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언론에게는 아이돌의 ‘노출’만 보이고 ‘추위’는 보이지 않는 걸까?
등록 2019.01.0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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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말 진행된 지상파 3사의 연말 가요축제 프로그램이 혹한의 날씨 속에 일부 연예인에 대한 몰상식한 수준의 진행을 하고 있는데도, 언론에서 이에 대한 지적은커녕 선정적인 제목과 보도를 내놓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민언련이 이를 확인해보니 제보자의 문제의식은 매우 타당했습니다.

 

혹한에 추위에 노출된 아이돌 상황, 이미 작년에 한번 겪은 소동

지상파 3사의 연말 가요 축제 프로그램들은 매해 혹한의 날씨 속에서 진행됩니다. 이로 인해 일부 가수들이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특히 작년에는 이로 인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2016년 MBC <가요대제전>에 참석한 레드벨벳 아이린 씨가 추위에 떨고 있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온 것입니다. 작년 국민일보 <가요대제전, 추워서 어쩔줄 모르는 아이돌…‘극한 직업’>(2017/1/1)은 해당 영상을 소개하면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앞둔 야외무대에서 추위와 싸우는 걸그룹 멤버의 모습이 포착됐다. 팬들은 ‘이 정도면 고문 수준’이라며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기사에 인용된 영상(출처 : 유튜브 스피넬 채널)을 보면 아이린 씨와 멤버들은 몸을 움직이거나 서로를 안는 등 추위를 견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논란이 있었다면, 언론은 변화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2018년 연말 시상식 관련 언론보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언론에게는 아이돌의 추위는 보이지 않는걸까

올해에도 혹한의 추위에 노출된 연예인에 대한 걱정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스포츠투데이 <아이린, ‘추위 이겨낸 파격 노출’>(2018/12/25 팽현준 기자)에서는 추위를 이겨냈다고 표현했습니다. 오마이뉴스 <‘SBS가요대전’ 레드벨벳 아이린, 추위를 잊은 예쁨>(2018/12/25 이정민 기자)에서도 ‘추위를 잊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아이린 씨가 추위를 이겨냈거나, 잊은 것일까요? 그저 시키는 대로 참아낸 것뿐임을 언론은 모르는 것일까요?

 

‘노출’에 방점을 찍은 ‘선정적 제목짓기’

추위를 모르는 언론의 관심은 그저 노출이었습니다. 노출에 방점을 찍은 선정적 제목 짓기는 매우 많았는데요. 대표적으로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 씨와 관련된 기사들을 보겠습니다.

 

12월 25일 SBS <가요대전>에 참석한 아이린 씨의 의상에 대해 MK스포츠는 <아이린 ‘성탄절에 섹시한 노출’>(2018/12/25 천정환 기자)이라는 ‘노출’에 방점을 찍은 선정적 제목을 사용했습니다. MK스포츠 외에도 아시아투데이는 <레드벨벳 아이린, 자비없는 노출>(2018/12/25 김현우 기자)이라는 황당한 제목을 지었습니다. 도대체 자비없는 노출이란 무엇일까요? 스포츠한국, 뉴스1, SBS funE, 스포츠투데이 역시 제목에서 ‘노출’에 방점을 찍은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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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에 방점을 찍은 인터넷 언론 보도제목 갈무리 ©민주언론시민연합

 

선정적인 제목 짓기는 아이린 씨 한 명의 경우만은 아니었습니다. 12월 28일 열린 KBS <가요대축제>에 참석한 에이핑크의 손나은 씨 관련 보도 역시 같은 양상이었습니다. 더셀럽은 <에이핑크 손나은 ‘과감한 노출 패션’>(2018/12/28 김혜진 기자)이라는 제목으로 역시 ‘노출’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더셀럽 외에도 세계일보, MK스포츠, 스포츠한국 역시 관련 보도를 통해 노출에 방점을 찍은 보도를 내놨습니다. 더팩트 <손나은, ‘최강 한파도 울고 갈 파격 패션’>(2018/12/28 이선화 기자)은 제목에서는 노출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기사에 포함된 사진의 설명으로 “과감한 노출 패션!”, “파격적인 혹한 패션”이라는 설명을 붙이며 노출을 강조했습니다.

 

문제를 지적한 언론은 독서신문 단 1곳뿐

같은 사안에 대해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언론은 독서신문 <레드벨벳·블랙핑크·트와이스, ‘추위’와의 싸움이 ‘자발적 선택’이길…>(12/27 김승일 기자)뿐이었습니다. 독서신문은 프로의식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돌들의 고통을 포장하는 언론의 태도와 성상품화를 야기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지적했습니다. 언론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길 바라며 독서신문의 보도 일부분을 첨부합니다.

 

아이돌 그룹은 소위 ‘프로의식’이라는 게 있어서 무대 위에서나 무대 밖에서 보통 사람보다 더한 고통을 견뎌내는 게 미덕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지난해 걸그룹 다이아의 멤버 은진은 공연 중 속옷이 내려가는 돌발상황에서 침착한 공연 마무리로 호평을 받았으며, 지난 15일 FNC엔터테인먼트(대표이사 안석준·한승훈)의 걸그룹 ‘AOA’의 설현은 과호흡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무대 미소’를 잃지 않아 칭찬받았다. 걸그룹 세계에서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이런 옷차림을 하는 것이 ‘프로의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언론에서도 “극한 추위를 이긴 열정의 무대”라는 식으로 보도한다. (중략)

올해는 특히 걸그룹의 건강만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여성들이 헐벗은 이유를 여성 가수들의 ‘자발적 선택’이 아닌 ‘사회적 강요’라고 인식했다. 한 시민은 “일부 여성 가수는 옷을 껴입고, 일부만 헐벗었다면 출연진들의 의상 선택이 자유였다고 생각되겠지만, 한겨울에 한두 명을 제외한 여성 가수 대부분이 추위에 떨며 여름 의상을 입었다면 이는 사회적 강요”라고 말했다.

 

언론은 성상품화의 구조적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편 가수 김동완 씨는 지난 12월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방송현장에서의 밤샘 촬영과 성상품화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김동완 씨는 성상품화의 문제가 개인의 결정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성 상품화는 그 대상이 남녀인지를 불문하고 각종 광고, 의상, 자극적인 모든 장면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방송산업에서 성적 소구는 보편적으로 사용된 표현의 수단이었고 다양한 예술 활동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으므로 정확히 어떤 상품화가 문제인지의 여부는 저 개인이 판단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의 성 상품화가 문제임은 분명합니다. 특히 어린 연기자들이나 신인 연기자들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나 권한이 매우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중략)

특히, 이 같은 도구화가 본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계약 관계와 갑을 관계 속에서 비자발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환경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문제의식을 느낍니다. 이러한 시각 아래에서 기존의 관행이 답습되기만 한다면 ‘네가 선택했다.’ 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자유와 노동의 가치가 보호되기 어려운 환경이 지속될 것이고, 장차 선택의 폭은 더 좁아질 것입니다.

 

김동완 씨의 지적처럼 방송현장에서의 성상품화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보다 더 큰 차원에서 구조적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예인의 성상품화의 가장 큰 주범은 언론입니다. 아이돌 그룹의 ‘노출’에만 집중하며 클릭수 장사에만 열중하고, 그들의 인권에는 나몰라라 하는 언론행태.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 이 보고서는 시민 여러분의 제보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12월 25~31일 온라인 보도 전반

 

<끝>

문의 임동준 활동가(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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