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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 사태, 사인은 바뀌어도 언론은 여전히 ‘왜곡’
등록 2017.06.1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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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5일,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9개월 만에 ‘외인사’로 수정됐습니다. 서울대학교 병원은 백 농민 사망 당시 사인을 ‘병사’라고 기재했던 사망진단서를 지난 15일, ‘외인사’로 바꿔 재발급했습니다. 백 농민 사망 당시 대한의사협회와 서울대 병원 동문 등 수많은 의료인들이 ‘외인사’를 권고했지만 서울대 병원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가해자’를 찾을 필요가 없는 ‘병사’ 판정으로 공권력의 뒷배를 봐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죠. 서울대 병원은 264일이 지나서야 ‘외인사’를 인정한 겁니다. 바로 다음날인 16일,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던 경찰청도 공식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과 과제가 산적해있습니다. 백 농민의 유족은 진상 규명 약속과 진정성이 없다며 사과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유족은 경찰의 사과를 언론 보도로 인지했습니다. 경찰은 내부 행사 자리를 빌려 유감을 표명해 형식도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자초했고 살수차 배치를 하지 않겠다면서도 ‘직사 살수’와 ‘최루액 혼합 살수’ 금지 요구는 끝내 거부했습니다. 서울대 병원 역시 논란이 남아있습니다. 사망진단서 파문의 당사자인 백선하 당시 주치의와 서창석 병원장은 기자회견장에 나오지도 않았고 여전히 ‘병사’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백선하 교수의 무리한 수술 집도, 사망진단서 작성 담당 전공의에 대한 외압 등 의문들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백 농민의 사인만 정상화됐을 뿐, 여전히 사태의 본질인 의료인과 공권력의 ‘박근혜 정권 부역 의혹’은 해결되지 않은 겁니다. 


이런 상황을 보도하는 방송사들의 태도는 무관심과 왜곡으로 점철됐습니다. 백 농민 사망 당시에도 경찰의 ‘살인 물대포’가 아닌 집회 시민과 유족에 책임을 돌렸던 MBC‧TV조선‧채널A의 태도가 특히 눈에 띕니다.

 

유족 입장도, 비판도 한 줄 없는 방송사들
16일, 이철성 경찰청장이 공식 사과하자 방송사들도 보도를 냈습니다. SBS와 JTBC만 각각 2건, 3건의 보도로 관심을 보였을 뿐입니다. 나머지 방송사들은 모두 단 1건씩 보도하여 겨우 구색만 맞췄습니다. 그러다보니 내용마저 심히 부실합니다. 


가장 충격적인 점은 유족의 입장조차 보도하지 않은 방송사가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MBC‧TV조선‧채널A‧MBN이 유족 입장을 누락했습니다. 백 농민의 딸인 백도라지 씨는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사과한다, 왜 이렇게 사과가 늦어졌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 저희를 찾아온 것도 아니다”라며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방송사는 이런 사실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나 서울대 병원에 대한 비판도 없습니다. 오히려 살수차 배치 기준을 강화한 경찰에 매우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경찰의 사과는 짧게, 대신 경찰의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MBC
 MBC <서울대는 “사인 변경”…경찰은 “사과”>(6/16 https://bit.ly/2rBbFMA)는 경찰의 사과와 ‘공권력 남용 방지 의지’만을 조명했는데요. 2분여의 보도에서 ‘경찰의 사과’를 전달한 분량은 46초 정도에 불과하고 경찰의 ‘공권력 남용 방지 의지’에만 리포트의 절반 이상인 1분 10초를 할애했습니다. “공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앞으로 집회 시위현장에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겠다”는 경찰 입장을 전하면서 “경찰의 공권력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절제된 가운데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 “검찰과의 수사권 조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인권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반영된 것”, “각계 인사 19명으로 구성된 '경찰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켜 국민의 시각에서 경찰 조직의 개선 방향을 찾는다는 계획” 등 긍정적인 평가를 나열한 겁니다. 

