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_회원 인터뷰|강성남 회원

회원 강성남, 성실과 겸손의 아이콘
등록 2018.05.09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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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남 회원은 서울신문 사진 기자다. 2011년 전국언론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과 2013년 위원장을 맡았고, 올해부터 서울신문 미래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또 3월에 열린 민언련 정기총회에서 이사로 선출됐다. 강성남 회원 인터뷰는 두 가지로 부담스러웠다. 나의 빈약한 사고로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 낼 수 있을까 싶었고, 또 하나는 강성남 회원이 사진 기자라는 점이다. 인터뷰 사진은 소식지 표지와 본문을 장식하는데, 괜히 핀잔만 듣는 건 아니지 걱정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봐왔던 강성남 회원의 친근함과 겸손함 때문에 마냥 부담스럽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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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도, 사진 기자다 되다
 
사진 기자가 된 사연이 궁금했다. 사실은 사진 기자 자체보다는 언론노동운동 현장에서 사진 기자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혹시나 모를 특별한 사연이 궁금했다. 사진학을 전공했을까? 아니면 펜 기자로 입사했다가 보직을 변경한 것일까? 이런 저런 궁금증이 들었는데, 건축학을 전공했다고 듣는 순간 궁금증이 풀렸다. 건축이라는 게 기술적인 측면과 함께 미적, 시각적 측면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건축학과여서 건축 사진을 봐왔고, 사진 동아리 활동도 했어요. 그러다보니 선배들 중 사진기자가 좀 있었는데 멋있어 보이더라구요. 그리고 사진 기자를 지원한다고 해서 사진을 잘 찍을 필요는 없었거든요. 필기시험에 합격하니까 필름 한 통씩 주고 ‘나가서 찍어봐’ 그러는 거예요. 처음 찍어보는 이나 나나 거기서 거기인데 무슨 기준으로 뽑았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웃음) 지금도 좋은 사진과 아닌 사진을 구별 못해요. 사진은 그저 보고 느끼면 되는 것인데 이걸 두고 잘 찍었다, 못 찍었다 얘기하는 게 조금 거북스러워요. 보고 느낀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껏 평가를 받기위한 출품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사진을 따로 정리하지도 않아요. 오늘 중요한 사안이 내일은 안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노동조합과 인연을 맺다
 
강성남 회원은 노동조합 활동과 인연이 깊다. 깊숙이 관여하게 된 이유는 오로지 성격, 스타일 때문이라고 한다.

"입사 후 얼마 안 돼 서울신문 노동조합 사진부문 대의원을 맡게 됐어요. 열심히는 못해도 '성격상' 성실하게는 참여하는데 선배들 눈에는 대단해 보였나 봐요. 그래서인지 1996년에 노조 전임 사무국장을 맡게 되었다. 솔직히 좀 놀라기도 했고, 당시만 하더라도 회사와의 임단협 과정에서 잘 못하면 사법처리를 받기도 해서 노동조합 전임 하면 사람들이 ‘빵에 갈 결심 한다’는 얘기를 하던 때였죠."
 
그럼에도 선배가 ‘너 밖에 없어’라고 하자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동조합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강성남 회원은 먼저 나서 직책을 맡지는 않지만 마지못해 맡았다고 해서 대충대충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성격상 해야 될 일을 안 하고 있으면 마음에 걸려 가만있지 못한다고... 결국 이런 활동이 이어져 2000년 지부장을 맡게 된다.

"사무국장 후 3년 여 현장에 있다가 2000년에 지부장을 맡았죠. 그때가 김대중 정부 시절인데 정부의 영향력 하에 있는 서울신문의 소유구조 개편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 때 서울신문이 과거를 반성 하고, 언론사로 제대로 해보자는 희망이 있었죠. 2000년 대 초 한겨레․경향․대한매일을 진보언론을 묶어 ‘한경대’라고 불렀다. 당시 서울신문의 제호는 대한매일이었다. 김삼웅 주필(이후 독립기념관장,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역임) 등 좋으신 분들이 많이 오셔서 방향을 잡아 나갔어요.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독립언론’이 게 화두가 됐어요. 서울신문도 ‘독립언론’으로 만들어 정부 간섭에서 벗어나보자고.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01년 당시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이 39%에 이르러 1대 주주가 됐어요. 물론 재정경재부와 포스코 등 정부나 관련 기관의 지분이 더 크긴 했지만 우리사주조합이 1대 주주라는 명분을 내세워 독립성을 적지 않게 강화했죠."
 
