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위원회_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 이후 방송3사 보도」에 대한 긴급 모니터보고서(2004.9.10)
등록 2013.09.24 11:14
조회 734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 이후 방송3사 보도」에 대한 긴급 모니터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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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니터 대상 : KBS, MBC, SBS 메인뉴스프로그램
■ 모니터 기간 : 2004년 9월 5일 ∼ 9월 8일



방송의 국보법 관련 보도, '무방향-무소신'

 

지난 9월 5일 노무현 대통령이 MBC <시사매거진 2580>과 가진 대담에서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는 뜻을 밝힌 이후, 약 55년 동안 '반민주·반통일·반인권' 악법으로 비판받아온 '국가보안법 존폐'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시민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은 노대통령의 입장을 환영했으나, 재향군인회·전직관료 등 보수집단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으며, 정치권에서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민주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당론으로 채택한 반면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은 한나라당의 존재 이유"라는 발언까지 쏟아내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 조선일보를 위시한 수구신문들도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한국사회가 혼란에 빠져들 것처럼 연일 주요지면을 동원해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방송보도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논란의 흐름만 쫓아다니는데 급급한 양상이다.

1.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에 대한 방송의 무관심 : KBS, 특히 심각

9월 5일 노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진 이후 각 방송사는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모두 14건(단신 2건 제외)을 보도했다. 이 중 SBS가 6건(단신 1건 제외)으로 가장 많았고, KBS와 MBC는 각 4건(MBC는 단신 1건 제외)이었다. 보도의 내용을 떠나 국가보안법이 우리사회의 주요 현안이 되고 있음에도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경우 사영방송인 SBS보다도 국가보안법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KBS는 노대통령의 발언이 있던 5일과 다음날 6일 각각 2건의 보도를 한 이후 7일과 8일에는 아예 관련보도를 내보내지 않았다.

 

<(표1) 노대통령 발언 이후 국가보안법 관련 보도건수>
  9월 5일 9월 6일 9월 7일 9월 8일
KBS 2건 2건 - - 4건
MBC 2건 1건 1건 단신 1건 4건(단신1건)
SBS 2건 2건 2건 단신 1건 6건(단신1건)

 

국보법 폐지는 이미 17대 국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주요한 개혁과제이자 관심사로 제기되어 왔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헌재, 대법원의 입장 표명으로 논란이 불거져 왔으며, 여기에 대통령의 폐지 발언으로 사회적 관심이 더욱 촉발되었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국보법 폐지에 대한 방송사들의 보도량이 4일동안 총 14건에 그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간 우리 언론은 '떼거리 저널리즘', '냄비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하나의 사회적 이슈가 터지면 뉴스프로그램을 도배하다시피 보도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신문을 비롯한 다른 매체들이 국보법을 주요 의제로 연일 보도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본다면 방송사들이 아예 언론으로서의 의제설정 기능 자체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 중에서도 KBS는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침묵'에 가까운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었다.

