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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규제 때문에 서민이 ‘10억’짜리 아파트를 못 산다?
등록 2018.03.28 10:13
조회 329

3월 16일 개관한 개포주공8단지 재건축 견본 주택에 주말 간 4만 여명의 사람이 몰렸습니다. 분양가 상한제와 다름없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로 이 아파트는 인근 시세보다 6~7억원 정도 저렴했고 이 때문에 ‘로또 청약’이라 불립니다. 지난 21일 진행한 1순위 청약에 3만 1423명이 몰리며 평균 25대1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항간에 떠돌던 ‘10만 청약설’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분양가 규제와 대출 규제, 1순위 청약 자격 강화 등 강력한 정부 규제를 고려하면 그리 낮은 경쟁률은 아닙니다. 부동산 거품의 척도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이자, 정부가 무주택 세대주 우선 대책을 적용한 첫 분양 사례인 만큼, 언론의 관심이 줄을 이었습니다. 

 

‘부자들의 리그된, 개포8단지’, 원인은 ‘부동산 대출 규제’?
YTN도 <당첨 땐 수억..‘로또 아파트’ 인산인해>(3/16 https://bitly.kr/xHgm)에서 사람으로 붐비는 강남 개포주공8단지 견본 주택 개관 현장 모습을 전했습니다. YTN의 근본적인 시각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차현주 앵커는 “최근 대출 규제가 더 강화돼 수억 원의 현금이 없는 서민들은 엄두도 못 냅니다. 결국 현금을 가진 자산가들만 또 돈을 버는 셈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이광엽 기자는 “최근 대출 규제가 더 강화돼 당첨되더라도 자금 마련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산가들만 로또의 행운을 누린다는 비판이 나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요컨대 YTN은 강남 개포주공 8단지를 근거로 ‘대출 규제로 인해 오히려 서민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대출 규제는 부적절하다’는 시각을 보인 겁니다. YTN <디에이치 자이 개포 16일 분양 시작>(3/13 https://bitly.kr/cRij) 역시 같은 취지의 보도입니다. 


YTN 뿐 아니라 많은 언론들도 개포주공8단지 청약 현황을 근거로 ‘대출 규제가 서민을 옥죈다’는 프레임을 내세웠습니다. TV조선 ‘뉴스9’는 <'로또 아파트' 견본주택에 수백m 장사진…10억 있어야만 청약>(3/16)에서 “부동산 규제로 주택 대출이 꽉 막히는 바람에 수억원의 현금이 없는 서민들은 집을 살 엄두도 못 냅니다”, “현금을 가진 부자들만 또 돈을 버는 셈이지요. 서민을 위한다는 부동산 정책이 서민들을 더 울리고 있습니다”라며 ‘대출 규제책’이 서민을 겨냥했다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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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대출 규제책’이 ‘서민을 옥죈다’고 지적한 YTN(3/16)

 

신문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중앙일보 <현금 10억 없인 꿈도 못 꿔···개포 8단지, 부자만의 잔치?>(3/12 https://bit.ly/2pJ8ApW)는 “목돈 마련이 어려운 서민은 제외되고 소득 상위층만 이익을 보는 결과”, “서민과 실수요자를 위한다는 정부의 분양가 정책과 부동산 규제가 낳은 역설”이라는 권대중 명지대 교수의 지적을 실었습니다. 

 

 개포8단지 청약 ‘부자들의 리그’ 평가는 지배적, 그러나…
YTN을 비롯한 언론들의 주장은 과연 적절한 지적일까요? 일단 개포8단지의 청약이 ‘부자들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평가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개포주공8단지의 3.3㎡ 당 가격은 4160만원으로 전용 면적 84㎡(대략 25.4평)의 분양가는 14억 원 가량입니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이러한 초고가 주택의 부동산 거품을 제어하기 위해 대출 규제 대책을 내놨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9억 원 이상의 고가 주택에 대해서는 중도금 집단대출 보증을 제공하지 않도록 규제했고, 8.2 대책에서는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서울 지역의 경우 더욱 강도 높은 대출 규제를 가했습니다. 또한 정부는 개포8단지 청약 이전에 부모 위장전입 등 불법 청약을 강력히 단속하는 등 강남 지역에 꾸준한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일 이뤄진 강남 개포8단지는 ‘부자들만의 리그’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전용 84㎡의 분양가가 14억 원에 달하는 등 기본적으로 집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청약 당첨자가 최소 7억원, 최대 20억원에 이르는 계약금·중도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7억 원 이상 현금을 보유한 부자들만이 실질적으로 집을 구매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기관 추천, 다자녀, 신혼부부, 노부모 부양 등을 대상으로 한 특별공급까지 이뤄졌으나 바로 그 특별공급에서 1999년 생 등 20대 여러 명이 당첨된 점도 ‘부자들의 리그’를 증명했습니다. 현실적으로 20대가 수억원을 마련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부모가 자금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른바 ‘금수저’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특별공급’이 악용된 겁니다. 

