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보도 속 대피소 이재민 얼굴 노출, 정말 필요한가
등록 2017.11.2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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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 발생 관련 방송 보도에서 대피소에서 새우잠을 자는 이재민의 모습, 컵라면을 먹고 있는 이재민의 얼굴을 우리가 꼭 보아야할까요? 그들을 구경거리처럼 보여주지 않고서는 현장 상황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던 것일까요? 피해를 입은 어린이의 심경 인터뷰가 꼭 필요했던 것일까요?

 

민언련은 이런 방송보도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 관련 규정을 찾아보고, 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재민들의 얼굴을 마구잡이로 노출한 언론 보도 화면을 검토해보았습니다. 

 

 

이재민 얼굴노출 관련 규정 
방송심의규정 ‘제3절의2’(재난 등에 대한 방송) 중 제24조의3(피해자의 안정 등)에서는 “방송은 피해자 또는 그 가족(이하 이 절에서 “피해자등”이라 한다)이나 시청자의 안정 등을 저해할 수 있는 다음 각 호의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면서 ③항으로 ”피해자 등 또는 시청자의 안정을 저해하거나 공포심․수치심 등을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하지 말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제24조의4(피해자등의 인권 보호)에서는 “방송은 피해자등의 인권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하여 다음 각 호의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그러한 조치를 할 수 없거나 오직 공익 목적을 위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면서 ①항 “피해자등의 영상․음성 등의 촬영에 대한 사전 동의가 없거나 그 촬영 내용의 방송에 대한 피해자등의 의견이 반영되지 아니 한 내용”, ②항 “피해자등의 인적사항 공개로 그 사생활이 침해될 우려가 있는 내용”, ③항 “그 밖에 피해자등의 인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는 내용”을 방송에 내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명시했습니다. 


방송심의규정보다 보다 섬세하게 관련 내용을 규정해놓은 것도 있습니다. 바로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4년 9월 16일 한국신문협회・한국방송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공동으로 제정한 ‘재난보도준칙’입니다.

 

재난보도준칙 제15조(선정적 보도 지양)는 “피해자 가족의 오열 등 과도한 감정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재난 상황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흥미위주의 보도 등은 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반복 보도는 지양한다. 불필요한 반발이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지나친 근접 취재도 자제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제18조(피해자 보호)에서는 “취재 보도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제19조(신상공개 주의)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제21조(미성년자 취재) “13세 이하의 미성년자는 원칙적으로 취재를 하지 않는다. 꼭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부모나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더 상세한 규정으로는 2015년 7월 1일 발표한 ‘KBS 재난보도준칙’이 있습니다. 해당 준칙 7번 선정적 보도 지양 ③항은 “불필요한 반발이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지나친 근접 취재를 자제한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10조(피해자 배려와 인권 보호) ①항은 “취재 보도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 사항을 존중하고,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③항은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인터뷰 대상자는 블러처리하고 잠든 이재민 얼굴은 확대 
이러한 규정들을 알고 나서 방송을 보면 어떨까요?


우리 언론사는 진보 보수를 떠나 대부분 아무렇지도 않게 이재민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가장 흔한 행태는 ‘잠든 이재민’ 혹은 ‘식사중인 이재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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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보도 속 이재민 사생활 노출/모자이크는 민언련

 

예를 들어 KBS <60여 명 부상…이재민 1,300명 넘어>(11/16 https://goo.gl/SGjZ9L), <공간 부족․불편한 시설…지친 이재민들>(11/18 https://goo.gl/2QFCMa) 등의 보도는 인터뷰 대상이 아닌, 대피소에서 식사를 하거나 누워 쉬는 이재민들의 모습을 자료화면으로 반복하여 노출하고 있습니다.

 

<이 시각 대피소…의료 지원단 보강>(11/17 https://goo.gl/jpW81v)에서는 보도 말미 대피소에서 생활중인 어린이 얼굴을 크게 노출하고 있기도 합니다. 반면 <내일 학교로 분산 수용>(11/18 https://goo.gl/RXHD7c) 등의 보도에서는 특정 이재민의 얼굴을 노출하지 않고, 풀샷 등을 이용해 대피소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MBC <밤사이 두 차례 여진…불안한 포항>(11/18 https://goo.gl/qH7rZo) 역시 잠든 이재민들의 얼굴을 자료화면을 통해 반복하여 노출했습니다.

 

SBS의 경우 <대피소인지 난민 수용소인지…>(11/18 https://goo.gl/c9mPWP)나 <부상자 82명으로…주말 봉사 행렬>(11/18 https://goo.gl/oS2RVr) 등에서는 모자이크 처리나 풀샷 등을 통해 대피소 상황을 전달했으나, <밤새 뜬 눈으로 “집에가기 두렵다”>(11/16 https://goo.gl/oqbqSi)에서는 보도 말미 대피소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이재민의 얼굴을 노출했습니다. 
  


JTBC부터 MBN까지 상황 비슷
종편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JTBC는 <잦아든 여진…포항 시설피해 신고 ‘눈덩이’>(11/18 https://goo.gl/kBpqgM), <‘대피소 생활’ 극심한 피로감…기온까지 뚝>(11/17 https://goo.gl/2cQaDm) 등에서 대피소에서 누워 휴식을 취하는 아이와 노인의 얼굴 등을 노출했습니다. 

