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모니터_
종편의 성범죄 보도방식, 이대로 괜찮은가
등록 2017.06.2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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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또 하나의 성폭력 사건 항소심 결과가 나왔습니다. 남자 고등학생들이 여학생들에게 집단으로 성폭행을 가했던 일이 5년 만에 밝혀져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의 가해자 대부분에게 1심 선고보다 무거운 형이 내려졌는데요. 이례적인 재판부의 판결을 언급하며 종편 3사 모두 관련 내용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종편은 부적절한 자료화면을 내보내는 등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는 등 인권 감수성이 낮은 행태를 보였습니다.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는 성범죄 피해에 대한 잘못된 인식

먼저 성범죄 피해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불러온 문제 발언이 있었습니다. TV조선 <신통방통>(6/23)에서 전지현 변호사는 “가해자 입장에서 어려서 잘 모르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더 어린 피해자는 저 치욕감을 평생 안고 살아야 되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발언은 성폭력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언론에서 그 피해를 ‘평생’ 안고 갈 상처로 규정하여 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태도입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가 입은 상처는 회복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긴 하나, 이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치욕감’으로 까지 강조하는 것은 적절한 태도가 아닙니다.

2014년에 여성가족부와 한국기자협회,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여성·아동폭력피해중앙지원단이 공동 발간한 「성폭력 사건 보도 수첩」의 발간사에서 당시 여성부장관은 “성폭력은 그 피해만으로도 힘들지만, ‘씻지 못할 상처’, ‘성폭력 피해자’라는 낙인 등 사회적 시선과 편견이 피해자에게 평생 피해 의식으로 남습니다. 언론이 충분한 인식을 갖고 독자와 피해자가 느끼게 될 감정을 고려하여 보도를 한다면, 국민의 성폭력 사건 및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해소될 것이고, 피해자를 돕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썼습니다.

한편 TV조선은 피해생존자의 상황을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TV조선 <보도본부핫라인>(6/23)에서 문승진 기자는 “(피해생존자들이) 이후 몇 달 동안 무서워서 집을 나가지도 못했고 가해자들이 졸업하고 난 후에도 충격과 불안감,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라고 말하더니 “결국에는 학교 자퇴까지 했고요. 어머니한테 이사를 가자고 했지만, 가정 형편이 안 좋아서, 돈이 없어서 동네를 떠나지 못했다고 합니다”라며 사건과 무관한 피해생존자들의 사생활까지 언급했습니다. 언론은 피해생존자들이 호소하는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묵인해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가정 형편 같은 사생활의 영역을 ‘스토리텔링’ 소재로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사건 이해와 무관한 선정적인 자료화면 난무

성폭력 범죄 보도 권고 기준에는 “언론은 사진과 영상 보도에서도 피해자 등이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특히 삽화, 그래픽, 지도 제공이나 재연 등에 신중을 기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민언련에서는 2015년에 종편의 선정성에 대한 보고서로 <MBN 시사토크쇼 ‘뉴스파이터’ 모니터보고서>(https://bit.ly/2tehAGG)를 작성하여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삽화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었는데요, 수위만 낮아졌을 뿐 여전히 종편은 사건이해와 무관한 삽화와 재연 영상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MBN <아침&매일경제>(6/23)에서는 한 남성이 무력으로 여성을 제압하는 영상을 내보냈는데, 이는 사건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한편, 채널A는 영상이 아닌 삽화를 사용했는데요, 부적절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채널A <이슈투데이>(6/23)에서는 피해생존자들이 웅크린 채 울고 있고, 소주병을 든 가해자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삽화를 자료화면으로 내보냈습니다. 채널A <뉴스TOP10>(6/23)에서는 다수의 남성이 한 명의 여성을 위협하는 삽화를 사용했는데, 모두 사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했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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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편이 사용한 자료화면 갈무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MBN <아침&매일경제>, TV조선 <보도본부핫라인>, 채널A <뉴스TOP10>, 채널A <이슈투데이>

 

성범죄에 대한 이해가 무지한 상태에서 보도하면 2차 피해의 위험이 매우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에서 피해자의 어린 나이, 어려운 형편 등을 강조하면서 가해자를 ‘나쁜 놈’으로 만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언론이 이러한 보도를 지양해야 하는 이유는 명료합니다.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편이 피해자의 개인적 서사를 공적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성범죄를 하나의 이야기로 소비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 역시 같습니다. 성범죄에 대한 인식 제고, 사회적 안전망과 대책 마련을 위한 고민이 엿보이는 보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가해자 대신 피해생존자만 있는 자막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을 모든 언론이 ‘여중생 집단 성폭행’으로 이름 붙이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기를 권합니다.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종편 세 곳 모두 사건을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라고 명명했습니다. 해당 단어는 약 십여 차례 자막으로 노출되었는데요. 언론에서 성범죄 관련 보도를 할 때, 가해자가 아닌 피해생존인의 이름이나 정보를 가지고 이름을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보도행태입니다. 표에는 넣지 않았지만, MBN <아침&매일경제>(6/23)도 조선일보의 ‘도봉 여중생 사건 주범 2명 7년형’이라는 기사 내용을 그대로 자막으로 내보냈습니다. 

 

방송사

프로그램

자막내용

TV조선

신통방통

여중생 집단 성폭행 재판부 “사람이 할 수 없는 짓…” 격노

법원, ‘여중생 집단 성폭행’ 2심서 형량 높여

2011년 여중생 집단 성폭행, 5년 뒤 범행 드러나

보도본부핫라인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 재판부 분노

뉴스를 쏘다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더 무거운 형량 이유?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경위는?

채널A

뉴스TOP10

여중생 집단 성폭행 가해자 부모 ‘적반하장’

이슈투데이

‘여중생 집단 성폭행’ 항소심서 중형

MBN

굿모닝MBN

판사도 분노… ‘여중생 집단성폭행’ 형량 가중

‘여중생 집단성폭행’ 주범들 2심 중형

△ 종편 3사에서 사건을 보도하며 내건 자막(6/23)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이 특정 사건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1993년 서울대 교수가 여성 조교를 성희롱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당시 언론은 이 사건을 ‘우 조교 사건’으로 부르면서 가해자인 남자 교수는 사건의 중심에서 사라지고 피해자만 주체로 떠올랐습니다. ‘여중생 집단 성폭력’과 같이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게다가 여중생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보다는 차라리 가해자를 부각하거나 ‘집단 성폭력’이라고 최대한 건조하게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6월 23일 채널A, MBN, TV조선의 6개 프로그램 (민언련 종편 모니터 보고서는 패널 호칭을 처음에만 직책으로, 이후에는 ○○○ 씨로 통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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