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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가해자’라는 보도 제목이 숨기고 있는 것들
등록 2018.03.2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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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보도의 문제점에 대한 각계각층의 우려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3월 19일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언론학자 109명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언론의 성폭력 보도가 피해자 보호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수준이며, 남성 중심적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인데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3월 1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가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엄중 제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언련은 <반 성폭력 운동의 획을 그을, 용기 있는 서지현 검사의 JTBC 인터뷰>(1/31), <검찰 성추행 은폐 의혹 사건, KBS는 왜 안태근․최교일 언급을 꺼리나>(2/7), <언론은 정말 미투 운동을 보도할 준비가 되었을까>(2/26), <조선일보의 박중현 성폭력 보도, 이미 2차 가해였다>(3/7), <피해자 과거 사진․영상, 대체 왜 보도하나>(3/8) 등의 보고서를 통해 성폭력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바 있습니다. 그러나 성폭력 보도의 문제 유형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 3월 1일부터 24일까지의 관련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추가로 짚어보았습니다.

 

 

하나, ‘성폭력 가해자’를 ‘미투 가해자’로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
미투 운동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후, ‘미투’라는 용어는 ‘성폭력 피해 사실 폭로’ 행위 전반을 포괄하는 상징적 단어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를 빌미로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할 상황에 ‘미투’라는 표현을 대신 사용하는 기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미투 가해’ ‘미투 가해자’라는 표현을 들 수 있는데요. 이는 ‘성폭력’이라는 사건의 본질을 가리고,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을 자칫 ‘미투 운동으로 인한 피해자’로 오인하게 하는 부적절한 단어 선택입니다.


어떤 현상을 드러낼 가장 적확한 표현을 찾는 것은 보도의 시작이자 기본입니다. 반면 부적절한 용어를 통해 본질을 가리는 것은 가장 흔한 프레임 조작 수법이기도 합니다.

 

이런 ‘프레임 조작’의 대표 사례로는 과거 우리 언론이 연쇄 성폭행 피의자를 ‘발바리’라고 표현했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이나 범죄의 흉악성을 무시하고, 범죄를 희화화시키는 행태라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이제 언론은 ‘발바리’를 비롯한 부적절한 ‘별칭’ 사용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폭력 피의자를 ‘미투 가해자’라는 두루뭉술한 단어로 표현하는 행위 역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미투 가해자’ 남용하는 연합뉴스 
이 ‘미투 가해자’라는 표현은 운동이 시작된 초기에는 보도 제목 등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관계자 인터뷰 등 일반인들의 정제되지 않은 언어 표현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언급되는 정도였습니다.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만 해도 2월 초 중순까지는 <전직 여경도 ‘미투’ 나섰다…“성희롱한 직속상관 징계도 안받아”>(2/1), <영화계로 번진 '미투'성범죄 가해자 감독상 박탈>(2/5), <카드뉴스/성폭력 고발 ‘미투 운동’ 효과는>(2/11), <시민운동 진영서도 첫 ‘미투’…4년 전 성추행 피해 폭로>(2/14)처럼, ‘미투 운동’과 ‘성폭력 혐의’를 기사 제목 내에 별개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목

