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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보도로 ‘철도 민영화’ 수호자 자처한 중앙
등록 2017.07.04 16:01
조회 597

중앙일보가 최근 여러모로 수상쩍은 단독 보도를 내놓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7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한국노총과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을 통합한다’는 내용을 담은 정책협약을 이미 체결한 바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는 관련 보도를 1면 <문 대통령, 대선 때 코레일+철도공단 노동계에 통합 약속>(7/3 함종선 기자 https://goo.gl/qVGcso)과 6면 머리기사 <노무현의 철도개혁 13년…문재인 정부서 뒤집나>(7/3 함종선 기자 https://goo.gl/p1aiXJ)에 배치해 주요하게 다뤘는데요. 보도는 “이처럼 중요한 정책 현안을 공론화 과정 없이 유력 대선후보가 노조 측에 선뜻 약속한 것을 두고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철도 선진국들은 분리 운영과 경쟁체제를 통해 민간투자 활성화와 경영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나열하며, 문재인 당시 후보가 한국노총과 체결한 협약이 심각한 ‘하자’가 있는 협약이라도 되는 양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9일에도 <정부, 코레일·SR 통합 추진…철도 경쟁 반년 만에 재검토>(6/29 함종선 기자)에서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수서고속철도(SRT) 운영사인 SR을 코레일에 통합하는 작업에 곧 착수”할 것임을 전했는데요. 이때도 “6개월의 실적만으로 경쟁 효과를 판단하는 건 무리인 데다 자칫 경쟁을 통한 고객서비스 향상과 철도산업 발전이라는 정책 취지가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상당수 전문가들”의 주장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코레일+SR+철도공단 통합 논의의 본질은 ‘철도 공공성 회복’
중앙일보가 쏟아내는 일련의 단독 보도들을 꿰뚫는 키워드는 ‘철도 민영화 요구’입니다. 


<정부, 코레일·SR 통합 추진…철도 경쟁 반년 만에 재검토>(6/29)와 <문 대통령, 대선 때 코레일+철도공단 노동계에 통합 약속>(7/3)에는 정부가 추진하려는 두 개의 사업에 대한 우려가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데요. 하나는 ‘코레일과 철도공단의 통합’이고 다른 하나는 ‘수서고속철도(SR)와 코레일의 통합’입니다. 

 

우선 철도 운영을 맡고 있는 코레일과 관련 시설을 관리하는 철도시설공단의 분리는 IMF 사태 이후 ‘효율성을 키우기 위한 경쟁 체제 도입’이라는 명분하에 추진되었습니다. 그러나 ‘상하 분리’로 불리는 이 체제는 국토부가 코레일의 사업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서, 결과적으로는 민간사업자가 ‘철도 운영 등과 관련한 사업’에 참여할 활로를 열어주었을 뿐입니다. 

 

수서고속철도(SRT) 문제도 이와 유사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데요. 박근혜 정부는 ‘경쟁체제 도입을 통해 경영을 효율화하고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키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코레일의 알짜 사업인 고속철도 노선의 일부를 ‘쪼개’ SR에 운영을 맡겼습니다. 기본적으로 코레일은 고속철도 부문은 흑자지만, 일반철도에는 적자노선이 많습니다. 때문에 두 사업을 동시에 운영해야 그나마 적자를 보전할 수익 기회를 얻고, 적자노선을 운영하는 교차보조가 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 정부가 이 기회를 빼앗아 버린 것이지요.

 

한편 SR 설립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는 민간자본의 투자를 받을 계획이었으나, 철도노조의 민영화 저지 파업에 부딪혀 결국 SR은 전액 공적자금을 투입해 설립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박근혜 정부 하 국토교통부의 ‘고집’에 의해 SR은 이렇게 공적자금으로 설립돼 운영되면서도 끝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지 못했습니다. 만약 이 상태로 SR이 민간에 넘어가게 된다면, 그대로 ‘민영 KTX’가 되는 셈입니다. 

 

