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_영화이야기|공동정범

2009년 용산, 기억이 흐력지기 전에 함께 보자
등록 2018.02.0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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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0일,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9년이 된다. 9년 동안 대통령이 두 번 바뀌었다. 촛불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경찰이 국가폭력진상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그 진상조사 대상에 ‘용산참사’가 포함된다.
 
용산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
 
영화 <공동정범>은 용산참사에 대해 책임을 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망루농성에서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기도 하다. 망루농성에서 ‘살아남은 자’들만이 용산참사의 책임을 졌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공동정범>은 용산참사를 책임지지 않은 참사의 책임자에 대한 이야기다. 강제진압 과정에서 망루가 불타는 상황이 왔는데도 구조하지 않은 책임자, 강제진압을 지시한 책임자, 애초 철거민 문제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끝내려 했던 책임자.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참사를 덮고 진실을 묻어버리는 동안,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은 살아남은 사람들만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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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정범>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에 주목한다. 망루농성을 한 죄로 ‘참사’에 대한 책임을 떠맡고, ‘공동정범’으로 묶여 평균 4년여의 옥살이를 했다. 옥살이가 끝나고도 '살아남은 죄', '화염 속에서 먼저 뛰어내린 죄'로 스스로를 '더 큰 감옥'에 가두고 살아남은 자신과 동료를 채찍질하며 살고 있다. 채찍질의 근거는 참사에 대한 각자의 ‘기억’이다.
 
진상규명이 덮인 동안 살아남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진실은 자신이 기억하는 딱 그만큼이었다. 기억은 책임을 농성 당사자들에게 죄다 전가했던 ‘소송’ 때문에 더 뒤틀렸다. ‘나 때문에 모두 죽었을까’, 누군가는 끊임없이 되묻고, 누군가는 너무 고통스러워 기억하기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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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지워지기 전에 기록을 남기려 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김일란 감독은 “기억이 더 지워지기 전에 기록을 남기고자 했다”고 했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깊이 묻혀 닿지 못한 ‘진상규명’ 때문에라도 이 기록은 소중하다. 이 기록은 당사자들의 기억이 불완전함을 보여주고, 불완전한 기억이 당사자들을 참사의 고통으로 계속 끌고 들어간다는 점을 알려준다. 
 
심지어 각자의 기억은 불완전했다. 용산 철거민이냐, 다른 지역에서 투쟁을 연대하러 온 철거민 연대잖아, 참사 당시 각자의 위치에 따라 기억은 다 달랐다. 서로 다른 기억은 당사자끼리 감정의 골을 만들었다. 맞춰지지 않는 기억은 감정의 골을 더 깊게 만들었다. 서로를 불편해하고 노골적으로 비난한다. 영화는 이 ‘불편한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나름 ‘반전’으로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영화 내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 기억에는...’하며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하던 ‘천주석’씨가 영화 후반부에서 자신의 기억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된 장면이다. 천주석 씨는 반목하던 당사자들이 한 데 모여 참사당시 영상과 모형을 보며 기억을 맞추고 나서야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에 빠졌다. 사건 이후, 당사자들은 재판을 거쳐 책임을 져야 했지만, 사실은 서로의 기억을 제대로 맞춰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상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나 때문일까’를 진지하게 곱씹어볼 시간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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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책임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참사 이후 ‘죽음’의 책임을 묻기 위한 조사, 소송, 징역살이가 빠르게 진행됐다. 그리고 이 소송은 당사자들에게 ‘당신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살아남은 당사자 모두 ‘공동정범’으로 묶이며, 같은 무게와 책임을 지게 됐다.
 
진짜 책임자는 아무런 책임지지 않았다. 공권력 투입의 최종 책임자인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 진상을 덮으려고 시도한 이명박 정부, 생존자를 공동정범으로 몰며 사안의 끝맺음 해버린 검찰. 현실에서 어느 하나 책임을 물리기 점점 어려워지면서 당사자는 책임을 사회가 아니라 개인에게서 찾는다.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살아남은 서로에게 책임을 찾고 생채기를 남긴다.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는 동안은 계속 불타는 망루에 갇혀 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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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정범>은 용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동정범> 이야기는 용산참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폭력, 공권력 개입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을 안고 산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그렇다. 용산과 같은 2009년 벌어진 점거농성 강제진압에서 당사자들은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캡사이신이 들어간 물대포, 컨테이너 가득 투입된 경찰특공대, 저공비행을 하며 위협하던 헬기의 끔찍한 소음들까지. 눈만 감아도 폭력상황을 떠올린다고 한다. 국가폭력의 상대인 경찰이 고소·고발도 하고 수사도 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원망하고, 책임을 지우고, 반목하기도 했다. 더러는 징역을 살고, 일부는 아직도 경찰이 제기한 16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폭력을 당했는데, 그 자신은 특공대를 공격한 가해자가 되어 9년이 지난 지금도 ‘당신 때문이다’라는 공격을 받는다.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공동정범은 진상규명이 왜 '시급'한가를 다시금 환기시킨다. 당사자들이 참사와 참사 이후의 과정을 좀 더 건강하게 되돌아보기 위해서는 '진상규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더 이상 당사자 개개인에게 자신의 기억과 죄책감에서 진상과 책임소재를 찾도록 내버려두어선 안 된다. 영화 속 개개인이 빚는 갈등과 고통까지도 진상규명을 미뤄버린 정부, 검찰, 경찰 등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함께 보자, <공동정범>
 
영화를 본 나부터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용산참사가 잊히지 않도록 기억하고, 한 번이라도 더 용산참사를 언급하고, 영화 공동정범 보기를 권하는 것으로라도 작지만 책임을 나누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