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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모니터위원회] JTBC <청춘시대> 모니터 보고서
등록 2016.09.2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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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시대>가 보여준 ‘우리들의 결핍된 청춘’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JTBC 드라마 <청춘시대>를 ‘좋은 드라마’로 선정했습니다. <청춘시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현실을 영상에 녹여내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습니다. 특히 청춘들의 결핍을 억지 극복하는 미담이나 훈계로 그리지 않고,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줌으로써 청춘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10월 6일(목) 저녁 7시 민언련 교육공간 <말>에서 열리는 <민언련 좋은 드라마상 수상식>은 이태곤 PD와 박연선 작가와 간담회도 열립니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에 관심 있는 분은 물론, 드라마 <청춘시대>를 사랑한 분이라면 누구나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10월 6일 저녁 7시 민언련 교육공간 <말>에서 좋은 드라마상 시상식과 제작진 간담회를 개최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

 


# ‘치유’나 ‘위로’의 힘을 빌리지 않은 공감의 힘
  쉐어하우스 ‘벨에포크’에는 5명의 여대생들이 모여 산다. 알바를 하느라 24시간이 부족한 진명,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쉽게 살고자 하는’ 이나, 본인의 약점을 숨기고 완벽한 연애를 꿈꾸는 예은,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지원, 세상에 첫 발걸음을 뗀 은재까지. 무언가 결핍된 그들은 그들 또래의 젊은이와 너무도 닮아 있다. 지금까지 미디어가 청년의 단면을 잘라 아픔을 조명하면서 진부한 위로를 건넸다면, JTBC 드라마 <청춘시대>는 다르다. 위로와 포장 대신, 실제 청춘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청춘시대>는 어떻게 청춘의 공감을 샀을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연상시키는 빠른 화면 전개와 해시태그(#)로 장식된 인트로 화면도 20대들에게 익숙했지만, 그 무엇보다 극 중 캐릭터야말로 <청춘시대>의 힘이다. <청춘시대>는 기성 드라마의 흔한 선악구조나 주연 중심의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났다. 그 결과 5명 등장인물 개개인의 스토리가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결핍된 면을 알면서도 모른 척 살아가고, 또 다른 결핍을 지닌 주변 인물들과 소통하면서, 그렇게 우리와 똑같이 살아간다.


  이러한 드라마 특색에 맞춰,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드라마 <청춘시대>를 비평하는 대신, 등장인물 5명의 삶을 그대로 옮겨보았다. <청춘시대>가 진부한 위로 대신 현실을 담담하게 그렸듯, 극 중 인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우리의 결핍을 직시하기로 한 것이다.

 

 

# 윤진명, 돈 없는 청춘
  진명은 가난하다.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동생, 엄마의 빚, 아르바이트 3개, 불안한 생계는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꿈도 사치로 만들어버렸다. 그녀는 이 가난이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무게라는 걸 알기에 다가오는 사랑도 거절한다.


“누가 날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약해져요. 여기서 더 약해지면 진짜 끝장이에요”


  알바를 쉬고 함께 놀자는 하우스 메이트들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사실 그녀도 ‘썸남’과 파티에 참가하는 상상을 한다. 그저 상상일 수밖에 없기에 더 가혹할 뿐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진명은 하우스 메이트 4명 모두를 부러워한다. <청춘시대>는 ‘하우스 메이트’들이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는 모습과, 같은 시간 진명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만 하는 청춘을, 아주 사소한 여유와 행복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진명’으로 집약해 보여주는 것이다. 시간에 쫓겨 버스를 탈 때도 항상 뛰어야 하고, 잠을 포기해야 하고, 맛있는 음식을 포기해야 한다. 진명에게는 친구도 연애도 가족도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드는 건 ‘갑질’이다. 진명이 일하는 레스토랑의 매니저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갑질’을 한다. 자존심이 상한 진명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반기를 들자 매니저는 그녀에게 ‘덜’ 절박하다며 오히려 비아냥댄다. 진명과 같은 을의 절박함을 이용해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현실 속에 흔하게 존재한다. 현실에서 을은 갑의 감정의 분출구가 되거나 쓰다 버리는 소모품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을이 감당해야 할 상처는 그들이 받는 최저시급 6030원에 산정되어 있지 않다.

