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노조의 연대기금 제안, 노조만 비난하는 보수언론
등록 2017.06.21 17:13
조회 525

금속노조가 현대기아차그룹과의 오랜 통상임금 소송 전쟁을 종결짓는 대안으로 노사가 함께 마련하는 일자리 연대기금을 제안했습니다. 2013년 12월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노동자들의 미사용 연월차 수당과 연장근로 수당에서 일부 미수령 임금이 발생했지만 사측은 지불을 거부해 그간 법적 분쟁이 이어져왔는데요. 소모적 분쟁을 끝내기 위해 사측이 미지급 임금을 지불하면 9만 3천여 명의 조합원이 지급액의 10% 정도를 출연해, 노동자 측이 총 2500억 원의 일자리 기금을 조성하겠다는 겁니다. 사측도 2500억 원을 출연해 총 5000억 원의 일자리 기금을 마련하면 하청업체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고용안정, 제조업 발전, 실노동 시간 단축,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제안입니다. 노조는 이런 제안이 담긴 공문을 12일 사측에 전달했지만 현대기아차그룹은 답을 하지 않았는데요. 이에 노조가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재차 제안하자 느닷없이 경제신문과 보수언론들이 노조를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속노조가 ‘봉이김선달 식 논리’로 사측을 부당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겁니다.

 

노조 제안 대충 설명하고 사측 입장 적극 대변한 TV조선
 방송사 중에서는 TV조선만 이런 공세 대열에 합류했는데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TV조선 <“일자리 기금 제안” VS “실체 없는 돈 생색”>(6/20 https://bit.ly/2soZh0S)은 노사의 입장을 기계적 중립으로 처리한 듯 보이지만 보도는 일방적으로 사측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윤정호 앵커는 “금속노조가 현대차그룹에 ‘5천억 원’ 규모의 ‘일자리 기금’을 절반씩 내서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노조가 자체적으로 현금을 낼 생각은 없”다면서 “회사 측과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느냐를 놓고 소송중인데, 2심까지 회사에 유리한 판결이 났”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받기 힘든 돈을 가지고, 생색만 내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덧붙였습니다. 장용욱 기자 역시 “(노조가)실제로 현금을 내는 건 아니”라면서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시킬 경우 받을 수 있는 돈을 ‘체불임금’으로 규정하고, 이 돈의 일부를 내겠다는 뜻”이라 설명했습니다. “금속노조가 받을 수도 없는 돈을 가지고 생색을 내고 있다”, “현대차 통상임금 소송 1,2심에서 사측이 승소하는 등 추가 지급해야 할 임금은 없다”, “법적근거도 없이 그룹 차원에서 통상임금 협상에 나서도록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현대차그룹 측 입장도 나열했습니다.

 

K-004.jpg

△ 통상임금 미지급 논란, 기업 측 입장 적극 대변한 TV조선(6/20)
 

‘노조가 회사 돈으로 생색’? ‘회사 돈’ 아닌 ‘체불임금’
TV조선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사측이 이미 2심까지 소송을 이겨서 노조 측에 ‘추가 지급’할 임금이 없으므로 노조가 받지도 못할 돈으로 사측을 압박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는 금속노조의 애초 제안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고 사실관계 중 사측에 유리한 부분만 동원한 전형적인 왜곡 보도입니다. 


