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목적 대신 관심과 이해로
등록 2019.01.2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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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고가 나가는 시점에 나는 유부남이다. 나는 12월 22일 결혼한다. 스스로의 의지를 바탕으로, 계획과 실행을 반복하며 살아온 나에게 결혼은 어떤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의무와 짐뿐인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결정했고 책임질 것이다. 상대방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고, 서로란 이름으로 충만함을 부여받는다. 경제적 걱정도 줄어들었다. 둘이 벌기에 산술적으로도 이전 수입에 곱절이다.

​​다만 결혼을 3일 남기고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고민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육아 문제다. 문제라는 형용사가 어색하지 않은 '육아'는 어디로 빠져나가려고 해도 앞으로 수년간 나를 옥죄어 올 것이다. 계획과 실천을 좌우로 꾀어가며 인생을 조직해가는 성취감을 제일로 삼는 나에게 육아는 인생 최대의 난관이다. 육아가 시작되면 다이어리에 적힌 수많은 계획과 꿈들은 과연 실체화될 수 있을까? 오찬호가 책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서 말하듯 “너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 했을까 싶어”가 아니라, “만약 너를 안 낳았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될 것 같은 게 지금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제이슨 라이트맨의 신작 영화 <툴리>의 전반부 내용은 이런 나의 고민은 더욱 증폭시켰다. 영화의 주인공 마를로는 두 명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동시에 그녀는 세 번째 출산을 코앞에 앞두고 있다. 배 속에 있는 셋째 아이도 무겁지만 둘째 아들 조나의 자폐증상이 그녀를 더욱 속상하게 한다. 육아에 무관심한 남편은 밤마다 게임을 할 뿐이다.

​​그럼에도 마를로는 포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마를로의 친오빠가 야간 보모를 쓰는 비용을 대준다고 해도 ‘자신의 삶을 외주를 줄 수 없다’며 다른 도움을 거부한다. 마를로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모성애를 발휘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일상은 점점 초췌해진다. 기저귀 더미와 아기들의 울음, 모유 유축기를 낀 채 보내는 24시간.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에게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지만, 당사자 마를로에게 이 시간은 고통의 연속이다.

​일상적인 육아 장면이 얼마나 폭력적인 장면으로 치환될 수 있는지 감독은 등교 장면으로 보여준다. 하루 중 가장 바쁜 등교시간. 한정된 시간에 많은 물리적 일을 해야 하는 마를로다. 엄마의 마음은 조급하지만 아들 조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급하게 주차를 시도하지만 지정된 주차장으로 가야 한다고 조나는 무작정 난동을 부린다. 그의 증상을 결국 이기지 못하는 마를로는 그가 말한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수없이 줄지어 있는 차 앞으로 향한다.

마를로의 영혼은 이렇게 또 소멸해 간다. 물리적 압박과 아이들의 고함, 그리고 이어지는 무조건적 인내. 차안은 난장판이지만, 밖에서 본 그녀의 차는 고요하기 짝이 없다. 안과 밖의 온도차. 육아의 고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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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일궈온 외부의 삶과는 단절된 채 반복된 노동과 감정 소모로 가득한 내부의 삶. 유대와 연대보다는 뜻을 알 수 없는 고함과 공허의 언어로 가득한 생지옥의 현장. 영화의 전반부는 모성 신화 이면에 존재하는 육아의 고통을 실제적으로 그려낸다. 때로는 공포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세 아이의 육아 과정은 새롭게 등장한 ‘툴리’란 인물을 통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툴리는 저녁에만 아이를 돌보는 야간 보모다. 타인의 손에 아이를 맡기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던 마를로는 그녀를 경계한다. 하지만 툴리의 도움으로 깊은 잠을 청하게 된 마를로는 그녀를 향한 경계를 서서히 푼다. ‘아이들이 아닌 당신을 돌보러 왔다’는 툴리의 인사말처럼 마를로는 툴리의 도움을 통해 육아뿐 아니라 자신의 생체리듬을 되찾는다. 다시금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가꾼다.

일상에 치여 그동안 망가진 육체를 돌보며, 남편과의 섹슈얼리티도 회복한다. 짜증과 인내로 일관했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여유를 발휘한다. 엄마의 역할을 나누고 스스로를 되찾는 아이러니한 관계에서, 툴리의 도움을 통해 마를로는 엄마인 자신도 구해낸다.

​마를로의 삶이 안정되면서 영화의 후반부는 두 캐릭터의 관계형성에 초점을 맞춘다. 많은 공통점을 찾은 둘은 계약관계 이상의 유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한창 관계가 무르익는 시점, 툴리는 사라진다.

아니 영화는 툴리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고를 통해 병원에 입원하게 된 마를로는, 툴리가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툴리는 밤의 마를로가 아니었다. 육아 압박을 이기지 못해 밤새워 일하는 마를로였고, 육아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만들어 낸 혼자 대화하는 마를로였던 것이다. 문제는 가족이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을 만큼, 육아문제에 있어서 마를로 스스로만 책임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0대 미혼모의 삶을 다룬 영화 ‘주노’로 알려진 감독 제이슨 라이트맨과 각본가 디아블로는 그들의 전작에 이어 다시 여성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렸다. 그뿐만 아니라 반전을 통해 고립된 육아 시스템에 경종을 울린다. 고된 육아 과정이라는 공감대를 넘어, 모성애가 발휘될수록 더 깊은 우울로 빠져드는 마를로를 표현하기 위해 주인공 샤를리즈 테론은 20kg을 찌웠다. 망가진 육체와 초점 잃은 그녀의 눈동자는 육아의 공허함을 관객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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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계기로 마를로 가족은 다시금 회복한다. 무언가를 해주어야 한다는 압박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로 결심한다. 책임과 목적 대신 관심과 이해로 관계형성을 시작한다. 마를로, 남편 그리고 아들 조나는 서로의 눈높이에서 대화를 시작한다. 영화는 마지막이 되서야 처음으로 충만한 가정을 따뜻하게 그린다. 나의 육아는 어떨까? 여전히 불안한건 사실이지만, 영화를 통해 육아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은 사라졌다. 공포의 24시간이 될지, 충만한 가정이 될지는 결국 나의 선택이다. 자의적 판단 대신 타의적 태도로 대한다면, 육아의 부담도 완전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사라지지 않을까. 부담과 책임이 아닌 성장과 충만으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재홍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