일자

<'미투' 가해자 이윤택 출국금지 승인…1개월간 출국 불가>

3/6

<경찰, '미투' 가해자 41명 의혹 확인 중…5명 정식수사>

3/7

<경찰, '미투' 가해 40명 확인 중…검찰수사 안희정은 내사 종결>

3/7

<2AM 이창민, 미투 가해자로 오인…아이돌 미투 글도 논란>

3/7

<포토무비/미투 가해자 어디까지?…미투에 들썩이는 대한민국>

3/8

<B1A4 산들, 미투 가해자 부인…"허위사실 강력대응">

3/9

<경찰 '미투' 가해 50명 확인중…조민기·이윤택 등 8명 정식수사>

3/9

<'미투 가해자 의혹' 조민기, 광진구서 숨진 채 발견(1보)>

3/9

<경찰, '미투' 가해 55명 확인 중…금주 이윤택 등 2명 조사>

3/13

<경찰, '미투' 가해 70명 확인중…정식 수사대상 16명>

3/20

<전 부천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미투' 가해자로 입건>

3/21

△‘미투 가해자’라는 표현을 제목에 명시한 연합뉴스 기사 모음(3/1~3/21)©민주언론시민연합


그러나 3월 들어서는 <‘미투’ 가해자 이윤택 출국금지 승인…1개월간 출국 불가>(3/6), <경찰, ‘미투’ 가해 70명 확인중…정식 수사대상 16명>(3/20)처럼 ‘성폭력’ 혹은 ‘성폭력 가해자’가 들어가야 할 맥락에 ‘미투 가해’ 혹은 ‘미투 가해자’라는 표현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연합시론/친고죄 족쇄 걷어낸 경찰의 ‘미투’ 수사 주목한다>(3/5)의 ‘미투 수사’ 등의 신조어 역시 같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면 당연히 ‘미투를 통해 지목된 성범죄 가해자의 혐의’를 수사한다는 것인데, ‘미투 수사’라는 표현을 쓰면 ‘미투 운동에 대한 수사’가 진행된다는 것으로도 읽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중의적 표현을 사용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며, 언론이 성범죄, 성폭력 등의 용어를 보다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다는 미투 운동의 취지에 더 부합하는 보도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지상파3사와 종편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미투 가해자’라는 표현
연합뉴스로 예시를 들었으나 이러한 문제적 행태는 연합뉴스 외 언론에서도 모두 반복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방송 보도도 예외가 아니었는데요.

 

방송사가 온라인에 송고한 ‘글 기사’가 아닌 정규 방송 프로그램 내 보도만 봐도 KBS 뉴스7은 <경찰, 이윤택 등 ‘미투’ 가해자 64명 확인 중>(3/16)이라는 제목을 붙였으며, MBC 뉴스데스크는 <‘미투 가해자’ 첫 체포 이윤택 집단 고소>(2/26), SBS 8뉴스는 <국회 첫 미투 가해자 ‘면직’>(3/6), TV조선 뉴스퍼레이드 <이슈 앤 스토리/미투 가해자들의 ‘사과법’>(3/2) 등의 제목을 버젓이 달고 있습니다. 


JTBC ‘아침&’에서 보도한 <‘미투’ 운동 첫 구속…조증윤 수감>(3/2)은 온라인 송고용 제목은 <미성년 단원 성폭행 혐의 조증윤, ‘미투’ 가해자 첫 구속>이었습니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도한 <‘미투 지목 유명 인사’ 흔적 제거 비상>(3/5)도 온라인 송고용 제목이 <늦으면 ‘불똥’…‘미투 가해자’ 흔적 지우기 바쁜 지자체들>입니다.

 

MBN ‘아침&매일경제’의 신문브리핑에서 방송한 <성추행 의혹 외대 교수 극단적 선택>(3/19)이라는 제목의 보도도 온라인 송고될 때는 제목이 <박진아 아나운서의 이슈톡! “미투 가해 의혹 교수 극단적 선택”>으로 바뀌었습니다. 

 

 

둘, 성폭력 피해자 보호는 미투 보도에서도 여전히 주요한 가치이다
성폭력 사건 보도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속도’도, ‘구체적 정황 묘사’도 아닌 ‘피해자 보호’입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신상 보호는 단순히 저널리즘의 윤리 차원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가치입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는 성폭력 피해자의 신원 및 사생활비밀 누설 금지 조항이 있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거나 이에 관여하는 공무원 또는 그 직에 있었던 사람은 성폭력 피해자의 주소, 성명, 나이, 직업, 학교, 용모, 그 밖에 성폭력 피해자를 특정하여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인적사항과 사진 등 또는 그 성폭력 피해자의 사생활에 관한 비밀을 공개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누설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반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집니다.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성폭력상담소,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또는 통합지원센터의 장이나 그 밖의 종사자 또는 그 직에 있었던 사람도 비밀 엄수의 의무가 있습니다. 


