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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비판할 수 있다면 ‘익명 글’이어도 괜찮아
등록 2019.08.06 18:47
조회 732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년 2개월여의 청와대 근무를 마치고 민정수석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언론은 퇴임 이후 조국 전 수석의 행보에 주목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기사화 됐습니다. 그러던 중 7월 31일 동아일보를 시작으로 많은 언론들이 서울대 익명게시판(스누라이프)에 올라온 글 하나를 ‘학생여론’으로 둔갑시켜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익명 글에는 조국 전 수석의 교수직 사퇴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합니다.

조 전 수석에 대한 해당 대학생의 평가와 해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글 하나가 전체 서울대 여론을 대표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서울대 익명게시판의 글 하나가 그럼에도 온라인 기사로는 물론이고 지면에까지 등장하는 현실은 우리 언론의 ‘따옴표 저널리즘’의 단면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익명 글 기사화도 모자라 제목으로까지 선정

신문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경제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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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여론’(익명게시판)내용이 포함된 조국 서울대 복직 보도량(7/30~8/6) ⓒ민주언론시민연합

*지면보도에 한함

한겨레와 한국경제를 제외한 중앙 일간지·경제지는 모두 서울대 익명 글을 기사화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틀 연속 해당 이슈를 보도했고, 사설까지 썼습니다. 조국 전 수석의 서울대 복직을 다룬 대부분의 기사에는 모두 서울대 익명게시판이 함께 언급됐습니다.

또한 익명 글 내용이 기사 헤드라인과 소제목으로 표현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울경제·경향신문·동아일보는 ‘서울대생들’, ‘학생들’ 이라고 표현한 익명 글의 내용과 댓글들을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제목을 보면 마치 이 익명 글이 서울대 학생들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언론이 인용한 ‘학생 여론’은 글 하나에 불과했고 심지어 익명으로 쓰인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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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익명 글을 주제로 한 기사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울경제, 경향, 동아, 동아) ⓒ민주언론시민연합

 

글 조회수와 추천수까지 언급해주는 언론

서울대 익명 글 내용은 동아일보를 통해 처음으로 지면에 게재됐습니다. 동아일보는 <“내로남불 폴리페서, 교수직 사퇴하라법무장관 거론 조국 겨눈 서울대생들>(7/31, 박상준 기자)에서 익명게시판의 글을 자세히 담았습니다.

 

서울대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조 전 민정수석의 교수직 사퇴를 촉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26일 ‘조국 교수님 학교 너무 오래 비우시는 것 아닌가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한 학생은 “학교에 자리를 오래 비우시면 다 학생들에게 피해로 돌아온다”며 “안식년이 3년 이상 갈리도 없고 이미 안식년 끝난 것 아닌가요?”라고 적었다. (중략) 해당 글은 30일 오후까지 7500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서울경제도 <조국 오늘 서울대 복직 학생들, 환영보다 비판>(8/1)에서 “서울대 학내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는 지난 26일 ‘조국 교수님 학교 너무 오래 비우시는 거 아닌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이날 오전까지 조회 수 7,600개에 추천 수 287개를 기록했다”고 썼습니다.

두 기사 모두 익명게시판에 게재된 이 글 하나를 아주 자세히 소개하며 말미에는 조회수까지 언급해줬습니다. 조회수와 추천수가 높으니 이 글을 기사화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설령 많은 학생들이 이 의견에 동조한다고 해도, 이 글이 올라온 곳이 ‘익명 게시판’이라는 성격을 고려해 이 글 하나로 기사를 쓰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알았어야 합니다.

 

과거 글 소환…사실과도 다르다

언론이 적극적으로 조국 전 수석의 서울대 복직을 비판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조국 전 수석이 과거에 썼던 글과 현재의 행보가 이율배반적이라고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조선일보는 <폴리페서 비난에조국 맞으면서 가겠다>(8/2, 최연진 기자)에서 “조 전 수석은 과거 선출직 공직에 진출하면서 교수직을 유지했던 사람들을 ‘폴리페서’라고 여러 차례 비판했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 내용으로 <사설/정말 낯 두꺼운 사람들(8/2)>까지 쓰며 “조 교수가 학교를 떠나 있는 동안 서울대에서 조 교수가 그토록 비판한 그 일이 그대로 벌어졌다”고도 썼습니다. 조국은 정말 폴리페서를 비난하는 글을 썼을까요?

