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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 비난하던 조선, 이재용에는 더없이 따뜻
2017년 1월 20일
등록 2017.01.23 10:25
조회 329

2017년 1월 20일 신문에서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을 향해서는 “마치 ‘호구’를 만난 듯 천문학적인 금액을 요구한다”는 비난을 쏟아냈던 조선일보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치소 체험’에는 “‘인생에서 가장 길고 힘든 하루'를 보냈다”며 연민어린 눈초리를 보냈습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언론, 정말 끔찍합니다.

 

1. 오늘의 유감 보도 ① 이재용, ‘인생에서 가장 길고 힘든 하루’ 보냈다 안타까워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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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치소 체험기를 생생하게 전달한 조선일보(1/20)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구속영장 청구 이후 지속적으로 삼성의 사보를 자처하며 특검을 비난하고 법원을 압박해온 조선일보가 법원의 영장 기각 결정 직후 <이재용, 수의 입고 2평 독방서 12시간… “정말 긴 밤이었습니다”>(1/20 https://goo.gl/IvWKOv)라는 보도를 내놨습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죠. 해당 보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부회장에 대한 연민을 숨기지 않고 있는, 종합일간지가 아닌 삼성 사보에 실릴만한 기사였습니다. 


기사는 “정말 긴 밤이었습니다”라는 “(조사를 받은 시간을 포함해)22시간 만에 서울 서초동 사무실로 돌아온 이재용 부회장이 밤샘 대기 중이던 미래전략실 팀장들에게 한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발언을 인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조선일보는 “그는 법원, 서울구치소 등을 거치며 '인생에서 가장 길고 힘든 하루'를 보냈다”는 평가를 덧붙였습니다.

 

이어지는 내용 역시 ‘이재용 부회장의 고생’을 부각하는 것들 뿐 입니다. 예를 들어 영장실질심사가 “점심시간도 없이 오후 2시 10분까지 이어”지면서 이 부회장은 점심은 먹지도 못했으며, 오후 6시에 나온 저녁은 “1식 3찬의 1,440원짜리(한 끼당 예산)”였는데 그나마 “긴장한 탓인지 이 부회장은 거의 식사를 못”했다는 겁니다.

 

이 부회장이 “황갈색 수의로 갈아입고 고무신을 신”고 “2평짜리 독방에서 12시간 이상 보내면서도 한숨도 자지 않았”다거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항문 검사를 포함한 간단한 신체검사를 한 뒤 수의로 갈아입는” 절차를 거쳤다는 내용도 빠지지 않습니다. 결국 “구치소에서 곧장 귀가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곧바로 서초 사옥으로 돌아온 이 부회장은 구내식당 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다며 마무리합니다.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았어도 될 이재용 부회장이 ‘겸허하게’ 이런 상황을 견뎌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한 조선일보의 ‘고생 부각’은 눈꼴사납습니다. 법과 그 절차 앞에 국민은 누구나 평등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가 밟은 이런 ‘절차’ 역시 대단한 일이 아닌 것이죠. 물론 재벌3세 ‘귀족’인 그에게는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겠지만, ‘소박한 이재용의 12시간 고난’이 칼럼도 아니고 종합일간지 스트레이트 기사로 이처럼 대대적으로 부각할만한 뉴스가치가 있을까요? 조사를 받은 총 시간(22시간)에서 굳이 독방에 머무른 시간이 ‘12시간’이나 된다고 부각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도 우스울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조선일보의 행태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조선일보는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을 향해서는 “마치 ‘호구’를 만난 듯 천문학적인 금액을 요구한다”며 비난을 쏟아내고, 가족을 바다에서 잃은 이들에게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망신이니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천막을 걷으라’고 요구했으며,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에게는 ‘귀족노조’ ‘선동꾼’이라며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진짜 ‘귀족’의 12시간 고생에는 더 없이 따스한 모습을 보이며 그동안 찾을 수 없던 휴머니즘을 발휘하네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언론, 정말 끔찍합니다. 

 

2. 오늘의 유감 보도 ② 특검에 훈수 두는 조선, 상식부터 챙깁시다
이렇게 삼성을 향해서는 ‘많이 놀랐죠?’라며 도닥이던 조선일보는 특검을 향해서는 ‘무리한 짓을 했다’며 호통을 쳤습니다. <사설/특검, 국정 농단 본류 수사로 돌아가라>(1/20 https://goo.gl/iDw37E)에서 조선일보는 이번 법원의 결정은 특검이 “미리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 뇌물 수수'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수사를 꿰맞춰 온 것”을 증명한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 특검이 “도주하거나 증거를 없앨 가능성이 없는 이 부회장을 굳이 구속”한 것은 “나중에 무죄가 되든 말든 피의자를 구속부터 하고 보는 검사들의 잘못된 인습 때문”이라며 “도박하듯이 영장을 청구”한 것을 책망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대체 무슨 근거로 이미 여러 차례 말 바꾸기와 위증을 해 온데다가 막강한 조직을 거느린 이 부회장의 증거인멸 가능성을 ‘제로’로 보고 있는 걸까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사설 말미에서는 특검을 향해 “지금부터라도 수사 방향과 속도를 재점검해 '박 대통령과 최순실 국정 농단'이라는 특검법이 정한 수사 본류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책임자를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로 한정하려는 주장일 뿐입니다. 조선일보는 이 같은 국정농단이 또 발생할 것을 걱정하며 개헌까지 요구했었죠. 그런데 이제와서는 특검법을 앞세워 국정농단을 가능케 한 부역자들을 뿌리 뽑는 일에는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겁니다. 조선일보, 사실은 진상규명이나 재발방지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요?