 

 

#강이나, 잔인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잃은 청춘 
  기존 드라마의 단골 플롯은 하루아침에 재앙을 맞닥뜨린 주인공이 갑자기 나타난 조력자를 만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해피엔딩’이다. <청춘시대>에서 이런 ‘클리셰’를 벗어난 대표적인 인물이 ‘이나’이다. 이나는 재난으로 부모를 잃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슈퍼 조력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청춘시대>는 이나를 통해 어린 시절의 충격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우리 중 누군가를 보여준다.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해 항상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이나에게 미래에 대한 계획은 없다. 진명이 보편적 청춘들의 공감을 얻었다면 이나는 그 반대이다. 이나는 하우스 메이트들은 물론, 시청자들의 공감도 쉽게 얻지 못한다.


  하지만 반대편에 서있는 하우스 메이트와 우리도 그녀를 이해하려는 노력에 소홀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생각보다 훨씬 무관심하다. 이런 면에서 그녀의 모습은 이 시대의 폐부다. 드라마 속 사회는 현실 사회와 마찬가지로 재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를 외면한다. 사고의 트라우마는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된다. 자신의 삶을 놓아버리는 선택 또한 이나 개인의 탓으로 돌려진다.


 이나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수 있다. 참사 후 2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희생자와 그 가족, 그리고 생존자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종용하고 있다. 정부는 진상규명 없이 물질적 보상만으로 모든 책임을 덮으려 하고 보수언론은 광화문 세월호 천막을 걷자고 아우성이다. 참담한 현실에 세월호 의인 김동수 씨는 청문회 자리에서 정부를 향해 울분을 토하며 자해를 시도했다. 우리의 현실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기는커녕, 혐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에서 타인과 공감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나는 그래서인지 스스로 ‘쉽게 산다’고 말한다. 이는 관계를 포기하고 홀로 살기로 작정한 독백에 가깝다. 따라서 결코 ‘쉬운’ 삶이 아니다. <청춘시대>는 이나로 하여금 모두가 ‘홀로서기’를 감당해야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유은재, 청춘이 잃어버린 가족과 공동체
  은재는 갓 서울로 상경한 20살 새내기다. ‘은순이’라는 별명에는 순박하다 못해 소심한 성격이 배어있다. 은재의 이런 성격은 어린 시절 비롯됐다. 아빠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오빠를 죽였다는 사실을 은재 혼자만 알게 되었다. 아빠가 엄마까지 죽이려 하는 것도 혼자 눈치 채고 엄마를 살려냈다. 엄마가 재혼한 뒤, 은재는 쉐어하우스 벨에포크로 들어왔다.


  가족이라는 유대가 은재에게 결핍된 요소이다. 온전한 가족 공동체를 일찍이 상실한 탓에 늘 새로운 집단을 두려워하고, 자신만의 세상에 매몰된다. 항상 혼자였기 때문에 그녀에겐 남을 이해하는 힘이 부족했다. 그런 은재에게 처음으로 공동체라는 울타리가 생긴다. 은재는 벨에포크의 하우스 메이트들과 상호작용하며 잃어버린 유대감을 찾는다.


  은재에 대한 치유는 은재 아버지의 죽음을 보험사기로 의심한 조사관이 은재를 찾아왔을 때 극적으로 드러난다. 하우스 메이트들은 홀로 조사를 감당해야 할 그녀의 곁을 지켰다. 지원은 은재를 위해 부검에 대해 알아보기도 한다. 은재에게는 이렇게 공동체적 유대를 발견한다. <청춘시대>의 5인방 중, 상처의 치유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캐릭터가 바로 은재이다. 은재는 모든 이의 처음과 닮았다. 은재는 모두에게 서툰 ‘처음’을 누군가와 함께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예은, 절실하게 사랑받고 싶은 청춘
  예은은 끊임없이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주문을 건다. 그녀는 극 중 가장 마지막에 가서야 스스로의 결핍을 인정한다. 그 전까지 그녀는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며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몇 차례 폭력성을 보인 남자친구에게도 매달리며 연애를 이어갔고 이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그래도 잘해줄 땐 얼마나 잘해주는데요”

  예은의 이런 강박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은의 전 남자친구는 그녀를 납치, 감금했다. 현실 세계의 ‘데이트 폭력’이다. 지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의전원생 데이트 폭력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여기서도 우리 사회의 ‘불통’이 뼈아프게 그려진다. ‘의전원생 데이트 폭력사건’ 당시 법원은 “제적될 우려가 있다”며 상해 혐의 가해자에게 벌금형 선고에 그쳤다. 그 후에는 가해자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성들이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며 욕설을 퍼붓는 메신저 대화 내용이 공개됐다. 여기서도 상처는 오로지 피해자의 몫이 됐다. 예은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견디지 못하고 이러한 폭력적인 사회의 시선을 내면화한 것이다.

