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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추가조사 의결 법관회의, 조중동은 꼬투리 잡기에 ‘혈안’
등록 2017.06.2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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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판사 100명이 ‘판사 블랙리스트’ 등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사건에 대한 추가 조사를 의결했습니다.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은 대법원이 법원 내 판사들의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를 축소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법원행정처 심의관의 인사발령을 취소하면서 촉발되었습니다. 이후 사법행정권 남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대법원장이나 사법부에 비판적인 입장, 견해 등을 개진해온 판사들의 명단과 정보를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는 구체적 증언이 나왔으나, 당시 조사위는 문제가 된 PC 속 자료조차 확인하지 않고 ‘법관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외에도 조사위는 법원행정처가 조직적으로 외압을 행사했다는 정황을 확인하고도 책임자 추궁 없이 “법관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수렴”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황당한 대안만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 같은 조사 발표에 일선 판사들이 “대법원장만을 위한 진상보고서”, “사법농단을 축소하려는 꼬리 자르기”라며 반발하면서 열리게 된 것입니다. 


관련 보도의 논조는 매체별로 크게 갈렸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이번 회의가 ‘사법개혁’의 마중물이 될 것을 기대했으나, 조중동은 ‘사법농단’이라는 사안의 본질을 외면한 채 전국법관대표회의 참가 법관들의 ‘성향’과 논의 과정상의 ‘문제점’을 부각하며 물타기를 시도했습니다.  

 

 

회의 구성원 성향이 편향됐다? 
조중동이 지적한 이번 전국법관대표회의 문제점 중 하나는 참석 판사 상당수(100명 중 40명)가 인권법 연구회 소속으로 성향이 편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원 내 학술모임은 중복가입이 가능한데다가 인권법 연구회는 가장 많은 판사들이 소속되어 있는 학술모임인 만큼, 해당 모임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특별한 정치 성향’을 지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각급 법원에서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인권법 연구회 소속 판사’에게 특별히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의 행위가 일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결과만을 놓고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입니다.  


그런데도 동아일보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법관 5인이 직접 재조사”>(6/20 배석준 기자 https://goo.gl/1jqSr3)와 <“회의 속기록 공개하라” 후유증 앓는 법관회의>(6/21 배석준 기자 https://goo.gl/i6k12h)에서 연달아 “회의 참석자 사이에서는 이번 법관회의 개최를 주도한 인권법연구회 측이 사실상 의사결정 과정을 독점했다는 불만이 나왔다” “법관회의가 이번 회의 소집을 주도한 인권법연구회 측이 제안한 결론을 추인하는 식으로 진행됐다는 비판도 제기됐다”는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일각의 비판을 크게 부풀려 보도한 것은 <둘로 갈린 법원… “개혁 논의 않고 인적청산 몰두” “잘못 있는 책임자 배제해야”>(6/22 손국희 기자 https://goo.gl/V6cVzB)에서 중앙일보는 “법관회의 대표 중 인권법연구회 회원의 비율이 과도하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강조한 중앙일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일보는 더 심각한데요.

 

<사설/이제 사법부에 ‘판사 노조’ 만들겠다는 것인가>(6/20 https://goo.gl/Q97S44)에서 조선일보는 “회의에 참여한 판사 중 상당수가 이른바 국제인권법연구회라는 특정 모임 출신이라고 한다. 이들은 법원행정처를 향해 자료 제출과 함께 행정처 판사들이 사용한 컴퓨터 자료의 증거 보전 요구까지 했다. 이쯤 되면 사법부 내에 ‘판사 노조’가 생긴 것 아니냐는 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심한 일이다”라는 주장을 펼치기까지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또한 “애초에 법원행정처가 판사 서클 행사를 뭣하러 축소시키려 한 것인지 잘 납득하긴 어렵다. 그렇다 해도 이 문제가 8년 만에 법관대표회의가 열릴 만큼 중대한 사안인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법원 내 갈등이 심각한 수준인 것만은 확인된 셈”이라며 사법농단 사태 자체를 ‘별 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같은 날 경향신문은 <“법관회의를 판사 노조 운운 사법개혁 저지하려는 구태”>(6/21 이혜리 기자 https://goo.gl/AuuLuU)에서 “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이 급여인상 등 근로조건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법관 독립’인데 ‘판사 노조’ 운운하는 것은 사법은 물론, 노조에 대한 이해도 결여된 주장”이라는 일선 판사의 목소리를 전달했습니다. 

 

 

회의 과정이 비민주적이었다?
조선일보는 판사 대표 2명의 사퇴를 빌미로 회의 과정의 ‘비민주성’을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대표적 보도는 <“판사회의 최악이었다”>(6/22 조백건․신수지 기자 https://goo.gl/7D81bS)입니다.

