예술가에게서 표현의 자유 및 예술의 자유를 빼앗은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문제를 ‘단체에 대한 지원을 늘리거나 줄이는’ 수준의 문제로 치부하고, 이러한 일이 언제나 있어왔던 것이라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올 초에도 중앙일보는 <사설/실체 확인된 블랙리스트, 수사로 진실 밝혀내야>(1/10 https://goo.gl/6hg9PW)에서 박근혜 블랙리스트를 언급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엔 진보 성향 예술인들에게 지원이 집중돼 논란이 끊이지 않지 않았는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념을 기준으로 예술인들을 편 가르는 구태는 지양할 때”라는 주장을 덧붙였습니다.

 

중앙일보 <‘뒷광대’ 노릇 할 각오 없으면 문화예술 공직 때려치워라>(1/20 홍승일 논설위원 https://goo.gl/STtmne)에서도 “김대중·노무현 시절에도 민예총 쪽의 진보 편향이 있었다. 보수 정권 들어서는 시계추처럼 그 반대의 움직임이 반복되고 있다. 요즘 블랙리스트도 그 연장선상”이라는 이종덕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장의 발언을 소개했지요. 


동아일보의 경우 28일 사설만을 본다면 조선일보나 중앙일보보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요. <사설/문명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단어 ‘블랙리스트’>(7/28 https://goo.gl/y84JhZ) 말미에 “이참에 정부의 문화예술계 지원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제도적 보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진보든 보수든, 좌파든 우파든 정권에 관계없이 이 땅에서 문화예술의 숲이 울창해지려면 어떤 명분으로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옥죄거나 침해하는 일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정도입니다. 


다만 동아일보는 지난해 이미 <사설/유신독재 연상시키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2016/12/28 https://goo.gl/wh5N7V)에서 “노무현 정부는 좌파 문화예술인을 집중 지원하고 보수 성향 예술인들을 차별해 문화계 토양을 황폐화시켰다. 좌든 우든 이념적 잣대로 문화예술을 흔들고 돈으로 문화인을 통제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7월 28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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