특정 직종이 아닌 누구나 지켜야 하는 규정도 있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성폭력 피해자의 주소, 성명, 나이, 직업, 학교, 용모, 그밖에 성폭력 피해자를 특정하여 파악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나 사진 등을 성폭력 피해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신문 등 인쇄물에 싣거나 방송 또는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개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반해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법과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언론가이드라인과 준칙이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성폭력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성폭력 생존자’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그들이 ‘생존’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범죄사건의 피해자와 달리 피해자는 고통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받지 못하거나, 사회로부터 편견과 2차 가해에 시달렸고, 가해자에 대한 온정적 조치로 인해 보복범죄에 떨어야 했습니다. 


미투 운동은 이런 상황이 변하지 않았음에도, 성폭력 피해자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공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의 피해를 감수하고 용기를 내면서 성폭력을 고발하고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고 언론에 자신의 신상을 마구잡이로 공개해도 좋다고 허락했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익명 미투 운동이건 실명 미투 운동이건 언론이 성폭력 피해자를 언급할 때에는 무조건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신상정보를 보호해야 합니다. 작은 정보도 각기 다른 언론이 조금씩 노출하기 시작하면 결과적으로는 피해자 신분이 특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직접적 인적사항 뿐 아니라 간접 정보(피해자 거주지 인근 지역 주민 인터뷰 등)도 주의해야 합니다.

 

언론은 ‘피해자의 호소가 아닌 그 개개인의 인적사항’에 이목이 집중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그들의 이미지를 과도하게 활용하거나, 폭로 당시 본인이 밝힌 이상의 정보를 추적․발굴하지 않아야 합니다. 

 

 

조선미디어그룹의 명지전문대 성폭력 폭로보도는 그 자체가 폭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언론이 여전히 피해자 관련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노출하며 2차 가해를 자행․유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미디어그룹 계열사가 내놓는 성폭력 보도 속 인권 침해 양상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먼저 조선일보는 3월 4일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교수들의 성폭력을 폭로한 학생들의 진정서를 입수해, 피해자 동의도 받지 않고, 블라인드 처리도 없이 출력본 사진을 공개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저질렀습니다. 피해당사자들이 SNS를 통해 이 사실을 강력 지적한 이후에도,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를 삭제하거나 대폭 수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본지의 활약을 자화자찬’하는 듯한 태도까지 드러낸 바 있습니다.

 

또 월간조선 문갑식 편집장은 3월 22일, ‘TV조선 이진동 사회부장이 후배 여기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사표를 제출했다’는 내용의 온라인판 ‘단독’ 기사에서, 불필요하게 피해자의 현재 근황 관련 정보를 언급했습니다. 이 기사는 삭제되었으나 원 기사를 인용한 타 매체 보도에서 이 정보는 끊임없이 유포되고 있습니다. 

 

 

