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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미투를 선정적 상품으로 내놓은 언론들
등록 2019.01.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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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력 혐의를 폭로하면서 체육계에도 ‘미투 운동’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언론도 선수 및 관계자들의 용기를 주시하고 있는데요. ‘조재범 성폭력 의혹’에 이어 14일 한겨레의 <단독/신유용 “고1부터 유도 코치가 성폭행…실명으로 고발합니다”>(1/14 이정규 기자)란 기사를 통해 전직 유도선수인 신유용 선수가 A코치로부터 성폭행 당했던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는 지난해 3월 A코치를 경찰에 고소했으나 수사가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는데요. 신유용 선수는 심석희 선수의 용기를 보고 폭로를 결심한 듯 위 기사에서 심석희 선수에게 “대단히 감사하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용기를 트래픽 장사에 활용하는 언론사들이 있습니다. 제목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뽑거나, 신유용 선수 개인 SNS 사진을 무단으로 가져와 섬네일(Thumbnail․대표 이미지)로 보여주는 식입니다.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나쁜 습관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몰염치한 것이 바로 일부 선정적 내용과 사람들의 호기심을 이용한 ‘트래픽 장사’입니다. 누군가의 상처와 용기를 뻔히 ‘알면서도’ 돈벌이로 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극적․선정적 제목에 퇴색되는 누군가의 용기

14일(18시 기준)까지 신유용 선수의 폭로가 자세히 담겨있는 뉴스는 한겨레의 단독 기사와 연합뉴스의 <성폭행 폭로한 신유용 “많은 피해자가 용기 얻었으면”>(1/14 김경윤 기자) 등이었습니다. 이 기사들에 신유용 선수가 폭로한 내용 대부분이 담겨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 뉴스를 찾아보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을 단 기사들을 여럿 볼 수 있었습니다. 자극적이고 과장된 제목으로 시민들의 ‘클릭’을 이용해 조회 수를 높이는, 전형적인 ‘낚시 기사’입니다. 언론사들은 △폭로 중 선정적인 내용 부각 △사실 왜곡 △낚시성 제목 △가해자 사생활 언급 등의 방법으로 제목을 달고 있었습니다.

 

폭로 중 선정적인 내용만 부각해 제목을 뽑은 사례로는 동아닷컴의 <전 유도선수 신유용 “코치, 숙소 청소하라며 첫 성폭행…성적 도구도 사용”>(1/14 정봉오 기자), 국제신문의 <신유용 유도선수 폭로글 보니…코치가 성폭행 후 “임신테스트기 해보라”>(1/14 이수환 기자), 조세금융신문의 <‘상습 성폭행 피해’ 신유용, 쇠파이프 휘둘러 때려 “거품 물고 기절해…” 생리일 체크까지>(1/14 김효진 기자) 등이 있었습니다.

 

제목으로 쓰인 사실들은 14개 문단으로 쓰인 한겨레 기사 중, 한두 문단에 언급된 내용입니다. 그것도 신유용 선수가 자신이 받았던 고통에 대해 설명하는 단락 중 일부였습니다. 신유용 선수는 인터뷰에서 언제, 어떻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는지 자세히 언급했습니다. 그는 가해자에 대한 온당한 처벌과 체육계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입을 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론사들은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한 선정적 제목을 뽑는 데 그의 고통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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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 사건을 트래픽 장사에 쓰는 인터넷 언론사 화면 갈무리(1/14)

 

선정적 제목뽑기 도가 지나쳐 왜곡까지 발생

선정적으로 제목을 뽑다보니 아예 사실 왜곡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제뉴스는 <신유용 성폭행 폭로. ‘일상’ 된 추악한 실체…“귀에 X까지 넣었다?”>(1/14 서나리 기자 기사 삭제 됨)란 기사에서 신유용 선수가 언급하지 않은 사실을 제목에 뽑았습니다.