이 보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소송’을 먼저 거론하며 금속노조 제안의 본질적 내용을 왜곡했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1990년대부터 통상임금 범위를 점차 확대하는 판례를 내놓았고 2013년 12월 임금의 상당액을 차지하는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했습니다. 명칭에 관계없이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이라면 무조건 통상임금이라는 원칙을 확인한 겁니다. 이후 대법원의 판결은 이런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했습니다. 이에 따라 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는 사실은 일종의 ‘법 상식’이 됐는데요. 현대기아차그룹을 포함한 많은 기업이 여전히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으면서 결국 노동자들은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소모적 분쟁이 이어지자 금속노조는 지리한 소송 전쟁을 끝낼 방안으로 ‘노동자가 받게 될 체불임금의 일부를 일자리 기금으로 내놓겠다’고 선제적으로 제안한 겁니다. ‘소송에서 이길 시 받게 될 돈을 내놓겠다’는 말과는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대법원이 세운 원칙에 따르면 상여금이 빠진 통상임금 책정으로 발생한 미지급 수당은, ‘승소 시 받을 돈’이 아니라 당연히 지급되어야 할 ‘체불임금’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소송 이전에 당연히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인 겁니다. 그러나 TV조선은 ‘노조가 이기지도 못할 소송에서 받을 돈으로 생색을 낸다’는 비판에 골몰했습니다. 

 

2심까지 사측이 승소했다? 기본적 사실관계도 입맛에 따라 왜곡
TV조선이 통상임금 소송에서 2심까지 사측이 승소했다며 마치 모든 소송에서 사측이 이긴 것처럼 묘사한 부분도 왜곡입니다.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의 통상임금 소송은 해당 판결 1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TV조선이 언급한 것은 노조 대표 23명이 제기한 현대자동차와의 소송으로서 청구금액도 7억 여 원에 불과합니다.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의 통상임금 소송은 계열사 17곳 중 13곳에서 발생했으며 그 결과는 노동자 승소 3곳, 노동자 일부 승소 1곳, 노동자 패소 3곳, 1심 계류 6곳입니다. 이미 노동자 측 승소로 판결이 나왔거나 승소 가능성이 높은 곳의 청구액은 6657억 원에 달하고 지연이자까지 추산할 경우 1조원이 넘습니다. 노동자들이 체불 임금으로 받아야 할 액수가 1조 원이 넘는다는 겁니다. 이에 금속노조는 각 노동자들이 그 수령액의 10%정도, 총액 2500억 원을 일자리기금으로 출연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사측도 협력하여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8년째 이어지고 있는 통상임금 분쟁을 종결짓자는 제안입니다. TV조선은 이런 사실관계를 쏙 뺀 채, 사측 입장만 나열했습니다. 

 

미지급된 통상임금은 ‘회사 돈’ 아닌 ‘체불임금’…보수언론과 경제지의 ‘언론 플레이’
현대기아차그룹은 노조의 제안에는 전혀 답하지 않는 상황에서 언론이 회사 측을 대신한 듯, 여론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20일 금속노조가 기자회견으로 제안을 공식화하자 서울경제, 매일경제 등 경제지와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곧바로 반격에 나섰는데요. 매일경제 <회삿돈으로 일자리기금…금속노조 ‘꼼수’>(6/20 https://bit.ly/2rBByHT), 서울경제 <남의 돈으로 생색...황당한 금속노조>(6/20 https://bit.ly/2rTHQSI), 중앙일보 <‘봉이 김선달’ 뺨치는 금속노조>(6/20 https://bit.ly/2tMwy3M)는 모두 ‘노조가 회사 돈으로 생색을 낸다’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K-006.jpg

△ 노조 때리는 경제지와 보수언론(매일경제, 서울경제, 중앙일보)

 

TV조선 역시 이런 논리를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소송 중 사측이 이긴 일부 내용만 강조한 것, 노조가 ‘승소 시 받을 돈으로 기금을 마련하겠다’고 제안한 것처럼 왜곡한 것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통상임금을 정상적으로 책정했을 때 발생하는 미지급 임금은 ‘회사 돈’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당연히 지급되어야 할 ‘체불 임금’입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12일 최초 제안 이후 열흘 동안 노조에 답을 하지 않으면서 이런 언론들에게만 사측의 입장을 흘려 여론전에 가담했습니다. 사측이 자신을 비호하는 언론 뒤에 숨어 노조를 공격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모니터 기간과 대상: 2017년 6월 20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뉴스판>, 채널A <종합뉴스>, MBN <뉴스8> 

 

monitor_20170621_253.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