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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핵단체’를 ‘환경단체’로 둔갑시킨 TV조선
등록 2017.07.08 00:18
조회 11659

지난달 27일,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일시 중단하고 건설 중단 여부 결정을 공론화위원회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대선 이전부터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고리원전 1호기 영구 정지 결정에 이어 발 빠르게 공약을 이행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일부 언론이 곧바로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경제신문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탈원전’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방송사 중에서는 TV조선이 선두 주자입니다. TV조선은 지난 7월 3일에도 TV조선 <갈 길 먼 풍력발전…효율성도 의문>(7/3 https://bit.ly/2tfoZ8e)에서 풍력 발전의 효율성이 문제라며 ‘탈원전’의 부적절함을 지적했습니다. 6일에도 TV조선은 ‘탈원전’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보도를 내놨습니다. 그 내용은 미국의 ‘환경보호운동가’도 ‘탈원전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실상을 뜯어보면 TV조선이 인용한 ‘환경보호운동가’와 ‘환경단체’는 ‘찬핵단체’라 해도 손색없는 수준입니다.

 

미국 환경단체도 ‘탈원전 반대’? 보도의 시작은 ‘조선비즈’
TV조선 <미 환경단체가 “탈원전 재고”…왜?>(7/6 장용욱 기자 https://bit.ly/2tXZlqj)에서 전원책 앵커는 “원자력발전은 값싼 청정에너지다. 한국마저 원전에서 손을 떼면 앞으로 세계원전시장은 중국과 러시아가 지배할 것”이라면서 “미국의 과학자와 환경보호운동가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달라고 편지를 보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장용욱 기자는 “미국 타임지가 ‘환경의 영웅’으로 선정한 마이클 쉘렌버거 대표” 등 “미국의 유명한 교수와 환경운동가 27명”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고 그 내용은 “탈원전을 하게 되면 한국의 원자력산업이 타격을 입게 될 것”, “원전을 없애면 화석연료 사용이 늘어 환경이 오히려 더 파괴될 것” 등이라고 전했습니다. 마이클 쉘렌버거 환경발전 대표가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우려하지만, 원자력은 에너지를 얻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말하는 장면도 녹취 인용했습니다. 여기에 “성급한 ‘탈원전 정책’으로 연간 9만2000명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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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조선 <종합뉴스>(7/6) 화면 갈무리

 

TV조선이 대대적으로 인용한 ‘미국 과학자들과 환경보호운동가들의 편지’는 7월 5일 조선비즈에서 먼저 단독으로 보도한 것입니다. 조선비즈 <美과학자·환경단체 13인 文대통령에 "脫원전 재고해달라" 공개서한 전달>(7/5 https://bit.ly/2swaZ7n)이 처음 이 내용을 보도하자 곧바로 연합뉴스가 같은 날 보도했고(연합뉴스 <미국 환경단체, 文대통령에 "탈원전 재고해달라" 서한>(7/5 https://bit.ly/2sNhoz7)) 하루 뒤인 6일, 헤럴드경제, 조선일보, MBN 등 많은 매체들이 받아썼습니다. TV조선도 그 중 하나입니다. 

 

‘환경발전’이 ‘환경단체’? 홈페이지만 봐도 ‘찬핵단체’
 TV조선 등 많은 매체들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근거로서 인용한 미국 환경단체는 “환경발전(https://www.environmentalprogress.org/)”이라는 단체입니다. 이곳의 대표인 마이클 쉘렌버거 역시 ‘환경보호운동가’로 소개됐습니다. 그러나 이 단체의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면, 이 단체가 일반적인 환경단체와는 거리가 멀고, ‘찬핵단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이 단체의 대표 마이클 쉘렌버거는 2013년 5월 22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친환경으로 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원자력으로>라는 글에서, 태양광 발전에 많은 투자를 한 독일과 원자력 발전에 투자한 핀란드를 비교하며 원자력 발전이 4배 정도 더 저렴하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당장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을 더 많이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환경발전’이라는 단체의 홈페이지에도 일관적으로 같은 주장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환경발전’은 애초에 핵에너지를 ‘clean power’ 또는 ‘clean energy’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즉 핵 에너지가 깨끗한 ‘청정’ 에너지라는 겁니다. 홈페이지에서 ‘위기의 청정에너지’라는 페이지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독일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탈원전 국가’들을 부실한 근거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원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도입한 결과 배기가스 배출이 증가했다”와 같은 겁니다. 그러나 그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자료는 없습니다. 핵에너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오로지 풍력 발전과 태양광 발전만을 공격하고 있는 부분도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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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발전’ 홈페이지 일부 갈무리

 

‘환경발전’이 스스로 지닌 핵심적 문제의식들을 정리한 ‘Big Questions’라는 페이지에서는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들은 ‘핵폐기물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핵 폐기물이 안전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핵폐기물의 양이 많지 않다 △우라늄 연료봉은 크기가 작으며, 대부분 원자력 발전소 안에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2011년 전 세계를 경악케 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만 보더라도 핵폐기물은 전혀 안전하지 않습니다. 소량의 유출만으로도 수많은 인명을 위협하는 방사능 물질을 대거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고준위핵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는 처리 방법이 없어 인근 주민들은 항시 방사능 물질 유출의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환경발전’은 이런 문제점들을 은근슬쩍 은폐하고 있습니다.


또한 ‘환경발전’의 활동을 소개한 ‘action’이라는 페이지를 보면 환경운동과 관련된 내용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핵에너지를 다시 일으키자’, ‘청정에너지(핵에너지를 의미)를 보호하자!’등 선동적 구호로만 가득합니다. 이런 정체성을 지닌 단체를 과연 언론이 ‘환경단체’라고 소개해도 되는지, 그 대표를 ‘환경보호운동가’로 소개하는 것이 적절한지 선뜻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유수의 환경단체는 모두 ‘반핵’, 언론은 왜 ‘환경발전’을 띄우나
‘환경발전’은 정작 발전량 대 비용으로만 환산되지 않는 원자력 발전의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오직 신재생에너지보다 원자력 발전의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전을 줄이자 배기가스 배출이 늘어났다’는 증명되지 않은 수치를 반복적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핵에너지가 상시적으로 품고 있는 방사능 물질의 치명적 위험성과 핵폐기물의 영구적 위험성은 애써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 유수의 환경단체들과 상당히 다른 입장입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시에라클럽, 그린피스, 지구의 벗, 세계 자연 기금(WWF)등 환경단체들은 일관적으로 핵에너지에 강력히 반대해왔습니다. ‘환경발전’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한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고 에너지 효율도 점차 개선되고 있습니다. ‘환경발전’이 오로지 풍력발전과 태양광 발전만을 공격하고 있지만 신재생에너지에는 바이오에너지와 수력 에너지, 지열에너지, 폐기물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합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에도 신재생에너지가 제격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TV조선은 정반대로 ‘탈원전 정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보도했죠. 또한 하나의 원전을 폐로하는데 최소한 20년이 걸리는 만큼 ‘탈원전’은 단계적,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고 그 기간 동안 신재생에너지의 효율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오로지 당장의 비용만으로 원전을 확대하자고 주장하는 ‘환경발전’을 환경단체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발전’과 그 대표의 주장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쓴 우리 언론들의 태도 역시 비판을 면키 어렵습니다. 탈원전 정책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로서 합리적인 토론을 필요로 합니다. 정확한 조사도 하지 않고 ‘찬핵단체’를 ‘환경단체’로 포장하여 받아쓰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7월 6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 채널A <종합뉴스>,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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