 

보도는 회의 이후 판사 대표를 사퇴한 설민수 서울중앙지법 부장 판사의 “회의는 생각하기도 싫다. 내가 생각하는 법원은 이게 아닌데 최악의 모습을 봤다” “내가 왜 이 일에 관여해서 회의에 갔는지 후회된다”는 발언을 부각해 전달하고 있는데요. 반면 실제 설 판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견을 냈고, 어떠한 반박을 들었는지, 전체 회의가 이렇게 ‘최악’이라 평가할만한 상황이었는지 등은 전달하지 않고 “법관대표회의에서 회의 안건과 진행 방식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가 일부 판사들로부터 잇따라 비판을 받”았다고만 요약해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해당 기사의 목적이 회의 자체가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인상’을 전달하려는 것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합니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회의 속기록 공개하라” 휴유증 앓는 법관회의>(6/21 배석준 기자 https://goo.gl/i6k12h)에서 익명의 회의 참석자들의 “(반대 의견을 낸 사람들이)마치 몰매를 맞는 것 같았다” “결론은 이미 정해 둔 채 형식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회의였다”는 등의 평가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이번 회의에서 토론이 유래없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경향신문은 <“법관회의를 판사 노조 운운 사법개혁 저지하려는 구태”>(6/21 이혜리 기자 https://goo.gl/AuuLuU)에서 “전날 법관대표회의에서는 참석자 상당수가 발언하는 등 활발한 토론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며 “의장이 한번 발언을 한 사람은 제외하고 발언 기회를 주는 식으로 배려했다”는 참석자의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한겨레는 <“판사들이 사법행정 직접참여 요구 내선 건 획기적” 평가>(6/21 김민경 현소은 기자 https://goo.gl/S7QFsc)에서 “법관회의와 관련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실현된 첫 법관회의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며 참석한 판사의 “참석자들이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토론했고 큰 이견 없이 대부분 원안대로 통과됐다”는 평가를 전했습니다. 

 

 

정작 논의해야 할 내용을 다루지 못했다? 
대다수 판사들의 결정보다 회의에 참석했다가 불만을 가지고 사퇴한 두 판사의 ‘소수의견’에 유독 집중한 것은 중앙일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중앙일보는 직접적으로 회의의 비민주성을 지적하는 대신, 이를 통해 회의가 ‘정말 논의해야 할 사안을 논의하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음을 부각했습니다. 


10면 상단에 나란히 배치된 <“사법행정 없애고 판사 독립? 좋은 재판 하는 길인지 의문”>(6/22 문현경 기자 https://goo.gl/ciHhkr)과 <“대법원과 판사의 줄다리기… 국민 눈엔 농성처럼 보일 것”>(6/22 김선미 기자 https://goo.gl/gmG689) 기사 공통 도입부에는 “이날 회의가 사법행정 전반에 대한 개선책보다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책임 문제에 집중된 데 대해 판사 사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판사회의 개최를 주장해 온 법원 내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측의 입장도 듣기 위해 핵심 관계자 5명에게도 인터뷰를 제의했으나 응하지 않았다”는 문구가 붙어있습니다. 사법농단의 주체로 지목된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책임을 묻는 행위가 법관회의가 ‘정말 논의해야 할 사안’이 아니었던 것처럼 서술하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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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10면 머리기사(6/21)

 

또한 중앙일보 <사설/사법부의 정치화 우려된다>(6/22 https://goo.gl/RmLaiX)에서는 이번 사안을 “양승태 체제를 둘러싼 갈등과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 평가하며 “사법부까지 정치 바람을 타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정 세력이 힘을 과시하듯 집단행동을 하는 모양새는 순수성과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3권 분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민주주의의 기초 원리”라면서, 이를 지키기 위해 모인 판사들을 향해서 ‘순수하지 않다’ ‘정치적이다’ ‘주도권 싸움을 한다’는 비난을 쏟아내는 중앙일보야 말로 그 ‘순수성’을 의심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   
 


속기록 먼저 공개하지 않으니 폐쇄적이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회의 이후 속기록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회의 속기록을 요구하는 목소리 자체가 문제라고 볼 수는 없으며, 이번 법관회의가 준용한 ‘판사회의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은 속기록이 아닌 판사회의 자체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기본적으로 회의에 참여했던 대표 법관들이 공개에 동의하면 속기록은 공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먼저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쇄적’이라는 지적을 쏟아내는 것은 이번 회의의 문제점을 부각하려는 정치공세로 보일 뿐입니다. 


이를테면 동아일보는 <“회의 속기록 공개하라” 후유증 앓는 법관회의>(6/21 배석준 기자 https://goo.gl/i6k12h)에서 일부 판사들의 속기록 공개 요구를 나열하며 “법관회의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 등을 결의하면서 회의 내용 대부분을 비공개한 데 대해 법원 내부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사법부 인사·예산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의 비밀스러운 운영을 비판하며 소집된 법관회의가 불투명한 회의 진행으로 구설에 휘말린 모양새다”라는 평가를 덧붙였는데요. 대다수 법관의 동의로 뜻이 모아진 회의를, 일각에서 제기된 속기록 공개 요구 문제를 이유로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폄훼한 셈입니다. 


중앙일보 역시 <둘로 갈린 법원… “개혁 논의 않고 인적청산 몰두” “잘못 있는 책임자 배제해야”>(6/22 손국희 기자 https://goo.gl/V6cVzB)에서 “법원행정처의 폐쇄성을 지적한 법관회의가 정작 자신들의 회의 내용을 판사들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며 관련 의견을 나열했는데요. ‘폐쇄성’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이용해 사법농단의 주역으로 지목된 법원행정처와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개최된 법관회의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입니다. 

 

*모니터 기간과 대상: 2017년 6월 22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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