뉴스톱은 <조국은 정말 폴리페서논란에 내로남불했나?>(8/1, 이고은 팩트체커)를 통해 이 내용을 펙트체크 했습니다. 기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선 2004년 칼럼의 내용을 살펴보면, 조 전 수석은 대학교수의 정치 참여를 무조건 비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수와 정치권이 건강한 상호관계를 맺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며 “주권자이자 지식인으로서 교수가 정치에 무감할 수 없고, 교수의 전문적 식견과 정책능력이 정치권에 반영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전제했다. (중략) 교수로서 쌓은 성취를 정치권(국회) 진출의 발판으로 삼는 ‘선출직 공무원 지망생’들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문제 삼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국 전 수석은 임명직 공무원에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고 선출직 공무원에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조국의 과거 글을 소환해 비판을 하고자 했으면 적어도 글의 요지가 무엇인지는 잘 확인했어야 합니다.

 

‘극우 단체’를 보수 단체로 표현하기도

조국 전 수석 물고 늘어지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동아일보는 <서울대 뜨거운 조국>(8/5, 이호재,윤다빈 기자)에서 서울대 로스쿨 재학생들의 또 다른 익명 게시판 ‘로스누’에 게재된 글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해당 게시판은 비공개 커뮤니티라 재학생을 제외하고는 접근이 힘들고 익명으로 글을 게재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입니다. 동아일보는 이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며 조국 비판 여론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독자들이 과연 서울대 학생들의 비공개 커뮤니티 글까지 세세하게 알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동아일보는 글 내용도 모자라 댓글까지 상세하게 소개해줬습니다.

 

재학생 A 씨는 이 글을 통해 “수업당 학생 수가 많아져서 피드백도 제대로 못 받고 성적 처리도 늦어지는데, 그냥 시간이 지나면 이해할 것이다? 진짜 교수님 너무 이기적이시네요”라고 비판했다. 이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건 선이고 이해 가능한 영역,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건 악이고, 타협 불가능한 영역…정말 너무하십니다”라고 적었다.

 

같은 기사에서 동아일보는 한 단체의 대자보를 소개하며 이 단체를 “보수 성향의 서울대 학생 모임인 ‘서울대 트루스 포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대자보에는 ‘과거 폴리페서를 스스로 비판하신 교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그렇게 관대하니 놀라울 뿐’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물론 조국 전 수석의 교수 복직에 대한 의견이 다양할 수 있고, 학생들은 대자보로 이 의견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언론사들이 원하는 의견을 선택해 마치 서울대 학생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기사를 써버린다는 것에 있습니다. 기사에서 ‘서울대 학생들의 의견’이라고 표현했다면 정말 서울대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기사화했어야 합니다. 겨우 익명 글을 엮어 ‘서울대 학생들의 의견’이라고 표현해버리기에는 비약이 심합니다.

심지어 이번 동아일보가 소개한 이 단체는 단순히 ‘보수 단체’로 보기 어려울 만큼 극단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단체였습니다. 트루스포럼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내포한 북한 해방, 굳건한 한미동맹 유지 등을 주장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트루스포럼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유대기독교 전통에 바탕을 둔 기독교 보수주의를 표방합니다’라는 소개글을 게재했지만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박정희가 옳았다> 저자 북콘서트’ 등을 계획하는 게시물들을 보면 이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보수를 표방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온라인판으로 게재했습니다. 조선일보의 <단독/서울대 학생들, 조국 사퇴 운동...“그냥 정치를 하시라”>(8/3, 임수정 기자)에도 역시 트루스 포럼을 ‘보수 성향의 서울대 학생 모임’이라고 표현했으며 대자보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보수 언론사들은 익명의 글을 학생 여론으로 과장한 것도 모자라 극우 단체의 대자보를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이들이 조국 전 수석 비판을 위해 너무 큰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 썸네일 : 연합뉴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7/30~8/6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동아일보, 한국경제, 서울경제(별지섹션 제외)

<끝>

문의 공시형 활동가(02-392-0181) 정리 주영은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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