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방송심의위원회_

방통심의위 심의 회의록 분석 보고서

장애인 비하 표현에 ‘문제없다’는 방통심의위
등록 2019.03.0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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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2일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은 70~80대 남성 7명이 같은 마을에 사는 지적장애 여성을 2004년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을 전하면서 매우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했다. 방송 직후인 8월 24일, 민언련을 비롯한 50여 개의 여성단체, 장애인단체들이 공동 규탄 논평을 발표했다. 논평에서 한 목소리로 문제 삼은 것은 “TV조선이 지적장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을 전하며 피해자를 모욕하고, 전문 진행자인 김광일 앵커가 장애인 비하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민언련은 이 방송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에 민원을 제출했고, 방통심의위는 ‘법정제재’인 ‘주의’를 의결했다. 처분 결과만 본다면, 엄중한 심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심의 내용과 적용조항에 있어서는 짚어봐야 할 점이 있다. 방통심의위가 심의과정에서 제51조(방송언어) 조항이 적용하지 않았으며, 장애 비하 표현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방송은 어떤 내용이었으며, 심의과정과 결론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짚어보자.

 

2차 가해성 인터뷰와 장애비하…TV조선의 한계 드러난 방송

 

당시 방송된 문제의 장면은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범행 발생 마을주민 2명 인터뷰 VCR

◯ 마을주민A :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정신 빠진 사람이지. 손주 딸 같은 걸, 잘못된 거지

◯ 마을주민B : 노인들이 속은 것 같아. 걔는 임신이 안 되는 애다. 그랬는데 그거 임신이 덜컥 돼 버렸네.

 

앵커 논평 <속마음셀카>

◯ 김광일 앵커 : 옛날 저희 시골마을에서는 반편이라고 불렀던 그런 남성이나 여성이 마을마다 한둘쯤 있었습니다. 요즘은 쓰지 않는 말입니다. 지적 능력이 다소 떨어졌던 장애인을 그렇게 말했죠. 아이들도 그 시절에는 예사로이 이런 사람들을 놀려 먹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런 여성에게 여럿이 오랫동안 성폭행을 하는 몹쓸 짓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성적 악귀가 마을에 들어오지 말라고 천하대장군을 세워놓는 그런 마을도 있었죠. 아직도 이런 일이 있나. 이런 사건을 들을 때마다 참 가슴이 먹먹합니다.

 

민언련이 지적한 핵심 문제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한 마을에서 여러 남성에게 오랜 시간동안 장애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이어졌다. TV조선이 이 사건을 다룰 때는 이미 수사를 통해 가해자들의 범행이 명백히 드러난 이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조선은 이를 보도하면서 기계적 중립을 지켜야한다는 듯이 가해자를 비판하는 주민과 두둔하는 주민의 의견을 모두 담았다. 게다가 그 발언이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속은 것 같다’는 요지의 발언이었다. 장애여성과 그 가족에 대한 2차 가해다. 아무리 해당 범죄를 비판적으로 다뤘다고 해도 이처럼 피해자의 모욕하는 주변인의 발언은 방송에서 반드시 걸러야 했다.

 

둘째, 진행자 김광일 앵커는 앵커 논평인 ‘속마음 셀카’ 코너에서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을 ‘반편이’로 지칭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반편이’는 장애인 비하 용어이다. 전문 방송인인 앵커가 ‘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이런 비하 용어를 사용한 사실 자체가 부적절하다. ‘장애인 성폭행’을 “성적 악귀가 들려 왕왕 저지르는 몹쓸 짓”이라고 표현한 것도 황당한 일이다. 장애인 성폭력을 ‘몹쓸 짓’ 정도로 표현하고 성폭력을 ‘옛날에는 일상적이었던 추억’이라도 되는 양 회고하는 모습은 그 심각성을 축소하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피해 장애인 조롱’ 제재할 조항 모두 지운 방통심의위

