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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교과서 폐기’에도 트집? ‘열일’하는 TV조선
등록 2017.05.26 00:07
조회 1113

24일 지상파 3사는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청문회를, JTBC‧채널A‧MBN은 일자리 상황판을 집무실에 설치한 문재인 대통령 행보를 톱보도로 냈습니다. TV조선만 ‘TV조선 단독’이라는 큼지막한 타이틀과 함께 ‘특종 톱보도’를 띄웠는데요. 그 내용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중고교 역사교과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검정 교과서를 사실상의 국정 교과서로 만들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대조해보면 TV조선이 과도한 확대 해석으로 논란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독’ 보도인데 핵심 내용은 이미 알려진 사실

TV조선의 24일 톱보도 <단독/새 역사교과서 가이드라인 만든다>(5/24 https://bit.ly/2qRE52O)는 민주당 산하 ‘역사와 미래 위원회’의 내부 문건을 입수해,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중고교 역사교과서 가이드라인을 정부가 만들어 적용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를 폐기키로 한 여권이 자신들 주도로 역사 교과서 개편에 나서는 모양새”라고 단독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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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형적인 ‘침소봉대 논리’를 단독으로 보도한 TV조선(5/24)
 

보도 제목도 ‘여권이 새 역사교과서의 가이드라인을 만든다’ 라는 내용으로 뽑아 마치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교과서를 만들 것처럼 묘사했는데요. 그러나 리포트에서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내용이 매우 부족합니다. 


일단 TV조선은 리포트에서 입수한 내부 문건 ‘미래를 향한 역사 정책 3대 과제’ 보고서의 표지만 보여줄 뿐, 그 내용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도표로 내용 중 일부를 정리했는데요. 역사와 미래 위원회가 “교육부가 2017~2018년 신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이에 맞춰 2018년 교과서가 집필되면 2019년 검정을 마친 뒤, 2020년 새 교과서를 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TV조선은 여기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교육을 균형있게 바로잡기 위해 교육부가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이라는 민주당 관계자 입장까지 덧붙여 민주당이 교육부에 가이드라인을 종용한 것처럼 그렸는데요. 그러나 새로운 검정 교과서 집필 일정은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 교과서 폐기를 지시하면서 이미 알려졌습니다. 교육부는 대통령 지시가 나온 지 나흘만인 16일 국‧검정 혼용 체제를 검정 체제로 바꾸는 행정예고를 내렸지만, 오는 8월 3일까지로 예정되어 있던 검정교과서 심사본 완성 일정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역사학계와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검정 교과서 개발 일정을 미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결국 23일, 교육부는 검정 역사 교과서 개발에 참여한 5개 출판사 담당자들과 만나 논의를 했고 “중고교 검정 역사교과서 심사본 제출시한을 올해 8월에서 오는 12월 또는 내년 5월로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밝혔습니다. 개발 시한을 늦춰 ‘졸속 집필’ 우려를 씻어내고 박근혜 정부가 만들어 놓은 집필 기준도 보완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심사본 제출시한이 늦어지면 당연히 2018년으로 예정되어 있던 검정 역사교과서 적용 시기도 2019년이나 2020으로 연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민주당 역사와 미래 위원회는 이미 교육부 내부에서 논의 중이던 내용을 역사 교육 정책 제안에 포함시켰을 뿐입니다. 또한 24일, 이런 내용을 국정자문위원회에 보고한다는 사실을 매일경제(https://bit.ly/2rSCMPn) 등 타 매체에도 알렸습니다. TV조선만 캐낸 ‘특종’이라 보기에는 여러 모로 무리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은 ‘문재인 정부가 입맛대로 국정교과서를 만들려고 한다’는 프레임
이렇게 ‘특종 아닌 특종’을 톱보도로 낸 TV조선의 의도는 뭘까요? TV조선은 “국정 교과서는 폐지하면서 새 검정 교과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면 또다시 정치적 개입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을 제기하는 한편 한국교총 김재철 대변인의 “국사나 이런 쪽은 정권이 개입하면 안되는 부분입니다. 더구나 당에서 개입한다면 그것은 말만 검정이지 사실상 국정과 다른 게 뭐가 있습니까”라는 강도 높은 비판을 덧붙이면서 보도를 마무리했습니다. 이것도 매우 무리한 주장이고 TV조선의 과도한 해석입니다. 교육부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이전 검정 체제에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새로 제시했습니다. 검정 교과서 심사 기준을 매우 까다롭게 하여, 학계로부터 수정 명령을 남발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죠. 이 때문에 역사와 미래 위원회의 ‘가이드라인’은 교육부에 제안을 하는 수준이고 교육부가 원래부터 ‘가이드라인’을 자체적으로 만들어왔다는 반론이 가능합니다. 민주당도 25일 “‘역사와 미래위원회’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새 정부의 국정운영을 보조하고 협조하는 수준”이라 밝혔고 역사와 미래 위원회는 “향후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담당하는 별도의 독립적 위원회를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습니다. 