 

TV조선은 ‘사실상 살수차 퇴출’

TV조선과 채널A는 심각한 왜곡을 저질렀습니다. TV조선 <“애도와 사과”…살수차 배치 않기로>(6/16 https://bit.ly/2rpQdGa)는 경찰이 “살수차를 사실상 집회 시위 현장에서 퇴출시켰”다고 보도했습니다. 경찰이 시위대에 물대포를 직사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경찰 살수차, 사실상 퇴출”이라는 자막까지 내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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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살수차 배치 기준 강화를 ‘살수차 퇴출’로 보도한 TV조선(6/16)
 

이는 너무 노골적인 모순이라 시청자를 기만하는 수준입니다. TV조선 스스로 “살수차 사용은 쇠파이프 등 위험한 물건으로 타인을 폭행해 위험이 명백한 경우로만 한정”했다며 ‘살수차 사용의 예외적 사례’가 있음을 보도하면서도 이를 ‘퇴출’이라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살수차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따로 마련하면서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다시 살수차를 남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TV조선은 이를 ‘사실상 퇴출’이라는 모순된 프레임으로 왜곡해 경찰에 대한 비판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채널A는 ‘새 정부 눈치 보는 경찰’
채널A도 왜곡된 프레임을 내세웠습니다. 채널A <사과 못한다더니…>(6/16 https://bit.ly/2tcDIig)는 “경찰 수장이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 행사에서 이렇게 갑작스런 입장 발표를 한 데 대해, 새 정부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지적”을 조명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의 전제조건으로 '인권 경찰 구현'을 요구”했기 때문에 눈치를 본 경찰이 백 농민에 사과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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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 부역’ 의혹 받는 경찰을 ‘문재인 정부 눈치 보는 경찰’로 보도한 채널A(6/16)

 

유족의 입장이나 여전히 남아 있는 의문과 비판점을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으면서 이런 식으로 사태를 조명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백남기 농민 사건의 본질은 공권력의 남용으로 국민이 희생됐다는 사실, 그리고 사망진단서 왜곡, 백남기 농민 시신 부검 시도, 경찰의 책임 회피 등 박근혜 정권이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갖은 공작을 펼쳤다는 의혹입니다. ‘외인사’가 인정되고 경찰이 형식적으로나마 사과를 표명했다면 이는 ‘박근혜 정부의 눈치를 보던 병원과 경찰’이 정상화됐다고 봐야합니다. 채널A는 이를 ‘문재인 정부의 눈치를 보는 병원과 경찰’로 비틀어 버렸습니다.

 

SBS‧JTBC만 제대로 보도, 국민 생명 두고 왜곡하지 말아야 
그나마 SBS와 JTBC가 상식적인 보도를 냈습니다. SBS는 경찰의 사과를 거부한 유족 입장을 담아 1건의 보도를 냈고 서울대병원 비판 보도 1건을 추가했습니다. SBS <사인 오락가락…오점 남긴 서울대병원>(6/16 https://bit.ly/2slfYbZ)은 “경찰은 물론 서울대병원도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됐”다며 “첫 단추를 잘 끼웠”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족들은 분노했고 전국 의과대학생들의 성명이 잇따랐”던 백 농민 사망 당시 상황도 되짚었고 “국내 최고라는 서울대병원이 정권 눈치 보느라 잘못을 바로잡기까지 264일이나 걸렸다는 비판”을 전했습니다. 채널A와 달리 ‘서울대병원이 박근혜 정부 눈치를 봤다’고 규정한 겁니다. 


JTBC는 총 3건의 보도로 경찰을 집중 비판했습니다. JTBC <사과하면서도…‘직사 살수’는 그대로>(6/16 https://bit.ly/2tcvVky)는 경찰이 “집회 현장에서 '위험한 물건으로 타인이나 경찰을 폭행하는 경우' 등 예외적으로 살수차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남겨놨다면서 “예외 규정을 두면서 경찰이 현장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지적”을 전했습니다. “경찰은 '직사 살수'와 '혼합 살수'를 금지하라는 요구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점도 비판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생명을 위협하는 직사 살수와 최루액과 염료를 물에 섞어 뿌리는 혼합 살수를 금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모니터 기간과 대상: 2017년 6월 16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뉴스판>, 채널A <종합뉴스>,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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