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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신 장면’과 ‘계부 인터뷰’가 전부? TV조선 탐사보도의 한계
등록 2017.11.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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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TV조선은 자사의 메인뉴스인 <종합뉴스9>에서 전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살인 사건 가해자 이영학 씨의 계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상세히 전했습니다. 이영학 씨 아내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던 계부 배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파문은 더 컸는데요. 이날 TV조선은 무려 5건을 ‘계부 배 씨의 자살’에 할애하면서 이영학 씨 아내가 투신하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는 등 과도하게 선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심지어 숨진 배 씨 단독 인터뷰도 준비되어 있다고 홍보했는데 이는 자사 프로그램인 <탐사보도7>의 광고였습니다. 


TV조선 <탐사보도7>은 지난 8월 30일부터 매주 수요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TV조선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입니다. TV조선은 홈페이지 제작 의도에 “각종 범죄와 비리, 의혹을 탄탄한 구성과 심도 있는 현장 취재로 파헤치는 탐사 고발 프로그램”, “기존의 탐사프로그램들이 주로 살인사건이나 미제사건 등 흥미 위주의 아이템에 집착한 것과 달리, 보다 다양하고 폭 넒은 아이템으로 사회 전반을 조망한다”고 명시해놨습니다. 그러나 이미 TV조선이 다른 시사 프로그램과 뉴스에서 선정적인 화면과 반인권적 시각을 노출했기 때문에 우려가 컸죠. 지난 10월 25일 방송분은 바로 이런 우려가 현실임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이미 뉴스에서 방송심의규정이 금지하는 구체적인 자살 묘사 및 선정적 보도를 일삼았던 TV조선은 ‘탐사보도’ 타이틀을 달고 있는 <탐사보도7>(10/25)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사건 자체에 여러 의문점이 있을 뿐 아니라 경찰의 초동 대응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발견된 ‘이영학 사건’을 다루면서 별 중요한 내용이 없는 ‘사망한 계부 인터뷰’나 ‘아내 최 씨 자살 장면’을 노출하며 오로지 ‘선정성’에 몰두한 겁니다. 이는 ‘탐사보도’의 본래 취지와는 크게 어긋난 행태입니다. 이러한 TV조선의 태도는 똑같이 탐사 보도를 지향하면서 이영학 사건을 다룬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10/26)와 크게 대조됐습니다. 

 

피해자와 경찰의 문제 다루지 않은 TV조선, 도대체 뭘 보도했나
TV조선 <탐사보도7>(10/25)은 이영학 사건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에서 이미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TV조선은 이영학 사건을 탐사 보도했다는 회차의 주제를 “이영학 아내 사망 미스터리”로 잡았습니다. 즉 TV조선은 이영학 씨 아내의 사망과 계부의 성폭행 의혹을 이 사건의 핵심으로 본 것이죠. 이는 방송 구성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TV조선은 최 씨의 투신 장면 CCTV로 방송을 시작하더니 곧바로 최 씨 성폭행 혐의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계부 배 씨의 ‘단독 인터뷰 취재 과정’을 장시간 보여줬습니다. 취재진이 어떻게 계부 배 씨를 인터뷰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만 약 11분 간 방송됐는데 전체 방송 시간 50분 중 20%에 달하는 분량입니다. 이 과정에서 TV조선은 계부 배 씨의 형 부부를 인터뷰하기도 했죠. 배 씨의 형은 “(이영학이) 며느리를 덮치라고 놓고 간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이후 취재진은 배 씨 부부도 만났는데 인터뷰를 거부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인터뷰 내용은 “비켜. 욕 나오게 하지 말고”, “나는 모른다고요” 등 사실상 아무 의미 없는 배 씨 부부의 주장만으로 채워졌습니다. 이 화면은 TV조선 뉴스에서도 사용됐는데 ‘단독’이라는 타이틀로 보도됐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망한 배 씨를 굳이 화면에 노출하면서 배 씨 부부와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으로만 채운 보도를 심층 보도나 단독 보도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계부 배 씨 단독 인터뷰’로 이날 방송의 20%를 채운 TV조선은, 나머지 내용을 ‘이영학의 성매매 업소 운영 의혹’, ‘이영학의 아내 최 씨 성적 학대 의혹’, ‘이영학의 유년시절 성범죄 의혹’, ‘후원금을 유흥으로 탕진한 이영학의 과거 행적’ 등으로 채웠습니다. 모두 이영학 사건의 주요 요소들이기는 하지만 TV조선이 다룬 내용들은 유독 성범죄에 집중되어 있고, 무엇보다 사건의 핵심인 피해자 김 양, 경찰의 미흡한 초동 대응이 없다는 사실이 눈에 띕니다. TV조선은 프로그램 말미에 피해자 김 양과 김 양 피살 당시의 정황을 고작 2분 간 정리하는데 그쳤고 경찰 대응의 문제는 아예 다루지도 않았습니다. 핵심은 쏙 빼놓고 사건의 자극적인 단면에만 집중한 것이죠.