‘진정성’은 ‘실명 보도’에서만 확보된다는 편견 버려야
언론이 피해자 정보를 유출하는 주요 원인으로는 △선정 보도를 통해 클릭수를 높이려는 장삿속 △타사보다 많은 정보를 빨리 전달하려는 성급함 △성폭력 피해자 신상정보 유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함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피해자의 신상을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는 폭로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는 판단’도 하나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실제 성폭력 피해자가 신분과 얼굴을 모두 드러내고 범죄 행각을 폭로할 때 신뢰도와 전달력이 배가되며, 듣는 이들이 피해자의 고통에 더 쉽게 공감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은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언론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당사자들에게 ‘실명 폭로’를 종용하거나, 언론 소비자들이 ‘실명 미투 보도가 아니면 보도를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런 점에서 슬로우뉴스 <미투, 다섯 가지 유형>(3/13 https://slownews.kr/68590)은 상당히 우려되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미투 보도의 유형을 분류하고, 각 유형에 따라 언론이 충족해야 할 조건이 달라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화 작업은 ‘사건을 둘러싼 수많은 조건과 변수에 따라 언론이 고려해야 할 지점이 다르다는 점’을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사는 ‘운동으로서의 미투가 지닌 의미’, ‘가해자로 지목된 이에게 미칠 파급력’, ‘보도 이후의 진정성 획득 문제’ 등을 들어 ‘익명 미투 보도’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자신을 드러내야만 미투 운동으로서 의미가 있고, 익명 폭로는 전혀 가치가 없다거나 익명 폭로는 무책임하다는 이분법적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른바 ‘익명 미투’를 언론이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며 “언론이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취재원 보호라는 추상적인 가치만을 정답처럼 내새워 ‘익명 미투’ 보도를 남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우선 기사는 이러한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언론에 신분을 밝히지 않고 오직 증언만을 내놓았음에도 기자가 이를 그냥 받아 적는 형태의 익명 보도’와 ‘피해자가 언론사에는 신분을 밝히고 증언했으나 언론이 여러 사안을 고려해 피해자의 신분을 감춘 익명 보도’의 가치를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후자는 현실적으로 우리 언론이 피해자 혹은 폭로자 보호를 위해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조치입니다. 성폭력 보도에서 취재원 보호는 ‘추상적 가치’가 아닌 ‘실존의 문제’이기에, 이는 언론이 그 무엇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기사는 ‘다른 지점에서 발생한 기사의 결함’과 ‘익명 보도’로 인해 발생하는 결함의 경계를 분명히 구분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익명 보도’로 인한 문제인 것처럼 ‘보이도록’ 서술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폭로한 내용이 ‘결과적으로’ 진실한가 진실하지 않은가와는 상관없이 그 보도의 품질 자체가 문제”라는 구절 앞에는 “언론이 ‘익명 미투’를 남발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리고 그 차원에서”라는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

 

또 “PD수첩의 김기덕 보도처럼, 10분만 봐도 김기덕은 천하의 개XX인 걸 뻔히 알겠는데, 그걸 약간씩 다르지만 비슷하게 얼마나 더 개XX인지를 자극적으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방송을 나는 좋은 방송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지적 앞에는 “언론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취재원 보호라는 추상적인 가치만을 정답처럼 내새워 ‘익명 미투’ 보도를 남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지적이 붙어있기도 합니다.

 

예시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기사 품질, 깊이의 문제와 익명 보도의 문제를 한 단락에서 뭉뚱그려 언급한 것인데요. 아무리 이전 단락에서 ‘개인의 익명 폭로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여 말했다 해도, 이런 식으로 글을 전개하면 결국 기사를 모두 읽은 이들의 머릿속에는 ‘익명 보도의 해악’만이 남게 됩니다. 

 

 

‘얼굴을 드러내서 믿을 수 있다’가 아니라 ‘왜 얼굴을 드러내야만 믿어주는가’ 고민해야 
뿐만 아니라 이 기사는

 

“얼굴은 목소리는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진실의 증거”라는 논리를 앞세워 피해자가 직접 출연하는 생방송 인터뷰의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필자는 JTBC 김지은 씨 인터뷰에 대해 “나는 김지은 씨가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연기자가 아니라면, 도저히 그런 표정으로 그런 목소리와 떨림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라며 “한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걸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순간. 언론은 그 순간, 그 표정과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하면 된다. 그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동시에 가장 본질적인 언론의 역할”일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는 미투 운동 보도 관련 성명서를 통해 “피해 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을 피해자가 대중을 상대로 오롯이 져야 해서 인터뷰 후 심각한 2차 피해가 초래”된다며 피해자가 직접 출연하는 이런 생방송 인터뷰의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 지적대로 언론이 극적 폭로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문 방송인도 아닌 평범한 피해자를 생방송이라는 절박한 상황에 노출시키는 것은 가혹하고 위험한 일입니다.

