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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폭력 설문’두고 혐오 논쟁만 키웠다는 동아일보
등록 2018.02.04 18:55
조회 777

서울시에서 서울 거주 여성을 대상으로 데이트폭력 실태조사에 나섰습니다. 서울시는 서울 거주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1,770명이 데이트폭력 경험이 있고, 피해자의 46.4%는 가해자와 결혼했으며 17.4%는 데이트폭력이 가정폭력으로 이어졌답니다. 데이트폭력의 유형별 피해 실태와 방법, 조치사항 등에 대해 다양한 조사가 이루어졌는데요. 동아일보는 데이트폭력 설문 결과를 보도하면서 ‘남녀혐오 논쟁만 키웠다’고 보도했습니다.

 

‘혐오 논쟁 심각하다’면서 오히려 혐오 발언 인용

동아일보는 <시청에서/남녀 혐오논쟁만 키운 데이트폭력 설문>(1/31 김단비 기자 https://bit.ly/2GxgNVK)에서 서울시의 조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서울시의 조사 결과를 두고 “여성인 기자도 선뜻 수긍하기 어려웠습니다”라며 “이 발표를 보도한 인터넷 기사에는 조사의 신뢰성을 따져 묻는 댓글이 수천 건 올라왔습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는 “마음에 안 들면 범죄자로 만드는 ‘김치년” “여성만 욕먹게 하는 설문조사”와 같은 댓글이 달렸다면서 “급기야 ‘여혐(여성혐오)’대 ‘남혐(남성혐오)’논쟁이 불붙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글이라며 “선물 받고도 ‘당했다’고 떠드는 페미니즘 김치년은 맞아야 정신 차림” “반성 없는 ‘한남충(한국 남자 벌레)’”과 같은 덧글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가 인터넷 여론이라면서 오히려 지면에 혐오 표현을 상세하게 소개한 셈입니다. 


게다가 동아일보는 혐오 댓글들을 제대로 된 비판 없이 소비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여혐 대 남혐 논쟁’이라는 시각으로 댓글들을 파악했는데요. 이는 한국 사회에서 여혐과 남혐이 동등한 위치에서 작용한다는 인식입니다. 

 

혐오에 대한 몰이해 심각

동아일보의 이 인식은 혐오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줍니다. 혐오 문제는 단순한 욕설과 비난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적인 표현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중앙일보 <“여혐과 남혐은 다르다”…인권위 혁신위원의 경고>(1/30 여성국 기자 https://bit.ly/2E7pl7v)에서 혐오표현 연구가 홍성수 교수는 ‘남혐’은 성립하기 어렵다며 “혐오의 문제는 욕, 비난이 소수자에게 해악을 끼치는지 아닌지다. 그 집단 겪는 차별, 억압과 연결된다. 오랜 기간 차별 당했고 폭력에 노출된 여성에 대한 혐오와 남성에 대한 모욕은 그 효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 사람들이 흔하게 말하는 ‘남혐’의 실질적인 의미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미워한다는 것인데, 소위 ‘일간베스트’로 대표되는 보수세력과 기존 보수언론들이 이것을 바로 ‘남협’이라고 이름 붙였고, ‘여혐’과 ‘남혐’을 마치 대칭적인 것처럼 둔갑시킨 것이라고 봅니다. 


동아일보가 현재의 상황을 ‘여혐 대 남혐 문제’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라는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동아일보의 접근 방식은 오히려 혐오를 더 키울 수 있습니다.

 

서울시 여론조사를 폄훼한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이어 “도대체 어떻게 조사한 건지 알아봤습니다”라며 실태조사의 설문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업체에서 2,000명의 여성에게 온라인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는데요. 동아일보는 “그런데 설문에는 데이트 폭력을 당했는지 묻는 항목이 없습니다. 대신 ‘옷차림을 간섭하거나 제한했다’ ‘누구와 함께 있는지 항상 확인했다’ 등을 묻습니다. 이 문항에 ‘전혀 없다’로 답하지 않는 한 응답자는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여성으로 집계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서울시의 “데이트 폭력의 범주를 ‘행동 통제’로까지 넓게 잡았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자는 것”이라는 답변을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는 “데이트 폭력은 분명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얻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특정한 의도에 유리하도록 설문을 구성했다는 의심을 받는다면 결과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라며 보도를 마무리했습니다. 

