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조선일보가 쏘아올린 ‘민주당 문건’, 자유한국당의 ‘공허한 거짓말’
등록 2017.09.12 22:45
조회 391

지난 9월 1일, 법원이 MBC 김장겸 사장에 체포 영장을 발부하자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방송 장악’이라며 국회 일정을 보이콧했습니다. 보이콧을 선언할 당시, 김장겸 사장의 부당노동행위 및 고용노동부 소환 불응 등 체포 영장의 근거가 뚜렷해, 무리수라는 비판이 나왔는데요. 자유한국당은 열흘 만인 11일, 돌연 보이콧을 철회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방송장악 기도에 국정조사를 벌이려면 국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죠. 시큰둥한 여론과 약화된 명분에 ‘보이콧 출구 전략’을 찾던 자유한국당에 ‘명분’을 찾아준 것은 조선일보였습니다. 조선일보는 8일 민주당의 ‘방송장악 로드맵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며 대서특필했는데요. 다음날인 9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전국 당원들을 버스로 동원해 진행한 대규모 집회에서 해당 문건을 흔들며 “언론장악 문건은 언론자유를 침해한 중대범죄다. 만약 박근혜가 이랬다면 (과거 야당은) 당장 탄핵한다고 대들었을 것, 우리는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가 합심하여 MBC 경영진 보호에 나서는 모양새입니다. 

 

‘민주당 방송장악 로드맵’? 도대체 뭘 봤길래
도대체 조선일보는 어떤 문건을 발견했길래 ‘여당의 방송장악 로드맵’이라 주장하는 걸까요? 조선일보 <輿 “KBS·MBC 野측 이사 비리 부각시키고, 시민단체로 압박”>(9/8 김아진·이옥진 기자 https://bit.ly/2wUjKuQ)은 지난달 25일 열린 민주당 워크숍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공유한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이 문건을 토대로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바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문건에 명시된 ‘야당 측 이사 퇴출’, ‘KBS‧MBC 사장 발언에 즉각 대응’, ‘방송사 구성원 중심의 사장 퇴진 운동 전개’ 등의 내용이 민주당의 ‘공영방송 장악 의도’를 드러낸 것이며, 총 9개의 ‘공영방송 사장 퇴진 로드맵’ 중 6개가 이미 진행 중이라는 겁니다. 


먼저 첫 번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일보는 문건 중 “정치권이 나설 경우 현 사장들과 결탁돼 있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들과 극우 보수 세력들이 담합해 자칫 '언론 탄압'이라는 역공 우려가 있다”는 내용에 대해 “당이 전면에 나설 경우 정치적 부담이 있기 때문에 방송사 노조, 시민단체·학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식의 우회적 방법을 활용하자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방통위의 관리·감독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사장의 경영 비리(공금 사적 유용) 등 부정·불법적 행위 실태를 엄중히 조사해야 한다”, “야당(한국당) 측 이사들에 대한 면밀한 검증을 통해 개인 비리 등 부정·비리를 부각시켜 이사직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등 다른 주요 내용도 소개했는데요.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의 언론 장악 의도를 담은 로드맵이 드러난 것”이라는 야권의 입장을 붙여 해석을 대신했죠. 조선일보의 사설 <“언론 장악 없다”더니 뒤로 ‘정권 나팔수 방송’ 추진>(9/9 https://bit.ly/2gSOqIZ)은 더 노골적입니다. 조선일보는 “방통위나 감사원을 내세워 방송사 사장의 비리를 조사하고, 야당 측 방송사 이사의 부정·비리도 부각시켜 퇴출시킨다고 했다”며 “이런 압력으로 야당 측 유의선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가 사의를 표명”, “방송을 정권 나팔수로 만들겠다는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공영방송 2.jpg

△ ‘민주당의 방송장악 로드맵’이라면서 보도한 조선일보(9/8)

 

