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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방통심의위원들은 정말 ‘성인지적 심의’를 했을까
등록 2018.08.0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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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가 발표한 상반기 방송심의·의결 결과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양성평등 및 소수자 보호 관련 심의·의결 건수는 총 37건이다.

 

같은 사안에 대한 의결건수가 2017년 단 한 건도 없었으며, 2016년 13건, 2015년 9건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비교되는 수치다. 방통심의위도 이를 근거로 “제4기 방통심의위가 양성평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성인지적 관점에서 방송프로그램의 성차별적 표현을 적극적으로 심의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4기 방통심의위에서 양성평등 및 소수자 보호 관련 심의·의결 건수가 늘어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양성평등 및 소수자 보호 관련 심의 민원을 많이 제출한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입장에서는 4기 방통심의위의 관련 심의는 여전히 부족해보였다.

 

이에 민언련은 4기 방통심의위 2018년 상반기 양성평등 및 소수자 보호 관련 심의·의결 결과와 이 결정을 하는 과정인 2018년 제1차~37차(1월 1일~6월 30일) 방송심의소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록을 분석했다. 

 


Ⅰ. 심의결과 양적 분석

 

1) 행정지도 의결이 77%, 3기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사실
방통심의위 상반기 양성평등 및 소수자 보호 관련 ‘의결 결과’는 어땠을까? 전체 37건의 안건 중 중징계인 법정제재가 나온 안건은 총 8건(23%)이었다. 주의(벌점 1점)가 6건(17%), 경고(벌점 2점)가 2건(6%)이었다.

 

가장 많았던 것은 행정지도인 권고였다. 총 18건으로 비율로는 49%에 달했다. 의견제시는 10건(28%)으로 그 뒤를 이었다. 


사실 방송심의에서 행정지도라는 것은 방송사에게 큰 타격을 주지 않아서, ‘계속 그렇게 방송해도 됩니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비록 행정지도라 하더라도 77%나 나왔다는 것은, 3기 방통심의위에 비해서 양성평등 및 인권보호 관련 심의에 있어 진일보 한 것이라 판단된다. 
 

방통심의위에

상정된 안건 총수

방통심의위 의결 결과

중징계

(법정제재)

경징계

(행정지도)

문제없음

37건

주의

6건

경고

2건

권고

18건

의견제시

10건

0건

17%

6%

49%

28%

0%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2018년 상반기 양성평등 및 소수자 보호 관련 심의·의결 건수

 

 

2) 민언련이 제출한 인권보호‧양성평등 조항 위반 방송 민원이 기각된 경우
그러나 민언련이 제출한 민원 중 인권보호와 양성평등 조항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음에도, 기각되어 아예 심의 안건으로 올라가지 못했던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중 대표적인 사안 두 가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방통심의위 위원들은 이처럼 황당한 방송이 아예 논의테이블에조차 올라가지 않고 기각당한 사실에 대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없음’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런 사안은 최소한 ‘논의는 되었어야 마땅한’ 수위의 문제적 보도행태였기 때문이다. 

 

 

신분 공개한 성폭력 피해자 향해 ‘인권 침해 감내하라’
김지은 씨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한 이후 대다수 방송사는 과거 안 전 지사와 함께 있던 김지은 씨의 정무수행 모습을 굳이 ‘발굴’해 이를 자료화면을 통해 노출, 부각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방송사는 붉은 동그라미 표시나 밝기 조절 등을 통해 김 씨의 과거 모습, 얼굴을 부각하여 보여줬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해외일정을 뒤져 그 속에서 ‘피해자가 어딘가 구석에서 어떤 표정으로 있었는지’를 찾아내 보여주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불필요한 일이다. 이런 영상을 ‘입수’해 공개하지 않더라도 당시 피해자가 가해자의 수행 비서였다는 사실, 함께 해외 출장을 갔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입증된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고 해서 피해자가 과거 시점 자신의 사진, 영상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한 것은 아니다. 이는 명백한 ‘사생활 침해’이자 ‘인권 침해’다.

 

해당 보도 이후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는 <성폭력․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 주세요!> 가이드라인을 업데이트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방송사들이 피해자의 과거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부각해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을 주요 문제 보도 예시로 꼽았다.

 

“해외출장 동행 당시 영상 중 피해자가 찍힌 장면을 찾아내 ‘붉은 원’ 혹은 ‘밝게 처리한 원’으로 피해자를 부각시켜 거듭 보여주거나, 얼굴에 번진 화장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는 OOOO(원 기사에서는 실제 성명 및 이전 직위 기재)옆에서 넥타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는 피해자 사진을 내보”내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사생활 침해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방통심의위는 민언련이 제기한 SBS, MBC, TV조선, 채널A의 3월 6일과 7일 관련 보도 민원을 기각했다.

