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 [영화이야기] 섣부른 단죄, 누구라도 책임지지 않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더 헌트>
등록 2019.03.0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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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헌트> 섣부른 단죄, 누구라도 책임지지 않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마녀사냥을 진실을 파악하고자 세심하게 노력하지 않아 조악한 공격을 퍼붓고 그 결과로 대상을 정신적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 집단적 행위라고 정의하는데 동의한다면, 그렇다, 영화 <더 헌트The Hunt>(2012,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는 21세기에 벌어진 마녀사냥의 한 사례에 대한 보고서다. 영화는 한 꼬마 아이가 속상해서 내뱉은 말이 거짓말이 되어 멀쩡한 한 남자가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들에 집중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불편하고 끔찍한 느낌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면, 아마도 이유는 마녀 사냥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특별한 이유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서사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서사로 인해 누구라도 자신 역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갖게 된다. 그런데 그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 있다. 더 진하고 더 긴 여운으로 남는 또 다른 결의 공포감에 대해서다. 사냥에 나선 사람들이 특별한 악인들이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나의 친구들로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이전부터 쌓아올린 악감정을 갖고 나를 의도적으로 괴롭히려는 것도 아니며, 광기에 휩싸여 있지도 않으며, 지적으로 문제가 있지도 않은, 그야말로 멀쩡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나를 포함한 그 누구라도 언제든 ‘평범하고 멀쩡한 채로’ 어떤 이를 사냥할 가능성이다. 그래서 더 끔찍하다.

 

영화 <더 헌트>는 추운 겨울 맨몸으로 강물에 뛰어드는 전통을 이어가는 남자 어른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 유희에서 시작한다. 서로 사이좋게 배려하며 살고 있는 평화로운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짧게 짧게 이어지는데, 이것은 이 후 벌어질 사건의 비극성, 즉 신뢰에 금이 가고 폭행이 벌어지는 마을로 변하는 고통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장르적 장치다.

사단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 사소한 것이 편견에 의해 위기의 이름으로 둔갑하고 서투름을 넘어 조악한 대처로 인해 한 사람이, 그의 가족이, 뿐 아니라 그가 속한 마을 전체가 고통에 시달리는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소녀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는 길을 잃었을 때 집에 데려다 주고, 엄마 아빠가 싸우면서 서로 미루는 유치원 데려다 주는 일도 선뜻 대신해주는 유치원 선생님이자 아빠 친구인 루카스(매즈 미켈슨)에게 애정을 느낀다. 클라라의 애정 표시는 비즈로 하트를 만들어 루카스의 옷 주머니에 넣는 일로 시작되지만, 다른 유치원생들과 뒹굴며 놀고 있던 루카스에게 다가가 갑작스레 입술뽀뽀를 하는 순간,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제지된다. 상처받은 클라라는 루카스가 돌려주는 하트를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며 되받기를 거부한다. 자신의 마음이 거절 당해서 기분이 상한 클라라는 원장에게 루카스가 싫다고 말하게 되는데, 둘 사이가 친하다고 생각하던 원장이 의아해하면서 이유를 묻자 발기한 성기를 보았고 하트도 받았다는 거짓말을 한다. 원장은 클라라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루카스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의심을 어디에 둘지에 대한 판단의 근거는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편견에 대한 맹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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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은 우선 루카스를 불러 사건의 발생을 통보한다. 루카스는 유치원생 중 누군가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었다는데, 누구인지 그리고 뭐라고 말했는지는 듣지 못한다. 당황하는 루카스에게 상황이 안좋지만 걱정말라는 말을 덧붙이는 따뜻한 성품을 가진 원장은 루카스를 돌려보낸 후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방식대로 진상 파악을 시작한다. 당사자인 루카스를 진상 파악에서 제외시키는데 이것이 사건을 키운 결정적인 실수다. 루카스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성폭행 전문가를 불러 클라라를 보인다.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예단한 두 어른은 아저씨의 고추를 보았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젓는 아이에게 사실을 알고 싶을 뿐이라며 자신들의 예단과 같은 대답을 아이에게서 유도한다. 결국 보았다는 답변을 얻어낸다. 성폭행 전문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클라라에게 원장이 거짓말을 하거나 네가 거짓말을 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하여 아이의 기억을 폭력적으로 왜곡하기 시작했고 상담을 통해 사실을 확인해냈다고 생각한다. 원장의 예단은 전문가의 예단과 만나 발견이라 이름하며 루카스를 아동 성폭행범으로 만드는 이 장면은 악의도 없고 판단력에도 문제없고 더 나아가 무엇보다 믿을만하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의 예단이 한 개인을 파괴하고 나아가 한 사회를 분열시키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의 영화는 친구들을 포함해서 사회로부터 밀려나 철저히 고립되는 루카스의 억울한 삶, 그리고 다행히 재판에서 무죄가 밝혀지지만 여전히 냉대하는 친구들과 지역 주민들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 성탄절 예배에서 루카스가 보여준 눈에서 진심을 읽은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절친인 테오가 화해를 요청하는 것을 계기로 다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용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원장과 성폭행 전문가의 폭행이 있었다는 확신 이후 가해자로 지목된 루카스의 입은 ‘아이들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편견에 의해 차단되고, 피해자로 여겨지는 클라라의 입은 ‘끔찍한 일을 당하면 무의식이 기억을 왜곡하거나 지운다’는 심리학적 지식에 대한 맹신에 의해 봉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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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헌트>는 서사를 통해 우리에게 경고한다. 마을에서 화목하게 지내던 이웃들 중에 많은 ‘평범하고 선량한’ 이들은 그저 자신의 생각이 편견이 아닌지를 점검하는 일을 게을리 하거나, 혹은 믿을 만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조건 믿거나, 혹은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시시비비를 가리려 노력하지 않을 뿐이거나, 혹은 사소한 일들에서 맹신이 일상화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녀사냥에 동원될 수 있다고.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다고.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깨어있다고 무조건 믿지 말고, 깨어있음을 늘 점검해야 한다고.

염찬희(회원, 영화평론가)