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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 채용비리 25건 vs 교통공사 의혹 134건
등록 2018.10.26 13:33
조회 1228

보수언론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막기 위한 공세가 도를 넘어서면서 조선일보와 TV조선에서는 오보까지 나왔습니다. 일부 공기업에서 채용 비리가 실제로 있었다면 당연히 조사해야 하고 처벌해야 합니다. 실제 민주노총은 이미 지난해부터 “정규직·비정규직 가리지 말고 전수조사해 채용비리를 밝히자”고 요구한 바 있습니다. 사측과 긴장 관계인 노조보다는 사측 편인 고위급 간부들 사이에서 채용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그런 신고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사측과 노조를 가리지 않고 만약 부적절한 갑질을 하거나 고용세습을 하고 있으면 그것은 바로잡아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이른바 보수언론의 목표는 ‘채용비리 근절’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박약한 근거로 ‘민주노총이 배후’라는 음모론을 펼치는 과정에서 오보마저 발생했고 ‘채용 비리’의 원인을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아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죠.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숨겨진 목적이 있다는 사실은 지금 보수언론이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의혹’에만 강한 집착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얼마전 국민적 공분을 샀던 강원랜드․우리은행 채용비리 의혹이 제기됐을 때 주요 일간지들의 보도를 살펴보았습니다.

 

‘거물급 인사’들 연루된 ‘강원랜드‧우리은행 채용비리’

강원랜드와 우리은행의 채용비리는 국민적 공분을 산 대형 사건이었습니다. 현재 보수언론이 지목하고 있는 ‘노조의 친인척’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물급들이 비리의 주인공으로 지목됐기 때문이죠. 지난해 9월 11일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이 공개한 강원랜드 내부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강원랜드는 2012년 하반기부터 2013년 상반기기까지 선발한 직원 518명 가운데 95%나 되는 493명을 별도 관리대상에서 뽑았습니다. 이 ‘특혜 대상’에 자유한국당 염동열 의원이 청탁한 80여 명이 포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같은 당 권성동 의원은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안미현 검사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파문은 컸습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10월 17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우리은행 신입직원 채용과정에서 국정원, 금융감독원 등 사정기관과 은행 VIP 자녀 등 20명을 ‘특혜 채용’ 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심 의원이 공개한 ‘추천현황’ 문건을 보면 은행 내부에선 금융감독원, 국정원, 우리은행 전현직 임직원 등의 친인척과 자녀를 명시한 명단을 만들었고, 이들은 모두 합격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해 하반기 우리은행 공개 채용엔 1만 7000여명이 지원했고 이 중 200여 명이 합격했습니다. 합격자의 10% 이상이 특혜 입사한 것입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25건 vs 교통공사 의혹 134건

그런데 이렇게 심각한 의혹들이 제기된 당시의 보도량을 현재의 서울교통공사 의혹과 비교해보면 가히 참담한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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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랜드, 우리은행,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관련 의혹이 제기된 날로부터 9일간의 보도량 비교(지면기준) ⓒ민주언론시민연합

 

이훈 의원이 강원랜드 채용비리 내부감사 보고서를 공개한 2017년 9월 11일부터 19일까지 9일간 6개 주요 일간지의 관련 보도량은 조선일보 2건, 서울신문 2건,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각각 1건에 그쳤습니다. 중앙일보는 단 1건의 지면기사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겨레만 19건을 보도하며 집중적으로 조명했습니다.

심상정 의원이 우리은행 채용비리를 폭로했던 2017년 10월 17일부터 25일까지 9일간 서울신문과 경향신문은 4건, 조선일보는 3건, 한겨레와 중앙일보는 2건, 동아일보는 1건에 그쳤습니다. 9일이라는 기간을 감안하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수치입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의혹’에서 보도량은 폭증합니다. 중앙일보가 고용세습 의혹을 보도한 16일부터 24일까지 9일간 중앙일보는 35건, 조선일보는 29건, 동아일보는 27건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타사의 경우 서울신문 19건, 경향신문 14건, 한겨레 10건으로 조중동의 절반 수준에 해당하지만 이들 역시 강원랜드‧우리은행에 비하면 상당한 양을 할애한 겁니다. 6개사 총 보도량을 따져보면, 강원랜드 채용비리는 25건, 우리은행 채용비리는 16건,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의혹은 134건으로 무려 6배 넘게 차이납니다. 같은 ‘채용비리’ 사건인데도 온도 차가 확연합니다.

 

목적은 ‘노조혐오’ ‘정규직 전환 정책’ 저지?