요컨대 TV조선은 교육부가 늘 하던 교과서 집필 기준 가이드라인 제작을 민주당 산하 위원회가 ‘조언’했다는 이유만으로 ‘문재인 정부가 입맛대로 교과서를 바꾸려 한다’, ‘검정이 아니라 사실상 국정교과서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겁니다. 객관적, 논리적으로 비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TV조선이 2년 전 가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여당 산하 위원회의 ‘교육 정책 가이드라인 제안’에 ‘사실상의 국정 교과서’라며 ‘특종’을 낸 TV조선의 모습은 상당히 이채롭습니다. TV조선은 2015년 10월,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앞장 서서 옹호했던 언론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했던 2015년 10월 12일, TV조선은 <“올바른 역사 교과서”…한국사 국정화>(https://bit.ly/2rTnIRB)라는 보도 제목으로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는 정부 입장을 대변했고 국정화 반대 여론은 매우 소극적으로 다뤘습니다. 반면 정부의 입장은 가장 많이 받아썼고, 국정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검증하는 보도는 단 1건도 내지 않았습니다.

 

  KBS MBC SBS JTBC TV조선 채널A
전체 보도량 22.5건 18건 19건 72.5건 57건 33.5건

반대 여론
(야당 입장 전달 제외)

1.5건
(6.7%)

0건 0건

19.5건
(26.9%)

2건
(3.5%)

3건
(9%)

받아쓰기
보도

정부‧여당
입장

7건
(31.1%)

7건
(38.9%)

3건
(15.8%)

2건
(2.8%)

17건
(30%)

9건
(26.9%)

찬반입장
나열

9.5건
(42.2%)

7건
(38.9%)

8건
(42.1%)

6건
(8.3%)

12건
(21.1%)

4건
(11.9%)

△ 2015년 10/12~10/26 6개 방송사 국정화 관련 보도 내용 비교 Ⓒ민주언론시민연합

 

  KBS MBC SBS JTBC TV조선 채널A
국정화 절차 문제점 0 0 0 7 0 0
국정화 자체 문제점 1 0 0 4 0 0

정부‧여당 주장 검증

0 0 0 3 0 0
대안 제시 0 0 0 1 0 0
소계 1 0 0 15 0 0

△ 2015년 10/12~10/26 6개 방송사 국정화 검증 보도량 비교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보다 더 심각한 보도 행태는 검정 교과서를 향한 ‘색깔론 공세’였습니다. TV조선은 <‘북한 학살’ 없고…노동운동 부각>(10/12) 등 5건의 보도로 기존 검정 교과서를 ‘북한을 찬양하고 이승만‧박정희 두 인물을 독재자라 비난하는 좌편향 교과서’라고 비난했습니다. TV조선 <편향된 교사들 이런 발언도>(10/15 https://bit.ly/2qZ69lk)의 경우 일부 교사들이 “남한보다 북조선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훨씬 살기 좋다”, “남쪽 정부는 북쪽의 민주주의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며 여론을 자극했는데 녹취록, 자료화면, 증언이 하나도 없이 단지 해당 발언을 자막으로만 보여주는 ‘함량 미달’의 보도였습니다. TV조선이 얼마나 국정화 여론몰이에 힘썼는지 알 수 있는 사례입니다. 


이랬던 TV조선이 검정 체제 전환을 위한 ‘가이드라인 제안’에 곧바로 ‘사실상의 국정 교과서 아니냐’는 주장을 ‘단독’까지 붙여 보도한 겁니다. 그러나 TV조선이 반겼던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는 ‘가이드라인 제안’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은, 밀실과 졸속의 온상이었습니다. 당시 교육부는 국정화를 위한 비밀TF를 암암리에 운영해 물의를 빚었고 끝까지 집필 기준과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아 질타를 받았으며 국정 교과서 관련 민의를 수렴하겠다더니 특정 보수단체의 의견서를 ‘차떼기’로 입수하기까지 했죠. 이 모든 걸 은폐하고 국정화를 선동했던 TV조선입니다. TV조선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행보에서 ‘논란거리’를 찾느라 혈안이지만, 그 전에 자사의 과거 태도를 공개적으로 반성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5월 24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뉴스판>, 채널A <종합뉴스>,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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