 

방통심의위는 “해당 자료는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고 여겨지는 시점에 함께 있었다고 확인할 수 있는 참고자료라는 점과 김지은 씨가 타 매체에서 직접 출연하여 인터뷰를 하는 등 신분공개를 감수하면서 진실규명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여, 동 건에 대해서 심의규정을 적용하여 제재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지적했듯 성폭력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사생활 침해’ ‘인권 침해’를 감당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김지은 씨가 출장에 동행했다는 사실 역시 과거 영상을 통해 별도로 입증되어야 할 사안이 아니었다.

 

관련 조항을 근거로 인권 보호에 앞장서야 할 방송심의위가 오히려 ‘성폭력 피해자는 인권 침해를 감내해야 한다’는 반인권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패널 다수가 성소수자 혐오 발언 쏟아냈는데 ‘기각’
지난 1월 10일,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은 EBS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논란’을 다루며 패널과 진행자가 입을 모아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내놓았다.

 

이날 대담에는 진행자 김광일 씨, 패널 최진봉(성공회대 교수)‧최진(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이수정(경기대 교수)‧최병묵(TV조선 해설위원) 등 총 5명의 패널이 출연했다. 


그러나 이 중 이수정 씨를 제외한 4명은 입을 모아 EBS를 비판했다. 특히 최진 씨는 “바이섹슈얼이나 레즈비언 이런 부분들을 조장하는 듯한, 오히려 그래서 교육 효과보다는 교육 역효과가 훨씬 더 많은 그런, 아주 바람직하지 않은 그런 프로그램” “개그맨들이 동성애를 상당히 재미있게 얘기를 해서 ‘동성애는 나쁘지 않네? 재미있을 것 같네’라는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드는 프로그램” 이라며 EBS <까칠남녀>를 맹비난했다. 


최병묵 씨 역시 “저런 문제를 특집 방송으로 하려고 하면 성소수자를 비판하는 사람과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사람을 갖다 놓고 균형 있게 문제를 다루면 또 그냥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저것은 조장하는 듯한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라고 지적하며 해당 프로그램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최진‧최병묵 씨처럼 함량미달의 발언을 내놓진 않았지만 최진봉 씨도 “너무 오락적인 내용이 포함되다 보니까 그게(동성애) 조장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또 그렇게 자극적인 내용으로 간다고 하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소지는 분명히 있는 것”이라 말했다.


이와 함께 진행자 김광일 씨는 패널에게 “중고등학교 아이를 불러내서 ‘누구야 좀 나오너라. 지금 너도 봐야 될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아, 같이 좀 보자꾸나’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거나, 대담이 종료된 후 “저런 프로그램 때문에 분명하게 불편해하는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에 EBS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을 좀 손보고 다듬을 필요는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며 주관적 편견을 드러냈다. 


그러나 방송이 성소수자를 ‘찬성’하고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같은 분량으로 들려줘야 할 이유는 없다. 성정체성은 존중되어야 하는 인간 존엄성 및 기본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나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패널의 이러한 주장은 결국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며, 이런 발언은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존중되어서는 안 된다.  


이에 민언련은 1월 16일 이 방송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1조(인권 보호)와 제30조(양성평등)는 물론이고 방송심의규정 제7조 방송의공적책임, 제14조 객관성, 제25조 윤리성, 제27조 품위유지, 제29조 사회통합, 제31조 문화 다양성 존중을 모두 위반했음을 지적하며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방통심의위는 해당 민원을 기각했다.

 

이러한 패널들의 혐오 발언이 “해당 프로그램으로 인한 사회적 공방 과정에서 불거진 비판 여론과 유사한 수준”이고 “동 프로그램과 관련된 찬반 양측의 입장을 함께 전달하는 등 성소수자를 부정적으로 다루려는 의도와 맥락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여러 가지 논란이 제기되면서 해당 프로그램이 조기 종영된 점 등을 고려할 때, 관련 규정을 적용하여 제재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이다. 위 방송은 ‘동성애를 청소년들이 보고 따라하게 될까 무섭다’는 발언을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서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특정 성 정체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그런데도 방통심의위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1조(인권 보호) 2항 “방송은 심신장애인 또는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을 다룰 때에는 특히 인권이 최대한 보호되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와 제30조(양성평등) 2항 “방송은 특정 성(性)을 부정적, 희화적, 혐오적으로 묘사하거나 왜곡하여서는 아니된다”와 무관한 사례라 본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판단은 “국민의 올바른 가치관과 규범의 정립, 사회윤리 및 공중도덕의 신장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방송의 공적‧윤리적 책임을 모두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단 1명의 패널을 제외한 모든 패널이 ‘반인권적 발언’을 쏟아냈음에도 ‘양쪽의 의견을 다 전달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Ⅱ. 방통심의위원 발언의 문제
논의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적지 않았다.