무엇보다 SR과 코레일은 100% 중복되는 고속철도 사업을 놓고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공적 기능을 수행해야 할 코레일의 경영상태가 악화되고 이에 따른 외주화가 심해지면서 안전상의 문제점이 노출되는 등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이후, 국토교통부가 ‘철도 공공성 강화’를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에 맞춰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의 재통합을 중장기 과제로 논의’하고 ‘SR과 코레일의 통합을 검토하려 한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그간 철도 민영화에 적극 찬성해 온 중앙일보가 연이은 단독 보도로 정부의 행보를 어떻게든 흠집 내보려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선 공약 기반으로 5월에 대대적으로 맺은 협약, 이게 왜 단독?
중앙일보가 3일 내놓은 <문 대통령, 대선 때 코레일+철도공단 노동계에 통합 약속>의 문제점은, 기본적으로 문재인 후보와 한국노총이 맺은 협약의 내용이 이제와 ‘단독’을 붙여 낼 가치가 있는 새로운 내용이 전혀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전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문재인 후보 지지를 결정한 한국노총은, 5월 1일 문재인 후보와 ‘대선승리-노동존중 정책연대 협약’을 체결하고, ‘노동기본권 회복, 노동존중의 새 시대를 위한 공동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 협약은 비밀리에 맺어진 ‘밀약’이 아닌, 공개된 공식 행사로 치러진 것인데요. 심지어 중앙일보 역시 당시 <노동절 맞아 ‘한국노총’ 표심 잡기 나선 문>(5/1 https://goo.gl/NFYw6s)에서 협약 체결 사실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노조나 시민단체 등이 특정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후보자와 교감 가능한 선에서 정책 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비교적 흔한 일이기도 한데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에는 박근혜 당시 후보도 2012 대선장애인연대 등과 관련 공약수용·이행을 약속하는 정책협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협약의 상세한 내용 역시 비밀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선 한국노총은 지난 6월 20일부터 홈페이지 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책연대협약 체결 및 향후 이행계획> 문서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맺은 정책연대협약의 구체적 내용을 모두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노총의 이 같은 ‘이행계획안’ 공개와는 무관하게, 중앙일보가 이번 협약에서 가장 문제 삼고 있는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을 통합한다’는 내용”은 애초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습니다. 실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4월 19일 이미 5명의 후보자에게 철도 상하 통합에 대한 의견을 물어 그 답변을 공개한 바 있는데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철도공사(코레일)와 철도시설공단을 통합하는 데 찬성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중앙일보는 마치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기 위해 한국노총과 밀약이라도 추진한 듯,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겁니다. 

 

 

영국이, 독일이, 프랑스가 하니까 다 괜찮다?
기본적인 사실관계 왜곡이나 부실한 논리 전개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중앙일보는 <노무현의 철도개혁 13년…문재인 정부서 뒤집나>(7/3 함종선 기자 https://goo.gl/p1aiXJ)에서 강승필 서울과학기술대 철도전문대학원 교수의 “전 세계 추세는 시설과 운영을 더욱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 “철도 선진국들은 분리 운영과 경쟁체제를 통해 민간투자 활성화와 경영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는 주장을 전하며 영국과 독일의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철도 민영화는 살인적 운임 상승과 급격한 사고 증가로 철도 민영화와 관련한 ‘가장 큰 실패 사례’로 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일보의 주장과 사례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영국이 “현재 분리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이 같은 분리 구조 강화가 영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해당 사회 내부적으로는 어떠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를 전해줘야 합니다. 

 

중앙일보는 독일에 대해서도 “94년 운영과 시설을 분리했고 현재 운영 부문은 정부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독일철도주식회사 산하의 4개 회사와 395개 민간회사가 경쟁”하고 있으며 “민간회사들의 시장점유율은 2015년 27.5%까지 상승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는데요. 기본적으로 독일은 국유철도 노선의 90% 이상을 독일철도공사가 독점하고 있으며 고속철도 이체(ICE) 역시 공기업이 확고하게 소유, 운영하고 있어 완벽한 민영화 사례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독일과 한국의 명백히 다른 지리적 환경 등을 감안할 때, 이 두 나라를 단순 비교하여 운영사간 경쟁을 정당화 하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부적절한 행태입니다. 

 

즉 중앙일보는 정작 중요한 설명은 얼버무린 채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사례를 싸잡아 ‘철도 민영화 성공 사례’라도 되는 양 전하며 ‘선진국들도 이렇게 철도 민영화를 열심히 추진하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식의 ‘이미지’를 전달하려 하고 있는 셈입니다.  

 

 

민영화 저지가 ‘조직 이기주의’라고?
뿐만 아니라 중앙일보는 이 같은 부실한 예시 나열 뒤에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원의 박사”의 “과거 철도청 체제는 방만한 운영과 적자 누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도 또다시 통합 논의가 나오는 것은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이 조직 이기주의에 빠져 이용자 편익을 소홀히 한 측면이 크기 때문” “성급한 통합 추진보다는 면밀한 효과 분석과 심층적인 검토가 우선 필요하다”는 발언을 전달하며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의 통합에 직접적으로 우려를 표하기도 했는데요.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의 통합 논의가 나오게 된 것은, 비효율적인 이중비용 지출이나 안전 문제가 부각되었기 때문임에도 이 같은 사실을 숨긴 채 마치 통합을 추진하는 세력이 ‘이기적인 집단’이라도 되는 양 몰아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중앙일보는 <사설/철도 개혁 10년 역주행, 누굴 위한 정책인가>(7/3 https://goo.gl/VhcPFi)에서 “코레일의 채산성 약화는 수익성 좋은 SR을 독립시켰다거나 철도 체계를 시설과 운영으로 분리해 생긴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툭하면 국민을 볼모로 파업하고, 방만 경영의 구태를 깨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 아닌가”라며 전후 사실 관계를 왜곡하기도 했는데요. 애초 코레일이 독점하던 노선이 SRT로 분리되고, 이후 모회사와 자회사의 출혈 경쟁이 시작되었는데 코레일 채산성 약화를 이와 완전히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 자체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지요. 사설 말미 중앙일보는 “노조에 휘둘리면 경쟁력도 떨어지고 국민만 피해를 보게 된다”며 국민을 앞세운 ‘조언’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설득력이 떨어지는 민영화 주장을 남발하고,노조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까지 공공성이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철도사업에 대한 민영화를 요구하면서도 국민의 피해를 운운하는 꼴이 기가 막힐 뿐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7월 3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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