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책이야기] 송건호, 그를 대신해 쓴 자서전
등록 2019.01.2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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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 송건호 저자 청암언론문화재단 _한겨레 출판사(2018.jpg

 

 

『청암 송건호』(청암언론문화재단 편저, 한겨레출판)가 지난 12월 18일 나왔다. 한겨레 창간 30돌을 기념하고자 출판한 이 책은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의장이자 한겨레신문사 초대 사장이던 언론인 송건호(1926~2001)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청암재단과 한겨레가 공동기획했다.

1999년 기자협회보가 전국 언론사의 편집 및 보도국장과 언론학 교수를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20세기 최고 언론인으로 위암 장지연과 함께 선정된 송건호는 언론인의 모범이자 스승이며 한겨레의 정신적인 지주이다.

그는 1993년 한겨레에서 물러난 후 고문후유증과 파킨슨증후군으로 오랜 세월 고통 받다가 자서전이나 대담집을 남기지 못한 채 2001년 12월 타계했다. 이 때문에 언론인, 지식인, 현대사연구가로서 그의 경험과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고, 삶의 여러 부분도 여백으로 남았다. 이는 한국 현대사, 언론사, 지성사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별세 후 『청암 송건호』이 2002년에 발간되고, 작가 정지아의 <나는 역사의 길을 걷고 싶다>와 언론인 김삼웅의 『청암 송건호』이 나왔다. 그럼에도 이 책을 더하는 이유는 대중을 위한 짧고도 정리된 일대기가 필요했고, 남긴 명문들을 널리 읽히고자 함이며, 그에 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9부로 나뉜다.

1부 ‘송건호의 삶’에서는 우선 청암의 삶을 다시 정리했다. 남긴 글, 언론보도, 인터뷰와 대담 그리고 새로 찾은 자료를 바탕으로 일대기를 재구성했다. 그동안 1975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사임한 이후의 삶은 알려졌으나, 그 이전은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출생부터 청년기, 기자에서 논객으로 성장하는 과정,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시기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또한 민주화운동가로서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언론을 옥죄던 언론기본법 폐지를 위하여 헌신한 점도 기록했다. 특히, 그의 글과 인터뷰에서 발견한 오류나 부정확한 점을 바로잡아 반영한 것이 성과이다.

2부 ‘나를 말한다’에서는 그의 자전적인 글들을 모았다. 흩어진 삶의 기록을 모아 생애를 복원하고자 했다. 글 속에서 개인사를 떠나 시대상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3부 ‘송건호를 말한다’에서는 동료, 동지, 후배들이 그를 평하는 글을 모았다. 오랜 세월 교류한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그와 함께한 시간을 회고했고, 글과 생각에 평석을 붙였다. 언론계 후배 김태진와 정상모, 그의 평전을 쓴 김삼웅, 현대사가 서중석의 좌담에서는 그의 여러 면모를 만날 수 있다. 겸손하면서도 온화하고 거짓과 꾸밈이 없던 인품은 큰 감동을 불러온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시절 동지였던 최민희와 장남 송준용의 글에서도 그의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다.

4부 ‘민주·민족·독립언론인’과 5부 ‘민족지성’, 6부 ‘현대사의 개척사’에서는 그가 남긴 글 중에서 두고두고 읽을 만한 명문들을 뽑아서 실었다. 현직언론인으로 언론통제를 겪으며 탄압에 맞섰던 그가 일관되게 ‘언론의 독립과 언론인의 정도’를 주창하며 실천했던 모습을 보며, 독자들은 왜 그가 ‘언론인의 사표’로 손꼽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냉전의식에 맞서 분단 상황을 민족사의 높은 차원에서 반성하고, 우리 민족이 진정으로 살 길을 냉철하게 탐구하는 ‘참된 지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던 그의 목소리도 생생하다. 또한 사상과 학술의 자유가 제한된 시기에 사료의 부족과 열악한 집필 환경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와 해방전후사 부문에서 선구적인 연구업적을 남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7부 ‘송건호에게 묻다’는 1992년 사학자 서중석 교수와 나눈 대담이다. 냉전과 반공이라는 시대적 분위기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송건호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아꼈다. 그래서 이 대화는 그가 자신의 삶을 회고한 귀중한 기록이자 한국현대사의 사료이기도 하다. 또한 1987년 10월 무렵 창간을 준비하면서 응한 인터뷰 ‘새 신문을 내고야 말겠다’는 한겨레 창간 과정에 대한 증언이며 시대적 과업을 완수하겠다는 굳은 신념은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과거의 신문, 잡지 등이 디지털 자료로 축적되면서 그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고 원문을 열람하는 길이 열렸다. 이에 8부에서는 선생의 약력 그리고 저서·칼럼과 신문기사·《송건호 전집》에 실리지 않은 글·관련자료들의 목록을 정리했다. 또한 사후 기념사업을 소개하고 ‘송건호언론상’의 수상자 선정 사유를 수록했다. 앞으로 선생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9부에서는 선생의 일생을 사진으로 정리했고, 미공개 사진도 넣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했다.

 

물론 이 책의 한계도 있다. 무엇보다도 논설위원을 오래 역임했던 그가 집필한 무기명 논설들을 가려낼 수 없기에 싣지 못해서 아쉬움이 크다. 그의 삶을 더 발굴하고 복원하는 것은 후배들의 몫이다.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이어져야 하는데, 이는 미래의 연구자에게 맡기고자 한다. 대신 그들을 위해 이 책이 인간 송건호에 대한 충실한 안내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의 기념사업을 하는 청암언론문화재단이 편저한 이 책은 송건호를 대신해 쓴 자서전이자 그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선생의 명복을 빈다.

 

이병호 청암언론문화재단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