 

‘귀에 뭔가 넣었다’라는 자극적인 문장이 실려 있으나 이는 신유용 선수가 당한 일이 아닙니다. 체육계 미투가 터지자 지난 10일, 체육계 성폭력 문제를 조사해 왔던 정용철 서강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언급했던 자신의 조사 내용 일부입니다. 정용철 교수가 자신이 체육계 성폭력 실태를 조사한 논문에, 코치들이 ‘나는 룸살롱에 안 가. 여자 선수 애들이 있잖아’라고 말한 사실과 코치가 ‘귀에다가 혀를 집어넣었다’는 선수들의 증언을 실었다는 것이 인터뷰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국제뉴스의 제목만 보면 신유용 선수의 일인 것처럼 읽힙니다. 제목을 선정적으로 보이기 위해 관련 내용을 얼기설기 붙여 적다보니 왜곡이 발생한 것입니다.

 

뒤이어 남도일보가 <신유용 폭로로 드러난 ‘추악’한 그들의 일상? “귀에 X까지 집어넣어”>(1/14 온라인뉴스2팀), 서울경제가 <‘체육계 미투’ 신유용 한두 명 아니다? “코치가 귀에 혀 집어 넣어” “룸사롱 대신 여자 선수랑”>(1/14 홍준선 기자)이란 비슷한 제목으로 기사를 냈습니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에 오른 단어와 타 매체에서 낸 기사를 엮어 쓰는 일종의 ‘어뷰징 기사(Abusing)’입니다. 클릭 수 경쟁을 하느라 제목은 거의 베껴 쓰다시피 했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뒷전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외에도 폴리뉴스의 <신유용, 이른 새벽 갑자기 검색어 1위에 올라오며 궁금하게 만들더니 네티즌 공분으로!…“어떻게 이런일이”>(1/14 윤청신 기자)나 헤럴드경제의 <글 이미 공유했었던 신유용, 어떤 내용?>(1/14 김소라 기자)과 같은 낚시성 제목을 단 기사는 물론,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국제신문의 <신유용 성폭행한 영선고 유도부 코치 누굴까 관심 증폭 “결혼 후 내연녀와 바람”>(1/14 이수환 기자) 등 수많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한겨레와 연합뉴스에서 밝힌 신유용 선수의 폭로 내용에는 그가 왜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후에 어떤 조치를 취했음에도 일이 해결되지 않았는지 등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맞는 게 싫어서’라는 개인적 이유뿐만 아니라 ‘유도계에서 끝이라는 협박을 들어서’라는 체육계 구조적 이유, 그의 고소에도 수사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던 체육계 내부의 성폭력 사건을 쉬쉬하는 문화 등 언론이라면 짚어야 할 문제가 인터뷰 내용에 수없이 등장합니다. 언론이라면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기사를 썼어야 합니다. 단순 낚시용으로 선정적 장면만 집어 기사를 쓰는 것은 남의 아픔을 가지고 돈을 버는 장사치에 불과합니다.

 

신유용 선수 SNS 사진 게재 동의 구했을까?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만든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 가장 첫 줄엔 ‘피해자의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보호하여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또한 ‘피해자가 공개적으로 피해사실을 공개하였다고 하여 본인의 동의 없이 무분별하게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부각시키는 보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준들은 일부 언론사들 앞에 무력했습니다.

 

스포츠동아의 <신유용 “고1 때 부터 코치에 성폭행→돈으로 입막음” 주장>(1/14 송치훈 기자), 스포츠한국의 <신유용, 성폭행 폭로 이후 SNS 심경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1/14 대중문화팀) 등의 기사엔 신유용 선수의 SNS 사진을 가져와 보도했습니다. 신유용 선수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실명을 공개했고, 또 14일 이어진 KBS, SBS와의 방송 인터뷰를 통해 얼굴을 공개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미투를 했다고 해서 본인의 과거 SNS 사진을 마구잡이로 가져와서 공개하라고 허용한 것은 아닙니다. 해당 언론사들은 신유용 씨에게 사진 사용에 대해 동의를 구했을까요? 상대방의 동의 없이 사진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면 초상권 침해에 해당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관련 기사는 한겨레 기사나 신유용 선수의 폭로 글 등을 적당히 인용한 뒤, 선정적 제목과 SNS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붙인 일종의 ‘상품’들입니다. 체육계 미투를 지지하고 어렵게 용기를 낸 신유용 선수에게 지지를 표한다면, 언론은 선정적․자극적 보도를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가해자 처벌과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보도에 치중하기 바랍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1월 14일 2~18시 네이버에 송고된 인터넷 기사

<끝>

문의 임동준 활동가 (02-392-0181) 정리 조선희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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