해당 방송에 대한 첫 심의가 열렸던 2018년 10월 25일, 방통심의위 사무처는 “민원 취지를 고려한 적용 조항은 제21조(인권보호)제2항, 제30조(양성평등)제4항, 제51조(방송언어)제3항”이라 제시했다. 더불어 “방송자문특위에서는 동 건에 대해서 출석위원 전원이 심의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민언련이 애초 심의를 넣을 때는 제51조(방송언어) 적용을 제안하지 않았고 제13조(대담토론프로그램) 5항과 제27조(품위유지)를 제시했다. 제13조(대담․토론프로그램 등) 5항은 “대담․토론프로그램 및 이와 유사한 형식을 사용한 시사프로그램에서의 진행자 또는 출연자는 타인(자연인과 법인, 기타 단체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을 조롱 또는 희화화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이고 제27조(품위유지)는 “방송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 되며, 프로그램의 특성이나 내용전개 또는 구성상 불가피한 경우에도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며 5호에서 “그밖에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금하고 있다. 민언련은 TV조선이 성폭력 피해 장애인을 조롱해 시청자에 불쾌감을 줬기 때문에 이 두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 판단했다.

 

적용 조항의 경우 방통심의위 사무처와 방송자문특위가 민원인의 제안 조항과 그 취지를 함께 고려해 택할 수 있다. 방통심의위 사무처의 결정은 제21조(인권보호)제2항, 제30조(양성평등)제4항, 제51조(방송언어)제3항이었다. 제21조(인권보호) 2항은 “방송은 심신장애인 또는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을 다룰 때에는 특히 인권이 최대한 보호되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제30조(양성평등) 4항은 “방송은 성폭력, 성희롱 또는 성매매, 가정폭력 등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51조(방송언어) 3항은 “방송은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억양, 어조, 비속어, 은어, 저속한 조어 및 욕설 등을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이다. 민언련의 민원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조항들이다. 문제는 심의위원들이 해당 민원에 대한 첫 방송소위를 시작하자마자 제51조(방송언어)제3항을 제외해버렸다는 것이다.

 

2018.10.25. 첫 심의회의

2018.11.8. TV조선 의견진술 심의회의

2019.1.10. ‘주의’ 의결 심의회의

제21조(인권보호)제2항, 제30조(양성평등)제4항, 제51조(방송언어)제3항

제21조(인권보호)제2항. 제21조(인권보호) 제3항, 제30조(양성평등)제4항, 제30조(양성평등) 제5항

제21조(인권보호)제2항, 제30조(양성평등)제4항

제외 조항

제51조(방송언어) 제외

제21조(인권보호) 제3항

제30조(양성평등) 제5항

다시 제외

추가 조항

제21조(인권보호) 제3항‧

제30조(양성평등) 제5항 추가

 

△ TV조선 <신통방통>(2018.8.22.) ‘성폭행 피해 장애인 비하 방송’에 대한 방통심의위의 ‘적용 조항’ 변천사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소위 위원들은 제51조(방송언어) 3항을 제21조(인권보호) 제3항 “방송은 정신적․신체적 차이 또는 학력․재력․출신지역․방언 등을 조롱의 대상으로 취급하여서는 아니되며, 부정적이거나 열등한 대상으로 다루어서는 아니된다”로 대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여기다 제30조(양성평등) 제5항 “방송은 성폭력, 성희롱 또는 성매매 등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묘사하거나 선정적으로 재연하여서는 아니 된다”도 추가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최종 의결이 나온 마지막 3번째 회의에서는 제51조(방송언어) 제3항과 더불어 ‘장애인 조롱 표현 사용 금지’의 취지를 담은 제21조(인권보호) 제3항까지 배제했다는 것이다. 함께 추가했던 제30조(양성평등) 5항 역시 제외됐다. 제51조(방송언어) 대신 애써 적용하는 듯 했던 2개 조항을 최종 의결에서 은근슬쩍 다시 빼버린 것이다. 이 과정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

 

장애비하 표현 사용에 문제의식이 없는 심의위원

이렇게 적용 조항이 기상천외한 수준으로 변화한 이유는 뭘까? 방통심의위 방송소위 속기록을 살펴본 결과, 방송소위 위원들은 대부분 ‘반편이’라는 표현이 ‘장애인 조롱‧비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너무나도 관대한 심의다.

