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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효순양 15주기, ‘이념 잣대’ 들이댄 MBC‧TV조선
등록 2017.06.1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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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은 주한미군 2사단 장갑차에 희생된 심미선‧신효순 양의 15주기입니다. 주한미군은 2002년 6월 두 소녀의 시신까지 훼손된 처참한 사고를 냈지만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운전사는 미군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우리 정부 역시 그런 무책임을 방조했습니다. 그동안 참사의 진상규명은 물론, 불평등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정부는 외면했습니다. 그 와중에 미선효순추모비건립위원회는 꾸준히 추모 행사와 진상규명 활동을 벌여왔고 드디어 이번 15주기 추모식에서 사고 현장에 평화공원을 세울 수 있게 됐습니다. 국민 성금으로 부지를 매입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시민단체의 추모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던 두 아버지도 참석하기로 결정하면서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 불평등한 소파 개정의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진상규명과 SOFA 개정도 진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지고 있습니다. 


MBC와 TV조선이 15주기 당일 이전에 미선‧효순양 관련 보도를 냈는데요. 그 내용은 이런 상황과 전혀 달랐습니다. 두 방송사는 의정부시가 10일 개최하려다 무산된 ‘주한미군 2사단 100주년 콘서트’를 빌미로 시민단체를 비난했습니다. 시민단체가 미선‧효순양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MBC‧TV조선이 은폐한 사실은?
12일, 주한미군 2사단 100주년 콘서트 무산 논란을 보도한 방송사는 MBC‧TV조선‧채널A뿐입니다. MBC‧채널A가 1건, TV조선이 2건입니다. 이중 MBC와 TV조선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누락‧왜곡한 채, 콘서트 개최를 반대한 시민단체를 비판했습니다. 


보도를 보기 전에 어째서 시민들이 콘서트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정부시는 주한미군 2사단의 창설 100주년을 맞아 6월 10일, 기념 콘서트를 개최하고자 했습니다. 창설 기념일은 10월 26일이지만 미 2사단이 평택 이전을 앞두고 있어 6월 10일, 행사를 강행하고자 했습니다. 10일은 주한미군 2사단에 희생된 미선‧효순양의 15주기를 고작 3일 앞둔 시기입니다. 하필 이런 시기에 유명 가수들을 대거 초빙해 ‘주한미군 2사단 축하 콘서트’를 열려고 한 점이 문제가 됐습니다. 기념식은 물론, 퇴역 미군 관광투어, 한미우호 상징 조형물 제막식 등 여타 행사까지 진행하기 위해 창립 기념일보다 무려 4개월이나 앞당겼다는 점도 비판 받았습니다. 게다가 의정부경전철이 최근 파산하면서 무려 3000억 원의 적자를 낸 것도 성난 민심을 부채질했습니다. 콘서트에 5억 7000만 원의 예산이 쓰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두 여중생의 죽음을 추모해야할 기간에 세금을 들여 가해자인 미군을 위한 잔치를 여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커졌습니다. 결국 콘서트는 초대 가수들이 대거 불참을 선언하면서 파행에 이르렀습니다. 

 

‘시민단체가 블랙리스트 만들었다’? 사실 은폐하고 ‘시민단체 마녀사냥’한 MBC‧TV조선
MBC와 TV조선은 이런 구체적인 상황을 외면했습니다. 오히려 ‘시민들이 가수를 겁박했다’는 프레임만 내세웠습니다. MBC <SNS 비난 무서워…줄줄이 공연 포기>(6/12 https://bit.ly/2sWqINL)는 “지난 주말 의정부에서 한미 우호 증진을 위한 큰 공연이 열렸”지만 “초대된 가수들이 아예 오지 않거나 노래 대신에 사과만 하고 무대를 내려와 엉망이 됐”다고 먼저 전했습니다. “EXID와 오마이걸 등 초대 가수들이 행사 당일 돌연 참가 불가를 통보했고, 인순이 씨와 크라잉넛은 가수가 노래를 못 불러 죄송하다며 사과만 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앞뒤 정황은 생략한 채, 유명 가수들의 불참을 나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이 벌어졌다고 규정한 겁니다. 