 

방통심의위는 3월 14일, 각종 방송 프로그램과 인터넷 게시글·영상물에서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피해 상황에 대한 자극적 재연·묘사 △인적사항 공개를 통한 인권 침해 △성범죄 희화화 등이 발생할 경우 신속하고 엄중한 제재를 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심의위는 미투 운동이 본격화 된 이후, 자극적·선정적 보도가 범람하며 피해자 인권 침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는 점을 조치의 배경으로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엄중 심의’ 선언이 무색하게도 일부 4기 방통심의위원들은 관련 심의 과정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겪을 고통보다 ‘방송사의 보도 관행 수호’에 더 몰두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미 발생한 성폭력, 성매매 사건을 소재로 삼은 방송 심의만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여성 출연진이 갑작스럽게 신체 접촉을 당한 상황을 ‘로맨틱’하다고 포장한 예능프로그램, 내시를 ‘권력을 얻기 위해 교태를 부리는 여성의 모습’으로 묘사한 개그프로그램 등에 대한 심의에서도 일부 심의위원들은 꾸준히 ‘아무말’을 이어나갔다. 그 사례를 각 방송별로 정리했다. 

 

 

1) 불법 촬영 범죄, 문제 보도 내는 게 ‘기자 근성’?
 

안건 내용
TV조선 종합뉴스7 <몰카 편집 성매매 광고로 14억 챙겨>(2017/9/17)와 연합뉴스TV <뉴스10>(2017/9/17)에서 불법촬영 범죄에 대해서 보도하면서, 피해 여성의 신체 일부가 촬영된 사진을 일부 모자이크 또는 흐림 처리하여 자료화면으로 방송했다. 특히 TV조선은 성매매업소 광고화면도 함께 노출했다. 


방송의 문제점
TV조선은 18초에서 37초까지, 19초가량을 할애해 불법 촬영되어 공유된 여성들의 사진을 ‘하나 마나한 모자이크’를 덧씌워 보여줬다. 그리고는 다시 1분7초부터 1분15초까지 8초가량은 일당이 사이트 한쪽에 띄워놓은 성매매업소 광고를 ‘약간의 모자이크’를 더해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문제의 광고를 크게 확대하기도 했다. “남성들이 선호하는 Sexy 란제리 구경하기” “텐프로 이상의 걸들의 향연” 등의 선정적 문구는 모자이크 없이 그대로 보였다.

 

불법촬영의 위법성을 강조하는 공익적 취지보다는 몰카, 성매매 등의 선정적 소재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어보려는 속내가 역력하게 드러난 보도였다. 특히 불법촬영 피해자들의 사진을 재유포하는 이런 행태는 2차 가해가 될 소지가 있다.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과 성폭력 사건 보도 실천요강은 한 목소리로 언론이 성폭력 범죄의 범행 수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특히 피해자를 범죄 피해자가 아닌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선정적 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불법 촬영을 자행한 일당을 검거했다는 보도는 그 자체로 공익적 성격을 지니지만, 방송에서 ‘불법 촬영 피해자’의 모습을 부각하는 '그림'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 방송보도에서 여성의 신체 부위를 부각해 선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불법 촬영은 범죄’라는 메시지를 주기보다 호기심만을 자극할 수 있다.


특히 TV조선은 성매매 업소 광고화면까지 보도에 활용했다는 점에서 방송심의규정 제30조(양성평등) 5항 ‘방송은 성폭력, 성희롱 또는 성매매 등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묘사하거나 선정적으로 재연하여서는 아니 된다’와 제35조(성표현) 2항 ‘방송은 성과 관련된 내용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묘사하여서는 아니 되며 성을 상품화하는 표현을 하여서도 아니 된다’를 위반한 것이었다.

 


심의 결과
방통심의위원들은 이 방송을 심의하면서 별일 아닌 것으로 취급했고, 행정지도조차 필요 없는 ‘문제없음’ 결정이 내려졌다. ‘피해자가 있는 사건인 만큼 최대한 정제된 영상을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한 위원은 윤정주 위원 단 한 명 뿐이었다. 

 


방통심의위원의 주요 발언


“이런 보도는 어떤 보도보다도 굉장히 신중해야 될 것이고, 또 영상도 굉장히 정제된 영상을 써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번 것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문제를 삼는 것이고요. 저는 세 분이 ‘문제없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에 대해서 심히 유감입니다” (윤정주 위원)


“무엇이 문제이고 범죄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런 것 없이 어떻게 보도가 가능한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고요” (심영섭 위원)


“그러니까 홈페이지 다시보기를 내렸다는 말이지요. 이런 것들이 사실은 고민의 결과라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분들이 단순히 심의를 피해가기 위해서, 심의를 염려하면서 왜 만듭니까? 일단 만들고 난 뒤에 두드려 맞는 것이지. 그것이 기자 근성입니다” (전광삼 위원)


“그리고 이런 것들이 여성들한테 부지불식중에 지나갈 수 있는 그런 상황들에 대한 어떤 경각심을 심어준다고 하는 측면에서, 이런 수사 결과 보도는 필요하다고 보고요.” (전광삼 위원)