 

따라서 현 시점 언론은 ‘생방송 인터뷰에 대한 감탄’을 쏟아내는 대신, 피해자가 보다 편안한 상황에서 증언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편집을 통해서 그대로 노출하기 부적절한 내용을 편집하는 등의 ‘피해자를 위한 인터뷰 방식’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피해자 개개인의 운동에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한 행태입니다. 도리어 피해자가 자사를 통해 피해 사실을 알리겠다고 나설 때에도 언론은 ‘실명 폭로 이후 그 개인에게 발생할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지하고, ‘이렇게 인생을 거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당신의 발언이 외부에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충분히 설득해야 합니다.

 

이런 설명 없이 ‘유행’처럼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심지어 단독 경쟁까지 할 경우 ‘성폭력 범죄의 문제의 해결을 모두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유형의 보도가 양산될 뿐입니다. 

 

 

셋, ‘무고’와 ‘무죄’ ‘무혐의’를 맥락 없이 부정확하게 활용해서는 안 된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무죄를 주장하며 법정 다툼을 예고․추진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언론이 성폭력 사건을 전하며 ‘무죄’와 ‘무혐의’, ‘무고’ 등의 용어가 지닌 ‘본질적 의미’를 정확히 짚지 않아 오해를 유발한다는 점 역시 짚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혐의는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검사가 사건을 아예 재판에 회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죄는 검사가 기소했으나 법원이 ‘죄가 있음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선고하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법기관의 이런 판단을 놓고 ‘아예 검사가 기소조차 하지 않았으니 무혐의가 무죄보다 더 죄가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에서의 증거는 대부분 간접(정황)증거이기에 입증하는 것이 어려워 무혐의 처분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검찰이 왜곡된 인식을 기반으로 피해자 주장을 별다른 근거 없이 의심하면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는 사례마저 있습니다. 실제 JTBC <주변서 2차 피해…수사 때 3차 피해>(3/8) 보도에 따르면 성락교회 신도가 김기동 목사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증거로 제출된 사진 속 해당 신도의 웃는 모습을 두고 ‘성적 수치심을 느낀 여성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며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성폭력 사건을 전하는 언론이 이런 복잡한 맥락을 무시하고 ‘무혐의’나 ‘무죄’를 혼용하여 마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히 증명되어 버린 것’처럼 사용할 경우, 피해자에 대한 심각한 2차 가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주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무혐의 처분을 받아 다 끝난 일이니 나는 당당하다’는 주장을 무차별적으로 받아쓰는 등의 방식으로 이 같은 문제 보도를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는데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부 매체는 아예 ‘무혐의 판결’(무혐의는 법원이 아닌 검사의 ‘처분’) ‘법원으로부터 무혐의를 인정받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주경제 <인터넷 미투 리스트 확산 피해자가 가해자로 ‘낙인’ 우려>(3/7)에는 “A씨는 성폭행 미수범으로 비난을 받았으나 법원으로부터 무혐의를 인정받아 오해를 벗었다”는 구절이 있으며, 머니S <‘도종환 장관 고은 시인이 주례’ 주장 반성… “가짜뉴스도 범죄자”>(3/20)는 “‘박진성 시인은 누명 쓰고 자살시도까지했는데 결국 무혐의 판결받고 탁수정은 허위사실유포죄로 처벌받았다”는 네티즌 반응을 그대로 소개했습니다.


동아일보 <“탁자 아래로 손 내리지 마라, 마주치는 것은 술잔뿐”>(3/17)은

“일각에서는 미투운동 때문에 남성들이 위축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단순히 폭로만 나와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이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논거가 성범죄에 대한 무죄 및 무혐의 판결 비율이다. 대법원의 ‘2017년 범죄발생검거 및 처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성폭력 범죄로 기소된 건은 총 2만7248건. 이 중 6806건이 무죄나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비율로 따지면 전체의 25%가량이다”

라며 무죄와 무혐의를 뒤섞어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무혐의=무고 인정’ 공식 은연중 부각하기도
무혐의 처분 이후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무고로 맞서겠다’는 주장, 혹은 그 주변인들의 ‘무고죄로 고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무혐의까지 나왔는데’라는 주장과 함께 엮어 언론이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검찰이 피고소인에게 무혐의 처분한 것이 고소인에 대한 무고죄가 성립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지요. 