 

3. 오늘의 유감 보도 ③ 문재인, 너무 도덕적이라 성공 못 할 거라는 조선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향한 트집잡기도 이어졌습니다. 먼저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조선일보 <윤평중 칼럼/문재인에게 대한민국을 묻는다>(1/20 https://goo.gl/ONaM46) 칼럼을 통해 “정치는 국민 생명과 국가 존망을 결정하는 적나라한 힘의 영역이므로 지도자는 때로 ‘권력과 폭력에 깃든 악마적 힘’과 제휴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문 전 대표를 향해 “지나치게 도덕주의적이며 아마추어적이다” “아직 운동권 지식인의 자취를 지우지 못했다”는 등의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조선 왕조의 역사나 근현대 정치사는 정의만을 외치는 아마추어 정치인의 신념 윤리가 국가적 재앙을 낳는 경우가 적지 않았음을 증명한다”는 것이죠. 


사실 말은 거창하지만, 이 같은 지적이 나온 이유는 모두 문 전 대표가 ‘사드 재검토’ 및 “당선된다면 ‘가장 먼저 북한을 방문할 것이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즉각 재개할 것’이라는 공약”을 내놓고 “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우리여야 한다”고 발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를 다시 검토해보겠다고 말하고,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을 전환해보겠다고 말하는 것이 적어도 박근혜 정부의 행보보다는 ‘덜 아마추어적인 주장’ 아닐까요? 놀랍게도 윤 교수는 박근혜 정부를 향해서는 이런 비판을 쏟아내지 않았더군요. 


같은 날 중앙일보 최상연 논설위원은 <최상연의 시시각각/문재인, 친문만으론 안 된다>(1/20 https://goo.gl/FeGzai)를 통해 “문재인 캠프의 굴러가는 모양새가 이회창 캠프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늘 같은 노래를 부르니 참신한 가수가 끼어들 공간은 작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민주당 안팎에선 집권 뒤 임명할 공공기관장 명단이 흘러다닌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문재인의 최순실이 누구누구란 소문도 많다”며 무려 ‘소문’을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이런 지적에 이어 최 위원은 “문 전 대표가 대선 전 발표한다는 내각은 아마도 독식 명단일” 것이며 “적어도 김종인·안철수·손학규는 없을 게 분명”하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뭐 그냥 ‘잘 나눠먹기를 하라’는 조언이군요. 
 
4. 오늘의 좋은 보도 ① 법원 구속영장 청구 기각 사유, 이례적이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며 ‘이 부회장에 대한 증거자료는 많지만, 박근혜 대통령 등 뇌물수수자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을 사유”로 들었다고 합니다. “주로 뇌물공여자의 신병을 확보(구속)한 뒤 공여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수수자를 조사”하는 뇌물사건에서 “‘수수자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니. 왜 이런 이례적인 판단을 내렸을까요? 관련 기사는 <박 대통령 등 뇌물 수수자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에>(1/20 https://goo.gl/If0w53)입니다.

 

5. 오늘의 좋은 보도 ② 현대와 SK, 권력의 희생양 아닌 공범이라는 증거 속출
삼성만 문제였을까요? 한겨레는 현대차·케이디코퍼레이션간 계약서를 근거로 “현대자동차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의 초등학교 동창 학부모가 운영하는 케이디(KD)코퍼레이션이 만든 흡착제를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10% 이상 비싸게 사준” 정황을 폭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차는 “중소업체들에 케이디코퍼레이션 제품을 사용하도록 압박”했다는데요. 이렇게 “‘최순실 지인회사’에 이윤 창출과 사업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한 것이 사실이라면 청와대로부터 압박을 받아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더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요? 관련 기사는 <현대차, ‘최순실 지인회사’ 제품 비싸게 사줬다>(1/20 https://goo.gl/mOT8TY)입니다.


또 한국일보에 따르면 SK그룹 수뇌부는 “‘불법 선물투자’ 사건으로 구속됐던 최태원 회장의 2015년 광복절 특사 석방을 위해 1년 가까이 청와대에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다고 합니다. 이 역시 ‘대기업도 피해자’라는 주장을 무색케 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이 2014년 9월 29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보낸 낯 뜨거운 휴대폰 문자메시지는 기사로 직접 확인해주세요. 관련 기사는 <SK, 총수 사면 위해 안종범에 1년간 ‘구애 작전’>(1/20 https://goo.gl/YB4REE)입니다. 

 

6. 오늘의 비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 기각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습니다. 이에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납득할 수 없다’ ‘놀랍고 어이없다’며 법원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반면 동아일보는 영장 기각 판사와 법원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향해 ‘사법부 독립성 침해’라는 지적을 내놨습니다. 조선일보는 특검을 향해 이제 수사 본류로 돌아가라는 조언을 내놨고, 중앙일보는 법원이 법치주의를 지켜냈다며 치켜세웠습니다. 아래는 각 매체의 입장을 대표 코멘트로 정리한 것입니다.

 

경향신문 : “납득할 수 없다” “재벌 총수가 아니었어도 법원이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특검 분발해라”
동아일보 : “영장 기각한 판사와 법원 비난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
조선일보 : “피의자를 구속부터 하고 보는 검사들의 잘못된 인습” “특검, 수사 본류로 돌아가라”
중앙일보 : “법치주의 지켜낸 법원 판단 존중돼야”
한겨레 : “놀랍고 어이없다” “법원, 삼성 앞에서 멈춘 것” “특검 흔들리지 마라”
한국일보 : “수사동력 차질 불가피한 상황” “그래도 특검, 흔들리지 말고 수사 진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