지난 9년 간 이어진 KBS‧MBC 경영진 퇴출 요구, 조선일보만 몰랐나
이는 조선일보의 과대 해석에 불과합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 문건은 8월 25일 경 민주당 전문위원실에서 작성된 것인데, 문건에 명시된 모든 ‘로드맵’은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이전부터 공약으로 내세웠던 ‘언론 개혁’의 일부일 뿐이며 KBS‧MBC구성원들과 시민단체는 KBS 정연주 전 사장 부당 해임 및 MBC 김재철 전 사장 부임 등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이 노골화되던 시점부터 퇴출 운동을 벌여왔습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KBS 고대영 사장, MBC 김장겸 사장, KBS‧MBC의 구 야권(자유한국당) 이사들이 임명될 당시부터 퇴진 운동이 이어졌죠. 전국 238개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모여 활동에 나선 ‘KBS‧MBC정상화 시민행동’ 역시 7월 12일에 발족했고 7월 21일부터 매주 촛불집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에는 정당이 아예 포함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민주당이 뒤늦게 8월 말에 이르러서야 ‘로드맵’을 만들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조선일보가 하나하나 지목하여 ‘공영방송 장악 의도’로 해석한 문건 내용들 역시 상식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공영방송 관리‧감독은 방송통신위원회가 법적으로 보장받는 권한이자 의무이며, 방송사 재허가 심사는 공영방송 내 비위나 위법을 시정하기 위해 실시하는 절차입니다. 민주당 도청 사건에 연루된 KBS 고대영 사장, 갖은 부당노동행위와 정윤회 씨와와 커넥션 의혹을 받는 MBC 김장겸 사장, 수신료로 마련된 KBS 관용차를 음악회, 호텔 식사 등 개인적 용도로 500여 차례나 유용한 KBS 이인호 이사장, 방문진을 제멋대로 파행시키며 2016년 경영평가보고서마저 사실상 폐기시킨 MBC 방문진 구 여권 이사들은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누군가 ‘로드맵’을 짠 것이 아니라 KBS‧MBC 경영진이 스스로 저지른 범죄들입니다. 조선일보는 과연 이 모든 사실들을 모르는 걸까요? 모른다면 무지일 뿐이지만 알면서도 이를 ‘여당의 공영방송 장악’으로 보도하는 건 국민을 향한 기만이자 명예훼손 범죄입니다.

 

민주당이 이미 로드맵을 진행했다고? 
조선일보는 총 9개의 ‘방송장악 실행 방안’ 중 6개를 민주당이 이미 진행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 MB 비판 영화인 공범자들 단체 관람 △ MBC 김장겸, KBS 고대영 사장 발언 즉각 대응 △ 당 적폐청산위 활동 최우선 과제로 추진 △ 방송사 구성원 중심의 퇴진 운동 전개 △ 시민사회단체 퇴진 운동 전개 △ 야당 측 이사들 퇴출 등 6개가 바로 그 ‘진행된 음모’라는 겁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조선일보의 주장을 그대로 쏟아냈습니다. 자유한국당 박대출 의원은 1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낙연 총리를 향해 “민주당이 작성한 공영방송 장악 문건을 봤느냐”라고 물으며 조선일보 보도 내용을 축약해 보여줬고 “각본대로 진행되고 있다. 방송장악 음모다, 헌법유린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박 의원이 보여준 화면에는 “방송장악 문건, 국정조사‧특검 도입하라”라는 구호도 써있습니다.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의 비뚤어진 ‘2인 3각’
그러나 이런 주장도 터무니없는 억지에 가깝습니다. 영화 ‘공범자들’은 지난달 17일 개봉했는데 25일이 되어서야 무려 ‘로드맵’까지 만들어 단체 관람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미 민주당 의원들이 단체 관람을 했으니 ‘완료’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KBS‧MBC 사장에 즉각 민주당이 대응하는 것도 진행 중이라 했는데 그 근거는 “민주당 지도부 공개 발언”이라고만 갈음했습니다. 무얼 말하는지 알 수 없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KBS‧MBC 경영진의 비위와 범죄를 들어 책임있는 ‘결단’을 요구하고 KBS‧MBC 구성원들의 ‘정상화 요구’를 지지하는 수준의 발언만 했습니다. 김장겸‧고대영 사장의 발언에 ‘즉각 대응’한 적은 없습니다. 가장 심각한 사례는 ‘야당 측 이사들 퇴출’이 이미 실행됐다고 분석한 대목인데요. 조선일보는 “9월 7일 유의선 방문진 이사 사퇴”를 그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여기서도 조선일보는 악의적인 편파성을 노출했습니다. 유의선 이사는 민주당의 압박이 아니라 MBC구성원들과 자신이 몸담은 이화여대 학생들의 지탄을 받아 사퇴했습니다. 유 이사 역시 사퇴의 변으로 “허위와 왜곡으로 점철된 고소 내용과 인신 공격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을 뿐이고 이는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언급했죠. 조선일보는 유 이사가 어째서 고소당했는지는 단 한 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유 이사는 ‘허위와 왜곡’이라 하지만 2월 23일 있었던 방문진의 MBC 사장 후보 면접 속기록에는 유 이사의 혐의점이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유 이사는 당시 권재홍 후보에게 “많은 인력이 노조 가입해서 편향된 제작물을 가져오는데…(중략)…어떻게 구체적인 전략을 가지고 극복하겠습니까?”라며 ‘노조 배제’ 방안을 요구했죠. 이에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유의선 이사를 방송법 위반과 부당노동행위 혐으로 고소한 겁니다. 이화여대가 모교인 MBC 기자들은 유 이사에게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공영방송 이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내며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이외 조선일보가 나열한 내용들은 이미 이명박 정부부터 ‘공영방송 정상화 운동’이 시작됐다는 명백한 사실만으로도 논리가 무너집니다. 