 

  하우스 메이트들이 감금된 그녀를 구하고 난 후 예은은 심리치료를 받으며 회복하지만 트라우마가 남게 된다. 예은은 길을 걷다 뒤에서 여자를 놀래려는 남자를 보고 화들짝 놀라고, 마침내 자신이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예은은 끝까지 자신의 트라우마를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조차 꺼리게 만드는 우리의 현실은 가혹하다.  

 

 

#송지원, 타인의 시선에 갇힌 청춘 
  지원은 언뜻 보기에 결핍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유일한 약점은 모태솔로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녀는 더 당당하다. 자신이 똑똑하고 예쁘고 성격도 좋지만, 남자들이 ‘나대는 여자’를 싫어하기 때문에 연애에 실패한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사람마다 사정이란 게 있다는 거야. 남들은 도저히 이해 못해도 너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그런 거”


  알고 보면 그녀는 거짓말쟁이다. UFO와 귀신을 본다는 거짓말은 모두 들통 나 하우스 메이트에게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극에서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굳게 믿고 그 ‘다름’을 강력히 표출하고자 하는 그녀의 성격에서 유추해볼 수는 있다. 어쩌면 끊임없이 연애를 갈구하는 그녀의 모습도 거짓일 수 있다. 자신이 너무 털털하면서도 똑똑하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주지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꺼리는 자신의 ‘특별함’을 스스로의 존재 가치로 여기는 것이다.


  다소 과장된 캐릭터지만 누구나 조금씩은 지원과 같은 내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 내가 아는 자신의 모습보다 타인에게 보이는 자신이 더 멋지고 ‘쿨’하길 바란다. 이 때문에 지원을 탓할 수는 없다. 드라마도 지원을 나쁜 캐릭터로 그리지 않는다. 지원의 말처럼, 누구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각자의 사정이 있다. 관건은 우리가 서로의 사정을 공유하고 인정하느냐 이다. 귀신을 본다는 지원의 거짓말은 하우스 메이트들을 연결시키는 윤활제가 되기도 했다. 지원의 거짓말, 은재의 가정사, 예은의 감금 등 <청춘시대> 주연들의 상처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결핍은 소통의 경로가 된다.

 

 

# ‘다시, 벨 에포크로’ 
  <청춘시대>의 엔딩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예은은 자신이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길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은재, 진명, 이나도 자신의 결핍을 극복하기보다는 그대로 안고 살아간다. 지원이 거짓말을 멈췄는지, 시청자는 알 수 없다. 드라마에서 완벽한 존재처럼 비춰졌던 주인집 할머니도 우아하게 립스틱을 바르는 한편, 요실금 팬티를 입는다. <청춘시대>는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닌 완벽한 현실을 택한 셈이다. 사람들은 결핍을 극복하는 대신 타인과 서로를 보듬으며 ‘더불어’ 살아간다. 간섭이나 의존이 아닌, 서로의 공간을 인정하면서 타인을 통해 힐긋 자신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 이 현실이 우리의 공동체를 가능하게 한다.


 

  다섯 청춘의 쉐어하우스는 ‘벨에포크’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이는 ‘좋은 시절’이라는 프랑스어이다. <청춘시대는>는 청춘을 ‘좋은 시절’로 그린 드라마가 아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공허한 위로도 아니다. 청춘은 불완전한 우리가 서로를 통해 자신의 결핍을 마주하는 가장 극적인 시기이다. 스스로를 확인할 가장 극적인 기회, 그때가 바로 ‘좋은 시절’이 아닐까.

 


  드라마 <청춘시대>는 지난 8월 27일 호평을 받으며 종영했다. 이 드라마가 지닌 ‘공감’의 힘은 기존 매체의 ‘치유’나 ‘위로’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다만 보잘 것 없는 나와, 역시 별 볼일 없는 타인 속에 피어나는 ‘좋은 시절’을 재연했다. 시청자들의 공감은 이 드라마로부터 확인한 자신의 청춘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끝>

 

정리: 김주리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