 

서민은 대출 아무리 받아도 강남 아파트 ‘언감생심’
그러나 강남 개포8단지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이 ‘부자들의 리그’가 된 원인을 ‘서민을 옥죈 정부의 대출 규제’라고 규정하는 것은 과도합니다. 현실적으로 ‘서민’은 아무리 대출을 받아도 전용 면적 84㎡(대략 25.4평)에 14억 원이나 하는 아파트를 구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서민’은 수십억 원에 달하는 아파트는 대출 가능 규모와 관계없이 ‘언감생심’입니다. 


YTN, TV조선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규제로 인해 서민이 강남 개포8단지 청약에서 소외됐다’고 지적한 중앙일보의 경우, 이런 현실을 인정하기는 합니다. 중앙일보 <현금 10억 없인 꿈도 못 꿔···개포 8단지, 부자만의 잔치?>(3/12)는 “전용 84㎡의 분양가는 13억 3000만 원, 다시 말해 현금 9억3000만원을 자체 조달해야 한다. 목돈을 쥐고 있지 않은 한 무주택자가 전세금 대출이나 신용 대출로 이만한 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무주택자의 경우 전세금 대출과 신용 대출을 받아도 9억에 달하는 돈을 쥘 수 없다고 인정한 것인데 이는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가 서민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스스로의 지적과 상충됩니다. 서민은 대출 규제와 관계없이 10억 원이 넘는 아파트 청약에 아주 오래 전부터, 구조적으로 소외되어 왔습니다. 

 

쏟아지는 부동산 대책, 근본적인 시각 지닌 보도 시급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정부의 관점은 확실합니다. 부동산 투기를 집값 상승의 핵심 요인으로 보는 겁니다. 이에 따라 정부의 부동산 대책의 상당 부분은 ‘투기 수요 억제’에 맞춰졌습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재건축 요건 강화, 보유세 인상 논의 등 일단 투기 세력에 규제를 가해 시장 안정을 꾀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정책들이 눈에 띕니다. 대표적으로 8.2대책에 포함된 세제·금융 규제(다주택자 주택담보대출에 대하여 LTV(담보인정비율)·DVI(총부채상환비율) 40% 적용)의 경우, 투기 세력의 주택담보대출을 제한한 겁니다. 


지난해 8.2대책이 나온 직후부터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대출 제한으로 인해 서민과 실소유자들도 집을 살 수 없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이번 강남 개포8단지 청약 관련 보도의 경우 그러한 8.2대책 비판 보도와 맥락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미 살펴봤듯이 이런 논리는 교묘한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정부 규제가 집중된 강남 등 투기 지역 및 다주택자의 자금 유동성은 상식적인 의미의 ‘서민’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나 다름없습니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증명됩니다. ‘서민’의 대표 계층으로 자리 잡은 자영업자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출금액이 480조원을 넘어섰고, 1인당 평균 대출액은 3억4000만원에 달했습니다. 구인·구직 포털 서비스 알바천국이 전국 남녀 아르바이트생 5510명의 12월 대비 1월 한 달 평균소득과 평균 임률, 평균 주간근로시간을 비교 분석한 결과, 올해 1월 아르바이트 근로자의 한달 평균소득은 71만 3043원이라고 합니다. 빚이 3억에 달하는 자영업자, 월 소득이 100만 원이 미치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부가 내놓은 대출 규제의 대상조차 되지 못합니다. 통계청이 22일 발표한 ‘2017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2016년 2인 이상 가구의 월 평균 가구소득은 439만9000원으로, 이 수치를 그대로 전제한다 해도 대출을 통해 개포8단지 재건축 아파트의 중도금을 치르기는 불가능합니다. 


많은 언론이 ‘부자 규제책’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서민들을 빌미로 정부의 투기 억제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대출 규제책을 풀라’고 주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서민을 끌어들여 다주택자 등 부자들의 투기를 보장하라는 주장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는 객관적이지도 않지만 근본적으로 왜곡입니다. 현실 속 서민들은 하루의 생계와 누적된 가계 부채 이자 속에 살고 있습니다. 부동산 정책은 근본적으로는 서민들의 생활 수준을 정상화하기 위한 ‘공공의 이익’에 해당하고 이는 정부가 개헌안에서 내놓은 ‘토지 공개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언론이 개별 아파트의 청약 열기와 ‘수억 원 분양가’에 매몰된 채 ‘부동산 대책’을 보도한다면 그러한 공공의 관점은 사라지게 됩니다. 개포8단지 재건축 아파트 청약 보도에서 드러난 YTN, TV조선 등 우리 언론의 시각에는 그러한 공익적 관점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언론 스스로의 고민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끝> 
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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