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검찰 성추행 은폐 의혹 사건, KBS는 왜 안태근․최교일 언급을 꺼리나
등록 2018.02.07 16:44
조회 800

지난달 29일 서지현 검사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검찰 조직에서 보복 차원의 부당한 인사조치를 가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러한 서 검사의 용기 있는 문제제기 이후 성희롱이나 폭력을 당한 경험을 자신의 이름으로 공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들불처럼 번질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수립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도 이어지고 있지만, 일단 검찰과 법무부, 인권위 등 국가기관도 해당 사안에 대한 진상조사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여전히 우려되는 수준의 후속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인데요. 이에 민언련은 1월 29일부터 2월 4일까지(7일간) 7개 방송사가 내놓은 우려스러운, 혹은 의심되는 관련 보도 행태를 유형별로 짚어보았습니다.

 

 

하나. 가해자는 숨기고 피해자는 부각한다?
이번 검찰 성추행 및 은폐 의혹 사건에서도 ‘가해자’ 혹은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이 아닌 피해자의 이름과 모습, 특징 등을 일방적으로 부각하는 행태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MBC는 <새로고침/왜 피해자만 부각?…언론의 사건 작명 괜찮나>(2/1 https://goo.gl/BD26Ao)를 통해 “가해자는 사라지고 수년간 괴로워했던 피해자를 부각”하는 언론의 사건 작명 행태를 지적하고 “사건의 이름만으로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흐려질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며  “이 방송 이후로는 그런 표현이 없도록 조심을 단단히 해야겠”다는 반성의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건 작명을 통한 가해자 숨기기’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보도 내에서 아예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장과 최교일 의원의 실명 언급 자체를 피한 방송사도 있습니다. 바로 KBS입니다.

 

KBS는 1월 29일부터 2월 4일까지 5건의 관련 보도를 내놓았는데요. 서지현 검사가 진상조사단에 출석한 2월 4일이 되어서야 <서지현 출석…“민간 위원회서 조사 심의”>(2/4 https://goo.gl/dTXec7)를 통해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실명을 언급합니다. 
 

일자

제목

안태근․최교일 언급 유무

1/29

<“선배 검사가 성추행” “기억 없지만 사과”>

없음

1/31

<여검사 성추행 조사 착수…“수사 전환 가능”>

없음

2/1

<“법무장관에 이메일…조치 없었다”>

없음

2/2

<법무장관 사과…인권위 직권조사 착수>

없음

2/4

<서지현 출석…“민간 위원회서 조사 심의”>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장과 당시 검찰국장이었던 자유한국당 최교일 의원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 여부를 밝혀내는 게 조사단의 핵심 과젭니다” “상황에 따라 안 전 검사장과 최 의원을 소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KBS의 검찰 성추행 은폐 의혹 사건 관련 보도 속 가해자 실명 언급 양상ⓒ민주언론시민연합

 

그렇다면 그 이전에 나온 4건의 보도에서는 대체 어떤 정보를 전달했을까요?

 

우선 첫날 <“선배 검사가 성추행” “기억 없지만 사과”>(1/29 https://goo.gl/JR8hMx)에서는 서 검사를 ‘현직 여성 검사’ ‘지방에 근무하는 한 여검사’등으로,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장 역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던 선배 검사’ ‘성추행을 했다고 지목된 당시 법무부 간부’로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조사단을 꾸렸다는 소식을 전한 <여검사 성추행 조사 착수…“수사 전환 가능”>(1/31 https://goo.gl/kEfYB1)에서는 사안을 ‘현직 여검사 성추행 폭로 사건’으로 명명하고, 서지현 검사의 실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태근 전 검사장과 최교일 의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가해자와 은폐를 시도했다는 고위 간부”라는 표현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법무장관에 이메일…조치 없었다”>(2/1 https://goo.gl/5pt9hk)와 <법무장관 사과…인권위 직권조사 착수>(2/2 https://goo.gl/a1zq7g)는 제목 그대로 법무부와 서지현 검사 측의 이메일 공방을 전한 보도인데요. 초점 자체가 아예 박상기 법무장관에 맞춰진 보도인 만큼 안태근 전 검사장과 최교일 의원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번 성추행 가해자와 이 사실을 은폐하고 피해자에게 압력을 가한 것으로 의심받는 인물은 전직 검사장과 현직 국회의원으로 공적 책임을 지닌 인물이며, 이 중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장의 경우 서 검사의 JTBC 인터뷰 이후 이미 즉각 입장을 내놓기까지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보도 행태입니다.