2. '개폐논란'에 치중한 방송보도

보도내용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표2)에서 보듯 노대통령 발언 이후 방송3사의 국가보안법 관련 보도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노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진 9월 5일에는 방송3사 모두 노대통령의 발언을 첫 번째 꼭지로 소개하는 등 비중을 두는 모습을 보였다. 또 "국가보안법 개정이냐 폐지냐를 놓고 요즘 논란이 뜨거운데 대통령이 오늘 입장을 밝혀…폐지해야 한다는 것"(KBS), "노무현 대통령이 MBC와의 회견에서 국가 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MBC), "노무현 대통령이 오늘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말해…국가보안법은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이라고 소신을 분명하게 밝혔다"(SBS)며 노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소개했다. 하지만 보도내용은 이내 '논란'으로 중심을 옮겼다.
같은 날, KBS는 "국보법 폐지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이지만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의 반발 또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여 국보법 논란이 더 큰 소용돌이로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논란확산'에 대해 보도했고, SBS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대법원의 국보법 옹호 판결 속에 개폐논쟁이 뜨거운 아주 민감한 시점에 나와 정치권과 법조계 모두 큰 파장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MBC는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주장이 알려지자 야당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존속의견과 다른 것이라며 반박…여야 정치권, 사법부, 행정부의 움직임을 알아보겠다"며 정치권과 사법부, 법무부의 움직임을 소개하는데 그쳐 다른 두 방송사에 비해 '논란'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표2) 노대통령 발언 이후 국가보안법 관련 보도>
  보도 제목과 주요 내용
9월 5일 9월 6일 9월 7일 9월 8일
KBS <"국보법 없애야">
: 노대통령 발언 소개
<개폐 논란 새 국면>
: 개폐 논란 확산과정
<존폐 대립 격화>
: 여야 개폐 논란
<법리 논쟁 가열>
: 국보법 개폐 쟁점 소개
- -
MBC <"국보법 폐지해야">
: 노대통령 발언 소개
<폐지·개정 공밥>
: 노대통령 발언 관련 여야 반응
<'찬반' 격화>
: 여야 개폐 논란
<정면대립>
: 국보법 개폐 쟁점 소개
단신
: 친북사이트 43개
SBS <"낡은 유물 폐지">
: 노대통령 발언 소개
<개폐논란 다시 확산>
: 노대통령 발언 관련 여야 반응
<폐지 당론 '급물살'>
: 여당 내 폐지론 확산
<"마지막 보루">
: 한나라당의 폐지반대 입장
<개폐 공방 격화>
: 여야 개폐 논란
<'반국가단체' 쟁점>
: 국보법 개폐 쟁점 소개
단신
: 친북사이트 43개


국가보안법 존폐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논란'을 보도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방송보도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저 '논란'에만 머물렀다는 점이다. 특히 SBS는 5일 보도에서 "정기국회 초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여야의 기싸움과 맞물려, 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여야공방이 더욱 확산될 조짐"이라며 '국가보안법 존폐'논란을 정치권의 '주도권 다툼'과 연결시켜 단순한 '정쟁'으로 격하시키기도 했다.
방송3사는 5일 이후에도 <존폐 대립 격화>(KBS), <찬반격화>(MBC), <폐지당론 '급물살'>·<"마지막 보루">·<개폐 공방 격화>(SBS) 등의 보도로 '논란'에 초점을 맞춰, 9월 5일부터 국가보안법 관련 보도 중 '논란'을 다룬 보도는 KBS 50%(4건 중 2건), MBC 50%(4건 중 2건), SBS 67%(6건 중 4건) 등 절반이 넘었다. SBS는 타방송에 비해 비교적 많은 관심을 나타냈지만 '논란'에 가장 많은 비중을 둬, 그간 사회갈등 보도에서 '논란 부각'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음에도 여전한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논란 중심의 보도로 인해 정작 인권침해 문제를 비롯한 국보법이 갖고 있는 문제나 국보법 폐지가 제기되게 된 그간의 논의 배경 등은 전혀 보도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시청자들은 국보법 폐지 논란을 '정치권의 정쟁' 정도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3. '겉핥기'식 쟁점보도