시민단체의 입장은 “이 같은 파행은 미 2사단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미선 양 15주기를 앞두고 민주노총과 노동당 등이 공연 반대 운동을 했기 때문인데, 가수들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만 짧게 설명했습니다. 시민들이 콘서트를 반대한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다른 내용은 모두 누락한 MBC는 대신, “일부 진보언론과 시민단체의 인신공격성 악성 게시글과 비난으로 가수들이 출연을 포기했다”는 안병용 의정부 시장 입장과 “이번 일이 새로운 문화 검열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바로 이런 행위가 문화계의 블랙리스트가 아닌가”라는 이용남 청주대 객원교수 인터뷰까지 덧붙여 시민들을 ‘블랙리스트 작성자’로 몰아붙였습니다. 


TV조선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TV조선 <‘전전긍긍’…의정부시 “유감”>(6/12 https://bit.ly/2rkYcbv)은 “시민 단체의 반발로 가수들이 출연에 부담을 느낀 것”이라며 MBC와 똑같은 시각을 드러냈고 “혹여나 불똥이 튈까, 눈치 보는 모양새”라고도 표현했습니다. “EXID, 크라잉넛, 산이 등도 정신적 피해 등이 우려된다며 노래를 안 하거나 불참했다”, “가수들은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불참하라는 협박성 전화와 댓글 공격을 받은 것”이라면서 가수들의 “피해”만 연신 강조했습니다. 반면 시민들의 목소리는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효순·미선이 사망일을 사흘 앞두고 미군을 위해 공연하느냐”는 한 줄로만 갈음했습니다. 심지어 이마저도 ‘민주노총’의 입장으로 처리했습니다. 이어서 “남이 하면 블랙리스트, 내가 하면 착한 압력이냐”는 인터넷 댓글을 보여주면서 “정치세력화한 시민단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TV조선이 보여준 댓글에는 그 어디에도 ‘정치세력화한 시민단체’라는 문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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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리스트 옹호 교수’와 ‘익명 댓글’로 시민단체 비판한 MBC‧TV조선(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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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리스트 옹호 교수’와 ‘익명 댓글’로 시민단체 비판한 MBC‧TV조선(6/12)

 

억지 논리 스스로도 알고 있나, ‘교수 인터뷰’와 ‘익명 댓글’ 인용한 MBC‧TV조선
MBC와 TV조선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미 2사단 100주년 콘서트를 반대한 시민단체가 미선‧효순양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했고 가수들을 몰아 붙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부당하게 콘서트를 무산시켰다는 겁니다. 이미 살펴봤듯이 의정부시가 미 2사단의 창설 기념일과 맞지도 않는 시기에, 심지어 미선‧효순양 사고 15주기에 무리하기 행사를 강행했다는 점 등 핵심적 배경은 모두 누락했습니다. 그나마 채널A가 “2002년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효순, 미선 양의 추모일을 사흘 앞두고 미군을 위한 축제를 기획했다는 점과 의정부 경전철이 파산하는 상황에서 시가 콘서트에 5억 원을 쏟아부으며 예산을 낭비했다”는 시민단체 측 입장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매우 부실한 설명입니다. 


무엇보다 언론 스스로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입을 빌린 MBC와 TV조선의 태도는 매우 부적절합니다. 두 방송사는 모두 ‘시민단체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주장을 인용했는데요. 헌법적 권리인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박근혜 정부가 특정 예술가들의 ‘밥줄’을 끊기 위해 정부 차원으로 치밀하게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빗댄 겁니다. TV조선은 이런 억지스러운 논리가 부끄러웠는지 자사의 목소리로 직접 주장하지 않고, ‘익명의 인터넷 댓글’을 인용했습니다. 차라리 이용남 교수를 인터뷰한 MBC가 ‘당당’한 편인데요. 이용남 교수는 ‘미디어펜’ 등 극우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를 ‘안보리스트’라 찬양한 인물입니다. 결국 MBC와 TV조선은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를 옹호한 인물과 출처도 알 수 없는 익명 댓글을 근거로 시민단체를 비판한 셈인데요. 이는 합리적 근거로 보기 어려워 시민단체를 맹목적으로 비방했다 할 수 있습니다. 

 

갖은 ‘감성 팔이’ 동원한 TV조선, 결론은 ‘마녀사냥’
TV조선은 1건의 보도를 추가했는데요. 바로 TV조선 <앵커칼럼>(6/12 https://bit.ly/2rcvLIE)입니다. TV조선 <앵커칼럼>에서 윤정호 앵커는 언제나 그랬듯 갖은 수식어와 비유를 동원해 ‘감성적 칼럼’을 선보였는데요. 그 결론은 미선‧효순양 사건의 가해자인 미군에 면죄부를 주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시민단체를 공격한 겁니다. 