 

‘행동 통제’는 데이트 폭력이 아니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실태조사는 동아일보 지적처럼 ‘특정한 의도에 유리하도록’ 구성한 결과였을까요? 일단 서울시의 실태조사 설문지를 입수한 결과,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데이트 폭력에 대한 귀하의 생각과 가장 가까운 번호에 표시해 주십시오”라고 물은 뒤, “①일정을 통제하고 옷차림을 제한하는 것도 데이트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②연인과 통화가 될 때까지 계속 전화하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③신체적 폭력만이 데이트 폭력이다, ④연인의 말에 위협과 모욕을 느낀다면 데이트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⑤다른 사람을 만나면 죽이겠다는 말은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다, ⑥호의로 빌려준 돈이라도 갚지 않는다면 경제적 폭력이 될 수 있다, ⑦상대방의 뺨을 때리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설명할 수 없다, ⑧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지 않을 정도라면 폭력이라고 할 수 없다, ⑨흉기로 위협만 하더라도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⑩나의 기분과 상관없는 성적 행위는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⑪ 강제로 성관계를 하려는 의도만으로도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⑫원하지 않은 섹스동영상이나 나체사진을 찍는 것도 데이트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라는 12개의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①그렇지 않다, ②별로 그렇지 않다, ③대체로 그렇다, ④매우 그렇다”라고 4개의 답변을 듣는 식입니다. 


실제 위의 질문과 같이 데이트폭력은 물리적인 폭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데이트폭력의 정의는 교제 과정에서 둘 중 한명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폭력 또는 실행입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조재연 국장도 “결혼하지 않은 연인 관계, 서로 호감이 있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적·정서적·경제적·성적·신체적 폭력”이라며 “데이트 폭력에는 욕설, 구타는 물론 여성의 일상생활에 간섭하고 집착하는 일, 성관계 사진 유포를 빌미로 협박하는 행위, 피해자 가족에게 동거 사실을 알리겠다며 이별을 거절하는 일 등 다양한 행위가 포함돼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형사정책연구소의 <여성 대상 폭력에 대한 연구–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중심으로>에서도 “대부분의 데이트폭력에 대한 국내 연구는 주로 위와 같은 신체적, 정서적, 성적 폭력 및 행동통제 등을 다루었다”라며 “행동통제에 대해 세계보건기구는 상대방을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고립되게 하거나 행동을 감시하거나 교육, 직업, 의료 및 재정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행위를 포함하고 있으나 이 정의는 부부간에만 적용되는 유형도 포함되어 있어, 본 연구에서는 핸드폰, 이메일, 개인블로거나 홈페이지 등을 점검하는 행위, 옷차림을 제한하는 행위, 써클이나 모임 활동을 못하게 하는 행위, 일정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행위, 통화가 될 때까지 계속 전화하는 행위, 다른 사람과 통화를 못하게 하는 행위, 친구들을 못 만나게 하는 행위, 누구와 함께 있는지 항상 확인하는 행위, 다른 이성을 만나는지 의심하는 행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방이 싫어해도 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상대방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 두게 하는 행위 등을 측정하였다”라고 밝혔습니다. ‘간섭’, ‘집착’ 등 역시 ‘상호간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해를 끼칠 의도를 갖고 행하는 행위’가 된다면 데이트폭력의 하나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트폭력에 대한 이해 필요

서울시는 데이트폭력의 유형을 △행동통제 △언어․정서․경제적 폭력 △신체적 폭력 △성적 폭력으로 구분했습니다. 게다가 이번 조사가 행동통제만을 측정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조사 결과 응답자 2,000명 가운데 행동통제 경험이 있는 경우가 1,632명(81.6%), 언어․정서․경제적 폭력 경험이 있는 경우가 1,224명(61.2%), 신체적 폭력 경험이 있는 경우가 783명(39.1%), 성적 폭력 경험이 있는 경우가 1,095명(54.8%) 있다고 밝혀졌습니다. 형법상 문제가 될 수 있는 신체적․성적 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절반에 가깝고, 행동통제를 제외하더라도 61%가 폭력 경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이번 응답은 단순히 피해 상황을 파악했을 뿐 아니라 교제 이후 폭력이 시작된 시기를 분석하고, 피해자가 받은 감정을 집계했습니다. 서울시가 데이트폭력 피해자 지원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통계를 활용하기 위해서인데요. 이 통계를 동아일보처럼 단순히 ‘행동 통제’ 조항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매도할 순 없습니다.

 

데이트폭력 실태 구분하는 조사 보도 외면한 조선․중앙

같은 날 서울시의 설문조사를 보도한 곳은 동아일보를 제외하고는 6개 일간지 가운데 이번 조사에 대한 보도는 한겨레 <데이트폭력 피해자 절반 그 남자와 결혼까지 했다>(1/31 남은주 기자 https://bit.ly/2nwQtCb), 경향신문 <처벌 약한 데이트폭력… 여성 10명 중 9명이 시달렸다>(1/31 이진주 기자 https://bit.ly/2DU2ed7), 한국일보 <서울 여성 10명 중 9명 “데이트 폭력 경험”>(1/31 박주희 기자 https://bit.ly/2DSDkKH)뿐이었습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지면에 관련 보도를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시의 이번 실태조사는 ‘데이트폭력’을 구체화하고, 피해자가 어떤 감정을 느꼈으며 해결하기 위해 어디에 연락했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실태조사였습니다. 그렇기에 데이트폭력이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지면에서 조사 결과를 상세히 다뤄야 합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조사를 ‘혐오 논쟁 키웠다’며 이상한 논리로 비꼬는 보도는 지면에 올렸으면서, 정작 조사 결과를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1월 31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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