방송3사가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쟁점'을 아예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KBS는 9월 6일 <법리 논쟁 가열>에서, MBC와 SBS는 9월 7일 각각 <정면대립>과 <'반국가단체' 쟁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각 조항들에 대한 쟁점을 소개했다. 하지만 이들 보도는 '겉핥기'식 보도에 그쳤다. 방송3사 모두 "쟁점이 무엇인지 짚어봤다"(KBS), "근거가 무엇인지 보도한다"(MBC), "폐지 또는 개정을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정리했다"(SBS)며 쟁점을 다뤘지만 단지 서로 상반되는 여야의 주장을 단순 나열할 뿐이었다. 그저 '논란'을 한 번 더 '되풀이'하는 수준의 보도로 인해 시청자들은 국보법 문제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특히 KBS의 보도가 가장 실망스러웠다.
KBS는 "국가보안법의 문제 조항 가운데 여야의 시각차가 가장 큰 부분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정부 참칭부분"이라며 "열린우리당은 남북교류와 협력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삭제를 주장…한나라당은 정부참칭을 빼면 국보법의 존립 근거가 없어진다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라고 여야의 주장만 소개했다. 특히 "인권침해 소지가 큰 것으로 지적돼온 찬양고무조항이나 불고지죄 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대략적으로 비슷하지만 그 해법은 열린우리당 내부에서조차 다르다"며 '찬양고무'와 '불고지'조차 논란을 겪는 것처럼 보도했다. 이어진 설명에서 KBS는 "폐지론자들은 반국가단체에 대한 처벌이나 단순 고무 찬양조항 등을 형법으로 보완하면 국보법을 폐지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반면에 개정론자들은 북한의 태도와 국민의 안보불안 등을 감안하면 국보법 폐지는 시기상조라며 단계적 접근을 주장한다"고 보도하는데 그쳐 '찬양고무'와 '불고지'에 대해 어떤 이견이 있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폐지'로 돌아선 여당 내 '개정론자'들도 애초 '불고지'와 '찬양고무'에 대해서는 '삭제'의 입장을 밝혀왔다는 점에서 KBS의 보도는 '왜곡'이라고 할 수도 있다.
MBC는 "한나라당은 북한의 대남적화통일 노선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존속되어야 한다는 입장…반면 열린우리당은 독재정권 때처럼 인권유린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폐지의 이유로 강조"한다며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죄'와 '반국가단체 조항' 등에 대한 여야의 입장 대립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쟁점' 해설보도에서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은 SBS였다. SBS는 <'반국가단체' 쟁점>에서 "핵심은 결국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라며 여야의 입장차를 소개했다. 하지만 단순한 입장 나열에 그치지 않았다. SBS는 "법대로라면 국가보안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며 영화 <실미도>에서 실미도 대원들이 적기가를 부르는 장면을 보여줬고, 소설 <태백산맥>에 대해 "작가 조정래씨는 지금까지도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혐의를 벗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등 그동안 문제로 지적되어 온 국가보안법의 피해 사례를 부분적으로 소개했다. 또한 "인권 탄압에 악용돼온 역사, 시대적 변화 상황에 맞지 않는 수구적 색채가 국가보안법 폐지론의 주요 논거"라며 폐지론이 제기되는 이유를 설명해 다른 방송사와 차이를 보였다. 또 "찬양고무, 이적표현물, 불고지죄 등에 일부 문제가 있다는데에는 개정론자들도 이견이 없다"고 보도해 KBS와 다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SBS의 이런 보도는 일회성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SBS는 다음날인 8일 단신으로 "인터넷 상에 43개의 친북 사이트가 활동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며 최기문 경찰청장의 국회 행정자치위 출석 발언을 그대로 옮겼다. 이 보도는 43개의 친북사이트가 '어떤 사이트인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은 일방적인 보도여서 국보법 폐지에 대한 국민들의 '막연한 우려'를 부추길 소지가 컸다. 한편 MBC도 이날 마지막 단신종합에서 "최기문 경찰청장이 친북사이트가 43개라고 답했다"며 최청장의 발언을 소개하며 SBS와 비슷한 보도태도를 보였다.

4. 방송은 '의제 설정'의 역할을 다하라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그동안 인권 후진국의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국가보안법은 우리 사회의 완전한 민주화의 걸림돌이 되어왔다. 국가보안법의 해악에 대해서는 개정을 주장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조차도 인정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국가보안법 폐지'가 제기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역사적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방송의 국가보안법 관련 보도는 국가보안법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이유로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가 제기되었는지, 그간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등의 기본적인 사실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방송은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차이를 전달하는데 급급해 우리사회의 중요한 현안인 국가보안법 문제를 정치권의 정쟁으로 격하시키고 말았다.
이 같은 방송3사의 보도태도는 결과적으로 언론으로서의 의제설정 기능은 물론이고 공론장의 역할마저 포기한 모습이었다. 특히 KBS의 무관심에 가까운 보도태도는 일각의 비판여론을 의식해서 민감한 정치적 현안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같게 한다. 지금이라도 방송3사는 국민들이 국가보안법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이를 제대로 보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일각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기 위해 조성하고 있는 국가안보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 이 같은 주장은 자칫 구시대적인 색깔론이나 이념공세로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방송은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보도해야 할 것이다.

 



2004년 9월 10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