윤 앵커는 먼저 미 2사단 100주년 콘서트에 참석했다가 노래를 하지 않고 사과만 했던 가수 인순이 씨를 호출했습니다. 주한미군이자 “인순이가 뱃속에 있을 때 떠나 다시 오지 않았”던 아버지를 둔 인순이 씨가 “원망을 이겨내고” 불렀던 ‘아버지’라는 노래를 먼저 소개했습니다. 인순이 씨가 2010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6·25 참전용사 100명을 초대”해 “여러분은 모두 제 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의 희생에 우리 모두가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일화도 덧붙였습니다. 그런 인순이 씨가 결국 10일 콘서트에서 ‘아버지’를 부르지 못했고 “다른 가수들 공연도 취소됐”다는 것이 TV조선의 주장입니다. 여기서도 윤 앵커는 “참석 가수 소속사엔 협박전화가 걸려왔고, 관련 기사엔 악성 댓글들이 쏟아졌”다거나 “신변과 정신적 피해가 우려”된다는 ‘한 걸그룹 측’ 입장을 들어 가수들의 ‘피해’를 부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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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단체를 비판하기 위해 미선 양 아버지까지 동원한 TV조선(6/12)

 

인순이 씨만 TV조선의 여론전에 동원된 것이 아닙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심지어 미선양의 아버지까지 등장합니다. 윤 앵커는 “효순-미선양이 숨진 2002년 노무현 후보는 ‘반미는 어떠냐’고 말했”지만 “대통령이 되자 이라크에 파병하고 한미 FTA를 체결”했고 “반미라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도 않거니와 그것은 열등감의 표현이고, 그것을 거꾸로 뒤집으면 사대주의의 표현”이라 말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애들이 미워서 미군이 사고를 냈겠느냐”, “그 미군들도 짐을 덜고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 “효순-미선이가 자꾸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게 싫다”고 말한 미선 양 아버지의 5년 전 인터뷰로 보도는 마무리됩니다. 가수 인순이와 그 아버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미선 양 아버지까지 총 4명이나 동원된 이 보도에서도 미 2사단 100주년 콘서트를 반대한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민노총, 노동당 의정부 지역 단체는 공연 반대 시위를 줄곧 해왔”다는 설명 한 마디뿐입니다.

 

피해자 아버지의 심정까지 ‘악용’한 TV조선
TV조선은 피해자 아버지도 미군을 용서했는데 시민단체가 부당하게 행사를 무산시켰다는 취지로 미선 양 아버지 인터뷰를 인용했습니다. 이 인터뷰 내용은 2012년 조선일보 <사설/효순·미선 아버지 “이제 가족끼리 추모하게 해 달라”>(2012/6/4 https://bit.ly/2snhltm) 등에서도 보도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미선 양 아버지 심수보 씨는 15주기를 맞아 미선효순추모비건립위원회가 주최한 추모 행사에 참여해 다른 입장을 내놨습니다. 


심수보 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살아있었으면 서른살 미선이…SOFA 개정 밑거름되길”>(6/12 https://bit.ly/2rddFpT)에서 “(과거에는) 어느 순간 아이들이 정치에 이용되는 것 같고 군, 경찰, 시청까지 지켜보는 느낌에 모든 걸 피하게 됐”지만 “그래도 15년 동안 한결같이 미선이, 효순이를 잊지 않은 게 시민단체더라”, “이제는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분들 뜻에 따르기로 했다”고 밝힌 겁니다. 심 씨는 “소파(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라는 게 우리나라가 많이 어렵던 시절에 만든 내용인데 그쪽(미국)에 유리하게 만들지 않았겠냐”면서 “이제라도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 불평등한 소파 개정의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고도 말했습니다. 2012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싫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어째서 하게 됐는지, 다시 시민단체와 함께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밝혔다고 볼 수 있습니다. 


TV조선이 같은 날 자사 뉴스보다 앞서 보도된 이 인터뷰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설령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15주기를 앞두고 미선 양 아버지의 입장은 어떤지 확인해보고 보도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TV조선은 오로지 미군 축하 행사를 취소한 시민단체를 공격하기 위해, 미군에 희생된 피해자 가족의 입장까지 입맛에 맞게 이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니터 기간과 대상: 2017년 6월 12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뉴스판>, 채널A <종합뉴스>,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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