이명박 정권이 만든 언론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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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남 회원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기획부장을 맡아 회사 일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아마 2006~7년 쯤 이었을 거예요. 회사에서 '노조 지부장 하면서 소유구조 개편을 주도했고, 비전 제시도 해봤으니 이런 경험을 경영 쪽에서도 펼쳐보라'고 한 거예요. 3년 가까이 서울신문의 사업과 재정 계획을 수립하고, 상암DMC에 사옥 건립도 추진했어요. 사옥을 상암동으로 이전하고, 현재 광화문 사옥을 임대하면 신문사 재정에 큰 도움이 되겠더라고요. 예전에는 신문사가 중앙 정부나 국회와 가까워야 했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광화문에 있을 이유가 없었어요. 서울시와 부지도 혐의하고 의욕적으로 추천했죠.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집권하자 낙하산 사장이 왔고, 기획위원으로 좌천시키더니 상암 사옥 일만 맡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사옥 건설 추진을 담당했던 경영진과 충돌이 생긴 거죠. 제가 건축학과 출신이다 보니 업무를 뻔히 아는 상황에서 부조리한 부분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어요.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자 나중에는 독자서비스 지역국으로 발령 내더라고요. 서비스국장의 배려로 지역으로 전출되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또 추진했었던 상암 사옥도 컨소시엄사와의 불화로 결국 좌초되고 말았어요."
 
심적 어려움을 겪던 중  2011년 언론노조 위원장 출마를 준비하던 KBS 이강택 PD로부터 수석부위원장 직을 제안 받는다. 이명박 정권 3년 동안 심신이 피폐해져 있는 상황에서 언론노동운동을 통해 심기일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결심했다고 한다. 2010년 말 2011년 초 이명박 정권에 의해 방송은 물론 대다수 언론이 장악되어 있던 때다. 미디어 관련 법 날치기 통과 등 언론장악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반대로 언론장악에 대한 반감 또한 극심해졌다. 이런 요인들이 겹처 2012 KBS․MBC․YTN․연합뉴스․국민일보가 함께한 소위 ‘언론대파업’이 벌어졌고, 강성남 회원은 위원장과 함께 파업을 이끌었다. '언론대파업'은 시민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 같았던 언론장악을 이슈에 다시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투쟁에도 불구하고 2012년 ‘대파업’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그 해 박근혜 당선은 강성남 회원에게 더 큰 시련을 안겨줬다.
 
"그떈 정말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배로 힘들었던 게  차기 위원장을 결의한 거예요. 힘 빠진 모습을 보일 순 없잖아요. 오히려 대선 이후 언론노조 지부 투쟁을 더 열심히 지원하고 결합하면서 버텼던 것 같아요."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도 터졌다. 박근혜 정권과 함께 언론도 십자포화를 맞았다. 언론노조 위원장으로서 어땠을까?
 
"정치적 책임감으로 마음이 무척 무거웠어요. 그래서 광화문광장으로 가 시민을 무작정 만났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벌였어요. 또 누군가 안산 세월호 분양소에서 만 배를 제안했고, 이거라도 해야지 마음이 좀... 또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기자들, 언론에 대한 속죄의 의미도 있었구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삼보일배에도 함께했죠. 4년 동안 잘 한 건 없는데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간 것 같아요. 동력을 최대한 끌어냈죠. 생각해보면 우리가 저항할 수 있는 최대한은 하면서 나로 주진 않았어요."
 
신문의 위기, 원인과 대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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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도쯤, 거의 20년 전부터 신문의 위기예요. 기자 생활 대부분을 신문의 위기 속에서 보낸거죠(웃음). 1988년 올림픽 때 지면이 확 늘어났는데, 꺼져가던 전성기, 마지막 불꽃을 태운거죠. 위기의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건 신뢰도 하락이에요. 신문의 패권적 행태가 신뢰도 하락을 불러왔는데 가장 큰 책임은 조중동에 있어요. '위기,위기'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는 진짜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습니다." 
 