 

박상수 위원 : 제가 사전을 찾아보니까 ‘반편이’라는 뜻은 ‘한 개를 절반으로 나눈 한편’ 또 다른 의미로는 ‘지능이 보통 사람보다 모자라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유의어로는 ‘바보’. 제가 어렸을 때도 저희 고향에서는 ‘반편이’라고 안 하고, ‘반평이’ 이런 식으로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바보’ 정도로 이렇게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방송언어 조항에 위반될 만큼 심한 욕설의 성질은 아니라고 판단이 되어서, 이 조항 적용 여부를 한번 고민을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중략)

 

심영섭 위원 : 이 조항(방송언어 조항)을 적용해서 징계한 것 대부분이 ‘상타치’라든지, ‘기모찌’라든지, ‘시벌리제이션’이라든지 등등 이런 욕설이거든요. 그런 욕설과 지금 ‘반편이’라는 표현이 같은 등급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지 하는 부분도 고민을 해봐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러냐면, 제3항에 보면, 후반부가 문제가 될 것 같아요. “다만, 프로그램의 특성이나 내용전개 또는 구성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했을 때, 그 쪽(TV조선)에서는 ‘이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게 되면 나중에 이것은 저희가 다툼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윤정주 위원 : 방송언어 부분을 빼면 제21조(인권보호)제3항 “방송은 정신적ㆍ신체적 차이 또는 학력ㆍ재력ㆍ출신지역ㆍ방언 등을 조롱의 대상으로 취급하여서는 아니 되며, 부정적이거나 열등한 대상으로 다루어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이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중략) 왜냐하면, ‘반편이’라는 말 자체는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서 이들을 열등하게 보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언어보다는, 그러면 차라리 제3항을 적용하면 좋겠습니다.

 

허미숙 소위원장 : 제51조(방송언어) 제3항을 넣을 수는 있으나, 굳이 그것을 넣어서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은 제21조(인권보호)제3항이라는 충분한 대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51조(방송언어)제3항을 제21조(인권보호)제3항으로 교체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수 위원은 ‘반편이’가 ‘지능이 보통 사람보다 모자라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임을 알면서도 통상적인 ‘욕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송언어 위반을 적용하지 않았다. 이는 말장난에 가깝다. 이런 식이라면, 명백한 욕설이라고 인식되는 ‘병신’이라는 표현도 방송언어 위반이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병신’이란 표현 역시 “모자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의미, 즉 ‘반편이’와 똑같은 뜻을 담고 있다. 심지어 ‘반편이’와 비슷한 말로 ‘반병신’이라고 적시하기도 했다. 통상적 욕설인 ‘병신’이 TV조선이 사용한 ‘반편이’와 유사어라는 것이다. 심의위원들의 관점대로라면 이제 방송에서 ‘반병신’이 마음껏 사용되어도 문제가 없다.

 

심영섭 위원의 의견은 실소를 자아낸다. 심 위원은 제51조(방송언어)에 ‘프로그램 내용 전개상 불가피하면 예외로 한다’는 내용이 있다면서 TV조선이 “이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고, 이것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문제가 된 방송을 정확하게 봤다면, 이런 걱정을 할 이유가 없다. 여성 장애인이 성폭력을 당한 상황에서 ‘반편이’라는 비하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가피한 경우’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표현은 비슷한 사건을 다룬 다른 그 어떤 방송사에서도, 그 어느 매체에서도 나온 적이 없다. 그럼에도 심영섭 위원은 지레 TV조선과의 다툼의 여지를 걱정했다.

 

‘반편이’ 발언 당사자가 사과해도 심의위원은 ‘문제없다’

이런 식의 황당한 심의는 TV조선 측의 의견진술이 있었던 두 번째 심의 회의(2018년 11월 8일)에서 더 심해졌다. 이미 제51조(방송언어) 조항을 배제하기로 하고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김광일 앵커는 ‘반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실을 변명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박상수 위원과 전광삼 위원은 단호하게 ‘반편이는 문제없다’고 못 박았다. 그 이유는 ‘사전에 등재된 용어’이며, 다른 드라마에서도 나왔던 표현이라는 것이다.