신문들은 대체 왜 이런 차이를 보인 걸까요? 특히 조중동은 서울교통공사 의혹을 타사에 비해 2배 이상 많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오보를 무릅쓰고 민주노총을 배후로 몰아세운 것 역시 이들 조중동입니다. 어떤 의도가 있는 걸까요? 그 목적은 역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막는 데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조선일보 18일 사설 <사설/서울교통공사 ‘친인척잔치’ 정부․시․노조의 합작비리>(10/18 https://bitly.kr/zsdH)에서 잘 드러납니다. 조선일보는 “현 정부는 출범 이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같은 친노조 일변도 정책을 펴왔다”며 “서울시는 작년 7월 ‘11개 투자출연기관의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해 이번 서울교통공사의 고용 세습을 촉발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정부와 지자체와 노조가 편을 짜서 국민 지갑을 털고 기업의 등골을 빼먹는 상황”이라고 적나라하게 비방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민주노총과 정부, 지자체(서울시)를 싸잡아 ‘국민의 적’으로 만들고 사태의 원인을 ‘정규직 전환’으로 삼은 겁니다. 비리가 있었다고 해도 관련자를 처벌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면 될 일이지 ‘정규직 전환 정책’을 문제 삼을 수는 없습니다. 특혜를 주고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사람’이지 ‘정규적 전환 정책’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 대목에서 조선일보가 분노하는 의도가 드러납니다. 채용비리․공정사회를 위한 분노가 아니라, 노조 혐오를 부추기고 현 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조 혐오’의 화신 조선일보

조선일보 <사설/정부발 일자리 ‘도덕적 해이’ 백태, 난장판 수준>(10/20 https://bitly.kr/v6OP)은 더 노골적입니다. “이 정부 들어 공공 부문에서 8만5000명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 속에 얼마나 많은 난장판과 엉터리가 있을지 짐작이 간다”는 겁니다. 오보로 얼룩진 자사 보도를 모두 사실로 가정한다 해도 고작 10%도 미치지 못하는 ‘친인척’이 있을 뿐인데,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에는 많은 난장판이 있다’고 비약한 것입니다. 또 “박원순 시장의 정규직 전환 지시로 서울교통공사 식당․목욕탕 직원, 이용사까지 정규직이 됐다”며 “이들이 공사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정규직이 되나. 이렇게 도덕적 해이의 문이 활짝 열리니 직원들 친인척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왔다”고 썼습니다.

여기서는 조선일보가 노동자들을 얼마나 차별적으로 보고 있는지, 그 전근대적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식당 직원은 정규직이 될 수 없다’는 관점을 담고 있기 때문이죠. 조선일보는 이어 “서울교통공사 노조원이 사람 위에 올라타고 목을 졸라가며 정규직 전환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지금 상당수 공공기관은 민노총에 의해 장악된 민노총 놀이터가 되고 있다고 한다”며 ‘폭력 노조 프레임’까지 빼놓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이는 이미 악의적 왜곡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자사 보도를 또 이용한 겁니다.

조선일보는 17일 1면에 <‘고용세습’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경영진 목까지 졸랐다>(10/17 https://bitly.kr/bgFp)라는 자극적 제목의 보도를 내고 “민노총 산하 서울교통공사 노조 간부가 경영진에게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폭력까지 가했다”며 영상까지 게재했는데요. 이에 서울교통공사 노조는 “정규직 전환과는 관련 없는 임금 및 단체협상 당시 발생한 사건을 악의적으로 짜깁기한 보도”라 반박했습니다. 임단협에서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측 대표위원이 노조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협약을 체결하려 하자 노측 교섭위원이 항의했는데 이때 사측 노무관리자가 노측 교섭위원을 완력으로 넘어뜨리면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조선일보는 이런 맥락을 확인하지도 않고 관련도 없는 임단협을 ‘정규적 전환 과정’으로 바꿔치기 한 겁니다. 심지어 이를 ‘공공기관이 민노총의 놀이터가 됐다’는 악의적 프레임의 근거로 ‘재활용’했습니다.

 

권력자의 채용 비리는 외면, ‘식당 직원 정규직화’는 반대?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의혹을 받는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은 전동차 보수원, 승강장 안전문 정비 등 안전업무직과 식당노동자·지하철보안관·이용사 등입니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불안정한 고용, 부당한 차별대우에 노출된 직종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업무들이죠. 그러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직종으로서 마땅히 정당한 대우와 안정적 고용환경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그래서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이들의 고용 안정이 보장되지 않으면 지하철을 타는 시민들의 안전 역시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오보를 무릅쓴 채 민주노총을 ‘음모의 배후’로 매도하면서 ‘왜 식당․목욕탕 직원까지 정규직화 했냐’며 따지고 있습니다. 지하철 직원들의 식사와 위생을 책임지는 직원들은 ‘정규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일까요?

반면 조선일보를 포함한 대다수 언론이 외면한 강원랜드와 우리은행 채용비리는 지금 저들이 제기하는 ‘노조의 고용세습 의혹’과는 무게감 자체가 다릅니다. 강원랜드‧우리은행에 채용을 청탁한 사람들은 국정원 간부, 제1금융권 전현직 간부, 금융감독원 직원, 국회의원 등 기득권층이었습니다. 권력자의 채용비리는 외면하고, ‘식당 직원의 정규직화’에는 갖은 비판을 퍼붓는 것이 우리 언론의 현주소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9월 11일~2017년 9월 19일, 2017년 10월 17일~2017년 10월 25일, 2018년 10월 16일~2018년 10월 2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지면보도에 한함. 민언련은 다양한 매체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분간 신문모니터 대상에서 한국일보를 제외하고, 서울신문으로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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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