 

실제 KBS를 제외한 6개 방송사는 29일 이후 관련 보도에서 모두 안태근 전 검사장과 최교일 의원의 실명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 별도의 보도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KBS 내에 ‘가해자의 실명을 언급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KBS, 최초 실명 언급 보도에서도 피해자 더 부각
의심이 드는 대목은 또 있습니다. KBS는 안태근 전 검사장과 최교일 의원의 실명을 최초로 언급한 <서지현 출석…“민간 위원회서 조사 심의”>(2/4 https://goo.gl/dTXec7)에서조차 안태근 전 검사장과 최교일 의원보다 서지현 검사의 존재를 더 부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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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관련 보도 속 서지현 검사와
안태근 전 검사장‧자유한국당 최교일 의원 얼굴 노출 빈도 및 수준 비교(2/4) 

 

실제 이 보도는 제목에 ‘서지현’이라는 이름을 넣고, 보도의 썸네일, 첫 화면, 자료화면을 통해 모두 서 검사의 얼굴을 노출하고 있는데요. 앵커 멘트가 시작되는 보도의 첫 시작부터 기자가 서지현 검사 관련 멘트를 하는 40여초 동안 KBS는 서 검사의 증명사진을 자료화면으로 띄워놓고 있습니다.

 

인터뷰 보도도 아니고 고작 “서지현 검사가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 출석했습니다.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 조사를 받기 위해섭니다. 서 검사는 먼저 지난 2010년 발생한 성추행 사건에 대해 상세하게 진술했습니다. 또 그로부터 4년 뒤 받았다고 주장하는 인사 불이익 조치에 대한 피해 조사도 진행됐습니다”라는 등의 설명을 내놓고 있으면서, 왜 서 검사의 얼굴을 이렇게 고집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피해 사실을 폭로한 제보자가 아닌, 지명수배자를 대하는 태도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반면 안태근 전 검사장과 최교일 의원의 얼굴은 한 화면을 분할해 두 얼굴을 11초가량 보여주는 것에 그칠 뿐입니다.  


덕분에 이 보도는 ‘안태근 전 검사장과 최교일 의원의 이름을 언급해야만 할 경우, 그 몇 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서 검사의 이름과 얼굴을 노출해 반드시 물타기를 해야 한다’는 지침에 맞춰 만들어진 보도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피해자 이미지 사용 자제해야
KBS처럼 극단적인 ‘가해자 중심주의적’ 보도를 내놓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려되는 지점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미 적지 않은 방송사가 온라인 송고용 제목이나 방송 보도 영상 썸네일 등을 통해 서 검사의 이미지를 관성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서 검사가 얼굴을 공개하고 문제제기를 한 이유는 ‘얼굴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증언에 신빙성을 높이고, 다른 여타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이미 증언이 나온 현 시점, 관련 추가 단독 인터뷰 등의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서 검사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이미지를 활용하는 등의 행위는 최소화 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특히 포털을 통해 보도를 소비하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방송 보도의 미리보기 썸네일은 기사 전반의 인상을 좌우하는 ‘사진’ ‘이미지’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채널A는 15건의 관련 보도 중 6건의 보도에서 서 검사의 얼굴을 보도 썸네일에 활용했는데요. 이는 40%에 달하는 수치로, 같은 기간 MBC가 18건의 관련 보도 중 3건(17%)의 보도에서만 서 검사의 얼굴을 보도 썸네일에 활용했다는 점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비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 TV조선은 30건 중 6건, SBS는 21건 중 5건, JTBC는 35건의 관련 보도 중 10건의 보도 썸네일에서 서 검사의 이미지를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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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관련 보도 썸네일 속 서 검사 이미지 활용 양상

 


둘. 2차 가해 언사를 상세히 소개한다?
현재 서 검사 측은 사건의 본질과는 관련이 없는 자신의 업무 능력과 성격에 대한 악의적 소문 등으로 2차 피해를 당하고 있다며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아달라고 호소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관련 사안을 전하는 보도에서 이러한 2차 가해 언사를 지나치게 상세히 소개하거나, 취재를 빙자해 소문 유포에 일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우려스럽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대표적 문제 보도는 JTBC와 MBN이 내놓았습니다. 