 

김광일 앵커 : (소설가)송기원 씨가 늘하는 얘기가 그렇습니다. ‘농촌공동체에서 주변으로 밀려나 있는 반편이들’. 송기원 씨는 ‘반편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 말을 늘 했고, 그렇게 사회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억눌린 사람들의 시각을 통해서 어떤 새로운 진실을 좀 접근해보자. 이런 얘기를 서로 주고받았던 것이 저한테 워낙 인상적으로 남아 있었던 것. (중략)그 ‘반편이’라는 말이 어떻게 내 머릿속에 들어있다가 나왔는지

 

박상수 위원 : ‘반편이’는 문제가 없고요. 옛날 시골 마을에서 이런 일이 왕왕 있었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해서(중략)

 

전광삼 위원 : ‘반편이’ 이런 말들은 ‘응답하라 1994’에서 보면 ‘반편이’라는 말이 많이 나와요. 부산 사투리로 “반편이가” 이런 얘기를 해요. ‘반편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도 등록되어 있는 말이고요. 뒤에 ‘속마음 셀카’를 저는 문제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스스로 만든 ‘방송언어 가이드라인’도 외면한 방통심의위

지금까지 살펴봤듯 앞선 두 차례의 회의에서 심영섭‧박상수‧전광삼 위원이 앞장서서 ‘반편이’라는 용어의 ‘장애인 비하‧조롱’ 문제를 배제했다. 과연 이것이 적절한 심의였을까?

 

이런 식의 심의는 2015년 8월에 방통심의위 스스로 발간한 <방송언어 가이드라인>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해당 가이드라인 서문에서 박효종 당시 방심위원장은 “이번에 발간하는 방송언어 가이드라인에는 방송제작자는 물론, 진행자와 출연자 모두가 제작현장에서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다소 포괄적으로 규정된 방송심의규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 방송언어와 관련하여 우리 위원회가 심의과정에서 적용하고 있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심의기준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함께 담았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진 총론에서는 “방송에서는 시청자가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표현이란 욕설과 비속어뿐만 아니라 저속한 조어나 은어, 인격 비하 표현 등, 이른바 ‘막말’을 의미한다”고 적시했다. “방송에서는 성별·연령·학력·직업·외모·장애·계층·지역·인종 등과 관련하여 편견을 조장하거나 조롱・모독하는 차별적 언어의 사용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심의위원들이 이런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숙지했다면, ‘장애인’에게 ‘반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방송에 ‘문제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제1조(방송언어)와 제21조(인권보호) 제3항을 모두 적용하여 장애 비하 용어에 단호히 제재하는 것이 스스로의 가이드라인에 부합한다. 방통심의위의 실제 결정은 두 조항을 모두 제외하는 것이었다.

 

방송언어 대신 적용하겠다던 ‘인권보호 제3항’은 대체 왜 제외했나

방통심의위는 애초 제51조(방송언어)를 대체하겠다며 제시한 제21조(인권보호) 제3항 “방송은 정신적․신체적 차이 또는 학력․재력․출신지역․방언 등을 조롱의 대상으로 취급하여서는 아니되며”는 대체 왜 또 제외했을까? 그 이유 역시 ‘반편이’ 등 표현이 ‘장애인 조롱’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놀라운 발상이다.

 

허미숙 소위원장 : 피해여성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부 부적절한 인터뷰 내용과 ‘반편이’라고 호칭 하는 등 과거 장애여성의 성폭행 사건을 단순사고 정도로 언급한 내용. 이런 것 등이 성폭행 피해자인 장애여성의 인권을 배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서 2항 위반을 적용한 것이고요. 다만 3항이 명시하고 있는 피해여성을 조롱했거나 부정적이고 열등한 대상으로 다뤘다고 보기는 어려워서 3항은 배제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의견을 냅니다.

 

전광삼 위원 : 저도 제21조(인권 보호)제3항 이게 뭐 조롱하려고 했다든가 열등한 대상으로 삼아서 어떻게 비하하려고 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윤정주 위원 : 제21조(인권 보호)의 경우에는 사실 반편이라는 것이 부정적이라기보다는 비장애인보다 열등한 대상으로 이야기한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그렇게 대상으로 다룬 것은 아니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저는 2항으로도 충분히 이것을 포섭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첫 번째 회의에서 ‘반편이’가 욕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51조(방송언어)를 제외하면서 제21조(인권보호) 제3항을 넣었던 위원들은, 종국에는 “피해자 조롱도 아니다”라는 이유로 모든 관련 조항을 배제했다. 즉, TV조선의 ‘반편이’라는 표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다. 심지어 ‘반편이’라는 표현이 “비장애인보다 열등한 대상으로 이야기한 것은 맞습니다”라고 말한 윤정주 위원마저 제21조(인권보호) 3항을 포기했다. ‘해당 조항 위반은 맞지만 적용할 수는 없다’는 황당한 결론이다.