“또 여자화장실 몰래카메라 부분도 문제가 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제가 볼 때는 여성들이 화장실 들어갈 때 한 번 씩 살펴보라는 주의사항, 정보가 될 수도 있고” (박상수 위원)

 

심의에 대한 평가 
우선 전광삼 위원의 “이런 것들이 사실은 고민의 결과라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분들이 단순히 심의를 피해가기 위해서, 심의를 염려하면서 왜 만듭니까? 일단 만들고 난 뒤에 두드려 맞는 것이지. 그것이 기자 근성입니다”라는 말은 기자 근성을 가진 기자라면 오히려 방송심의규정을 어겨가면서 선정적인 보도를 하고 봐야한다는 의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기자를 응원하고, 방송사가 이후 슬쩍 홈페이지에서 내리면 방통심의위는 그런 행태를 종합해서 봐주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말은 방통심의위 심의국이 아니라 종편 보도국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심각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박상수 위원과 전광삼 위원은 이러한 보도가 “여성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여성들이 화장실 들어갈 때 한 번씩 살펴보라는 주의사항, 정보가 될 수도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여성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좋은 정보’를 주기 위해서라면, 아예 불법촬영 영상을 그대로 보여줘도 봐주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막말이다. 또한 이는 불법촬영의 발생 원인과 책임을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황당한 태도다.


심영섭 위원은 “무엇이 문제이고 범죄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런 것 없이 어떻게 보도가 가능한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 보도에 ‘반드시 실제 사건 관련 그림이 들어가야 한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제작진의 안이한 관행일 뿐이다.

 

방송심의규정의 철학과 각종 가이드라인을 인지한다면 그림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낼 화면과 내지 말아야 할 화면을 구분해야 한다. 시청자는 피해자들의 불법 촬영 사진이나 성매매 업체 광고를 보여주지 않아도 그 범죄가 무엇이며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다. 


‘그런 것 없이 어떻게 보도가 가능한지’는 같은 사건을 보도한 SBS의 <‘몰카’ 2만 장으로 200만 회원 모집>(2017/9/17)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SBS 보도에서는 피해 여성의 사진 등은 15초가량만 노출되고 있으며, 그나마도 얼굴만이 아닌 신체 전체에 강한 모자이크를 덧붙였다. 보도 내에 이들 일당이 받은 성매매 업소 광고를 직접 보여주지 않고, 이를 지적한 경찰 측 자료를 자료화면으로 이용했다. 이정도 보도만으로도 시청자들이 어떠한 일이 발생했는지 이해하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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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의 '불법 촬영 사이트' 운영 및 성매매 광고 일당 적발 관련 보도 자료화면(2017/9/17) 

 

 

2) ‘여자 동료’가 피해자를 안 도와줘서 삽화보도 같은 것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안건 내용
지난 1월 TV조선 <뉴스9>는 서지현 검사의 검찰 성추행 폭로를 다룬 <8년 전 무슨 일이···장관 옆에서 ‘성추행’>(2018/1/30)보도에서, 한 남성이 같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있던 여성 쪽으로 몸을 기울이거나, 해당 남성이 여성의 허리에 손을 얹고 있는 입체 삽화를 만들어 방송했다. 

 


심의 결과
이 방송에 대한 심의 결과는 가장 가벼운 경징계인 행정지도 ‘의견제시’에 그쳤다. 

 


방통심의위원의 주요 발언
 

“피해를 당한 사람은 100년이 지나도 그 느낌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삽화를 보게 되는 피해자의 경우에는 그 내용보다는 그 당시의 일을 떠올리면서 훨씬 더 많은 충격과 그 당시의 아픔이 그대로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저는 문제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삽화를 그릴 때나 성희롱, 성폭력, 성추행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에는 피해자가 생존해 있기에 조금 더 신중하게, 그리고 피해자가 이것들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을 받을까 라는 것까지 기자들이 생각해서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윤정주 위원)


“‘미투(Me too)’나 ‘위드유(With you)’ 같은 운동의 핵심이 피해자 보호거든요. 피해자를 보호해야 되고 또 가해자에 대해서 시선을 계속해서 맞추어 가야 되는 것이어서 그런 면에서 보자면 176호를 문제없다고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또 법정제재할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고” (허미숙 부위원장)


“이 여자 분이 저렇게 해서 이런 피해를 당했구나, 오히려 이런 것은 사실은 더 보도를 해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야 되는 문제이지, 자꾸 수위를 낮추고 감추고 이럴 문제가 아니거든요” “나머지 것까지 여기에다 적용시켜서 이야기를 하면 성폭력·성추행 피해 이런 것 들을 기사화하기 어렵고 점점 기자들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피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해서 그 증언을 이야기한 것인데, 그것까지 문제 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보도 통제입니다.” (전광삼 위원)