 

K-019.jpg△JTBC 보도 속 이재민 얼굴 노출/모자이크는 민언련

 

TV조선도 <이 시각 포항/불안 여전…피해 계속 늘어>(11/17 https://goo.gl/2Jb3xg), <“쿵 소리만 들어도 가슴 두근두근>(11/18 https://goo.gl/2i5v8S), <여진에 떨고 추위에 또 떨고…>(11/18 https://goo.gl/5W7j52) 등에서 인터뷰 대상자가 아닌, 쉬고 있는 이재민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노출하는 행태를 반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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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보도 속 이재민 얼굴 노출/모자이크는 민언련

 

채널A의 경우 <대피소 깨운 여진…맨발 대피>(11/20 https://goo.gl/tYbMnm)나 <체육관 텐츠 설치…지진 대피소 상황>(11/19 https://goo.gl/Ag1gCU) 등의 보도에서는 이재민의 정면 얼굴이 아닌 뒷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대피소 상황을 주로 전했으나, <“부스럭 소리에도 철렁” 집단 트라우마>(11/17 https://goo.gl/huzS1L), <하필 가장 추운 날 1500여 명 ‘덜덜’>(11/16 https://goo.gl/527MBx) 등에서는 누워 휴식을 취하는 이재민들의 모습, 특히 미성년자들의 이런 모습을 그대로 노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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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보도 속 이재민 얼굴 노출/모자이크는 민언련


MBN의 경우 <“덮을 담요도 부족”…이 시각 포항>(11/17 https://goo.gl/Xvwbkx) 등에서 클로즈업은 아니지만, 식사중인 이재민의 얼굴을 ‘식별 가능한 수준’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같은 사람의 모습을 어떤 보도에서는 가리고, 또 다른 보도에서는 그냥 노출했다는 측면에서, MBN이 재난 보도 속 이재민 모습 노출에 대한 기준을 전혀 세우지 않고 보도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듭니다.

 

실제 MBN은 <트라우마 호소>(11/17 https://goo.gl/W2oHca)에서는 대피소에서 누워 쉬는 이재민의 얼굴을 ‘블러 처리’를 하여 내보냈는데요. 이틀 뒤 <오늘 4차례 여진…불안 떠는 이재민>(11/19 https://goo.gl/cU4cYi)에서는 해당 이재민의 모습을 그냥 노출합니다.

 

이 이재민의 얼굴은 이미 모자로 어느정도 가려져 있기는 합니다만, 대체 어떤 기준으로 MBN이 블러처리를 하고 있는것인지 궁금해집니다. 혹시 이재민 인권이 아닌, 과거 영상을 재탕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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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모습을 한 번은 블러처리하여 내보내고, 다른 한 번은 그냥 내보낸 MBN

 


‘잠 못드는 밤’ 보여주겠다며 늦은 밤 대피소 취재는 무례한 행동
‘잠 못드는 대피소의 밤 풍경’을 보여주겠다며 밤늦은 시간까지 대피소 내 인터뷰를 진행하는 취재 행태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MBC <불안과 추위에 뜬 눈으로 지샌 밤>(11/16 https://goo.gl/Rnmp9q)은 이재민들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며 어둠이 내려앉은 대피소 풍경을 자료화면으로 보여주었는데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어두운 대피소 안에서’ 굳이 이재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TV조선도 <나흘째 뒤척뒤척…잠 못드는 밤>(11/18 https://goo.gl/tDgKvc)에서 “대피소 주민들은 불편하고, 또 불안해서 좀처럼 잠을 청하지 못하고 있”다며 상당수 이재민이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어두운 대피소 안에서 이재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취재를 빌미로 언론이 이재민들 늦은 밤 휴식을 방해한 꼴입니다.  

 

 

불필요한 미성년자 인터뷰, 굳이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지 않는다면 하지 말아야 할 미성년자 인터뷰도 등장했습니다.

 

MBC <여진 공포 속 첫 등교…이재민 ‘막막’>(11/20 https://goo.gl/dL2qVi) 보도 속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의 “친구들 표정이 무서워하는 것 같았어요. 건물이 무너지면 친구들이랑 다쳐서 못 나올까 봐…” 등의 인터뷰 내용이 원칙을 포기하면서까지 보여줘야했던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MBC는 이런 인터뷰 대상 어린이들의 얼굴을 모두 노출하고 있기도 합니다.

 

JTBC 역시 <초등생들 마음에 남은 ‘지진’>(11/20 https://goo.gl/9gPzeV)에서 “아이들에게 지진은 공포 그 자체”였다며 불안감을 표하는 초등학생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나열했습니다. SBS <어린이들 지진 트라우마>(11/21 https://goo.gl/2id4No)는 지진 피해 어린이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으나, 최소한 해당 아동을 블러처리하는 ‘성의’는 보였습니다. 


반면 TV조선 <“학교 가기 겁나요”…첫 등교 ‘불안’>(11/20 https://goo.gl/VB8agJ)은 학부모와 학교 교장 등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만 보여주었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보도만으로도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전달하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재난보도준칙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실천하길
재난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언론의 의무이자 책무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꼭 그래야 할 필요성이 전혀 없음에도 관행 혹은 편의를 앞세워 피해자를 불편하게 하고, 그들의 안정을 해치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보도 행태가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마련되어있는 재난보도 준칙이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피해자 보호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합니다. 방송사와 시청자 모두 이제 이런 문제에 대해 논의하며, 보다 신중한 태도를 배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11월 16일~21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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