 

SBS 회장이 사임에도 “문 정권의 방송 장악 때문”…조선일보의 기행
조선일보는 8일 단독 보도 이후에도 허위에 가까운 이런 주장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당한 보도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자 사임한 SBS 윤세영 회장을 논하면서도 느닷없이 ‘문재인 정부의 방송장악’을 거론했습니다. 조선일보 <사설/갑작스러운 SBS 회장 사퇴, 배경이 궁금하다>(9/12 https://bit.ly/2gYPc7w)은 “최근 민주당 전문위원실은 KBS와 MBC의 사장과 야당 측 이사진을 압박해서 몰아낼 내부 문건을 만들었다. KBS와 MBC 노조는 사장과 경영진 사퇴를 주장하며 파업 중이다. MBC 사장에게 긴급 체포영장이 발부되는가 하면, 안팎의 압력에 못 이겨 MBC 방송문화진흥회의 야당 측 이사가 임기도 못 마치고 사퇴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SBS도 적폐'라며 공격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나온 SBS 회장 사퇴 소식이어서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요컨대 민주당은 ‘공영방송 장악 문건’을 만들어 압박하고 노조와 시민단체까지 방송사 사장 사퇴를 요구하니 아마 SBS 윤세영 회장도 그런 압박에 사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SBS 윤세영 회장 본인도 “부득이 당시 정권의 눈치를 일부 봤다”고 시인했고 SBS 구성원들은 ‘회장 한 명의 사임만으로는 진정한 소유-경영 분리를 이뤄낼 수 없다’며 투쟁을 결의한 상황입니다. 즉 SBS는 대주주 일가의 불법적 경영 개입 및 보도 개입이라는 문제를 드러낸 것이죠. 당연히 KBS‧MBC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SBS도 KBS‧MBC 압박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죠.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물론 조선일보는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의 “보도․제작의 중립성과 자율성, 방송의 지배구조 등을 중점 심사하겠다”는 발언을 ‘가능성’의 근거로 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효성 위원장의 해당 발언은 방송법 조항을 그대로 읊은 수준에 불과합니다. 

 

조선일보‧자유한국당의 불온한 동거
이렇듯 조선일보는 이미 알려진 내용을 정리했을 뿐인 민주당의 비공식 내부 문건과 SBS 윤세영 회장 사임을 들어 ‘정부‧여당의 방송장악’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때마침 보이콧 철회의 기회를 엿보던 자유한국당은 곧바로 조선일보 보도를 받아 국회로 돌아갔고, 조선일보의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연설했습니다.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의 이 기묘한 ‘콜라보’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방송 장악 기도와 무너져 버린 KBS‧MBC의 공신력, KBS‧MBC 경영진이 그동안 200명이 넘는 KBS‧MBC 노동자들에게 가한 부당 해고 및 징계 등 탄압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렇게 현실을 외면하다 보니, 비정상을 바로 잡으려는 KBS‧MBC 구성원들과 시민들의 기나긴 싸움도 한낱 ‘여당의 배후 조종’으로 매도하고 말았습니다. 이 참담한 왜곡과 국민을 대상으로 한 명예훼손은 언론 역사에 뚜렷이 기록될 것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9월 8일 ~ 12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monitor_20170912_455.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