“선정적이거나 그런 것을 문제 삼을 만한 내용이 없고요, 제가 볼 때. 방송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서지현 검사가 폭로하면서 아마 이런 정도까지는 다 감수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고요” “이런 내용이나 이런 삽화까지 문제를 삼는다면, 언론 활동을 상당히 위축시키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문제가 없다.” (박상수 위원)


“만약에 이렇게 보도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서 검사 건은 묻혔을 것이에요. 서 검사 건은 아무도 안 도와주었어요. 서 검사가 나와서 계속 그렇게 하고 다닐 때에도 여자 동료라고 하는 사람들도 안 도와주었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보도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지요.” (심영섭 위원)


심의에 대한 평가 
전광삼 위원과 박상수 위원, 심영섭 위원은 ‘이 정도는 선정적이지 않다’, ‘이런 것을 제재하면 방송 못 한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특히 전광삼 위원은 “오히려 이런 것은 사실은 더 보도를 해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야 되는 문제이지, 자꾸 수위를 낮추고 감추고 이럴 문제가 아니거든요”, “성폭력·성추행 피해 이런 것들을 기사화하기 어렵고 점점 기자들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라고 말했다.

 

성폭력, 성추행을 보도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보도를 많이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구체적 피해 사실 묘사 없이도 성폭력 사건 보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전광삼 위원은 방송심의규정을 지키고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것을 성폭력, 성추행을 은폐하자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 아닌가 싶다. 기자들 역시 성폭력, 성추행 보도를 기사회할 때 지금보다 조심하고, 주의해야 한다. 주의를 기울여 보도를 하는 것과 위축되어 제대로 보도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박상수 위원은 “서지현 검사가 폭로하면서 아마 이런 정도까지는 다 감수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고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고 해서 해당 피해자가 언론이 피해상황을 불필요하게 묘사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까지 허용했다고 봐서는 안 된다. 이는 언론의 2차 가해를 정당화 한다는 측면에서 부적절한 발언이다. 


심영섭 위원은 “만약에 이렇게 보도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서 검사 건은 묻혔을 것이에요. 서 검사 건은 아무도 안 도와주었어요. 서 검사가 나와서 계속 그렇게 하고 다닐 때에도 여자 동료라고 하는 사람들도 안 도와주었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보도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지요”이라고 말했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피해 당시 상황을 묘사한 삽화를 넣어 보도 하지 않았다면 서 검사 건은 묻혔을 것이란 말인가. 게다가 ‘왜 여자 동료들도 안 도와줬다’는 말을 굳이 덧붙인 것인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서지현 검사가 성희롱으로 고통을 당한 것이 ‘여성 동료들 탓’인가. 


이날 심의에서는 답답함을 금할 수 없는 대화가 꾸준히 오고갔다. 피해자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엄중한 심의를 하겠다던 방통심의위원이 도리어 피해자 인권을 침해하는 수준의 막말을 쏟아냈다. 방통심의위원들은 ‘피해자들이 상처를 입건 말건 방송을 통해 사건 자체를 널리 알리기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방송에서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보도할 때는 그 내용을 재연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2018년 한국기자협회, 여성가족부,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가 새롭게 업그레이드해 발표한 <성폭력·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주세요> 역시 “영상보도의 경우 범행 내용을 선정적으로 재연하여 영상화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3) 실제 상황에는 벌거벗었을 텐데 삽화엔 옷을 입혔으니 문제없다?
 

안건 내용
TV조선 종합뉴스7은 <집단 성관계 알선하고 음란물 유포> 보도에서 여성 한 명이 남성 여러 명과 성관계를 갖는 집단 성매매 참가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보도는 가면을 쓰고 침대에 앉아있는 여성 주위에 여러 명의 남성들이 둘러서 있는 삽화 등을 자료화면으로 활용했다. 집단 성매매를 알선한 이들과 그 성매매에 가담한 이들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전하며 당시 상황을 묘사한 선정적 자료화면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MBN도 같은 날  <대낮에 집단 성매매>에서 같은 사건을 전했으나, 이러한 삽화는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심의 결과 
TV조선 종합뉴스7 <집단 성관계 알선하고 음란물 유포>는 가장 낮은 수위의 경징계인 의견제시(행정지도)를 받았다. 

 


방통심의위원의 주요 발언과 이에 대한 평가 
전광삼 위원은 논의 과정에서 “집단 성관계한 보도에 삽화를 쓰면 또 그런 삥 둘러서있는 것을 안 쓸 수도 없을 것이고. 참 저도 난감합니다”라고 말했다. 선정적 삽화 없이는 성범죄 관련 보도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박상수 위원은 “삽화는 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실제 상황에서는 이렇게 옷을 입히지는 않았을 것이에요. 다 벌거벗은 상태였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이 정도면 양호하다’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 중 더 황당한 것은 박상수 위원이다.

