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엄용수 ‘아가씨 출연료’ 막말, 아침방송에 그대로 내보낸 KBS
등록 2018.06.1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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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KBS <아침마당>에 코미디언 엄용수 씨가 출연해 ‘엄용수를 아시나요?’ 라는 주제에 맞춰 자신의 과거사와 근황 등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엄용수 씨의 발언 중에는 공영방송에 그대로 나가기에 부적절한 내용들이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먼저 엄용수 씨는 출연료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일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고추 축제하면 (출연료로) 고추를 받고, 딸기 축제를 하면 딸기로 받고 굴비 아가씨 축제하면 아가씨로 받고”라는 부적절한 농담을 던졌습니다. 이 발언은 있을 수 없는 수준의, 농담이라고 해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발언입니다. 특히 공영방송 KBS가 온 가족이 시청할 수 있고, 어린이들이 많이 볼 수 있는 아침 시간에 이런 발언을 송출했다는 것은 방송 사고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엄용수 씨는 이 발언 이후 진행자가 만류하자 ‘코미디언이 웃기지도 못하냐’며 도리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 저는 꼭 현찰을 고집하고 미리 달라고 하고 그러지 않아요. 물건으로 받아도. 홍천의 옥수수 축제? 옥수수로 받아요. 그사람들 옥수수 팔아서 나 300만원, 500만원 줄라면, 그 옥수수 팔려고 서울 갔다가 만약에 교통사고 나면 어떡해. 옥수수 길바닥에 엎어지면 어떡해. 그래서 나는 고추축제하면 고추 받고 딸기축제하면 딸기 받고 또 뭐 어디 굴비아가씨 축제하면 아가씨로 받고.
(방청객 웃음)
진행자 : 아유 왜 그러세요~
: 웃기려고! 웃기려고! 코미디언이 웃기지도 못해?! 거 새겨서 들어야지!
(추가 지적 없음. 다른 이야기 시작)
 
게다가 엄용수 씨는 자신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성희롱을 할 수 없다는 취지로 “내가 성희롱 했다는 기사 본 적이 있느냐. 뛸 수 없기 때문에 금세 붙잡힌다. 그런 행동을 아예 안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장애가 있어서 성희롱을 할 수 없다’는 발언은 엄 씨 개인이 ‘결백함’을 강조하기 위해 꺼내놓은 과장된 수사겠지만, 이 또한 불필요한 발언입니다.

또 엄용수 씨는 “대학 2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 엄지발가락을 잃었”고 결과적으로 6급 장애인 등록을 받았다며 ‘항공료 30% 할인을 받아 가만히 앉아서 1년에 1000만 원을 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본인이 장애가 있음을 강조하는 발언이었겠지만, 6급 장애인이 되면 ‘항공료 30%를 할인받는 것’과 ‘가만히 앉아서 1천만 원을 번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부적절한 발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지적받아야 할 것은 이런 방송을 한 공영방송 KBS
이처럼 KBS 아침 프로그램에서 한 희극인이 KBS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수위의 발언을 하고, 이것이 그대로 방송되었다는 현실을 KBS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개혁작업을 시작한 KBS의 방송이 하루아침에 변화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 모르지만, 현재 KBS는 새 사장 취임 이후 사실상 가시적인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데 있어서는 부족함이 큽니다. 이번 방송사고는 결과적으로 KBS가 변화해야 할 분야가 시사보도프로그램만이 아니며, 교양 및 오락프로그램 전반의 인권 감수성 제고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부적절한 발언을 더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언론들도 문제
방송 이후 다양한 온라인 매체가 엄 씨의 발언을 기사화했습니다. 주로 눈에 띄는 발언을 따옴표로 따 소개하는 어뷰징 기사였습니다. 대부분의 매체는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한 발언을 그대로 요약해서 전했습니다. 이 발언은 실제 엄용수 씨 본인이 한 것이기에 언론이 그의 발언을 전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론이라면 누군가가 문제적 발언을 했을 때는 그 발언의 맥락과 문제점을 분명하게 알려줘서, 해당 발언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2차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부적절한 발언을 그대로 인용만 한다면, 그것은 부적절한 발언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엄 씨의 ‘부적절한 발언’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부각하여 보도하는 유형의 문제보도는 적지 않았습니다. 스포츠투데이 <텔리뷰/‘아침마당’ 엄용수 “난 6급 장애인이라 성희롱 못 해”>(6/14 문수연 기자 https://bitly.kr/enj2), 마이데일리 <‘아침마당’ 엄용수 “평생 성희롱 한 적 없다, 뛸 수 없기 때문”>(6/14 곽명동 기자 https://bitly.kr/fu7e), 브릿지경제 <‘아침마당’ 엄용수, 성희롱 한 적 없는 이유 “뛸 수 없어 금세 붙잡혀”>(6/14 남소라 기자 https://bitly.kr/EHkE) 등은 문제 발언을 제목에 부각해 전하면서 정작 발언의 문제는 지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가장 심각한 발언인 ‘굴비 아가씨 운운’한 내용은 티브이데일리 <시선강탈/‘아침마당’ 엄용수 “굴비 아가씨 축제 가서 아가씨 달라고 해, 현찰 고집 NO”>(6/14 최하나 기자 https://bitly.kr/wITX)에서만 보도했는데요. 기껏 보도한 이 기사는 사실상 제목부터 매우 부적절합니다. 보도 내용에 “무리수 개그를 던졌다” “무리수를 던졌다”는 언급이 있지만, 원 발언 수준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약한 수준의 지적입니다.
 
