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_책이야기|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고통과 함께함에 대한 성찰

"인권활동가에게 이 책을 드린다"
등록 2019.01.2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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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나눌수 있는가 저자 엄기호_나무연필.jpg

 

책의 제목으로 사용된 질문,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는 삶 그 자체를 되돌아보도록 만든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려 애쓰다 보면, 세계와 인간을 어찌 바라봐야 하는지 또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겐 이 물음 자체가 무의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세상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데, 또 신나는 일의 연속인데, 기쁘고 신나는 일만 이야기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굳이 머리 아픈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에겐 질문 자체가 쓸 데 없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라면 굳이 이 책을 펼칠 이유는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한 번이라도 자기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겪은 이라면 또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 요리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풍성한 사유의 향연을 선사한다. 사유와 행동이 상호 작용하며 삶을 이룬다고 할 때, 각자가 한 발 앞으로 내디딜 수 있는 길 또한 암시 받을 수 있다. ‘고통을 나누는 10단계’와 같은 실용적 지침 따위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러한 지침을 구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책은 이렇게 끝난다. “인권활동가들에게 이 책을 드린다.” 책은 이 문장을 향해 달린다. 우리 시대가 겪는 고통과 그 곁을 지키는 이들의 황량한 풍경에서 시작된 여정은 고통을 전시하고 소비하는 메커니즘을 해부하는 길로 들어선 뒤 다시 그 고통의 곁과 그 곁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인권활동가들이야말로 고통의 곁과 그 곁을 지키는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작가에 따르면 고통은 말해질 수 없다. 고통은 말해질 수 없기 때문에 고통이다. 고통이 말로 표현되는 순간은 이미 고통이 사라진 뒤다. 말과 고통은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이다. 말은 소리와 구분된다. 말은 의미의 세계다. 의미가 사라진 말은 잡음이다. 인간은 의미라는 접착제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이란 말 자체가 그렇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이는 의미가 흐르는 시공간이다. 고통에 처한 사람은, 그걸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다. 그저 절규할 따름이다. 소리의 연속만을 내어 뱉을 따름이다.

고통은 말해질 수 없는데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혹은 그 고통과 함께 살아가려면 누군가는 그 말을 들어줘야 한다. 그 말을 듣는 이가, 작가가 말하는 곁이다. 국어사전에서 곁은 이렇게 표현된다. “어떤 대상의 옆. 또는 공간적/심리적으로 가까운 데” 그리고 “가까이서 보살펴 주거나 도와줄만한 사람.” 작가는 주로 후자, 즉 곁을 ‘사람’으로 본다. 고통의 말을 듣는 사람 말이다. 곁은 말이 아닌 말 즉, 소음을 듣는 자다. 거기에서 다른 고통이 생겨난다.

고통 받는 자의 곁이 겪는 고통은 응답할 수 없는 고통이다. 고통 받는 자는 응답을 원하지 않는다. 곁은 배설의 창구다. 고통 받는 자는 말을 잃었다. 말이란 의미의 흐름이 있을 때 말이다. 주고받을 때에만 말이 성립된다. 그런 면에서, 모든 말은 누군가의 말에 대한 응답이다. 고통 받는 자는 이러한 응답을 원하지 않는다. 말을 잃었기 때문이다. 고통은 말 너머의 세계이고 이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다. 응답할 수 없음은 또 다른 고통을 낳는다.

 

이러한 고통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작가는 어떤 확신도 우리에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조심스럽게 그가 내어놓는 답은 고통의 곁을 지키고 있는 자들의 곁을 지키자고 요청한다. 곁의 곁이다. 곁의 곁은 말이 흐르는 자리다. 말은 흐를 때 비로소 말이 된다. 곁의 곁은 흐르지 않는 말로 고통 받고 있는 곁이 고통을 말하는 걸 들을 수 있고 응답할 수 있다.

곁은 안과 바깥이 만나는 자리다. 고통 당사자가 자기 자신의 안에만 있을 때엔 고통을 말할 수 없다. 그가 바깥으로 나올 때 비로소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곁은 안과 바깥을 매개함으로써 고통 받는 자가 세상과 소통하는 걸 돕는 자다. 고통 받는 자 스스로 안에서 나와 곁의 자리로 이동할 수 있을 때까지 타자가 곁을 대신해 줄 수 있다. 타자로서 곁에 있는 자 또한 도움이 필요하다. 곁의 곁이 있을 때 곁은 살아 갈 수 있고 그리하여 고통 받는 자의 고통 또한 조금이나마 경감될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곁이 되어 주는 사회를 만드는 일을 인권활동가들이 하고 있다. 이 책을 그들에게 바치는 이유일 것이다.

 

신호승 서클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