이어 의미 없는 속보 경쟁이 도마에 올렸다. 속보 경쟁으로 인한 폐해는 말 할 것도 없고 나아가 여기서 자유로워지면 공동인쇄를 통해 비용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신문의 경향성을 여론 형성에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신문은 경향성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걸 버리고 나면 사실 아무것도 안 남는 거죠. 우리는 나와 다른 경향성을 보이면 과도하게 비판하는 측면이 있는데, 긍정적 경향성을 갖춘 신문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비판이 집중되는 조중동이 경향성을 뛰어넘는 왜곡․편파보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은 논외로 하구요. 이어 팟캐스트도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신문이라는 매체가 갖는 특징도 인정해야 해요. 보통 300~400명의 편집국 기자들이 있고, 한 가지 사안이 떨어지면 30명 정도가 함께 논의하곤 해요. 취재의 방향과 윤리, 정보 취합 등 집단지성이 발휘되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보도 규칙이 마련돼 독자들에게 전달되는데, 이 과정의 중요성을 기자들 스스로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언련을 만나게 한 ‘안티조선’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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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강성남 회원은 서울신문 지부장과 언론노조 신문통신노조협의회 의장을 겸하면서 '안티조선' 운동을 통해 민언련을 자연스럽게 알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장면을 소개했다.
 
"민언련은 2000년대 초 ‘안티조선’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함께 캠페인을 하는데 민언련 이사 한 분이 ‘담배 끊기보다 신문 끊기가 어렵다’며 계속 신문 끊으라고 해서  ‘아이고 이사님, 가뜩이나 신문 안 나가 죽겠는데. 자꾸 신문 끊으라고 하지 말고 좋은 신문을 보라고 하셔야죠' 말했죠."
 
그리고 2011년 수석부위원장을 맡으며 민언련과 인연을 이어갔다. 그런데 민언련 후원은 2013년 10월부터 시작했다고 알려주자, 본인은 당연히 민언련 회원인 줄 알았다고.
 
"2013년 민주시민언론상 심사회의를 왔다가 심사비를 주길래 ‘벼룩의 간을 빼먹지’라는 생각에 특별회비라고 돌려줬어요. 그런데 유민지 활동가가 “어머, 위원장님 회원이 아니에요!”라고 해서 알았죠. 민언련은 언론을 감시․비판하는 시민단체이고, 본인은 감시를 받는 언론인이라는 생각이 강했을 거예요. 캠페인 같은 활동은 연대하지만 내가 하는 이야기와 민언련 시민활동가의 주장이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가입을 미뤘죠."

강성남 회원은 지난 3월 민언련 이사로 선출되면서 한층 더 가까운 관계가 됐다. 민언련 이사로서 신문에 대한 고민을 다양하게 나누고 싶다며, 물론 '성격상' 이사 제안을 거부하면 또 누굴 붙잡고 제안을 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또 민언련과 5.18기념재단이 함께하는 5.18 민주화운동 왜곡언론 바로잡기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프로젝트의 일환인 '5.18 가짜뉴스 신고센터' 센터장을 맡은 것이다. 최근 흐름이 텍스트보다는 사진이나 이미지를 통한 폄훼가 주를 이루다 보니 아무래도 사진기자의 눈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제안했고, 강성남 회원은 두말없이 수락했다. 이번 인터뷰에도 흔쾌히 응했다. 성격상 청을 거절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 보다는 스스로 부담을 떠안는 스타일이라고. 그러니 연대단체 같은 곳에서도 본인을 괸장히 좋아한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한다. 또 드러내는 것을 안 좋아해서 어떤 자리든 무난하게 넘어가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스타일이라고 덧붙인다. 대인 관계에서 모진, 그리고 싫은 소리를 잘 안 하지만 반대로 스스로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게 세우는 편이라고 강조한다.
 
민언련, 대중성 확장에 힘 쏟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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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나 시민사회단체 모두 대중성을 좀 더 확장했으면 좋겠어요. 대중들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콘텐츠와 행동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언련에 욕심을 내자면, 언론을 공부하는 학생 등과의 교류를 확대하면서 대중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민언련 회원이나 주위의 중요한 사람들. 흔히 말하는 '셀럽'의 역할을 높여 시민과 함께 이야기하고 듣고, 공감하면서 언론 이슈의 확산과 대중성이 확보를 꾀하자는 것이죠."
 
강성남 이사는 ‘성실’과 드러내길 주저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사진 기자이면서도 사진 잘 찍는다고 생각해 본 적 없고, 오히려 잘 찍고 못 찍고를 판단하는 것조차 맞지 않다고 말한다. 흔하디흔한 공적서 제출해 본 적 없다는 강성남 회원. 꾸밈없는 강성남 회원과의 유쾌한 인터뷰를 마친다.
 
글을 쓰면서 녹취록을 여러 번 살펴봤다. 스스로를 성실한 사람이고, 남에게 부담을 전가하기보다 조금 어렵더라도 차라리 본인이 맡아 하는 게 속 편한 스타일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강성남 회원을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언론자유와 공정언론을 향한 확신, 그리고 사람과 조직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으리라.
 
조영수 협동사무처장 · 사진 김규명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