먼저 JTBC <성추행 폭로 뒤…2차 피해 ‘스멀스멀’>(2/3 김나한 기자 https://goo.gl/g9UYA6)은 취지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보도입니다.

 

실제 보도는 “검찰 조직 내부에서 나오는 서 검사에 대한 비난과 공격”과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나오는 비난”을 전하며, 모두 근거 없는 의혹 제기이자 트집잡기에 불과하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가 “극우성향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서 검사의 외모를 언급하며 비난하는 글들이 다수 올라와 있습니다. 또 서 검사가 정치계에 진출하기 위해 오래 전 사건을 폭로했다는 근거 없는 의혹 제기도 적지 않습니다”라는 설명을 하는 사이, 그 배경 자료화면으로 실제 문제의 게시글들을 하나하나 굳이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또한 서 검사의 외모를 품평하는 인터넷 게시글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JTBC는 그 배경에 키보드를 치는 손을 위에서 주무르는 추행 장면을 굳이 재연 장면을 함께 보여주고 있기도 한데요. 2차 가해로 인한 피해자의 고통을 염려하는 보도 속 자료화면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MBN <서지현 검사 “허위소문 차단해달라”>(2/1 김순철 기자 https://goo.gl/3a8UpT)의 경우 검찰 내부의 악의적 소문에 대한 서 검사 측 입장을 전한 보도인데요.

 

황당하게도 MBN 김순철 기자는 “MBN 취재 결과, 서 검사에 대한 업무 능력과 근무태도에 대한 검찰 내부의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명석한 두뇌를 가졌고 업무 처리도 뛰어났다고 밝힌 반면, 다른 관계자는 여주지청 근무 당시 동료들 사이에서 성품과 복무 평가가 좋지만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라는 취재 결과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초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와 이를 은폐하려 한 조직 구조의 문제점을 지목한 상황에서, 피해자 개인과 관련한 소문의 진위 여부를 기자가 ‘검증’한다며 묻고 다녔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일입니다. 


또한 취재 결과 역시 그런 소문이 일각에서 돌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 하는 부실한 수준에 그치고 있어, 이쯤 되면 사실상 기자가 취재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호기심을 충족시킨 뒤 방송을 통해 소문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성품이나 복무 평가, 외모 따위는 이 사안과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기자가 ‘이런 소문도 있다’며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2차 가해에 동조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셋. ‘정치적 해석’ 우려한다며 계속 ‘정치 공방’ 이슈를 보도한다?
서 검사 측은 지속적으로 ‘성추행 사실과 그 문제로 인한 감사 적정성, 인사 불이익 문제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안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원 쟁점에서 벗어난 사변적 이슈에 지나치게 관심을 집중할 경우, 오히려 피해자의 요구를 묵살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태도를 보인 대표적 방송사는 TV조선입니다. 


앞서 TV조선은 2월 1일 클로징을 통해 “검찰내 성폭력 문제를 본질과 전혀 관계가 없은 정권의 문제, 또는 정치적 이슈로 탈선시킬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발생 시점이 무려 8년 전이고, 그 사이에 두번이나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상한 상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하늘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려 해서는 결단코 안될 것입니다”라며 ‘사안의 본질을 훼손하지 말라’는 우려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김재련 변호사가 과거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이사 활동 이력을 둘러싼 논란 끝에 서 검사 대리인단에서 사퇴하는 사안이 발생하자 TV조선은 이 사안에 매우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실제 2월 3일과 4일 이틀에 걸쳐 TV조선은 무려 6건의 관련 보도를 내놓았는데요.