 

그는 성매매 사건 상황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다룬 것을 문제 삼았다. 성매매를 다룬 보도에서 누가 얼마를 받고 어떤 행위를 했는지를 보도하는 것은 물론 부적절하다.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가 펴낸 <성매매 없는 세상을 여는 언론가이드>에서는 특히 기존 성매매와 다른 새로운 유형의 성매매를 보도할 때 건조하게 보도하기를 권했다.

 

새로운 성매매 업소나 형태를 전하면서 관련 정보를 지나치게 상세하게 전달하는 것은 일종의 업소 홍보도 될 수 있고, 해당 불법행위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고, 성구매 수요를 부추길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상수 위원이 이 보도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며 그 근거로 댄 말은 “(여성) 대학생과 주부들이 이 내용 들으면 또 솔깃할 소지도 있기 때문”이었다.

 

성 매수자가 아니라, 유독 ‘성 판매자’에 초점을 맞춘 지적인 것이다. 게다가 ‘성 판매자’가 될 사람들이 ‘(여성)대학생과 주부들’일 것이라고 예측한 것도 편견이다. 


박상수 위원은 또 다른 방송 심의에서도 이와 비슷한 발언을 한 바 있다.

 

MBC 생방송 오늘아침에서 <재택근무로 월수입 3,000만 원? 주부 유혹하는 알바의 실체>(2017/11/13)에서 아르바이트 명목으로 인터넷 음란방송 및 컴퓨터 영상통화를 하는 주부들의 사연을 선정적으로 다룬 내용을 심의하면서 박상수 위원은

“전업 주부들이 집에서 이 프로그램을 봤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 상당히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해서 돈벌이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정보를 제공할 소지도 있고요. 그래서 상당히 이것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봅니다”

라고 말했다. 덧붙여 MBC 생방송 오늘아침의 의결 결과는 권고(행정지도/경징계)였다. 

 

 

4) ‘SNS에 다 나온 내용’이니 방송에서 언급해도 상관없다?
 

안건 내용
IFM 이종근 장한아의 시사포차는 <사건포차> 코너에서 이윤택 성폭행 사건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피해자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심의 테이블에 올랐다. 

 


심의 결과
대다수 위원들은 방송에서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성폭력 피해 사실을 묘사할 경우 2차 피해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러나 결국 심의위원들은 이 방송에 의견제시(행정지도/가장 낮은 수위의 경징계)를 의결했다. 

 


방통심의위원의 주요 발언과 이에 대한 평가 
전광삼 위원은 논의 초반 “그 당시에는 그런 내용들이 뉴스에 다 보도가 되고 이런 상황이었으니까. SNS에 있는 글, 전문 전체가 언급되고 이런 데도 있거든요. 인터넷 상에서는 피해 당사자가 올린 글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인데, 그것을 일부 발췌해서 이야기하는 것까지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지나친 제재”라고 말했다. 그의 의결의견은 ‘문제없음’이었다. 방송의 영향력과 사안 자체의 심각성을 판단해야 할 심의위원이 ‘인터넷에 다 나온 내용이니 괜찮다’는 논리를 주장의 주요 근거로 꺼내든 것이다.

 

 

5) 스타덤 누리니까 ‘연예 저널리즘’ 감내해라?
 

안건 내용
MBC-TV <섹션 TV 연예통신>은 <팩트체크 사실은> 코너에서 여성 연예인의 합성사진 유포사건을 보도하며 해당 합성사진을 일부 가림 처리해 노출하고, 합성사진과 원본사진을 비교해 진위 여부를 분석을 시도했다.

 

해당 방송분은 합성사진에 대한 가림처리를 제대로 했으며, 코너명 그대로 ‘팩트체크’를 통해 사진이 합성임을 재차 알리기도 했다.

 

문제는 방송 시점이었다. 해당 연예인의 소속사는 문제의 사진이 합성사진이며 제작․유포자를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방송사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일주일 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 <섹션 TV 연예통신>은 굳이 해당 이슈를 ‘팩트체크’ 운운하며 방송에서 재차 언급하고, 이 과정에서 과거 다른 여성 연예인들의 유사 사례를 보여주기도 했다. 

 


심의 결과
대다수 위원은 이런 사안을 계속 언급하는 제작진의 의도에 우려를 표하며 의견제시, 권고 등을 제시했으며, 의견제시(행정지도/가장 낮은 수위의 경징계)로 최종 의결됐다. 

 


방통심의위원의 주요 발언과 이에 대한 평가 
반면 심영섭 위원은

“유명인으로서 자기가 스타덤을 가지고, 어쨌든 누리면서 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도 자체를, 혹은 그런 사람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방송에서 거론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다면, 아마 뒷 번호에 있는 대부분의 채널들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며 “연예 저널리즘에 대한 것들도 상당 부분은 어찌 되었든 용인”

 

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끝내 ‘문제없음’을 주장했다. 


저널리즘, 언론표현의 자유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공적 사안도 아닌 개인 사생활 관련 루머에 대한 부적절한 방송을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참고 넘기라 요구해서는 안 된다.