 

  TV조선 <탐사보도7>(10/25) JTBC <스포트라이트>(10/26)
회차 제목 <이영학 아내 사망 미스터리> <이영학 인간 가면’>
첫 장면 아내 최 씨의 투신 장면  이영학의 이중성과 잔혹한 살해 방식
시간 흐름에 따른 방송 내용 계부 배 씨 성폭행 혐의 관련 단독 인터뷰 과정 이영학의 범행 과정 및 피해자 김 양 행적
아내 최 씨 관련 이영학의 수상한 행적 이영학 아내 최 씨의 죽음 관련 의혹
이영학의 아내 최 씨 성적 학대 정황 이영학의 과거 성범죄 행적 및 아내 학대 의혹
이영학의 과거 성범죄 정황 계부 배 씨 추적 과정 및 배 씨 입장
이영학의 후원금 유용 정황 공범인 딸의 범행 과정 및 정신 분석
안산 인질 살인사건 등 성관련 강력범죄의 심각성 경찰의 초동 대응 실패 등 부실수사 비판 
  미국의 아동 범죄 대응 방식 비교

△ 이영학 사건을 다룬 TV조선 <탐사보도7>과 JTBC <스포트라이트>의 시간 흐름에 따른 방송 내용 비교

 

JTBC <스포트라이트>(10/26)은 TV조선과 확연히 다릅니다. JTBC도 계부 배 씨 입장을 취재했지만 그 과정은 여러 장의 사진을 나열한 딱 한 컷으로만 보여줬고 배 씨 입장 역시 “모른다”는 주장 한 마디만 소개했죠. 또한 JTBC는 이날 방송의 주제를 “이영학 인간 가면”으로 제시하면서 피해자 김 양을 노린 ‘인간 이영학의 무자비한 이면’, ‘초동 대응에 실패한 경찰의 부실한 수사’를 장시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사건의 원인에 이영학의 성 도착 뿐 아니라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있다고 밝혔고, 피해자 김 양을 살릴 수 있었지만 무려 13시간의 골든타임을 놓친 경찰을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죠. 또한 미국의 사례를 들어 아동 보호에 허점을 드러낸 복지 시스템 전반의 부실함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JTBC도 아내 최 씨의 죽음을 다루기는 했으나 이는 일부일 뿐, TV조선처럼 방송 전체를 지배하는 테마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아내 최 씨의 의문 가득한 죽음 역시 이 사건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핵심으로 보기는 어려운 만큼, TV조선의 태도는 매우 아쉽습니다. 

 

‘이영학 아내 투신 장면’ 여과 없이 노출한 TV조선

사건의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단면에만 천착한 TV조선의 시각은 화면 처리에서도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TV조선 <탐사보도7>은 같은 날 1시간 먼저 방송된 <종합뉴스9>과 마찬가지로 이영학 씨 아내 최 씨의 투신 CCTV 화면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TV조선이 소개한 것은 최 씨의 투신 앞뒤 정황과 투신 장면이었습니다. TV조선은 “9월 5일 사건 당일 집 앞 수퍼에서 우유와 담배, 탄산음료를 구입하곤 다시 집으로 향합니다. 그로부터 약 1시간 20분 뒤”라고 설명한 직후 실제로 최 씨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CCTV 화면을 보여줬습니다. 최 씨의 모습을 블러 처리하기는 했지만 사람이 추락해 지면에 충격한 장면임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TV조선은 여기다 ‘퍽’ 하는 음향을 삽입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이 추락 장면은 이후 한 번 더 노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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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씨로 추정되는 검은 형상이 빠르게 떨어지는 모습 그대로 방송한 TV조선 <탐사보도7>(10/25)
최씨가 떨어지는 자세 분석을 위해 슬로우 모션을 사용한 JTBC <스포트라이트>(10/26)

 