 

제51조(방송언어) 제외 결정은 무엇을 의미하나

이번 심의에서 제51조(방송언어)가 적용되지 않고, 제 21조(인권보호) 제2항과 제30조(양성평등) 제4항 단 두 가지만 적용해 ‘법정제재’가 결정된 것은 제재 대상이 TV조선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종합편성채널의 오보‧막말‧편파 행태는 이미 알려진대로 매우 심각하며 개국 이래 개선된 바가 없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2017년 3월 24일 TV조선, 채널A, JTBC를 재승인하면서, “방송심의 규정 제9조(공정성), 제13조(대담․토론프로그램 등) 제1항 내지 제3항 및 제5항, 제14조(객관성), 제27조(품위유지) 제1호, 제2호 및 제5호, 제51조(방송언어) 위반으로 인한 법정제재를 매년 4건 이하로 유지”할 것을 ‘재승인 조건’으로 달았다. 이 조건은 2017년 11월 27일 MBN에 대한 재승인에서도 똑같이 적용됐다. 즉, 해당 조항 위반으로 인한 방통심의위 법정제재가 한 해 5건이 넘어가면 방송을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방통위가 방송심의규정 중에서도 특히 이렇게 다섯 가지 조항에 주의하라고 강조한 것은 종편이 해당 조항을 어기면서 심각한 물의를 일으킨 사례가 많았을 뿐 아니라, 해당 조항이 바로 ‘오보, 막말, 편파’와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TV조선의 <김광일의 신통방통>에는 민언련이 제시한 제13조(대담․토론프로그램 등) 제3항, 제27조(품위유지) 제5호는 아예 처음부터 배제됐으며, 그 대신 방통심의위 사무처가 적용한 제51조(방송언어)마저 심의위원들의 변덕 끝에 사라져버렸다. 따라서 TV조선이 받은 이번 ‘법정제재’는 ‘1년에 편파‧왜곡‧막말로 인한 법정제재를 4건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재승인 조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법정제재를 받았으나 사실상 불이익이 없다는 의미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애초 방통위가 종편에 대해 ‘오보, 막말, 편파 관련조항 위반 법정제재를 4건 이하로 유지하라’는 재승인 조건을 내건 이유를 방통심의위만 모르고 있는 것인가? 향후 또 다른 소수자 비하용어나 차별적 표현, 막말이나 욕설이 나오더라도 방통심의위는 제13조(대담․토론프로그램 등) 제5항, 제27조(품위유지) 제5호, 제51조(방송언어)를 적용하지 않을 셈인가? 그렇게 방통위가 지정한 오보․막말․편파 관련 지정 조항을 적용시키지 않은 채 법정제재를 주는 것은 종편의 막말과 차별적 표현을 방치 또는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것임을 방통심의위원들은 모르고 있는 것인가?

 

장애인 비하 표현을 ‘공인’한 방통심의위, 사과하라

가장 심각한 문제는 TV조선에 ‘법정제재’인 ‘주의’를 의결하기로 1월 10일, 그 어떤 위원도 ‘반편이’라는 표현이 장애인 비하표현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방통심의위는 진심으로 방송에서 장애인를 ‘반편이’라고 칭해도 괜찮다고 보는 것일까? 그런 표현이 조롱도 아니고 ‘열등한 대상’으로 다룬 표현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심의위원들에게 던지기가 민망하고 참담한 수준의 질문들이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부주의하게 ‘반편이’라는 비하용어를 사용한 사실에 허겁지겁 사과한 김광일 앵커보다, ‘반편이’는 문제가 아니라는 방통심의위의 의결이 백배 천배 더 장애인에게 큰 모욕감을 준 것이며, 우리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친다는 점이다. 어쩌다가 문제 발언을 한 TV조선 진행자보다 방통심의위원들이 인권에 더 무감각해진 것일까.

 

방통심의위는 장애인에 사과해야 한다. 스스로의 논의에 대해서 성찰하고 앞으로 방송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 비하표현에 대해서 어떻게 심의할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

 

<끝>

문의 이봉우 모니터 팀장(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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