 

특히 누드 합성사진 유포는 피해 당사자에게 큰 고통을 주는 심각한 범죄다. 이런 사안에 대해 ‘연예 저널리즘’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며 ‘피해자의 감내’를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2차 가해라고도 할 수 있다. 

 

 

6) ‘입술 뽀뽀’는 아니니까 괜찮다?
 

안건 내용
MBC <오지의 마법사> 지난해 12월 10일 방송은 시칠리아 여행 중 배에 탑승하여 낚시를 체험하던 여성 출연자가 물고기를 낚는 것에 성공하자, 남성 선장이 출연자의 어깨를 감싸고 얼굴에 입술을 맞추는 등 수 차례 신체 접촉을 하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냈다.

 

더 큰 문제는 제작진의 태도였다. 문화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과도한 신체 접촉이었음에도, 제작진은 이러한 장면에 하트 이미지와 ‘로맨틱 파파’ 등의 자막을 붙여 내보냈다. 사실상 성추행 장면을 미화한 셈이다. 

 


심의 결과
심의위원들은 다수결로 이 방송을 ‘문제없음’으로 의결했다.

 


방통심의위원의 주요 발언과 이에 대한 평가 
윤정주 위원과 전광삼 위원은 제작진이 최소화했어야 할 장면을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내보내고, 나아가 이를 ‘로맨틱한 장면’으로 포장했다며 의견제시를 주장했다. 


반면 허미숙 소위원장과 심영섭, 박상수 위원은 달랐다.

 

이 방송의 주요 쟁점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신체 접촉 장면을 ‘미화’해 전달한 제작진의 태도에 있다. 따라서 ‘당사자들의 의도’나 ‘심정’을 추측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 세 방통위원들은 ‘문화적 차이’와 함께 ‘시칠리아 선장이 흑심을 품은 것 같지는 않다’ ‘당사자가 그 자리에서 별로 불쾌감을 표현하지 않았다’ ‘입술 뽀뽀는 아니었다’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문제없음’ 의견을 냈다. 


특히 박상수 위원은

“화면을 보니까 시칠리아인이 무슨 흑심을 품고 출연자 어깨를 감싸고 얼굴에 뽀뽀를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만약에 입술에 뽀뽀를 했다면 문제의 소지가 크겠지만, 그 후로 출연자가 나중에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까, ‘그것도 몇 번 받아보니까 익숙해지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 크게 불쾌감을 느끼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라고 발언했다. 


허미숙 부위원장 역시

“같은 연령대의 사무처 팀장님들한테 물어봤어요. 만일 연인이나 아내가 같이 있을 때, 자신의 아내나, 연인에게 이런 상황이 일어났을 경우에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더니 일과성이면 인정한다, 괜찮다. 조금 주목하는 심정은 될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그런데 이런 장면을 모두 잘라내라고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심영섭 위원도 “사실 성추행 의도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라며 의도를 운운했다. 이에 더해 심영섭 위원은 “우리가 결론을 내고 나면, 이태리 신문에까지 ‘의견제시’ 받았다고 나는 것은 조금 아닌 것 같고요”라는 황당한 주장을 덧붙이기도 했다.

 

국내 프로그램의 해외 촬영 방송분에 대한 심의를 진행할 때, 해외 언론의 반응을 고려하며 심의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7)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덤벼들지 말자?
 

안건 내용
지난 4월과 5월에 걸쳐 방송된 KBS-2TV 개그 콘서트 ‘내시천하’ 코너는 내시의 신체적 장애를 조롱하며 ‘열등한 남성’으로 묘사하고, ‘외모 치장’과 ‘애교를 통한 신분상승’을 꿈꾸는 존재로 희화화했다.

 

상선 역할을 맡은 남성 개그맨이 중전이 되겠다며 세자에게 애교를 부리자 세자가 “더러워. 꺼져. 징그러워”라는 반응을 보이며 도망치는 모습은 물론이고, 명품 부채를 들고 명품 가마를 타고 있는 ‘내시 중전’의 모습을 합성 사진으로 만들어 보여주거나 ‘남자만 하는 하체 운동을 내시가 한다’고 지적하는 장면도 나온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혐오를 웃음의 소재로 활용한 것이다. 민원취지를 고려한 적용조항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1조(인권보호)제3항, 제30조(양성평등)제2항, 제30조(양성평등)제3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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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개그콘서트 내시천하 4월 22일 방송분 화면 갈무리

 

 

심의 결과
행정지도 중 가장 낮은 징계인 ‘의견제시’로 심의 결과가 모아졌다.  

 


방통심의위원의 주요 문제 발언과 이에 대한 평가 
논의 과정에서 박상수, 전광삼, 심영섭 위원은 ‘그냥 웃음을 주는 개그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주장을 반복하며 인권보호 및 양성평등 조항 적용을 거부했다. 


