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특정 장애와 범죄 연관성 함부로 연결하지 말아야
등록 2017.06.17 21:18
조회 773

초등학생을 유괴해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10대 피의자가, 정신감정결과 아스퍼거증후군판정을 받었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졌습니다. 피의자의 변호인이 “아스퍼거증후군 등 정신병이 발현돼 충동적이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기 때문인데요.  


아스퍼거증후군은 사회적 상호작용 등에 어려움을 겪는 신경학적 장애군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폭력이나 범죄 성향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학술적 근거가 없습니다. 


이렇게 특정질환과 범죄행위간의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면 기본적으로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섣불리 두 사안을 엮어버릴 경우 '해당 질환을 지닌 사람=잠재적 범죄자'라는 부정적 인식을 남겨 인권침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의자 변호인 주장 바로 뒤에 부정적 질환 설명 덧붙인 한국  
이번 사건을 지면에 실으면서 아스퍼거증후군을 언급한 매체는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입니다.

 

먼저 조선일보는 <사건 블랙박스/내가 죽였지만 범인은 내가 아니다?>(6/14 조백건 기자 https://goo.gl/FXYspt)에서 “검찰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김양의 정신 감정을 의뢰했다. 그 결과 김양은 자폐성 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증후군을’을 앓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인지 능력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고 보도했는데요. 그나마 범죄와의 연관성을 부각하지는 않은 셈입니다. 

 

반면 한국일보의 보도는 상당히 우려되는 수준인데요. <초등생 살해 10대 피의자, 범행 전 “사냥 나간다”>(6/15 이환직 기자 https://goo.gl/PJ5fPE)에서 한국일보는 변호인의 “A양은 아스퍼거증후군 등 정신병이 발현돼 충동적이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를 유인하지도 않았다”는 발언을 그대로 전했을 뿐 아니라, 바로 그 뒤에 “아스퍼거 증후군은 인지능력과 지능은 부족하지 않으나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교류 능력이 떨어져 특정분야에만 관심을 갖고 집착하는 정신질환이다”라는 설명을 덧붙여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기사 구성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적입니다. 우선 또한 특정 질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변호인의 발언을, 언론이 별다른 지적 없이 그대로 받아 전달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스퍼거증후군에 대한 설명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를 피의자 변호인의 발언 뒤에 바로 붙여 놓을 경우, 범죄와 연관이 없다는 별도의 해설이 부연되지 않으면 해당 질환이 실제 ‘범죄의 원인’이라도 되는 양 읽힐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체적 판단 없이 선행 기사 그대로 ‘참고’한 영향
이렇게 문제적으로 기사가 구성된 것은 한국일보 기자가 경향신문이 포털에만 송고한 <8살 초등생 유괴·살해 10대 소녀 “범행 전 사냥 나간다”>(6/15 박준철 기자 https://goo.gl/W9pFNY) 보도를 ‘참고’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경향신문이 15일 오후 5시에 송고한 이 기사는 한국일보가 15일 저녁 10시 28분에 송고한 기사와 몇몇 단어만 다를 뿐 거의 판박이거든요. 

 

연합뉴스

 

<8살 초등생 살해 10대 소녀 ‘사냥 나간다’…문자메시지 공개(종합)>

송고시간 2017/06/15 14:11

피의자 변호인이 “아스퍼거증후군 등 정신병이 발현돼 충동적이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며 “검찰 측이 주장하는 계획범죄가 아니었고 피해자를 유인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

아스퍼거증후군은 자폐성 장애의 하나로 인지 능력과 지능은 비장애인과 비슷하나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고 특정 분야에 집착하는 질환이다.

경향신문

<8살 초등생 유괴·살해 10대 소녀 “범행 전 사냥 나간다”>

송고시간 2017/06/15 17:49:00

변호인은 그러나 ‘ㄱ양은 아스퍼거증후군 등 정신병으로 충동적이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렀을 뿐 계획범죄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아스퍼거증후군은 자폐성 장애의 하나로 인지 능력과 지능은 일반인과 비슷하나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고 특정 분야에 집착하는 정신과 질환이다.

한국일보

<초등생 살해 10대 피의자, 범행 전 “사냥 나간다”>

송고시간 2017/06/15 22:28

변호인은 그러나 “A양은 아스퍼거증후군 등 정신병이 발현돼 충동적이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를 유인하지도 않았다”면서 검찰 측이 주장하는 계획범죄가 아님을 강조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인지능력과 지능은 부족하지 않으나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교류 능력이 떨어져 특정분야에만 관심을 갖고 집착하는 정신질환이다.

△연합뉴스와 경향신문, 한국일보의 관련보도 유사 구절 비교(송고시간 순) Ⓒ민주언론시민연합

 

그렇다면 경향신문은 자체적으로 이런 기사를 작성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경향신문의 해당 보도는 통신사인 연합뉴스가 15일 오후 2시 송고한 <8살 초등생 살해 10대 소녀 ‘사냥 나간다’…문자메시지 공개(종합)>(6/15 https://goo.gl/kx9EJe) 보도를 상당부분 ‘참고’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구성은 조금 다른데요. 연합뉴스는 “아스퍼거증후군 등 정신병이 발현돼 충동적이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변호인 측 주장을 소개하고 바로 그 뒤에 아스퍼거증후군의 ‘정의’를 붙여놓은 한국일보나 경향신문과는 달리, 변호인 측 주장을 전달하고 이후 재판과정 등을 담은 13개 가량의 문장을 더 붙여놓은 뒤에서야 “검찰은 A양의 정신감정을 서울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의뢰한 결과 ‘아스퍼거증후군일 가능성이 크다’는 잠정 의견을 받았다. 아스퍼거증후군은 자폐성 장애의 하나로 인지 능력과 지능은 비장애인과 비슷하나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고 특정 분야에 집착하는 질환이다”라는 설명을 추가했습니다. 이 또한 전체 맥락상 해당 장애와 범죄가 연관이 있을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서술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한국일보나 경향신문 보도보다는 덜 직접적이었던 셈입니다.


2011년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은 언론이 “장애인 장애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의 정신질환 이력을, 명확한 상관관계도 없이 부각해 보도하는 것은 결국 정신질환에 대한 왜곡과 편견을 키우는 행태일 뿐입니다.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이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언론이 보다 더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모니터 기간과 대상: 2017년 6월 15~16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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