실제 베타뉴스 <심현섭, 성추행 의혹 억울함 토로..무혐의 처리까지 받아>(3/8)는 “여론은 심현섭의 상황에 미투 운동의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 아니냐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며 “무혐의 판결이면 말 다 한거지. 조사도 심현섭 씨만 나가고 미투 한다고 막 하지마. 억울한 사람 피해보고 이미지 깍인다. 무고죄도 엄청 형벌 커야되는데”라는 네티즌 반응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사실상 ‘무혐의 처분’을 곧바로 ‘무고 확정’으로 연결한 이런 주장을 해당 매체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받아 적은 셈입니다. 


그 외 뉴데일리 <“미투 고백 전에 이것만 명심하자”>(3/13)는 “미투 운동이 ‘분풀이식 마녀사냥’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무혐의로 드러난 탤런트 선우재덕, 영화배우 곽도원, 개그맨 심현섭 등의 예를 들며 ‘여과 없는 무분별한 폭로는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불필요한 소송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사전에 철저한 팩트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법률 용어 ‘무고’와 일상어 ‘무고’의 경계를 흐릴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의미 혼용 수준을 넘어, 법정 공방에 대한 잘못된 사실관계를 남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국민일보 <폐쇄병동 입원 중 짜장면? 탁수정 모금 논란… 주최측 “실 수 인정”>(3/21)을 들 수 있는데요. 이 기사는 “탁씨는 2017년 6월 박진성 시인을 성폭행범으로 무고한 혐의로 형사상 처벌을 받고,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한겨레21 <'백래시'를 멈춰라>(3/12 https://goo.gl/SaqsYX)에서 탁수정 씨는 “ㅂ시인은 나를 무고 혐의로 고소한 적이 없다. 해시태그 운동 때 가해자로 지목된 누구도 나를 무고 혐의로 고소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무고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에게 검사나 가해자가 역고소를 하는 것이기에, 나는 무고 역고소 대상이 될 수 없다.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지지자로 활동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넷. 운동의 ‘순수성 훼손’을 운운하는 ‘재뿌리기’ 보도가 필요할까
언론이 미투 운동에 유독 엄격한 ‘순수성’을 요구하는 태도 역시 우려스럽습니다. 운동이나 사회현상의 확산․지속 과정에서는 언제나 그 취지에 반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언론이 이를 경계하며 보도에 주의하고 비판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악용 사례를 강조하면서 운동 실패를 예언하거나 파급력을 과장하는 보도는 오히려 미투 운동의 ‘동력’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행태는 △올바른 미투 운동에 대한 자의적 기준을 설정한 뒤, 이 기준에서 벗어난 미투 운동을 본질을 흐리는 것으로 매도하거나 △일부 사례를 근거로 ‘이미 미투 운동이 망가졌다. 이러다가는 망가질 것이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제멋대로 설정된 ‘‘올바른 미투 기준’으로 '김흥국 사례'는 미투가 아니라는 스포츠서울
‘올바른 미투 운동에 대한 자의적 기준을 설정한 뒤, 이 기준에서 벗어난 미투 운동을 본질을 흐리는 것으로 매도’하는 대표적 사례는 스포츠서울 <가수 김흥국 사례 ‘미투’ 본질 해칠까 우려>(3/15)입니다.