먼저 박상수 위원은 “양성평등에 어긋났다고 그러는데, 코미디 프로그램인데 해당 없다” “개그 프로그램이 당연히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가 없으면 개그가 아니다”라며 성 기능을 잃어버린 사연에 대해서 지나치게 부각했으니 오히려 품위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영섭 위원도 “저도 세 가지 조항 모두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질 개그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심의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들고요”라며 ‘저질 개그’라는 점만을 문제 삼았다. 


특히 전광삼 위원은

“개그라는 것이 웃어달라고 하는 방송이잖아요? 너무 품위 있게 웃음을 주기를 기대하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하면 한 때 그렇게 인기 있었던 영구, 맹구 시리즈 다 약간 지체장애인들을 비하하는 것이 되고요. 그러면 그것 다 심의를 했어야 됐었어요. 바보 역할을 하는 것은 나와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고요. 코 찔찔 흘려가면서 나오는 것이 품위도 안 되는 것이고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내시 하셨던 분들이 다 돌아가시지 않았나요? 살아 계시는 분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러면 사자 명예훼손을 집어넣든가. 너무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덤벼드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질스럽기는 해요. 그런데 저질 코미디도 하나의 장르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보면서 이 적용조항이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주장했다.


약자와 소수자를 비하하는 개그가 당사자들에게 어떤 아픔을 주는지, 사회적 편견을 얼마나 강화하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재미’를 심의 기준으로 내세운 것이다. 방통심의위원이 내놓은 의견이라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나마 윤정주 위원은

“맹구, 영구 등의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지체장애인의 부모는 웃지 못했을 것”이라며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지만, 그 웃음 뒤에 누군가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면 조금 더 깊게 들어가야 된다는 의견”

을 제시했다.    

 

 

위원 구성 다양화해 소수자 대표성 보장해야 
검토 내용을 감안하면, 4기 방통심의위가 ‘성인지적 관점에서 방송프로그램의 성차별적 표현을 적극 심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일부 위원들은 연령, 성별 등 자신이 속한 집단(계층)의 관점에 충실한 심의를 진행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였다.

 

물론 연령과 성별 등에 따라서만 심의 성향이 결정되는 건 아니며, 위원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보편적 시각·상식에 의거해 심의를 하는 게 문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문제의 핵심은 오히려 다양한 젠더와 연령 등을 대표할 수 있는 위원 구성이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며, 위원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부 위원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른 성인지 관점 업데이트를 위한 노력 등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4기 방통심의위가 그나마 양성평등 및 소수자 보호 관련 심의·의결 ‘건수’나 논의 태도 등에서 3기 방통심의위에 비해 나아진 모습을 보인 것은, 4기 방통심의위 위원 9명 중 3명이 여성 위원이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실제 전원 50대 이상 남성으로 구성된 지난 3기 방통심의위는 정치심의뿐 아니라 소수자 혐오 심의로 악명을 떨쳤다.

 

3기 방통심의위는 살인 사건 피해자를 ‘가방녀’로 칭한 SBS <모닝와이드>와 ‘한국 남성들이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동남아 등 국제결혼을 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소개한 JTBC <썰전>에 모두 ‘권고’라는 경징계 제재를 결정했다.

 

출연자의 신체 특정 부위와 관련해 ‘성희롱 자막’을 붙여 논란이 인 MBC <일밤> ‘진짜사나이’ 코너를 심의하면서는 “나에게 그랬다면 기분이 좋았을 것 같다”는 등의 황당한 발언을 쏟아냈다. 당사자 간 동의 없이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문제의식 없이 내보낸 MBC 드라마 <전설의 마녀>는 아예 ‘문제없음’을 의결했다.

 

반면 JTBC <선암여고탐정단> 동성키스신에는 ‘중징계’를 내렸다.

 

지난해 5월 ‘미디어 내 성평등을 위한 연속토론회 2부’에서 공개된 방통심의위 ‘1~3기 위원회별 양성평등 관련 심의 건수’에 따르면, 양성평등 위반 건에 대한 법정 제재가 여성위원이 있던 1기와 2기에는 각각 13건, 21건에 달했으나, 여성위원이 없던 3기(2014년 6월~2017년 5월까지)에는 5건의 법정 제재만 나왔다. 이는 방통심의위 위원의 구성이 심의에 영향을 끼친 명백한 증거다.


방통심의위가 방송의 인권침해 가능성으로부터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두루 보호하려면 심의 위원 구성을 다양화해 소수자 대표성을 보장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시급하다.

 

특히 보편적 인권과 여성, 소수자 등의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온 전문가가 위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번 4기 방통심의위 위원 중 여성과 소수자 인권 보호 관점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심의를 진행한 것 역시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이었다.

 

이미 구성된 4기 방통심의위 역시 남은 임기 동안 보다 실질적인 양성평등 심의, 소수자 목소리를 대변하는 심의 방안을 고민하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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