방송심의규정 제38조의 2항(자살묘사) “ⓛ방송은 자살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거나 자살의 수단·방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서는 아니 되며, 내용전개상 불가피한 경우에도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방송심의 규정 제37조(충격·혐오감)는 “범죄 또는 각종 사건·사고로 인한 인명피해 발생 장면의 지나치게 상세한 묘사”를 금하고 있고 “내용 전개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 있으나 이 경우에도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장면은 반드시 지양해야 합니다. TV조선은 <종합뉴스9>에서도 투신 CCTV를 그대로 사용했다가 홈페이지 다시보기에서는 영상을 삭제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TV조선 <탐사보도7> 방송 바로 다음 날인 26일, JTBC <스포트라이트>도 이영학 사건을 다뤘는데요. 최 씨의 투신을 다루는 태도가 전혀 달랐습니다. JTBC는 최 씨가 추락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고 추락한 이후의 모습만 주목했습니다. 사실 TV조선과 JTBC 모두 최 씨의 투신을 다룬 이유는 최 씨의 죽음이 일반적 자살과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JTBC도 투신 과정을 설명하기는 했지만 TV조선처럼 효과음을 넣고 추락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JTBC는 일부 장면을 슬로우 모션 처리하여 자살로 보기 어려운 정황을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똑같은 분석을 전하면서도 투신 장면 노출에 있어 TV조선과 JTBC가 다른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최 씨의 시신까지 노출한 TV조선
TV조선이 강력범죄를 다룰 때 굉장히 부주의하다는 사실은 다른 장면에서도 두드러집니다. TV조선은 아내 최 씨의 죽음을 자살로 보기 어려운 다른 정황들로 이영학 씨가 아내의 죽음 후 직접 찍어 공개했던 영상들을 제시했는데요. 이중에는 이영학 씨가 아내 최 씨의 시신을 염하는 장면을 직접 찍은 충격적인 영상도 있습니다. 이영학 씨는 이 영상을 직접 언론사에 보내 ‘엽기 행각’이라는 지탄을 받고 있는데요. TV조선은 이 영상을 보여줄 때도 비록 블러 처리를 하기는 했으나 아내 최 씨의 시신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화면을 노출했습니다. 심지어 이영학 씨가 아내를 염하며 아내의 다리를 들어올리는 장면까지 나왔고 이영학 씨가 내뱉은 “예쁜 엉덩이 다 쳐졌다” 등 충격적인 말들도 모두 자막과 함께 내보냈습니다. 이렇게 염하는 영상만 총 1분 간 전파를 탔습니다. 최 씨 투신 장면과 함께 TV조선이 심의규정을 위반하고 선정성을 노출한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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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학이 죽은 부인 최씨를 염하는 영상 TV조선 <탐사보도7>(10/25)
  이영학의 얼굴만을 클로즈업 한 JTBC <스포트라이트>(10/26)

 

JTBC <스포트라이트> 역시 같은 영상을 다뤘지만 아내 최 씨의 시신 부분은 아예 영상에서 잘라내 이영학의 얼굴만 나오도록 했고 단지 이 영상을 의심스러운 정황 중 하나로 잠시 스치듯 제시했을 뿐입니다. 다만 TV조선처럼 이영학의 발언을 주목하기는 했는데 “가슴 (성형수술한 것) 뺐어? 오빠가 어떻게 돈을 갚니”라는 딱 한 마디만 강조했습니다. 이는 이영학이 아내 최 씨를 성적으로 학대한 정황 중 하나로 제시됐습니다. 
 
야심차게 내놓은 TV조선의 ‘탐사 프로그램’, 기본부터 챙겨야
탐사보도는 통상적으로 “누군가 숨기려고 하는 그 무엇을 끊임없이 파헤치는 보도”, “정보 전달이나 수동적 감시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의제를 바꾸려는 의도를 가진 보도”를 의미합니다. 충격적인 사건에서 근본적 원인을 찾아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탐사 보도의 기본 구성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이를 의미를 고려할 때 TV조선 <탐사보도7>(10/25)이 이영학 사건을 다룬 방식은 탐사보도라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TV조선은 아내 최 씨의 죽음에만 천착하면서 방송 당시 상당히 알려졌던 이영학의 과거 범죄 행각과 성 도착에 장시간 매진했고 이미 사망한 계부 배 씨 단독 인터뷰에 집착했죠. 반면 피해자의 생존 여부가 달렸던 김 양의 행적과 경찰의 대응 문제는 외면했습니다. 이는 같은 사건을 비슷한 시기에 다룬 JTBC와 확연히 대조됩니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TV조선 <탐사보도7>은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노출한 이영학 사건을 다루면서 그간 지적됐던 ‘종편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습니다. TV조선이 기획의도대로 탐사 보도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고자 한다면 강력범죄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더불어 심의규정을 반드시 준수해 국민 정서를 해치지 않는다는 언론의 기본적 소양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10월 25~26일 TV조선 <탐사보도7>, JTBC<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민언련 종편 모니터 보고서는 패널 호칭을 처음에만 직책으로, 이후에는 ○○○ 씨로 통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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