 

이 기사는 “최근 들어 미투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사례가 등장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라며 “최근 김흥국을 미투로 고발한 여성 A씨 사례”를 그러한 문제 사례로 꼽았는데요. 스포츠서울이 이 사례를 ‘미투 운동의 본질을 훼손하는 사례’로 분류한 그 근거 기준은 그저 ‘권력형 성범죄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사는

“만약 해당 여성이 김흥국 밑에서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연습하는 연습생이라면 미투 사례가 되겠지만 이 여성은 보험설계사라는, 김흥국의 직업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권력형 성범죄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김흥국이 해당 여성을 술을 취하게 한 후 호텔로 데려가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피해를 입은 여성은 언론에 ‘미투’로 알릴 게 아니라 경찰서로 직행해 고소장을 제출하는 것이 바른 절차다. ‘미투’의 본질에 맞지 않는 사례가 ‘미투’로 끼어든다면 미투에 대한 피로도를 가중시켜 정작 권력형 성범죄로 고통 받았던 피해자들의 사례까지 외면당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만이 미투를 할 자격이 생긴다’는 이런 기준은 자의적으로 설정한 것에 불과합니다. 애초 피해자들에게 ‘당신이 당한 피해로는 미투를 할 수 없다’고 외부에서 멋대로 기준을 설정해주는 것 자체가 오만하고 황당한 일입니다. 


언론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런 주장을 펼치는 인사의 발언을 아무런 비판 없이 부각하여 받아쓰는 행태 역시 부적절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조기숙 교수가 “미국에서 미투 운동은 위력과 위계에 의한 반복적이고 상습적인 성폭행을 폭로하는 데에서 시작됐다”며 이른바 ‘사이비 미투론’을 들고 나왔을 때, 국민일보,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조선일보, 스포츠서울, 서울신문, 머니S, 동아일보, 뉴시스, 연합뉴스, 헤럴드경제, 뉴스웨이 등 수 많은 매체가 조 교수의 발언을 제목으로 부각한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전한 언론사의 실제 의도가 무엇이건 이러한 보도 태도는 해당 주장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뿐입니다. 

 

 

‘미투 운동은 망가졌다’는 성급한 ‘재 뿌리기’ 보도도 나와
일부 사례를 근거로 ‘이미 미투 운동이 망가졌다/이러다가는 망가질 것이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대표적 사례로는 조선일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피해자에 2차 폭력, 묻지마 여론재판… 뒤틀리는 미투>(3/5)를 들 수 있는데요.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특히 일부 폭로가 허위사실로 판명되면, ‘미투 운동’ 전체의 동력이 떨어지고 순수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방송사 중에서는 MBN <엉터리 폭로 속앓이>(2/28)가 “용기있는 미투는 박수 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여기 찬물을 끼얹는 행위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나오는 악의성 무고가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겁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엉터리 폭로가 미투운동의 순수함까지 훼손시키고 있습니다”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허위 폭로’에 대한 우려를 표할 수는 있으나, ‘일부 폭로가 허위사실로 판명’되었다고 운동 전체의 동력, 순수성이 훼손될 것이라 단정 짓는 행위는 ‘허위 폭로가 있으니 미투는 전부 못 믿겠다’는 성급한 판단을 부추길 수 있어 위험합니다.

 

우려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문제 사례가 전혀 없어야 그 운동이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이러한 단정적이고 과장된 표현은 지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섯. 부실하고 치우친 보도로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언론이 특정 주체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상대방이 억울할 수 있다는 가정’을 완전히 외면할 경우에도 문제는 발생합니다. 이와 관련해 살펴볼만한 대표적인 문제 사례는 프레시안의 정봉주 의원 성추행 의혹 관련 첫 보도와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11회입니다.

 

 

프레시안 ‘정봉주 성추행 의혹’ 첫 보도 속 아쉬운 지점들
프레시안의 ‘정봉주 성추행 의혹’ 관련 첫 보도 <“나는 정봉주 전 의원에게 성추행 당했다”>(3/7 https://goo.gl/etA8wM)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요. 핵심은 ‘기사의 불완전성으로 불필요한 논쟁을 촉발시켰고, 그로 인해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 있습니다. 


실제 이 보도는 2011년 12월 23일 성추행이 발생했다는 피해자 증언을 전하고 있으나 후속 보도 <“정봉주 ‘네가 애인 같다’…새벽에 ‘와줄 수 있냐’”>(3/9 https://goo.gl/gP1sgY)가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공개한 메일 속 ‘성추행 사건이 벌어진 날짜’는 크리스마스 이브(12월 24일)였습니다.

