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노동자의 죽음은 신문 부고에도 실리지 않는다
등록 2018.12.14 17:00
조회 610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13일 밤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열린 추모 문화제에 시민 수백 명이 모여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이들은 김 씨의 죽음이 ‘위험의 외주화’와 ‘비정규직’ 때문이라며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2014년 구의역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 군도 작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를 당한 노동자도 올해 4월 이마트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수리하다 사망한 20대 청년도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매일노동뉴스 <지난해 산재사망자 95% 하청노동자 ‘충격’>(2016/8/29 연윤정 기사)에 따르면, “2011~2015년 주요 업종별 30개 기업에서 발생한 산재사망 노동자의 95%가 하청노동자”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태안화력발전소 김 씨의 죽음을 단순한 사고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움직임도 커지고 있습니다.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들은 15일 저녁 7시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조중동은 3일간 단 1건 보도…

언론 보도는 어떠했을까요. 한겨레‧경향‧서울신문은 김 씨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총 42건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각각 한겨레 16건 서울신문 14건 경향신문 12건이었습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김 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원인분석과 재발방지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내놨습니다. 반면, 조선‧중앙‧동아일보는 3일간 단 1건만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가 사건 발생 3일째인 14일 1건의 기사를 내놓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지난달 조선일보는 유성기업 노조원이 회사 상무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3일간 11건을 보도했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잔혹하게 사람을 때렸다며 대서특필한 것입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가 ‘잔혹하게’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고도 4시간이나 방치되었다는 소식에 조선일보는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상전이 하인을 때리면 뉴스가 되지 않는다. 하인이 상전을 때리면 뉴스가 된다”는 자조는 현실이었습니다.

 

 

경향신문

한겨레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12/12

3건

4건

2건

0건

0건

0건

12/13

2건

5건

7건

0건

0건

0건

12/14

7건

7건

5건

0건

1건

0건

합계

12건

16건

14건

0건

1건

0건

∆ 태안화력발전소 김군 사망 사고 이후 보도량 비교 (12/12~12/14) ⓒ민주언론시민연합

 

김 씨가 죽은 날 조선일보 부고란에는 어느 교수와 어느 은행장의 죽음이 전해졌습니다. 사회에서 이렇다 할 직함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신문 부고란에도 실리지 못합니다. 이처럼 이름 없는 젊은 노동자의 죽음은 신문 지면에도 부고란에도 실리지 않으며 ‘없던 일’로 취급당합니다. 죽음의 무게가 사람마다 다른 사회인 것입니다.

 

서울신문 “한국서부발전이 언론 동향 챙겨”

한편, 서울신문은 14일 <용균씨 죽음 은폐하려 언론 동향부터 챙겼다>(12/14 기민도 기자)에서 김 씨가 사망한 태안 9‧10호기 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이 사고 직후 ‘언론동향’을 챙겼다고 보도했습니다. 서울신문은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서울신문이 13일 확보한 서부발전의 ‘태안 9·10호기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 점검 중 안전사고 보고’ 에는 ‘언론 동향’ 항목이 있다. 보고서는 지난 11일 오전 사고 발생 이후 서부발전 산업안전부가 작성했다. ‘언론 동향’에는 ‘없음’이라고 적혀 있다. 김씨의 죽음이 보고서 작성 시점까지는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보고서를 본 한 노동자는 “자기 집 앞마당에서 키우던 개가 죽어도 이러진 않을 것”이라면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고 말했다.

 

서부발전 관계자들은 노동자가 죽어도 ‘언론에 보도되지 않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실제로 조선‧중앙‧동아일보와 같은 주요 신문사는 사실상 침묵했습니다. 또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총 12명의 노동자가 안전사고로 사망했지만, 그때마다 침묵의 카르텔은 유지되었습니다. 만약, 언론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일하다 죽는’ 불합리한 세상을 바꿔보자고 나섰더라면 김 씨는 오늘도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위험의 외주화, 비정규직 문제를 짚은 한겨레․경향

한겨레는 <멈추지 않는 ‘위험의 외주화’…산재사망 90%가 ‘하청노동자’>(12/12 최하얀 기자)에서 이번 김 군의 죽음의 배경에 ‘위험의 외주화’가 있음을 짚었습니다. 한겨레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한국서부발전의 태안화력발전소 운전·정비는 민영화된 중소기업들이 담당하고 있다. 1∼8호기는 한전산업개발이, 김씨가 숨진 9∼10호기는 한국발전기술이 운전과 정비를 책임진다. 설비는 한국서부발전 소유지만, 발전소 운영은 민간 하청업체들이 총괄하는 구조다. 김씨를 고용한 한국발전기술은 애초 공기업이었으나 2014년부터 칼리스타파워시너지 사모투자 전문회사가 지분 52.4%를 보유하고 있다. 운용사인 칼리스타캐피탈의 이승원 대표는 한국발전기술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경향신문도 <입사 석달, 꼼꼼했던 24살 용균씨는 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서 숨졌다>(12/12 배문규 기자)에서 “발전사들이 힘들고 어려운 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업체 노동자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수익만을 쫒는 민영화 정책과 비용 절감을 위한 위험의 외주화-비정규직화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틀 안에서 노동자는 손쉽게 쓰다 버리는 파지 같은 존재입니다. 고인이 된 김 씨는 살아생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전환은 직접고용으로’를 요구했습니다. 그의 유언이자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언론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12월 12일~2018년 12월 1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지면에 한함. 민언련은 다양한 매체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분간 신문모니터 대상에서 한국일보를 제외하고, 서울신문으로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monitor_20181214_372.hwp

 

<끝>

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