 

사실관계를 전하는 <“박 전 대통령 편이다” 등 비난에 사퇴>(2/3 https://goo.gl/dJ2Pu9)에 그치지 않고, <서지현 폭로 정치논쟁 비화>(2/3 https://goo.gl/YqJW9E) 등을 통해 이와 관련한 정치적 논쟁 양상을 직접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김용민, 김 변호사 남편까지 공격>(2/3 김미선 기자 https://goo.gl/AyJUro), <변호사 이어 기자 신상털이…“폭력 사회”>(2/4 주원진 기자 https://goo.gl/EPE5kP)에서는 자사 기자가 연루된 ‘싸움’에 보도를 적극 이용하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실제 해당 보도는 “어제 방송인 김용민씨가 서지현 검사의 변호를 맡았다 사퇴한 김재련 변호사의 가족 신상털이를 한 소식 보도해드렸습니다. 그런데 김씨가 이번에는 그 기사를 보도한 TV조선 기자의 이력까지 공개하며 신상털이에 나섰습니다”라는 감정적인 앵커 멘트로 시작되는데요. 방송사가 보도를 통해 자사가 연루된 분쟁을 이렇게 편향된 논조로 전달하는 것 자체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것입니다.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는 “④방송은 당해 사업자 또는 그 종사자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되는 사안에 대하여 일방의 주장을 전달함으로써 시청자(라디오방송의 청취자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를 오도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TV조선도 <“서지현 검사 폭로 본질 흐려져선 안돼>(2/3 https://goo.gl/fJ6e1q)를 통해 전했듯, 피해자가 ‘이 사건의 본질이 피해자의 대리인 문제로 인해 왜곡되거나 변질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호소하고 있으며 이미 문제의 변호사가 대리인단을 이탈한 상황에서 관련 정보를 필요이상으로 상세히 소개하고, ‘별도의 싸움판’까지 벌여가며 잡음을 낸 꼴입니다. 


같은 시기 TV조선은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부부장검사가 검찰 성추행 진상조사단 조희진 단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과 관련한 공방 양상을 부각하여 전하기도 했는데요. <임은정 검사, 검찰 내부 비판 앞장>(2/3 https://goo.gl/8bgqKQ)에서는 “검찰 내에선 '돌출 행동'으로 유명”하다며 임 검사의 과거 이력과 개인 평판을 나열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보도가 현 시점에 정말 필요한 보도인 것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넷. 본질 흐리는 황당한 여론을 소개한다?
피해자가 성추행을 당하고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알린다 해도 2차 가해에 노출되는 이러한 부당한 상황은, 남성을 ‘기본값’으로 두고 여성을 남성의 주변부에 위치한 들러리로 소모해버리는 남성 중심주의적 문화에 그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이 ‘남성 중심적 문화’에 대한 비판은 남성 개개인을 의심하고 비난하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동시대를 살면서도 여성은 실제 성추행의 피해자가 되어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도 오히려 ‘꽃뱀’으로 몰리거나 ‘외모 품평’따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당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반면, 남성은 ‘가해자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 먼저 우려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에 이미 기울어진 위계질서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번 검찰 성추행 은폐 의혹 사건과 이어지는 미투 운동은 이러한 구조를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수준 미달의 여론을 전달한 방송사도 있었습니다. 바로 채널A입니다. 


실제 채널A <“상대 여성이 내 가족이라면…”>(2/1 허욱 기자 https://goo.gl/XjUar9)은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남성들에게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라며 남성들의 반응을 전달하고 있는데요.

 

허욱 기자는 “남성이 먼저 조심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피해 여성들이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더 조심하자”는 반응, “뿌리깊은 남성 우월주의, 또 상명하복이라는 직장 문화가 문제라는 의견”을 전달한 뒤, 일각에서는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는 시각을 불편해”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의견과 관련한 인터뷰 내용은 “모든 일들이 간단하게 폭력이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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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에 대한 남성들의 ‘불편한 심경’을 전달한 채널A(2/1)

 

우선 기자의 요약 없이 이 인터뷰 내용만을 보면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며, 기자의 해설을 봐도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걸고 참가하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해 왜 인터뷰 대상자가 ‘폭력이라고만 이야기 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다’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지 말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미투 운동이 아니라, 남성 개개인을 타겟으로 삼아 이런 목적이 불분명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채널A의 기획 자체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시각에 기반한 것으로 보입니다.

 

남성 중심적 문화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을 담아 인터뷰를 진행한 것도 아니고, 명백한 범죄에 대한 폭로 운동인 미투 운동에 대한 남성 개개인의 ‘느낌’을 대체 왜 저녁종합뉴스를 통해 ‘여론’이라며 알려야 하는 것일까요? 학교 폭력 등 다른 명백한 범죄 행위에 대한 고백 운동이 이어졌을 때 이런 구성의 보도가 나온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1월 29일~2월 4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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