 

이러한 ‘혼선’에 대해 프레시안은 해당 후속보도에 “메일을 작성할 당시, 정 전 의원의 수감일을 12월 25일(실제 수감일은 26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의 설명을 덧붙였으나 관련 논란을 불식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정황증거가 무엇보다 중요한 성추행 사건에서 언론이 사건 발생 날짜를 둘러싼 혼선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아 오히려 이쪽으로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켜 버린 셈입니다.


성폭력 피해자 증언을 토대로 보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언론이 ‘피해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진위 여부를 가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기억의 혼선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기에, ‘기억의 혼선=거짓’이라는 공식을 무작정 적용하는 것 역시 위험합니다.

 

그러나 ‘피해자 증언의 배경과 맥락’에 대해서는 언론이 나름의 방식으로 반드시 점검에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이 피해자 주장에 ‘감정이입’해 상황 혹은 기사 내의 ‘어긋남’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할 경우 이후 앞의 사례처럼 더 큰 논란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충분한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피의자로 지목된 인물에게 충분한 반론권을 보장하고, 취재를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프레시안의 관련 첫 보도가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성폭력 보도에서 언론이 ‘익명 보도를 결정하는 것’만으로는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할 수 없음을 증명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의 부적절한 편들기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3/22 9회)도 논란입니다. 김어준 씨는 관련 아이템을 다루면서 먼저 “저는 특수 관계인이고 법률 다툼까지 간 케이스라 일반적인 사안은 제가 논평할 수가 없고 사실관계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부분은 말씀드리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정봉주 전 의원 측이 ‘당일 호텔에 방문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제시한 ‘780여장의 사진’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사진으로 확인 ‘나꼼수’와 함께했던 그날, 그 시간!>, <블랙하우스 그날의 그 사진 단독공개!>, <논란의 날짜에 찍은 사진을 단독 입수한 블랙하우스>처럼 ‘해당 사진이 증거로서 상당히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담은 자막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이후에는 전문가를 통해 해당 사진의 ‘진위 여부’를 감별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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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11회 자막 갈무리

 

그나마 사진 소개 및 감별 이후,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지금 이 정봉주 전 의원과 프레시안 언론사끼리 서로 맞고소가 되어 있는 상황이에요. 이것을 제 3자들이 단편 단편을 예단이나 선입견을 갖고 판단하기는 위험하다고 보고, 오히려 맞고소 돼 있으니까 신속하게 법정에서 판단을 빨리 내려주는 게 이 사태를 해결하는 길이 아니겠나 그렇게 생각합니다”라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제외한 거의 모든 방송 분량에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정 전 의원 측 입장을 노골적으로 대변’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다른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해당 회차 방송 이후 한겨레는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로 확인된 ‘정봉주의 해명’ 3가지 오류>(3/24 https://goo.gl/qzf7xR)에서 ‘정봉주 전 의원의 2011년 12월23일 당일 행적을 기록한 취재 메모’와 “성추행 폭로 이후 정봉주 전 의원의 공식 기자회견 및 보도자료 해명과 ‘민국파’ 정대일 씨의 주장, 성추행 피해자 ㄱ씨의 주장 등을 교차로 검증”하여 정 전 의원의 해명이 사실과 다른 지점을 짚어내기도 했습니다.

 

지상파 방송사인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제작진이 이 파급력이 큰 아이템으로 방송을 제작하면서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취재를 거치긴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지경입니다.   


언론은 기사를 접한 대중이 ‘성폭력 사건’이라는 본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치밀한 보도를 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언론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거듭하여 해야 할 것입니다. 미투 보도로 ‘장사’를 하려는 것인지, 반성폭력 사회로의 변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인지. 세상을 바꾼다는 취지만을 앞세우다 언론으로 인한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3월 1일~3월 24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 및 온라인 관련 보도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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