 
‘6급 장애인, 가만히 앉아 천만 원 번다’는 MBN 기사 제목도 가관
한편 MBN의 온라인 기사 <코미디언엄용수 “엄지발가락 잃어 6급 장애인, 가만히 앉아 천만 원 번다”>(6/14 온라인이슈팀 https://bitly.kr/MzXk)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 기사는 제목만 보면, 6급 장애등급을 가진 이에게 국가가 천만 원의 비용을 보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낳을 수 있는 부적절한 제목뽑기입니다. 이 보도를 보고 장애인들은 ‘가만히 앉아 천만 원 번다’는 잘못된 정보로 받아들여 ‘장애인=무위도식하는 무임승차자’라는 부정적 인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어떨까요? 현재 정부는 만 18세 이상의 등록한 장애인 중 3~6급의 장애등급을 가진 이들에게 소득 수준 및 주거형태에 따라 매월 장애수당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금액은 생계·의료급여 수급자에게 4만원, 주거·교육급여 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게 4만원, 보장시설수급자에게 2만원 수준입니다. 장애인연금 역시 소득하위 70% 중증장애인 기초급여 기준 25만 원가량이며, 여기에 부가급여를 더해도 30만 원 대입니다. 그나마 경증장애인은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급여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은 장애인 복지 예산 지출 수준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무르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 제3장 장애인 인권은 언론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하며, 이를 위해 “장애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장애인을 위한 제도 개선과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한 희극인이 방송에서 현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한 농담조로 던졌다면, 차라리 보도를 하지 말던가, 보도를 한다면 제대로 했어야 합니다. 이처럼 ‘생각 없는’ 보도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조성할 소지가 크며, 그 자체가 언론의 폭력입니다

실제로 오늘(19일) 전국장애인연합회는 <장애와 여성에 대한 모욕 비하발언, 차별행위를 자행한 엄용수와 공영방송 KBS는 관련내용 방송을 즉각 중단하고 국민앞에 사과하라>라는 성명서를 내고 방송 내용에 대해서 규탄했습니다. 단체는 엄용수 씨의 발언은 “장애인과 여성에 대한 혐오를 일으키는 차별발언이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차별행위) ‘4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광고에 의한 차별’ 및 제32조 (괴롭힘 등의 금지) ‘3항의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에 대한 금지’ 규정에 대한 명백한 위반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방송이 나간 이후 나온 자극적인 제목으로 인해 “사회적인 차별과 혐오를 가중시킬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공영방송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상황 그 자체도 분명히 비판받아야하고, 개선점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어뷰징 온라인 보도가 언론 보도의 기본 수칙은커녕 최소한의 인권 의식조차 담지 못한 현실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언론사’가 ‘기사’의 형태로 이런 문제 발언을 생산하고 확대․유포하는 고리를 끊기 위해, 각계각층이 함께 논의하고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6월 14일~18일 관련 온라인 보도 전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